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선교사 한 분과 대화를 하는데, 그 분은 요한 계시록은 무서워서 아예 보지도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이런 말은 처음 들어본지라 잠시 멍하였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요즘 시대에 선교사가 계시록을 안보면 어떡하나? 그걸 빼고나면 무얼 가르치나?...
저는 솔직히 계시록이 아주 흥미가 있고 재미가 있습니다.
그 어떤 전쟁소설보다 흥미가 있는데... 왜냐하면 우리 주님의 복수가 너무 통쾌하고 휘날레가 아름답고 멋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 이해는 못해도 자주 떠들어 봅니다.
그러는 제가 이상합니까?
오늘 매일빵님이 쓰신 댓글에 <환난 후 휴거를 주장하시는 분들은 그 환난을 이겨내야 구원받는 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구원관까지 잘못되고 있다. 즉, 알미니안이 되고 있다.>는 말에 제가 충격을 받아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환난후 휴거론자들은 <환난을 당하면 믿음을 버리는 자들이 생겨날 것이고 따라서 구원도 잃어버릴 것이다>라고 생각한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저는 환난 후 휴거를 믿고 있지만 전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구원을 잊어버릴 것이라고는 생각지않는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한대로 이 세상 그 어느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데, 이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의 끈이 삼끈 정도 밖에 안되나요? 환난중에서 우리를 놓칠정도로 끊어지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신의 죽음보다도 더 강하십니다. 결코 하늘이 두 쪽 나도 우리를 놓치지 않는단 말입니다. 그러므로 환난으로 인해 혹시 내가 믿음이 떨어지고, 주님을 부인하게 되어 짐승편이 되리라고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계시록에 나와 있습니다.
7장은 환난에 들어가기 전에 그 환난중에서 보호할 사람들을 인치는 장면입니다. 그 수가 14만 4천명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숫자 그대로가 아니라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이 숫자가 환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지긋지긋한 환난이 끝난 다음 시온산에 서서 새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14장 1절에도보면 그 숫자도 14만 4천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환난 중에서 한 사람도 낙오되지 않고 그대로 다 구원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환난으로 인해 잃어버려진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발생하였습니까? 환난 중에서도 보호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계7:15)
이 말씀에 나오는 동사- 장막을 치시리니, 주리지도 아니할 것이고, 목마르지도 아니할 것이고- 이들 단어들이 모두 미래형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환난 중에서 지켜주시려고 인을 치셨고 이렇게 약속하셨는데, 어느 누가 이것을 무효케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다해서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도 <생명책에 녹명되지 않은 사람들>인 것이지 생명책에 이름이 녹명된 자들을 어떻게 하나님께서 지켜주지 아니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인침받은 성도들에게 대 환난이란 하나의 체험이고, 구경거리일 뿐이지 믿음을 잃어버릴 정도의 극심한 고통은 아니라고 볼 수있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서는 환난을 두려워하라고 가르치신 곳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하셨고,
바울은 "환난은 큰 영광을 이룬다"고 했으며,
시편기자는 "환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니 환난을 그렇게 무서운 것으로만 겁을 낼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주님의 백성들에겐 말입니다.
저는 지난 주 수요일 저녁에 사도행전 강해를 하면서 베드로가 환난 때에 어떻게 하고 있었나하는 것을보고 웃은 적이 있었습니다.
헤롯이 교회의 큰 기둥인 야고보를 잡아다가 칼로 죽이고, 백성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는 베드로 까지 죽이려고 잡아 가두었습니다.
얼마나 무섭고 긴장되는 순간입니까?
그런데 그 때 베드로는 어떻게 하고 있었습니까? 만사태평하게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지, 천사가 옆구리를 쳐서 깨워야만 하였습니다. 그리고 첫째문, 두째문,셋째 성문을 나올 때까지 잠이 덜 깨서 멍한 상태였습니다.(행12:1-10)
제가 깨달은 것이 그것입니다.
환난의 날에는 성도들을 아마 깊히 잠들게 하실 수도 있겠구나...
두 눈 똑똑히 뜨고 보면 무섭고 불안하고 긴장될테니까...말입니다.
사실 신랑을 기다리는 시간은 깊은 밤이었습니다. 밤은 환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깊은 밤에 처녀들은 모두 잠이 들었습니다.
"신랑이 더디오매 다 졸며 잘새..."(마25:5)
슬기로운 처녀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대환난 때 성도들을 어떻게 무서움으로 부터 보호해 주실 것인지에 대해 힌트를 주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깊이 잔다는 것, 이렇게 한번 잠이 들면, 지진이 나도, 총성이 들려도, 비명소리가 들려도 어쩌면 세상 모르게 편히 단 꿈까지 꾸어가면서 지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다가 봉창뜯는 소리인가요?
뭐...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보호해 주실 수 있다 이말입니다.
실제 베드로가 그렇게 보호를 받았으니까요.
아무튼 환난이라고 해서 너무 두려워하진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방법은 무궁 무진하실 테니까요.
그런데 저도 솔직히 환난 전에 휴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그렇게 말씀을 안하시는 것이니...내가 바란다고 해서 주장을 할 순 없지 않습니까? 주여~~~!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성도 작성시간 14.03.01 ourdailybread 쪽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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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밀알하나 작성시간 14.03.02 그리스도의 몸은 통일성과 다양성이 함께 있습니다. 마지막 때 이 다양성을 어떻게 아울러 가실까 하는 지혜를 휴거에서 발견하였습니다. 환란 때에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기 보다 환란 전에 유일한 방법으로 보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식언치 아니하시기에 기적보다는 섭리대로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약속의 성취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는 자에게는 섭리를 뛰어 넘는 기적을 행하시기도 합니다. 휴거는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교회의 하나됨을 위하여 역사하시는 마지막 때의 비밀인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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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밀알하나 작성시간 14.03.02 그리스도 안에는 비밀의 경륜이 숨어 있는 듯 합니다. 초림의 부활이 그러한 것 같고, 재림 때의 휴거가 그런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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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환부는도려낸다 작성시간 14.03.02 환란전휴거를 믿는분들은
근거도 제시못하시고 논리도 빈약하시군요
상대방의 비난보다 성경안에서의 근거와
논리로 주장하심이 설득력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3월2일입니다
오늘 무슨일 일어난다는분들 계셨는데
지켜보겠습니다 -
작성자새벽이슬같은청년 작성시간 14.03.02 갈렙님 말씀처럼
환란때는 모든 구원받는 성도들이 깊은 잠에 들었음 좋겠습니다.
구원의 겨울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