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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하무드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9.03.31 생존을 위한 물질에 대한 욕구는 인간뿐만아니라 유기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욕망입니다. 예를 들어 나와는 상관없는 박물관의 도자기가 깨어진 것보다 내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도자기가 깨어졌을 때 우리는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이것은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지요...그런데 그 '나의 것'이라는 생각을 좀 더 가깝게 당겨서 그 나의 것이 바로 '나 자신'이라고 해봅시다. 그러면 어떨까요? 내가 기준이 되어서 나에게 흡족하고 만족스러운 것들은 당기게 되고, 나에게 있어서 혐오스럽고 싫은 것들은 내치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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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하무드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9.03.31 결국 모든 만족과 불만족의 기준은 '나'라는 생각에서 그런 관념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알량한 자존심, 체면, 명예, 이익 등 그 모든 것들은 결국 '나'라는 생각이 있기에 생길 수밖에 없고 그것이 고통을 만들어 냅니다. '하심'하십시요, '방하착' 하십시요. '무아'임을 깨달으십시요. 라는 것들이 다같은 말입니다. '무아'라는 것은 내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나'라는 것도 어머니 아버지의 딸, 우리아이의 어머니, 내 남편의 부인, 이라는 위치속에서 규정된 하나의 관념입니다. 육체적인 '나'는 지금 존재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생각으로 많은 나를 만들고 그것을 기준으로 좋고 싫음을 따집니다. 그게 바로 고통의 근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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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하무드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9.03.31 불교상담학은 이제 걸음마 수준이라지만, 그것은 불교를 서구의 상담기법이라는 학문체계속에서 이해하고 녹여 쓰려고 하기에 그런 것입니다. 이미 불교의 상담기법은 부처님이 설하신 경전에 모두 나타나 있습니다. '방편' 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자식이 죽어서 고통스러워하며 부처님을 찾아온 한 어머니에게 부처님은 '그 아이는 살릴 수 없소, 그러니 일찌감치 마음을 접고 슬퍼하지 마시오' 라고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단 한명도 죽은 사람이 없는 집에 가서 겨자씨를 구해오라' 고 하셨죠. 이것은 곧 부처님의 수많은 상담기법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어미의 슬픔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최소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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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하무드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9.03.31 궁극에는 스스로 "아~ 누구나 다 죽는 거구나. 단지 나의 아들은 조금 먼저 간 것일 뿐이구나." 라는 불변의 진리를 깨치게 해주셨죠. 이러한 사례 말고도 매우 많은 사례가 경전의 도처에 나타나고 있으나 아직까지 그 많은 보물을 쉽게 풀어서 펼쳐보일 사람이 없는 것은 아쉬운 일이죠. 서구의 입장에서 불교를 다루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서구의 학문이 분석적이라는 측면에서 좀 더 형이하학적일지 모르나, 불교를 아무것도 모르면서 상담기법의 입장에서 불교를 해석하려는 노력은 진짜보물을 자기집에 두고서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그 보물을 제단해 보려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