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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탐구

'의'에 이르는 믿음은 수동형이다.

작성자갈렙|작성시간13.07.02|조회수1,012 목록 댓글 8

우리가 '이신칭의'의 근거로 삼는 구절 중의 하나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는 누구나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에 이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무엇인가 현실적으로 미흡함을 많이 느낍니다. 왜냐하면 자칭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그에 합당한 열매들이 나타나지 않는 모습들을 너무나 많이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 대한 자세한 관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관찰해보니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무엇이 보입니다. 즉,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믿음>은 능동적일거라고 생각하는데 반하여 바울이 말하는 것은 <믿어져>라고 하는 수동의 뜻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어로 풀어보면 그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마음으로 믿어>라는 말은 헬라어로 <카르디아 가르 피스튜에타이>입니다. 분해해 보면 [카르디아-]는 <마음>의 여성. 여격, 단수로서 <마음에게>라는 뜻이고,

[가르]는 접속사 <왜냐하면>이고,

[피스튜에타이]는 <믿다>의 현재. 3인칭. 단수. 수동태로써 <믿어져>입니다.

연결해보면 <왜냐하면 마음에게 믿어져>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우리 성경(개역한글)의 <마음으로 믿어>와 큰 대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으로 믿어>가 옳을까요?

<마음에게 믿어져>가 옳을까요?


유감스럽게도 우리 개역한글 뿐만 아니라 모든 한글성경들이 한결같이 <마음으로 믿어>라고 능동형으로 번역을 해놓았습니다.. 

영어성경들도 거의 다 킹제임스의 "For with the heart man believeth" 처럼 능동형으로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오직 유일하게 다비의 성경만이 "For with the heart is believed"라고 수동태로 번역을 했습니다. 이 구절에 관한 한 다비의 성경이 조금은 정확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럼, [피스튜오:믿다]라는 말이 능동태일 때와 수동태일 때에 무엇이 다를까요?

 

먼저 개역한글처럼 <믿는다>는 것이 능동태로 되어 있다면, 믿음은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즉, 믿고 안믿고가 나의 의지로 되어진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다>는 것이 수동태로 되어 있다면, 믿음은 주시는 분이 따로 있으며, 그것이 나의 마음에 들어오면 그 반응으로 믿게 되어진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맞을까요?

 

갈라디아 3:2-5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라고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5절에 가서 또 다시 묻습니다.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물론 바울이 기대하는 대답은 "듣고 믿음에서"입니다.

듣고 믿을 때, 성령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성령은 함께 일합니다. 즉, 믿음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공작에 의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의 단적인 예가 루디아의 회심입니다.

"루디아라 하는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행16:14)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루디아가 회심한 경로를 말해 주고 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서>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때에 루디아는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이고, 성령을 받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믿음이 생긴다는 것은 성령으로 인한 것이며, 결코 자기의 의지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0장 10절은 <믿어져>라는 수동형 표현이 맞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믿음이 마음속에서 생겨나야 의에 이르는 것이지 자기 스스로 <믿음>을 고백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살후3:2)

오늘날 믿노라하면서도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성령으로 인해 주어진 믿음이 아니라 자기 의 의지로 고백하는 믿음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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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백합향 | 작성시간 13.07.03 한동안 글쓸 일이 없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목사님이 귀한 주제로 말씀을 올려주셔서 댓글을 달아봅니다.

    예레미야 29: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아멘

    이사야 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찾지 않는 까닭은 본다함이요
    목마르지 않는 까닭입니다.

    회개와 자백이 되지 않아서 그럽니다.
    언제나 회개와 자백후에 열어주시고 부어주십니다.
  • 답댓글 작성자갈렙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7.03 아멘! 감사합니다.
    옛날어느 목사님이 일본 형사한테 고문을 받으면서 "나는 예수로 꽉찬 사람이라 건드리기만 하면 예수가 나와! "라면서 전도하셨다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연세가 있으신데도 불구하고 늘 말씀이 힘있게 분출하시니 주님을 기다리는 열정이 뜨거우셔서 그런가 봅니다.
    저도 그리되기를 소망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백합향 | 작성시간 13.07.03 과분한 위로와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천국에서는 말하지 않아도 영과 영으로 완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글을 읽은 생각이 납니다.
    영과 영의 대화는 그러한가 봅니다.

    고린도전서 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요한1서 2:27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아멘
  • 작성자소망에서 사랑을 | 작성시간 13.07.03 예, 아멘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믿는 믿음은 항상 불안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수시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또 자신 스스로 확신이 없습니다.
    자신의 의지로 믿는 믿음은 일시적으로는 믿는 것 같으나 마음속 깊은데에 불안한 것이 있습니다. 이런 것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로 믿음이 오면 그 믿음이 온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믿음의 문제가 마음속에서 해결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일 후에야 성령께서 내게 역사하사 하나님과 교제가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갈렙목사님과 백합향님께서 좋은 글을 올려주셨습니다.
    연합하여 선을 이루고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백합향 | 작성시간 13.07.03 아멘
    믿음과 성령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안에 성령이 계시고
    성령안에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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