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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탐구

Re: 코라흐#7 "십일조의 히브리적 의미"

작성자섬소년-폴더7|작성시간26.06.20|조회수77 목록 댓글 3

올려주신 글은...

십일조가 지닌 본질적인 영적 의미를 히브리적 관점에서 깊이 있게 풀어내신 것으로...

참으로 아름답고 은혜로운 신앙 고백이심을 인정합니다.

물질의 십분의 일을 구별하는 행위가 단순한 의무를 넘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공급하심을 신뢰하며..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순환에 동참하는 예배라는 고찰은 오늘날 우리 모두가 깊이 새겨야 할 신앙의 원형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시대 한국을 살아가면서...

이 십일조와 관련해서 추가적으로 검토해야 할 나머지 반쪽이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님이 풀어내신 말씀 중 십일조의 아름다운 영적 본질이..

현대 교회 특히 한국 교회의 제도적 현실과 부딪힐 때는 신학적·역사적 맥락을 고려한 깊은 성찰이 필요합니다.

 

구약 성경이 명시한 십일조는...

땅의 분깃이 없던 레위 지파의 생계를 책임지고,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실제적인 사회 안전망이자 유지 체계였습니다.

철저히 농산물과 가축 중심으로 드려졌던 이 제도는 성전과 레위인의 직무가 존재할 때 비로소 기능할 수 있는 법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율법의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현대의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오늘날 구약 방식의 십일조를 행하지 않습니다.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제사장 계보가 사라지면서, 율법을 문자 그대로 적용할 성전 제도가 소멸했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들은 십일조의 정신을 이어받아 공의와 자선을 뜻하는 <체다카>라는 개념을 통해..

소득의 일부를 사회적 약자와 교육, 공동체 유지를 위해 <자율적>이고 온전하게 기부하는 방식으로 그 신앙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볼 때...

현대 한국 교회가 성전과 레위인 제도가 사라진 신약 시대에 살면서도 재정의 수입과 직결되는 십일조 규정만을..

율법 그대로 가져와 성도들에게 의무화하고 강요하는 현실은 깊은 우려를 자아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약의 제사 제도가 완성되고 변형되었다는 신학적 일관성>을 스스로 깨뜨리는 모순을 낳습니다.

 

더욱이...

구약의 십일조가 가졌던 가장 중요한 목적인 <공동체 내의 구제와 약자 보호>는 희석된 채..

거대한 예배당 건축이나 교회의 양적 팽창, 혹은 목회자 개인의 유익을 위해 오용되면서..

교회가 물질 중심의 권력 집단으로 변질되는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또한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거나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라는 식의 정죄는..

삶의 무게에 짓눌린 미자립 성도들에게 깊은 죄책감을 심어주었고..

반대로 <십일조를 바치면 창고가 넘치도록 복을 받는다>는 기복주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순수한 신뢰가 아닌 물질적 거래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우리는 이 논란의 중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다시금 붙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박하와 회향의 십일조라는 형식을 계산하는 데만 치밀했던 <바리새인>들을 향해...

율법의 더 중한 본질인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렸다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십일조라는 율법적 숫자에 매몰되어 마음을 잃어버리는 형식주의를 경계하신 것이지..

물질의 중심을 드리는 신앙 고백 자체를 폐하신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현대의 성도들에게 십일조를 구원의 조건이나 믿음의 절대적 척도로 삼아 제도적으로 강요하는 일은 성경적이지 않으며..

복음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입니다.

이제 우리는 율법의 형식적인 10%라는 숫자에 얽매여 억지로 헌금하는 삶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권면한 대로,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하며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즐겨 내는 연보>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신약의 교회가 가야 할 온전한 방향입니다.

 

결론적으로...

올려주신 묵상 글이 담고 있는 <내 삶과 창고의 주인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시다>라는 히브리적 고백과..

자발적인 드림의 정신은 신앙적으로 영원히 유효하며 아름다운 것입니다.

 

다만...

이 거룩한 마음의 예배가 교회의 제도적 통제와 재정적 유지를 위한 강요의 수단으로 전락한 한국 교회의 현실은...

단호히 구별하여 바로잡아야 합니다.

형식의 의무에서는 온전히 자유하되,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공동체를 향한 사랑의 열매는 더욱 풍성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참된 신앙의 본질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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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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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crystal sea | 작성시간 26.06.20
    토착왜구야~!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님이 거치는 돌이 되어 넘어졌는데,
    G90을 3년 마다 바꿔타며 부유하다는 너는 십일조에 걸려 넘어졌느냐?

    구약 말씀이 폐지된 것은 율법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모형이자 그림자이자 예표였던 기능이 소용이 없어졌기 때문이란다.

    십일조는 분명히 니가 말하는 것처럼 농사짓고 가축을 키우던 시절에
    십의 일조로써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예법이었다.

    그 율법의 십일조가 완성이 되면,
    뭐가 되겠느냐?

    내 것은 없고 오로지 하나님 것만 있으니
    나는 하나님의 것을 맡은 선한 청지기가 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긴 재물로 선한 청지기가 되어
    그 책무를 감당하는 것으로 십일조가 완성이 되었는데,
    거기서 내 것을 찾고 내 것인 양 손을 펴지 못하면
    십일조가 완성이 된 것이냐?
    아니면 십일조 보다 못하는 것이냐?

    구약의 제사장들도 십일조를 받아 생활하는데,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야 했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했는고?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습관은 이러하니 곧 아무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 답댓글 작성자crystal sea | 작성시간 26.06.20
    그것으로 남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서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취하되 실로에서 무릇 그곳에 온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뿐 아니라(삼상2:13~14)."

    삼지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큰 고기 덩어리를 건져내어 자기 것으로 삼고,
    나머지 부스러기로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그러면 현대 시대에 이 십일조 율법이 완성이 되어
    하나님의 재물을 맡은 선한 청기지들은 어떠하냐?

    레위지파를 자칭하는 목사들은
    자기 집 불리기 바쁘고,
    교회 건물 건축하느라 고혈을 짜내고,
    네 말대로 삐까번쩍한 건물과 수 많은 성도들을 거느리는 것으로 명예삼고,
    성도들을 하나님께 인도하기 보다는 배나 지옥의 자식이 되게하기 바쁘다.

    반면에 너는 어떠하뇨?

    하나님 앞에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너는 다르냐???

    니가 진짜 십일조가 완성이 되었음을 인정하고 믿는다면
    너는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어찌해야 하는 것이며,
    선한 청지기로서 어떻게 책무를 감당하고 있는지
    네 스스로 밝혀 주기를 바란다.....

  • 작성자섬소년-폴더7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0 구라쟁이 남방왜구 왔나?
    윤가야~
    그렇게 잘나고 신앙좋은 너는 교회에서 출교당했잖여~~ㅎ
    너는 삭개오 같은 세리들 옆에서 붙어먹잖여
    세상 세상에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너도 다 이유가 있겠지만~
    오죽하면...
    니 앞가림이나 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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