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하면 이단….
예언해도 이단….
귀신 쫒아도—축사 해도—이단….
병 고쳐도—신유가 나타나도—이단….
기뻐서 뛰고 춤 춰도 이단…..
그렇다면 소위 일컫는 “이단 만들기”를 하는 분들에게 좋은 교회는
엄숙하고 무겁게—그분들 말로는 경건하게—예배 드리는 교회
그러니까,
NO방언
NO 예언
NO 축사
NO 신유
NO 댄스
절제, 절제, 절제….
경건, 경건, 경건….
그렇게 예배를 드리면 이단 소리 안듣습니다.
상기의 “이단 소리 듣는 교회”와 “이단 소리 안듣는 교회” 중 어느 쪽이 성경적입니까?
“이단 소리 안듣는 교회” 즉,
“이단 만들기”를 하는 분들에게 좋은 교회는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단 만들기”를 하는 분들에게 좋은 교회는
성경적인 교회입니까? 아니면, 신학적인 교회입니까?
“이단 만들기”를 하는 분들에게 좋은 교회는
사도행전적인 교회입니까?
신학에서 일컫는 “은사 중단론”에 충실한 교회입니까?
이쯤이면 “이단 만들기” 뒤에 있는 실상(들 중의 하나)에 대해 눈치 채셨을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은사—영적인 역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은사 중단론”이라는 신학 입니다.
그냥 쉽고 단순하게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은사 중단론”의 논리가 정연하고 설득력이 있어도 그 결과가 성경과 맞지 않으면 “비성경적”입니다. 사도 행전의 교회들 중 은사 중단론에 맞는 교회는 하나도 없습니다; “은사 중단론”에 충실한 교회는 결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은사 중단론”은 비성경적입니다.
“은사 중단론”의 실체에 대해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냥 쉽고 단순하게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은사 중단론”은 성령님의 영적인 역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악하고 더러운 영들의 영적인 역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은사 중단론자”들은 성령님의 영적인 역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악하고 더러운 영들의 영적인 역사 는 계속 존재한다고 합니다—그래서 그들은 영적인 현상들에 대해 (심리~정신의학 현상 내지는) 성령님의 역사라고는 않으면서도 악하고 더러운 영들은 역사라고는 합니다. “은사 중단론”은 성령님의 영적인 역사는 없다고 하면서 악하고 더러운 영들의 영적인 역사는 인정 합니다. 그래서 “은사 중단론”에 충실한 교회가 결코 사도행전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사 중단론”은 비성경적입니다.
“은사 중단론”을 고수하시는—특히 “이단 만들기”를 하는—분들에 대해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쉬운 예를 한가지만 들겠습니다. 옆 교회에서는 성령님께서 역사 하셔서 평신도들도 병고치고 귀신을 쫒습니다. 그러나 목사 또는 신학교 교수인 자신에게는 그러한 역사가 없습니다. 엎친데 곂친 격으로 교인들이 와서 아프니까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누가 귀신 들린 것 같은데 쫏아 달라고 합니다; 그 교회 가니까 성령님의 역사가 넘친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하나 둘씩 교회를 그 교회로 옮깁니다; 장로님들이 교인들 떠나는 것을 보면서 자신에게 압력을 가하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옆 교회에서 건축을 합니다. 여러분이 그 목사나 신학교 교수 같으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이 때 하나님을 정말로 두려워하지 않는 목사나 신학교 교수 같으면 어떻게 반응 하겠습니까? 무엇이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면서도 쉽게 반응하는 방법이겠습니까? “은사 중단론”으로 위로 받고 오히려 그 교회에 대해 “이단 만들기”를 하는 것도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면서도 쉽게 반응하는 방법 중 하나일 것입니다. 물론, 모든 “은사 중단론”을 고수하고 “이단 만들기”를 하는 분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분명히 가능성은 있는 이야기 입니다.
“이단 만들기”를 하는 분들에 대해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쉬운 예를 한가지만 들겠습니다. 성령님께서 역사 하신다는 집회, 기도원, 교회 등에 가 보셨을 것입니다. 거기서 많은 분들이 은혜 받고 방언, 예언, 신유, 축사 등 성령님의 영적인 역사도 체험하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물론, 그 와중에는 소수이지만 성령님의 역사라고 하기에는 “의심스럽게 반응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언제나 그렇듯이 공식처럼” 그 집회, 기도원, 교회 등이 이단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 합니다. “왜 이단이라고 할까?” 궁금해서 이단이라고 비판하는 기사들을 읽어 보면 아니나 다를까 쏟아져 나오는 간증들은 다 무시하고 그 “의심스럽게 반응하는 장면들”만 보도 합니다. 그렇게 “의심스럽게 반응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소수였는데, 거기에 있던 대부분의 (그러나 뉘앙스는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들처럼 반응하는 것 처럼—그래서 악하고 더러움 영들에게 사로잡힌 것 처럼—보도 합니다. 분명한 거짓말 입니다. 그럼 이제 “이단 만들기”를 하는 분들에 대해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냥 쉽고 단순하게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볼 때에는 “이단 만들기”를 하는 분들이 첫째,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든지; 둘째, 정말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의 경우처럼 정말로 “착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 입니다. 어느날 장독을 열어 보니 구석에 구더기가 두마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눈에는 구더기가 꽉 차서 득실거리는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분명히 “의심스럽게 반응하는 사람들”은 소수였는데, 그 사람의 눈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람들처럼 반응하는 것 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 사람의 눈에는 쏟아져 나오는 간증들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아주 심각한 문제 입니다—심리~정신의학적인 문제가 있든지 악하고 더러운 영에 사로 잡힌 것입니다. 그럼 이제 “이단 만들기”를 하는 분들( 중 둘째의 경우에 해당하는 분들)에 대해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냥 쉽고 단순하게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누가 정신 이상입니까—“이단 만들기”하는 분들의 말대로 방언하고 예언하고 병고치고 귀신쫒는 분들입니까 아니면 “이단 만들기”하는 분들입니까? 누가 악하고 더러운 영에 사로 잡힌 사람들입니까—“이단 만들기”하는 분들의 말대로 방언하고 예언하고 병고치고 귀신쫒는 분들입니까 아니면 “이단 만들기”하는 분들입니까? 물론, 모든 “이단 만들기”를 하는 분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분명히 가능성은 있는 이야기 입니다.
“은사 중단론”의 위험성에 대해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은사들—성령님의 영적인 역사—에 대해 “미혹,” “신비주의,” “악령의 역사,” “귀신들려서 능력을 행하는 것,” “귀신의 음성을 듣고 예언하는 것,” “이단,” 등으로 비판하고 정죄했다고 가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은사들이 정말로 성령님의 역사였다면 그 사람은 누구를 귀신이라고 한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귀신이라고 한 자들에 대해 어떻게 반응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막 3:28 – 30),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눅 12:10),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 12:31 – 32)라고 반응 하셨습니다. 신학자들과 설교자들 중에 예수님의 그 반응에 대해 “진짜 사함 못받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진짜 사함 못받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라고 해석을 (시도) 하시는 분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그분들의) 해석을 통해 보시지 마시고 있는 그대로 보시기 바랍니다—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성령님을 귀신이라고 (모독)한 사람들에게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은사 중단론자들과 그들의 편에서 성령님을 귀신이라고 (모독)한 사람들이 “은사 중단론”이라는 잘못된 신학에 속아서 끔찍한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사 중단론”은 위험한 신학 입니다—경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다시끔 여쭙겠습니다.
“이단 만들기”를 하는 분들에게 좋은 교회는
성경적인 교회입니까? 아니면, 신학적인 교회입니까?
“이단 만들기”를 하는 분들에게 좋은 교회는
사도 행전적인 교회입니까?
신학에서 일컫는 “은사 중단론”에 충실한 교회입니까?
사도 행전의 교회들 중 은사 중단론에 맞는 교회는 하나도 없습니다—즉, “은사 중단론”에 충실한 교회는 결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은사 중단론”의 논리가 정연하고 설득력이 있어도 그 결과가 성경과 맞지 않으므로 “비성경적”입니다. 그러므로 “은사 중단론”은 비성경적입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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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등대지기 작성시간 13.05.14 막말은 자제해 주세요.
다음엔 정지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손뚱쓰 작성시간 13.05.14 ccd나 율동을 댄스로 표현하신거 같네요..^^
오해하지 마시길 바라네요
글쓰신분의 의도를 한번쯤 생각해보심 ..^^
이런식의 댓글은 안쓰실거같은데
너무막말이신데요.. -
답댓글 작성자Gabriel 작성시간 13.05.14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란 말씀이 생각나네요 ^ ^
1. 영적은사를 가장한 땐스였다면 교습소에서.. 2. 성령이 주신 은사였다면 성도들 사이에서 하는 것이 맞죠~
아마도 스스로의 양심에서 판단 하실 수 있을테고..
크고 두려운 주님의 날이 와서 그 분 앞에 서게 되면 무엇을 숨길 수 있겠습니까..
행한데로 말한데로 심판 받을 겁니다.. 아멘 ^ ^ -
답댓글 작성자오만 작성시간 13.05.15 교회에서 락음악이나 하고 귀뚫고 강남스타일 부르며 춤추는건, 그건 이미 교회가 아닙니다!
뉴에이지/에큐메니컬 모두가 마귀의 교란입니다
게시글의 논점이 다소 벗어 난것 같지만
어떤의미에선 비슷하다고 보여집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세상의 것들을
가져다 쓴다는것..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는건 자명한 사실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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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YourSon 작성시간 13.05.14 역대상 15:28,29
이스라엘 무리는 크게 부르며 각과 나팔을 불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힘있게 타며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어 올렸더라 /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윗성으로 들어 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어다보다가 다윗왕의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심중에 업신여겼더라
언약궤가 돌아올때 다윗은 춤추며 뛰놀았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성령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에게 오시니, 이처럼 기쁘지 아니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