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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연구방

느헤미아 8장의 해석. (히브리어를 잊은 유대인)

작성자여호와 삼마|작성시간21.07.07|조회수238 목록 댓글 7

느헤미야 8 장 7 - 12

: 7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은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 : 8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 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11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하게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니, :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한글 성경 완역 100주년!

1911년 3월, 한글 ‘셩경젼셔’가 완간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00년, 2011년은 한글 성경 완역 100주년입니다.

로스 목사를 중심으로 매킨타이어(John Macintyre),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 이성하 등이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각각 개별 낱권으로 번역해서 출판한 것이 1882년이었습니다.

1887년에는 우리말로 번역된 최초의 완역 신약 ‘예수셩교젼셔’가 나옵니다. 이것은 띄어쓰기가 되어있지 않았고, 서북(西北) 방언으로 번역되었습니다. 번역이 미숙하고, 우리말 어법에 잘 맞지 않았고, 번역 내용도 지금의 것과 비교해 보면 많이 달랐습니다.

1900년에는 ‘신약젼셔’ 완역본이 나옵니다. 그리고 1911년에 드디어 ‘구약젼셔’가 나옵니다. 당시의 표준말에 준하는 말이 사용되었습니다. 대한성서공회가 번역한 최초의 우리말 완역 성경입니다.

1938년 ‘성경젼셔 개역’이 나왔습니다. 1911년에 나온 성경의 문체를 많이 다듬고 번역을 더러 고쳤습니다. 현재의 표준어에 가까운 어휘와 표현으로 대폭 바뀌었습니다. 이것을 손질하여 한글맞춤법통일안에 따라 표기를 고쳐 출간한 첫판이 1952년에 나온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입니다. 그 후, 더 손질하여 개역 결정판은 1961년에 나옵니다. 이것을 얼마 전까지 교회에서 사용하여왔었습니다.

1998년 ‘성경전서 개역 개정판’이 나옵니다. 이것은 ‘개역’을 대폭적으로 개정한 것으로 번역 내용의 일부를 고쳤습니다. 이것이 요즘 새로 바꾼 성경입니다. 이미 10여 년 전에 번역한 것입니다.

왜, 번역이 필요할까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 안에도 번역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23을 보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임마누엘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이런 예는 성경에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막 5:41)는 것입니다.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요 1:38),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요 1:41) 등등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알도록 가르쳐주기 위해서 번역이 필요합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했던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칠월의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수문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거기에 모인 백성은 말씀을 사모하고, 경청하고, 존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 앞에 섰던 에스라는 학사요, 제사장이요, 예배자였습니다. 에스라가 말씀을 낭독할 때 백성을 감동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거기에 함께 계셨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I. 누가



4절 말씀입니다.

: 4 그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고 그의 곁 오른쪽에 선 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요 그의 왼쪽에 선 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라.

학사 에스라가 백성들 앞에 특별히 만든 나무 단 위에 올라가 섰습니다. 그런데 에스라의 오른쪽과 왼편에 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른편에 여섯 명, 왼편에 일곱 명 도합 열 세 명이 에스라 양 옆에 서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제사장들이거나 또는 평민 지도자들입니다. 이번 집회를 준비하기 위하여 헌신한 사람들입니다. 아마도 후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열정과 헌신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그 이름을 여기에 기록하였을 것입니다.

1. 헌신적인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모임에는 모이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임을 이끄는 지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임이 커지면 각급 지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대표자와 구성원을 연결시켜주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우리교회에는 장로님이 계십니다. 장로님들의 섬김과 지도로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모세의 곁에는 아론과 훌처럼 기도의 팔을 들어주는 사람뿐만 여호수아처럼 군대를 거느리고 나가 싸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헌신적인 지도자들을 통하여 굳게 세워집니다.

헌신적인 지도자들을 존경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모두가 헌신적인 지도자로 세워지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단 아래에 또 다른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7절 말씀입니다.

: 7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은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

이번에는 단 아래 말씀을 듣는 사람들 곁에 있었던 열세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단 아래는 이름이 기록된 열세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레위 사람들이 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수많은 레위인들이 거기에서 함께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곁에서 섬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2. 열정적인 인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교회에는 권사님들이 있습니다. 감리교회에서 권사는 권할 ‘권(勸)’자, 스승 ‘사(師)’를 써서 권면하는 선생님들이십니다. 권사님들은 교인들 곁에서 교인들을 권면하는 스승이 되셔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교회에서 또 중요한 분들이 속장님들이십니다. 감리교회에서 속장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속장님들은 속회를 맡아서 관리하고 인도하는 속회의 ‘장(長)’입니다. 속장님들께 건강한 교회의 성패가 달려있습니다. 속장님들은 열정적으로 속회를 섬겨야 하고, 속회원들은 속장님들을 존경하고 그 인도에 따라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배울 뿐만 아니라 가르치고, 들을 뿐만 아니라 전하는 지도자와 인도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수문 앞 광장에 모인 백성들과 그들 앞에서 말씀을 낭독하는 학사 에스라 사이에 헌신적이고 열성적인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기에서 무엇을 하였습니까?



II. 무엇을



7절 말씀입니다.

: 7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은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

단 아래, 백성들의 곁에 서 있던 열세 명과 레위 사람들은 백성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8절 말씀은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하였던 일은 백성에게 깨닫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9절 말씀은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라고 하였습니다. 거기에 서 있었던 레위인은 가르치는 일을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가르치다’는 말은 앞에서 ‘깨닫게 하다’는 말과 히브리어로는 같은 단어입니다. 깨닫게 하는 것이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가르치는 일은 깨닫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12절은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고 하였습니다. ‘밝히 앎’이라는 말 역시 히브리어로는 앞의 ‘깨닫게 하다’와 같은 말입니다. 깨닫게 하는 것을 밝히 알게 하는 것입니다.

‘깨닫게 하다’[@yB/빈]는 지적으로 ‘구별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분별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이해하다는 뜻입니다. 낭독하는 말씀을 이해하게 도와주었습니다.

1. 사람들을 깨닫게 하였습니다.

성경을 사용하는 종교는 이해의 종교입니다. 글로 기록한 책이 있다는 것은 지적으로 이해하는 영역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은 신앙의 모든 것을 인간의 지혜로 다 깨달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신앙에는 이성의 영역을 넘어서는 신비의 영역이 있습니다. 이 신앙의 신비를 모르면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들처럼 죽은 지식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신비를 인정하고 경험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 사람의 글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지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성은 말씀을 초월하는 것이지 말씀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는 먼저 깨달은 사람이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교회에 지도자들이 있어야 하는 것은 말씀을 먼저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은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마 15:14b)고 하셨습니다. 자신도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인도하려 하면 둘 다 죽습니다. 깨달았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돕지 않으면 자신의 책임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깨닫는 사람인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깨닫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 그들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 7b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

이번에 여기에서 주목하려는 말씀은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에스라가 앞에서 낭독하면 백성들이 서 있는 그 곁에서 깨닫게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백성들은 그들의 처소에 있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레위인들이 백성들로 하여금 말씀을 깨닫게 하려고 지속적으로 동분서주하며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레위인들은 백성들이 있은 곳이라면 어디든지 그 곁으로 달려가서 말씀을 깨닫게 해 주기 위하여 움직였습니다.

2. 제자리에서 깨닫게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속회의 중요성을 배웁니다. 속회는 어떤 지리적인 구역을 중심으로 하는 구역예배가 아닙니다. 모이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지, 말씀을 들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에서든지 그 곳에서 말씀으로 그들을 돌보고, 세워주는 것입니다. 장소불문하고 어떤 자리에서나 말씀을 나누는 것이 속회의 정신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예루살렘 교회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 2:46)하였습니다. 성전에서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행 5:42)고 하였습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였습니다. 어디에서든지 바로 그 자리에서 가르치고 배웠습니다.

예배당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있는 자리라면 어디든지 그곳에서 돌보고 세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섬기는 지도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백성들이 있는 그 자리에서 그들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열정적인 인도자들은 어떻게 백성들을 섬겼습니까?



III. 어떻게



8절 말씀입니다.

: 8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였습니다. 누가 낭독하였을까요? 예, 백성들 앞에서, 미리 준비된 특별한 단 위에서, 에스라 한 사람이 낭독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사람들’이 낭독하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해석이 필요합니다. 에스라가 히브어로 된 성경을 낭독할 때 백성의 곁에 서있던 레위사람들이 백성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통역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오랜 기간 동안 바벨론 지역에서 생활하였던 사람들 가운데는 히브리어를 잊어버렸거나 능통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일종의 통역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레위인들이 히브리어 성경을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던 아람어로 번역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또 레위인들은 사람들에게 에스라가 낭독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가르쳐 주어야 했습니다.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사실 그대로를 정확하게 앎으로 성경을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영적인 해석을 하기에 앞서 먼저 기록한 말씀 그대로를 알아야 합니다. 앞에서 에스라가 말씀을 낭독하면 곁에서 레위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을 가리키는 지를 알려주었습니다.

1. 말씀을 관찰하였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그 말씀 그대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관찰함으로 말씀을 바르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경이 한글로 처음 번역될 때, 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예는 ‘바늘귀’(마 19:24)라는 말이었습니다. 선교사들은 ‘낙타가 바늘눈(eye of needle)로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한국인 번역자들이 고개를 갸우뚱하였습니다. ‘바늘눈’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선교사가 그림을 그려 보이자 한국인들은 무릎을 치면서 ‘바늘귀!’(ear of needle)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선교사들이 고개를 갸우뚱하였습니다. 우리말식으로는 ‘바늘귀’였는데 영어식으로는 ‘바늘눈’이었기 때문입니다.

헬라어 성경에는 단순히 ‘구멍’[truvphma/트뤼페마]입니다. 그렇다고 ‘바늘구멍’으로 번역을 하면 바늘에 있는 구멍이 아니라 바늘로 찔러서 생긴 구멍으로 이해되기 쉬웠습니다. 바늘에 있는 구멍을 한국 사람들은 ‘바늘귀’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영어를 쓰는 사람들은 ‘바늘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바늘에 있는 구멍이라고 하면 뜻은 정확하기는 한데 우리말로는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영어식으로 ‘바늘눈’이라고 하면 전혀 뜻이 통하지 않습니다. ‘바늘귀’하면 바늘에 있는 구멍이라는 뜻은 분명하지만 성경에는 귀라는 말은 없으니 직역은 아닙니다.

이렇게 번역은 쉽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바늘이라는 말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어린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날 사람들이 ‘옷 따위를 짓거나 꿰매는 데 쓰는, 가늘고 끝이 뾰족한 쇠로 된 물건’이라고 설명을 해주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은 ‘옷을 왜 꿰매 입느냐 사서 입으면 되지!’라고 할 것입니다.

성경을 새로 번역하는 것은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 정확한 뜻을 전달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을 깨달으려는 사람은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사실을 정확하게 관찰하여야 합니다. 철저한 관찰 작업을 통하여 바르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사실을 정확하게 깨닫기 위하여 기록한 그대로의 말씀을 관찰하는 말씀의 탐험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기록하고 있는 사실이 무엇인지를 알았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다시, 8절 말씀입니다.

: 8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에스라가 낭독하는 말씀을 레위사람들은 백성들 곁에서 명확하게 통역하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뜻을 밝혀 설명하여 주었습니다. 여기에서 해석하다[lk,c/쎄켈]는 말은 ‘신중함’, ‘통찰력’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설명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사실을 관찰한 사람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해석하여야 합니다. 레위사람들은 에스라가 낭독하는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사람들 곁에서 해석하여 주었습니다.

2. 말씀을 해석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사실을 아는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무슨 뜻이냐?’고 묻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마 19:24)이란 ‘낙타라는 커다란 동물이 바늘에 있는 작은 구멍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무슨 뜻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무슨 뜻인지를 아는 것이 해석입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란 전혀 불가능한 것을 가리킵니다. 어떻게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깨닫기 위하여 먼저 기록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기 위하여 철저하게 관찰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기 위하여 논리적으로 생각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이해하기 위하여 다양하고 깊이 있는 지식을 동원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혜 주시기를 구하여야 합니다. 말씀을 해석할 때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 시대의 그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을 관찰하여 이 시대의 이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해석하여야 합니다.

말씀을 있는 그대로 읽고 그 뜻을 밝히 깨달아 아는 지혜가 있으시기 축원합니다.



말씀을 읽고 그 뜻을 발견한 사람은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9절 말씀입니다.

: 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백성들은 말씀을 들으면서, 모두 울었습니다. 그래서 총독 느헤미야와, 학사 에스라, 그리고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그들에게 구체적으로 하여야 할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것은 ‘이 날은 주 하나님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말고 울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적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말씀은 그들의 삶에 어떻게 적용하였는지를 보여줍니다.

3. 말씀을 적용하였습니다.

말씀을 관찰하고 해석한 사람은 반드시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여야 합니다. 적용이 없으면 성경을 모르는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여기에 대하여는 다음 시간에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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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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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여호와 삼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7.07 니고데모A 그래...이제라도 깨달았으면 다행이다.
  • 답댓글 작성자여호와 삼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7.07 니고데모A 누가 뭐랴냐?
    에스라가 질문을 하니 답을 하고있는것 뿐이다.
  • 작성자주님내안에 | 작성시간 21.07.07
    얘 이거 고집쎄네...

    느헤미야 8장8절 마지막 줄에...

    "낭독하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은

    미크라 = 소집 ,집회 ,낭독
    빈 = 식별 ,분별, 지각, 이해

    동역이란 말은 없어 ...

    통역이라면 에스라가 외국인이던가
    백성들이 외국인 이던가 이여야지

    같은 동족끼리 무엇을 통역한단
    말인고?

    바벨론 통치하에 70년 한세대가
    지나서 율법을 모르고 있었는데

    서기관 에스라가 모인 백성들에게
    율법책을 꺼내서 낭독하니까....

    그들이 듣고나서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 8절에 기록된 뜻이야 ~~

    알아듵어?

    그런데
    무슨 아람어로 통역을 했네가 나와?

    니 혼자 성경을 자작하냐?




  • 답댓글 작성자여호와 삼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7.08 (느8:8)
    They read from the book, from the law of God, translating to give the sense so that they understood the reading.

    translating이 무슨 뜻이냐?
    에스라가 백성들이 알아먹을수 있도록 아람어로 <번역>했다고...
    또라이새키.

  • 답댓글 작성자주님내안에 | 작성시간 21.07.08 여호와 삼마 
    ㅋㅋㅋ

    대체 이놈시키야 ~~
    아람어가 어디에 나온다고
    공갈을 치냐?

    사기칠데가 따로있지 내한테
    사기를치냐?

    어이 띨빵한자손?~~

    여러사람 미혹시켜서 구덩이에
    빠뜨리지말고 니 혼자 무저갱에
    겨 들어가라 ~

    쥐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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