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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아내에게/황지우

작성자솔내음|작성시간08.10.14|조회수100 목록 댓글 5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 부터 14년 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 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께 위의 비듬을 털어주었지

 

그런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 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알한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곳은 비어 있는 만큼 그대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이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 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묻힌 손으로 짚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 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 덧없는 세월이 한참을 흐르고 나니 아내가 보입니다. ^^*

  아마, 시인의 진솔한 마음이 곳곳에 베어있는 시가 아닌가 생각되어

  중년으로 살아가는 우리 꽃님들에게 이 시를 권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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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정가네 | 작성시간 08.10.14 애효, 솔내음님이 한발 늦었구만요. 저 아래 어딘가에 얼마 전에 상상님이 한번 올렸구만요. 다시 봐도 좋으네요.^^
  • 작성자단비 | 작성시간 08.10.15 남푠을 결혼 전엔 형이라고 불렀군요. 울 마눌은 동기니깐 형으론 부르지 않을거구, 아예 동생 취급만 안 해도 살 거 가토!!
  • 작성자창넘어하늘 | 작성시간 08.10.15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 사랑해? 라고 묻지 않아. 느껴지니까...
  • 작성자복실이 | 작성시간 08.10.16 구구절절~~~~~~~~~~~~감동~~~~~~~~~~
  • 작성자책보는콩쥐 | 작성시간 08.10.19 저의 남편이 늘 하는 말입니다.. 말해야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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