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가 무엇이냐?" 라고 로마의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일 그 때 대답을 해 주셨더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혼자 해 본적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진리에 목마른 나같은 사람에게 엄청난 선물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답을 하시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도...대답해 주셔봤자, 그렇게 간단히 빌라도의 머리로 이해할 만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혼자 생각해 봅니다.
'진리'는 헬라어로는 [알레데이아]라고 하는데, 신약성경 안에서만도 109번이나 나오는 말이고, 우리 개역한글에서는 <진리> <진실> <참>...등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가장 많이 번역된 말은 <진리>인데 76번 번역되었습니다.
이 말을 한자적인 의미로 고찰해 보면 <참된 이치>, <참된 법칙>, <참된 도리>라는 뜻이 될 것입니다.
아무튼 이 말의 반댓말로는 <거짓>이 있기 때문에, <진리>란 거짓되지 않은 이치를 말한다고 하겠습니다.
진리와 거짓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얼마전 부터 <참>과 <거짓(가짜)>를 말할 때, 흔히 입에 많이 오르내린 말이 <진짜참기름>과 <가짜참기름>이 있었는데, 이것을 예로 들어 말해본다면...
진짜는 물이나 그 어떤 이물질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오직 참기름 한가지인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변질이 되지 않습니다. 즉, 영원한 것입니다.
이것을 <진짜의 성격>이라고 규정해 놓고 본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 진리가 무엇인가를 찾는데 필요한 토대는 구비했다고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진리>란 하나이며, 변질되지 않으며, 영원한 것입니다.
여러가지가 동시에 존재하거나 중간에 변하거나 영원하지 않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쯤 해 놓고, 이제 진리가 존재하는 여러가지 방면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방면에 진리들이 존재합니다. 세가지 방면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1. 과학적 진리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즉 자연계와 우주는 어떤 불변한 법칙에 의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즉, 수학공식에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2+3=5라는 공식은 만년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어디서나 똑같습니다.
백인에게나 흑인에게나 똑 같고, 착한 사람 앞에서나 악한 사람 앞에서나 똑 같습니다.
만유인력의 법칙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수 만년전이나 지금이나 똑같고,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똑같고, 어떤 사람 앞에서도 똑 같습니다.
그래서 이 시공간의 우주가 존재하는 한, 이 법칙들은 불변할 것입니다. 만일 이 법칙이 깨진다면 그 땐 이 자연계도 붕괴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자연계 안에 존재하는 이 진리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육체의 감각기관과 지능으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도덕적 진리
자연이나 물질계를 떠나서도 진리가 존재합니다.
사람의 양심이나 도덕속에 존재하는 법입니다. 사람은 자신을 속이거나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면 괴롭습니다.
남을 학대하거나 남의 것을 훔치거나 약속을 안지켜도 역시 괴롭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거나 윗사람에게 반항하고 나면 괴롭습니다.
왜냐하면 도덕적 진리를 어겼기 때문입니다.
자연법칙이 자연계를 떠받치고 있듯히 인간사회도 이러한 보이지 않는 원칙이 떠받치고 있음으로 해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원칙도 수 천년동안 성문법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나 존재할 때나 존재하여 왔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도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도덕적 진리도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의 양심이 증거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영적 진리
영적인 방면에도 진리가 존재합니다.
다만 우리는 영적 감각이 둔하고, 무능해져 있기 때문에 이 진리를 파악하는 데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깨어있는 분들, 예컨데 선각자들을 통하여 그 진리가 존재함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진리를 초자연적인 표적이나 자연만물들을 이용한 비유, 또는 예언과 성취라는 방법들을 동원하여 우리들에게 그 존재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선각자들의 증언에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즉, 성경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나타난 어떤 사례를 통하여 진리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까요?
출애굽기 중에 모세가 지팡이를 드는 순간 홍해 물이 벽을 이루고 서고, 그 사이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른 땅 처럼 걸어서 통과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에서는 엘리야가 수레를 타고 공중으로 올라갔다고 증거합니다.
이 두 사건에서만 보더라도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자연법칙과 모든 중력을 가진 존재는 땅으로 떨어진다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초월하는 다른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법칙은 만유를 지으신 '신의 법칙'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러한 자연의 법칙을 중지시키고 지배할 수 있는 법칙이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노아에게 하신 예언, 아브라함에게 하신 예언, 이사야에게 하신 예언등...수많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예언이 수백년 혹 수천년이 지난 후에도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지배관장하는 어떤 법칙이 있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법칙은 신의 존재와 그 활동성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진리란 다름아닌 하나님에 관한 진리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말씀이 곧 진리
영적인 진리는 다름아닌 하나님의 존재, 그의 계획과 성품, 그리고 그 분의 사역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간단히 '말씀'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말씀'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반영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매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시19:7-10)
완전, 확실, 정직, 순결, 정결, 의로움- 이것이 바로 '말씀'이 진리임의 증거인 것입니다.
또한 이 모두는 하나님 자신의 성품이기도 한 것이므로 우리는 하나님 자신이 진리라고도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14:6)
진리란 무엇인가? 하나님이요, 말씀이요, 성경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두가 순결하고, 불변하며,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것이 진리라하면서 그 적용하는 방식이 옛날엔 저랬다가 지금은 이랬다가 하면서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한다면, 불순물이 섞여 있는 것이며,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예를들어,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것은 불변합니다.
그리고 피가 죄를 속한다는 것도 불변합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도 불변합니다.
정결한 자가 천국을 유업으로 얻는다는 것도 불변합니다.
이러한 진리는 모든 시대와 모든 사람을 관통하는 진리입니다.
만일 법칙이 이 사람에겐 적용이 되고, 또 저 사람에겐 적용이 안되고, 어떤 시대는 해당이 되고, 다른 시대엔 해당이 안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변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영원히 한분이시므로 변하고 개혁되실 필요가 없으신 분입니다. 따라서 그 분이 인간에게 계시하시는 내용도 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분이 계시하시는 대상은 오직 한 사람, 죄인 아담입니다. 수천년전이나 지금이나 죄인 아담 한사람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담을 구원하실 분은 속죄양 예수 그리스도 한 분입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습니다.
이제 결론을 맺겠습니다.
인류 역사는 수천년을 지내 오면서 에덴의 무죄시대, 족장의 양심시대, 율법시대, 교회의 은혜시대를 거쳐왔습니다만, 이것은 인간의 환경의 변천일 뿐이지 구원의 방식의 변천은 아닌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살았던 아벨도, 노아도, 아브라함도, 모세도, 사사들과 선지자들도 모두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히11장). 신약시대의 성도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게만 적용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이방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구원의 방도는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시고, 그 분은 변함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 앞에서 구원을 받아야하는 인간도 여러 종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사람 아담의 자손들 뿐입니다.
그러므로 동양인이나 서양인이나 슬라브민족이나 피그미 족속이나 다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에 아담에게 주신 단 하나의 방도(예수 그리스도를 믿음)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것은 수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절대로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바뀌지 않습니다.
이것이 진리인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입니다. 만일 시대에 따른 진리, 민족에 따른 진리가 따로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 자체가 모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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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일분일초 작성시간 13.10.26 좋은땅에 대한 설명을 우리나라의 땅의 개념을 생각해서 말씀하시면 어패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모든 땅이 돌이가득하고 가시덤불이 있어서 실상 손쓸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그런데 농기구도 없었던 예수님 시절은 어땠을까요?
씨뿌리는자는 그냥 뿌립니다
돌에 가시에 바람불어 길가에 때론 좋은땅에 뿌려집니다. 그나라는 비가 거의 없는 나라라서 농사를 오직 하나님께 의지합니다
첫비는 은혜의 비라고 모자도 안쓰고 다 맞으면서 춤을 춘다고 하네요
늦은비 이른비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적당한때에 내려주시면 그해의 농사는 풍년입니다.
늦은비와 이른비가 제대로 있는곳이 축복받은 땅 좋은땅입니다.
유다산은 비가없는 멸망산이고 -
답댓글 작성자일분일초 작성시간 13.10.26 에브라임산지같은경우 하나님이 축복하사 때에 따라 이른비와 늦은비를 허락하셔서 씨뿌리고 추수만하면 되는 축복된 땅입니다
실제 에브라임과 유다산지는 확연하게 차이남을 알수 있습니다.
따라서 돌을 골라내면 더 많은 열매로 거둘수는 있으나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만이 싹이 자라게 또 추수할수있도록 도와주시는 거거든요~~
즉 내가 골라내서 거둘수 있는게 아니라 자라게 하시고 거둘수 있는게 좋은땅인거죠
따라서,
성령의 인도함받는 성도가 축복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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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일분일초 작성시간 13.10.26 마귀와 짝하고 미리 계산하여 죄를 범하는자 유다같이 돈받고 주님파는 계산하는자들은 성령의 은혜를 경험할수 없습니다.
짐짓죄를범한자 성령을 훼방한자 모두 성령을 거부하는 행위기에 사함받지못하는것입니다.
예수안에들어오기전 범죄한자들까진 저도 모르겠지만 그리스도안에서 살면서 계획적인 살인한자들은 처음부터 마귀므로 구원없는 자들일것이라 사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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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백합향 작성시간 13.10.27 누구나 다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말씀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의 반응은 다 다릅니다.
아주 적은 수 만이 싻트고 자라 결실에 이릅니다. -
답댓글 작성자일분일초 작성시간 13.10.27 맞습니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해서 자라지 못하죠~~너무 안따깝지만 우리 역할은 씨뿌리는걸로 그리고 주님도와 넘어진 새싹들 세워주고 뿌리가 뽑힌게 있다면 다져주고요~~그렇게 주님마음으로 사랑하며 살고싶네요~~
이스라엘 다녀오니 성경의 많은 개념을 우리가 본데로만 생각하여 나도모르게 다른그림을 그리고 있었음을 느꼈어요
참조하시라고 올린겁니다.~^^♥♥
주의 은헤와 평강이 넘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