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슥 3:8)
“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1)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2)자기 곳에서 (싹, 가지)돋아나서 3)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4)영광도 얻고 5)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 6)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슥 6:12-13)
(슥 6:12-13, 킹흠정) 『[12]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이르시되, 그 이름이 1)[가지]인 이 사람을 보라. 그가 2)자기 처소에서부터 자라나 3)주의 성전을 건축하리니 [13] 곧 그가 주의 성전을 건축하고 4)영광도 얻으며 5)자기 왕좌에 앉아 다스릴 것이요, 또 그가 자기 왕좌에 앉아 제사장이 되리니 6)이 둘 사이에 화평의 논의가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
1) 순 – 예수그리스도
“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1)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
“그날에 2)이새의 뿌리에서 1)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사 11:2-5, 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2)다윗에게 1)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5)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렘 23:5-6)
2)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 다윗의 혈통
“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사 11:1)
(사 11:1, 현대인) 『다윗 왕족의 혈통은 잘라진 나무처럼 끊어질 것이지만 줄기에서 새 순이 돋고 뿌리에서 새 가지가 나오듯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한 새로운 왕이 일어날 것이다.』
“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행 13:22-23)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계 5:5)
3)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 Ⅰ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당신의 희생과 중보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교회의 기초와 건축가가 되신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모퉁잇 돌”이라고 지적하고,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간다고 말한다. 또한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지어져 가느니라”(엡 2:20-22)고 한다.
“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0-22)
“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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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
새 예루살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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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 스룹바벨의 손이 이 전의 지대를 놓았은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슥 4:7,9) |
“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 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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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
1차 중건령 |
2차 중건령 |
3차 중건령 |
느헤미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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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예루살렘 |
첫째 천사의 기별 |
둘째 천사의 기별 |
셋째 천사의 기별 |
계18장 천사의 기별 |
스룹바벨은 주의 전을 짓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갔지만 그의 사방에는 어려운 일들 뿐이었다. 그의 대적들은 “유대 백성들의 손을 약하게 하고 건축을 어렵게 하였다.” 그리고 “힘과 권세로 건축을 중단케” 하였으나 주께서 개입하셔서 전이 필역되었다 (참조 슥 4:6, 7,10).
하나님의 전의 회복과 건축을 방해하기 위하여 생겼던 그 어려움들과 꼭 같은 난관들, 곧 스룹바벨 앞에 나타났던 곤란의 큰 산들을 오늘날 하나님과 그분의 사업에 충성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만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놓으신 기초 위에 사도들은 하나님의 교회(성전)를 세웠다. 성경은 성전 건축을 흔히 교회를 세우는 표상으로 사용하고 있다.
스가랴는 그리스도를 여호와의 성전을 지을 가지(순)라고 언급한다. 그는 이방인들이 사업을 도울 것이라고 말한다. “먼 데 사람이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슥 6:12, 15)라. 이사야는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사 60:10).
이 성전 건축에 대하여 기록하면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4, 5).
사도들은 유대와 이방 세계의 채석장에서 기초를 놓을 돌들을 채취하는 일에 수고하였다.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신도들에게 보내는 그의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19-22).
그리고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고전 3:10-13).
사도들은 확실한 기초, 즉 만세 반석 위에 세웠다. 그들은 이 기초에 저희가 세상으로부터 채석한 돌들을 가져왔다. 건축자들이 방해를 받지 않고 수고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사업은 그리스도의 원수들의 반대로 극도로 어려워졌다. 그들은 거짓된 기초 위에 짓고 있는 사람들의 완고와 편견과 증오에 맞서 싸워야 하였다.
교회의 건축자로서 일한 많은 사람들은 느헤미야 시대의 성벽 건축자들에게 비유될 수 있다. 그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성을 건축하는 자와 담부하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다(느 4:17).
왕들과 총독들,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투옥과 고문과 죽음을 무릅쓰고 충실한 사람들은 사업을 진전시켜 성전 건물은 아름답고 균형 있게 건축되었다. 때때로 일꾼들은 저희 주위에 둘러 있는 미신의 안개로 거의 눈멀게 되었다. 때때로 그들은 대적들의 폭행에 거의 압도당하였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신앙과 충실한 용기로 그들은 사업에 전념하였다.
건축자들의 최선봉에 선 사람들은 차례로 원수의 손에 쓰러졌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었고, 야고보는 칼에 죽임을 당하였고, 바울은 목 베임을 당하였고, 베드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요한은 유배당하였다. 그러나 교회는 성장하였다. 새로운 일꾼들이 넘어진 사람들을 대신하고 건물에는 돌에 돌이 첩 놓이게 되었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교회라는 성전은 서서히 올라갔다.
그리스도 교회의 설립 이후에 여러 세기 동안 격렬한 박해가 있었으나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사업을 생명 그 자체보다 더 귀중히 여긴 사람들이 부족된 적은 결코 없었다. 이런 사람들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 11:36-38).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을 옹호할 수 있는 교역자들을 일으키셨다. 이 사람들의 인내와 영웅적 행위가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사도들처럼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저희 자리에서 쓰러졌으나 성전을 건축하는 일은 꾸준히 전진하였다.
일꾼들은 죽임을 당했으나 사업은 전진하였다. 왈덴스인들, 존 위클리프, 후스와 제롬, 마르틴 루터와 츠빙글리, 크랜머, 래티머 그리고 녹스와 위그노들과 요한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 그리고 다른 많은 무리들은 영원 무궁토록 견딜 재료를 기초에 가져왔다.
3)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 Ⅱ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 구주께서 돌아가셨을 때에 흑암의 권세가 승리한 것처럼 보였으며, 그들은 그들의 승리로 기뻐 날뛰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요셉의 무덤을 가르시고 정복자로서 부활하셨다.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 2:15).
그리스도는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로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 닌 “참 장막에 부리는 자”(히 8:2)가 되셨다.
유대인의 성전은 사람이 건축했다. 지상에 있는 것의 원형인 하늘 성소는 인간 건축가가 세운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도를 예표하던 희생 제사는 끝났다. 그러나 사람들은 세상의 죄를 위하여 바쳐진 참된 희생 제물에 눈을 돌렸다. 지상의 제사장 직분은 끝났다. 그러나 우리는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의 피”를 바라본다.
“첫 장막(지상성소)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하늘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 더 크고 온전한 장막(하늘성소)으로 말미암아 …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하늘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12:24, 9:8-12).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5).
성전의 봉사가 지상에서 하늘의 성전으로 옮기워지고, 성소와 우리의 크신 대제사장이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제자들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조금도 손실을 당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들은 구주의 부재(不在)로 말미암아 그들의 교통이 단절되거나 능력이 감퇴되는 일이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시는 한편 그의 성령으로 여전히 지상의 교회를 섬기는 자가 되신다.
4) 영광도 얻고
“영광도 얻”으리라. 타락한 인류를 구속하신 영광은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다.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 영원 무궁토록 부를 노래는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 … 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계 1:5, 6)는 노래가 될 것이다.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0,23-24)
“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요 12:32)
“때가 왔도다.” 앞서 말할 때에는 예수가 자기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했다(참조 요2:4; 7:30; 8:20). 그러나 지금은 그의 죽음의 때가 가까이 이르렀다. 십자가에 달리는 날까지 나흘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사업의 완성을 향해 접근하고 계셨다. 유대 민족에게 뿐만 아니라 온 세계와 관련된 위대한 사건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세상의 갈한 외침의 메아리인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라는 열렬한 요청을 들으시고 그리스도의 얼굴은 빛났으며 그분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헬라인들의 요청 가운데서 당신의 위대한 희생의 결과에 대한 전조를 보셨다.
박사들이 그분의 생애의 초기에 동방에서 왔던 것처럼 이 사람들은 그 분의 생애의 말기에 구주를 찾아 서방에서 왔다. 그리스도의 탄생 당시 유대 백성들은 그들 자신의 야심적인 계획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그분의 강림을 알지 못하였다. 박사들은 구주를 경배하고자 선물을 가지고 이교의 땅으로부터 구유까지 왔다.
마찬가지로 헬라인들은 온 세상 나라와 족속과 백성들을 대표하여 예수를 만나려고 왔다. 그와 같이 구주의 십자가는 모든 나라, 모든 시대의 사람들을 이끌 것이다. 이와 같이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마 8:11)을 것이다.
5)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
“제사장”.. (「KJV」에는 “he shall be a priest”[그가 제사장이 될 것이요]로 되어 있음-역자 주). 제사장과 왕의 이중적인 직분을 가졌던 멜기세덱처럼(눅 1:32, 33; 히 5:5, 6, 10; 7:1, 2, 15~17; 8:1, 2), 그리스도는 제사장이 되실 것이며 결국 “그 조상 다윗의 위”에 오르실 것이었다(참조 시 110:1~4).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초림 시에 인간의 죄악을 제거하고 그들의 품성을 변화시키기 위해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 봉사하실 자격을 얻으셨다(히 2:17). 그분은 재림 시에 그들을 다스리기 위해 왕으로 오실 것이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마 25:31)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아직 영광의 나라가 시작되지 않았으므로 그 영광의 위에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중보자로서의 봉사를 마치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실 것인데”그것은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고 한 그 나라이다(눅 1:32, 33).
지금 그리스도께서는 제사장으로서 아버지와 함께 보좌에 앉아 계신다(계 3:21 참조). 영원하시고 자존하신 하나님과 함께 보좌에 앉아 계신 주님은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고,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므로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는 분이시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다(사 53:4; 히 4:15, 2:18; 요일 2:1). 그분께서는 당신의 무죄하신 생애와 상하고 찔림을 받은 몸을 가지고 중보하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상하신 손과 찔림을 받으신 옆구리와 상처난 발을 가지고 죄에 빠진 인류를 위하여 탄원하신다. 그들의 구속은 그처럼 무한한 값을 치르고 이루어졌다.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히 8:1)
“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6) 평화의 의논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성자(聖子)의 사랑보다 약하지 않는 아버지의 사랑이 타락한 인류의 구원의 기초가 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가시기 전에 그들에게 “내게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요 16:26, 27)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고후 5:19)셨다. 하늘 성소의 봉사로써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을 이루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평화의 의논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하나님께서는 인류가 타락할 것을 미리 아시고 인류를 구원할 계획을 아들과 함께 세우셨다.
이 계획은 인류가 죄를 지은 후에 계획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구속의 계획을 세우셨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누구든지 믿는 자는 구원(하나님의 자녀)하기로 계획을 세우셨다. 즉 예정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며, 복음이고 비밀이었다. “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요 6:40)
“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행 3:20)
“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4-5)
“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엡 3:1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전 2:7)
사도바울이 말한 “ 복음의 비밀”(엡 6:19)이며,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7)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에 따라 누구든지 믿는 자는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예정하셨고, 때가 차매 보내주셨다. 이것이 창세 전에 미리 예정하신 것이며, 감취었던 비밀이었으나 성령께서 깨닫게 하셨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2:12)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후에 바로 이 비밀을 공개한 것이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 3:16)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롬 16:25-27)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마 13:35)
“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벧전 1:20)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골 1:26)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 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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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작은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05.09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사 53:11)
종은 하나님을 믿는 자이기도 하지만 예수님도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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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작은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05.10 교회님 반복되는 것은 맞습니다.
시간을 좀 주시면 두 증인에 대한 저의 견해를 정리해서 올려드리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중동의 이스라엘이 국가적으로 회개하여 예수를 영접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의 많은 증거를 제사할 수가 있습니다.
이 성경구절을 교회님께서 깊이 묵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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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작은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05.10 히9:27-28절을 잘 보십시요
한번 죽는 이유는 아담의 죄의 결과이고요
심판은 각 사람이 죽은 후에 자기의 행한대로 받는 보응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4)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9)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이유는 각 사람이 행한대로 상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의인에게는 생명의 부활이요 악인들에는 심판의 부활이지요
그러나 생명의 부활이 먼저인데 재림시에 있는 사건이지요 -
답댓글 작성자작은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05.10 초림은 죄 때문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믿는 자는 구원을 얻죠. 두번째 오실 때는 죄와 상관없이 라고 합니다.
이 말은 각 사람의 구원의 문제가 결정되었다는 말입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이 흘린 피를 가지고 하늘성소에서 지금도 중보하고 계시지요
그래서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고후 6:2)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 구원을 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은 죄인을 위한 중보가 끝이 났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죄와 상관없이 각 사람이 행한대로 상을 주시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지요? -
답댓글 작성자작은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05.10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1-12)
위의 말은 두 번째 오시기전에 모든 사람의 운명이 결정 되었다는 말입니다.
즉 생명의 부활로 나올 자들과 심판이 부활로 나올 자들이 결정이 되었기에 각 사람이 행한대로 상을 주시기 위하여 오시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각 사람의 구원의 문제는 재림전에 끝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