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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탐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작성자김바울|작성시간19.05.25|조회수1,440 목록 댓글 3



며칠 며칠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라는 후렴구를 가진 찬송이 있습니다( 찬송가 606). 찬송은 요단강 건너 암시된 가나안 귀한 ”(246) “세상 작별한 성도들 하늘에 올라가 만나는곳으로 묘사합니다(3). 그렇기에 찬송은 기독교인 장례식 자주 불려집니다. 그런데 사실은 성경에 기록된 ‘가나안 땅’은 가사처럼 믿고 죽으면 누구나 있는 곳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출애굽 했던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 그곳에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외에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이고, 심지어 대제사장 아론과 핵심 인도자인 모세조차도 가나안 땅에는 들어갔습니다( 14:22-23, 20: 12, 24).



찬송 가사와 성경 기록 사이의 이러한 불일치는 우리가 구약을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적용해야 하는 지를 보여줍니다. 성경은 그들(이스라엘 백성)에게 일어난 이러한 일들은 본보기 되었고, “우리에게 경고 되게 하려는 이라고 말씀합니다(고전 10:11).



사실 지난 달여 동안 구약을 읽어오면서 안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기록을 신약의 믿는 이들인 우리가 어떻게 삶에 바르게 적용할 있을지를 계속 묵상해 오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 얼마 아침에 교회의 추구 진도를 따라 다음 말씀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네게브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 아랏

이스라엘이 아다림 (정탐꾼들의 )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과 싸워

그들 가운데 얼마를 포로로 잡아갔다( 21:1).


 

지점에 오기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역과 불순종과 탐욕과 불평 그들 내부의 적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구절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이스라엘 백성이 직면했던 싸움을 묘사합니다. 가나안 사람 아랏 왕은 아모리 ( 21:21) 바산 (33) 함께 요단 동쪽에 위치했던 대적이었습니다. 이러한 편의 전쟁 외에 저편에서도 많은 전쟁이 있었습니다. 찬송가가 말한 요단강 건너 이후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여리고 , 아이 등에 있는 대적들을 물리쳐야 하는 소위 정복 전쟁 치러야 했습니다. 그리고 내용은 여호수아서와 사사기에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물론 가나안 땅은 물론 젖과 꿀이 흐르는 입니다( 3:8). 그러나 앞에 있는 대적을 진멸한 만큼 차지하고 누릴 있는 땅이었습니다. 가사처럼 인간의 괴롬이 끝나고, 이별의 눈물이 없는 ”(3)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가나안 땅은 구체적으로 어떤 곳인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마고 약속하신 ( 50:24),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 내어 데리고 올라가시겠다고 하신 ( 3:8), “산에 시내가 흐르고 밀과 보리와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와 석류가 있는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을 여호와께서 좋은 땅을 주셨기에 그분을 찬송할 ( 8:7-10).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서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한 자에게 전쟁을 가르쳐 알게 하도록 여호와께서 의도적으로 열국을 남겨두신 가나안 ( 3:4) 과연 어떤 곳인가?



이러한 가나안 땅을 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주제를 심도 있게 추구하는 가운데 알게 아래 관련 각주들이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구약의 예표에서 가나안은 방면을 나타낸다. 긍정적인 방면에서 가나안은 풍성한 땅으로서( 8:7-10 7절의 각주 1) 측량할 없는 풍성( 1:12, 3:8) 가지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의 예표였다. 부정적인 방면에서 가나안은 사탄에 속한 어둠의 왕국인 공중 하늘의 부분 상징한다. 세상의 왕이며( 12:31) 공중의 권세 잡은 통치자인( 2:2) 사탄은 권세( 26:18) 가지고 있으며 천사들( 25:41) 거느리고 있는데, 이들은 사탄의 부하들로서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어둠의 세상 지배자들( 6:12)이다. 따라서 사탄은 그의 왕국( 12:26) 어둠의 권세( 1:13)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이 좋은 땅을 차지하고 누리기 위하여 가나안 족속과 맞서 싸운 것은 성도들이 모든 것을 포함하신 땅이신 그리스도를 누릴 있도록 모든 지체들을 포함한 교회 전체가 하늘들의 영역에 있는 악한 영적인 세력들’( 6:12) 맞서 영적 전쟁을 하는 보여 주는 예표이다(후략)”( 21:1 각주 1).



좋은 땅인 가나안 땅은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온전하고 완전하며 완결된 예표이다. 그리스도는 삼일 하나님의 체현으로서( 2:9) 모든 것을 포함하신 생명 주는 영으로 실재화되셨는데(고전 15:45, 고후 3:17), 영은 하나님의 백성의 누림을 위해 그들에게 할당된 유업이시다(후략)”( 8:7 각주 1).



가나안 땅을 바로 이해하려고 민수기뿐 아니라 창세기와 여호수아서와 사사기 관련 구절들을 읽고 묵상한 결과, 안에 다음 가지가 정리되었습니다.



1. (요단강 건너) 가나안 땅은 나중에’ ‘저기 아니라 지금’ ‘여기 체험하고 누리는 영적인 영역이다.

2. 이스라엘 지파들이 가나안 땅의 분깃을 할당받았듯이( 14:1), 신약 성도들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영접할 가운데에서 성도들에게 할당된 ”( 1:12) 받았다.



3. 그러나 땅의 모든 풍성을 실제로 누리려면, 1) “그분 (좋은 ) 안에서 행하고”( 2:7), 2) “모든 성도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닫고체험하는 몸의 생활( 3:18, 고전 12:14-27) 하며, 3) 누림을 방해하는 모든 영적인 대적들(일곱 족속들) 대항해 승리를 유지해야 한다( 16:18,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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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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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하니발 | 작성시간 19.05.25 천국과 지옥은 하나라는 것을 생각해 보시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제가 오래 전에 올렸던 "성경 속의 광고버젼"을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 작성자갈렙 | 작성시간 19.05.25 성도의 죽음을 요단강으로 묘사한 것은 아마도 죤 번연의 천로역정의 영향이 아니겠나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천로역정을 보면 기독도가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강을 건너게 되죠.
    그래서 성도의 죽음을 요단 강으로 묘사한 것 같습니다.

    물론 요단강이 옛사람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다고 봅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바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5.25 요단강.....옛사람의 죽음...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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