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양력으로 2월은 음력으로 섣달과 정월이 교차하는 수가 많고, 정월 대보름도 양력 2월의 끝자락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양력 2월 초에 설이 오면, 2월 말에 대보름날이 있다. 아직 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냇가 버들개지는 통통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는 중이다. 논두렁의 풀은 아주 바싹 말라 있어 불을 당기면 솔솔 잘도 타며 번져 나간다. 냇가에서 겨울 내내 스케이트를 타다가 지친 아이들은 뭔가 새로운 놀잇감이 필요하다. 설을 지난 지 며칠 안 되어서 떡국은 동이 났고, 강정도 다 먹어버렸다. 공부도 잘 되지 않는 2월에 학교를 다녀오면 아이들은 심심해 미칠 지경이다.
이런 때 아이들은 대보름날을 기다린다. 학교를 파하고 일찍 집에 돌아온 아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손에손에 낫을 들고 동네 앞 큰산으로 올라간다. 동네 가까운 낮은 산에는 땔감으로 마른 풀과 갈비, 고자배기 등을 다 해 가서 달불을 놓을 건덕지가 없는 까닭이다. 모두들 열심히 풀을 베어 한 아름씩 안아다 산꼭대기에 쌓고, 청솔가지도 제법 많이 쳐서 마른 풀 위에 쌓는다. 이렇게 달불 준비를 끝낸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와 저녁밥을 먹고는 동네 어귀로 다시 모인다. 보름달은 저녁 여덟 시나 되어야 뜨기 때문에 그렇게 빨리 올라갈 필요는 없다.
달 뜨기 한 시간여 전에 아이들은 산으로 올라간다. 몇몇 아이들은 호주머니에 성냥이 들어 있다. 달불 준비를 해놓은 산꼭대기에 이르면 동녘이 훤해오기 시작한다. 마른 풀을 한 줌씩 말아 쥐고 성냥을 긋는 아이에게로 모여든다. 마른 풀에 불을 붙인 아이들은 낟가리 만큼이나 쌓아놓은 마른 풀 더미 주위로 돌아서서 불을 당긴다. 동산에 달이 막 얼굴을 내밀 때쯤, 불꽃은 타올라 산꼭대기를 연기와 화염으로 장식한다.
너무 어려 산꼭대기 행사에 따라가지 못한 꼬마들은 어른들을 따라 동네 어귀에 나와 불꽃이 높이 솟아오르면 와! 하고 소리를 지른다. 불을 지른 산꼭대기 아이들도 마구 괴성을 질러댄다. 산과 동네에서 지르는 아이들의 고함소리에 놀라 개들도 마구 짖어대기 시작하고 산꼭대기의 달불은 절정에 이른다. 그 함성과 불꽃에 달이 그을려지는 것이다.
일 년 중에도 가장 달이 크게 떠오르는 정월 대보름날 밤은 이렇게 익어간다. 설은 질어야 좋고 보름은 맑아야 좋다는 말이 예로부터 전해 온다. 설이 질자면 한창 추울 때니까 눈이 내려야 할 것이고, 대보름달이 뚜렷하자면 눈비가 와서는 안 된다. 설에 오는 눈은 묵은 해를 망각 속에 파묻고 새해를 순결하게 시작하는 서설(瑞雪)이 되고, 대보름의 밝은 달은 일년 동안의 우순풍조(雨順風調)를 가져오는 점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휘영청 밝은 달이 떠올라 온 동네를 다 비추면 아이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깡통에 구멍을 뚫고 끈을 매달아 숯에 불을 댕겨 집어넣고는 빙빙 돌리며 아우성을 치며 마을 앞을 뛰어다닌다. 이런 쥐불놀이만 해도 아이들은 신이 나는 것이다. 아마 동네에 깃들기 쉬운 악귀들이 이런 아이들의 악다구니를 못 견뎌 다 달아나고 말 것이다. 밝은 달빛과 산꼭대기의 달불과 동네 앞 들판의 쥐불의 환함에 놀라 악귀들이 일년 동안 동네 근처를 얼씬도 못하게 하려는 조상들의 순박한 마음이 어려서 만들어진 놀이이리라.
귀신은 어둠을 좋아한다고 믿었기에 새봄을 맞이하기 직전, 동네를 이리 크게 밝혀 악귀들을 내쫓고 일년 동안 동네 사람들의 무병 무탈과 행운을 기원하는 행사로 굳어 졌으리라. 바람이 제법 심하게 부는 날에도 이 행사는 거르지 않았고, 이 또한 땔나무 때문에 민둥산이 되어버린 덕분이었으니 참 아이러니컬하기도 하다. 산림녹화의 가장 확실한 기초가 되는 연탄이 개발되어 산에서 땔나무를 구하지 않게 되자, 우리나라 산은 곧바로 우거져 산불이 날 위험 때문에 이 대보름날의 달불놀이는 저절로 없어지고 말았다. 환경보존 관점으로 보면 참 다행한 일이지만, 대보름 달불놀이의 낭만이 사라져 버려 한켠으로는 섭섭한 마음이 없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양력으로 2월은 음력으로 섣달과 정월이 교차하는 수가 많고, 정월 대보름도 양력 2월의 끝자락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양력 2월 초에 설이 오면, 2월 말에 대보름날이 있다. 아직 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냇가 버들개지는 통통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는 중이다. 논두렁의 풀은 아주 바싹 말라 있어 불을 당기면 솔솔 잘도 타며 번져 나간다. 냇가에서 겨울 내내 스케이트를 타다가 지친 아이들은 뭔가 새로운 놀잇감이 필요하다. 설을 지난 지 며칠 안 되어서 떡국은 동이 났고, 강정도 다 먹어버렸다. 공부도 잘 되지 않는 2월에 학교를 다녀오면 아이들은 심심해 미칠 지경이다.
이런 때 아이들은 대보름날을 기다린다. 학교를 파하고 일찍 집에 돌아온 아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손에손에 낫을 들고 동네 앞 큰산으로 올라간다. 동네 가까운 낮은 산에는 땔감으로 마른 풀과 갈비, 고자배기 등을 다 해 가서 달불을 놓을 건덕지가 없는 까닭이다. 모두들 열심히 풀을 베어 한 아름씩 안아다 산꼭대기에 쌓고, 청솔가지도 제법 많이 쳐서 마른 풀 위에 쌓는다. 이렇게 달불 준비를 끝낸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와 저녁밥을 먹고는 동네 어귀로 다시 모인다. 보름달은 저녁 여덟 시나 되어야 뜨기 때문에 그렇게 빨리 올라갈 필요는 없다.
달 뜨기 한 시간여 전에 아이들은 산으로 올라간다. 몇몇 아이들은 호주머니에 성냥이 들어 있다. 달불 준비를 해놓은 산꼭대기에 이르면 동녘이 훤해오기 시작한다. 마른 풀을 한 줌씩 말아 쥐고 성냥을 긋는 아이에게로 모여든다. 마른 풀에 불을 붙인 아이들은 낟가리 만큼이나 쌓아놓은 마른 풀 더미 주위로 돌아서서 불을 당긴다. 동산에 달이 막 얼굴을 내밀 때쯤, 불꽃은 타올라 산꼭대기를 연기와 화염으로 장식한다.
너무 어려 산꼭대기 행사에 따라가지 못한 꼬마들은 어른들을 따라 동네 어귀에 나와 불꽃이 높이 솟아오르면 와! 하고 소리를 지른다. 불을 지른 산꼭대기 아이들도 마구 괴성을 질러댄다. 산과 동네에서 지르는 아이들의 고함소리에 놀라 개들도 마구 짖어대기 시작하고 산꼭대기의 달불은 절정에 이른다. 그 함성과 불꽃에 달이 그을려지는 것이다.
일 년 중에도 가장 달이 크게 떠오르는 정월 대보름날 밤은 이렇게 익어간다. 설은 질어야 좋고 보름은 맑아야 좋다는 말이 예로부터 전해 온다. 설이 질자면 한창 추울 때니까 눈이 내려야 할 것이고, 대보름달이 뚜렷하자면 눈비가 와서는 안 된다. 설에 오는 눈은 묵은 해를 망각 속에 파묻고 새해를 순결하게 시작하는 서설(瑞雪)이 되고, 대보름의 밝은 달은 일년 동안의 우순풍조(雨順風調)를 가져오는 점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휘영청 밝은 달이 떠올라 온 동네를 다 비추면 아이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깡통에 구멍을 뚫고 끈을 매달아 숯에 불을 댕겨 집어넣고는 빙빙 돌리며 아우성을 치며 마을 앞을 뛰어다닌다. 이런 쥐불놀이만 해도 아이들은 신이 나는 것이다. 아마 동네에 깃들기 쉬운 악귀들이 이런 아이들의 악다구니를 못 견뎌 다 달아나고 말 것이다. 밝은 달빛과 산꼭대기의 달불과 동네 앞 들판의 쥐불의 환함에 놀라 악귀들이 일년 동안 동네 근처를 얼씬도 못하게 하려는 조상들의 순박한 마음이 어려서 만들어진 놀이이리라.
귀신은 어둠을 좋아한다고 믿었기에 새봄을 맞이하기 직전, 동네를 이리 크게 밝혀 악귀들을 내쫓고 일년 동안 동네 사람들의 무병 무탈과 행운을 기원하는 행사로 굳어 졌으리라. 바람이 제법 심하게 부는 날에도 이 행사는 거르지 않았고, 이 또한 땔나무 때문에 민둥산이 되어버린 덕분이었으니 참 아이러니컬하기도 하다. 산림녹화의 가장 확실한 기초가 되는 연탄이 개발되어 산에서 땔나무를 구하지 않게 되자, 우리나라 산은 곧바로 우거져 산불이 날 위험 때문에 이 대보름날의 달불놀이는 저절로 없어지고 말았다. 환경보존 관점으로 보면 참 다행한 일이지만, 대보름 달불놀이의 낭만이 사라져 버려 한켠으로는 섭섭한 마음이 없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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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하늘나리 작성시간 08.02.14 정월 열나흣날에 친구들과 집집마다 떡 얻어먹고 밥 얻어다 비벼 먹었었지요. 결혼해서 새벽이면 얼른 일어나 아이들 부럼 깨물게 하고 웃었는데... 저녁엔 휘영청 밝은 달을 보며 소원도 빌고..선우님덕분에 추억을 꺼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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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善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8.02.18 고맙습니다. 보름 나물이야 다 맛나지만, 전 피마자 이파리가 참 좋습니다. 밭에다 피마자를 심어 놓았었는데, 작황이 별로 안 좋았습니다. 너무 자라기 전의 이파리를 따 모으다가 붇지 않아서 고만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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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어화둥둥 작성시간 08.02.17 이제 보기 힘든 풍경이 되었네요. 마을 언덕에서 깡통에 불을 담아 빙빙 돌리던 쥐불놀이...... 복조리 들고 오곡밥 얻으러 다니고..... 선우님 덕에 추억여행 즐겁게 잘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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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善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8.02.18 고맙습니다. 즐거우셨다니 다행입니다. 올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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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낭개 작성시간 09.07.04 산으로 들로 쥐불놀이 깡통 돌리는 동네 남자아이들을 구경하던 .....와락... 옛시절 무지 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