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Fa5tEh2D80Y?si=kFnwr4MKLxVQ2f5E
서로가 - 이문세
길을 걸으며 생각에 잠겼네
그대는 어디에서 무슨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우리는 서로서로 그리며 살아왔겠지
지금도 서로를 그리며 조그만 소리로
모두 잊었겠지 말하겠지
하지만 이야기 끝나지 않았어
아름다웁지만 서러운 일들이
끝없는 인연 속에 미친 듯 너를 만나
아름다운 별을 찾아 함께 가자고 했어
모든 걸 잊었는데 모든 게 변했는데
아름다운 별을 찾아 다시 만나자 했어
길을 걸으며 또 생각을 했지
나는 왜 쫓기듯이 너를 생각하며 살아왔는지
많은 시간을 지나왔는데
지금도 서로를 그리며 조그만 소리로
모두 잊었겠지 말하겠지
하지만 이야기 끝나지 않았어
아름다웁지만 서러운 일들이
끝없는 인연 속에 미친 듯 너를 만나
아름다운 별을 찾아 함께 가자고 했어
모든 걸 잊었는데 모든 게 변했는데
아름다운 별을 찾아 다시 만나자 했어
2026년 2월 14일 굴산사 가는 길... 출발지 남항진...(09:47)
예부터 동대문 밖 강릉이라는 말이 있다. 동대문 밖을 나가서는 강릉이 가장 살기 좋다는 뜻인데,
강릉은 삶과 문화와 예술이 함께 어우러진 도시다.
강릉 바우길 6구간 굴산사 가는 길은 남항진해변에서 시작하여
청량동 입구, 중앙시장, 모산봉, 장현저수지를 지나 학산오독 떼기 전수관을 도착하는 코스이다.
소요 시간은 7시간 정도 걸리며, 주요 관광 포인트로는 다양한 먹거리로 유명한 강릉중앙시장,
유네스코가 선정한 인류 문화유산으로 천년의 향기가 깃든 축제 한마당인
강릉단오제를 체험할 수 있는 강릉 단오문화관, 동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모산봉 전망대,
통일신라의 선승인 범일국사가 태어난 굴산사 절터, 연화와 무월랑의 사랑 이야기가 담긴 정자 월화정이 있다.
아기별님, 칭런님
남항진동 南項津洞
강원도 강릉시 성덕동에 속하는 법정동.
남항진은 남대천과 섬석천이 만나 바다로 빠지는 곳에 있는 포구로,
옛날 송정에서 한송사(寒松寺), 한송정(寒松亭), 불하산(佛下山)으로 가는 남쪽 길목에 있는 나루라는 뜻에서 생긴 지명이다.
1914년 강릉군 덕방면(德方面) 남항진리가 되었다. 1920년 덕방면과 성남면을 통합한 성덕면의 남항진리가 되었다.
1955년 9월 1일 강릉읍이 성덕면과 경포면(鏡浦面)을 병합하여
시로 승격됨에 따라 강릉시 입암동(笠巖洞) 관할의 남항진동이 되었다.
1965년 두산동(斗山洞) 관할이 되었다가, 1988년 성덕동 관할로 바뀌었다.
강릉 남대천 하구 건너편 남쪽 해안가에 있으며,
남대천 하구의 섬석천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위치한 길이 600m, 2만4천㎡의 백사장이 있는 간이해변이다.
남항진동에는 여러 자연 마을이 있다. 나루터는 마을 앞에 배를 대는 나루가 있었던 곳이다.
강릉시 남항진동 산12-2번지에 있는 한송사지는 신라 때의 고찰 한송사가 있었던 곳으로서
황폐된 연대는 기록이 없으나 한송사지에 한송사란 암자가 유지되고 있다.
안목과 남항진을 연결해주는 인도교 솔바람다리가 2010년 4월 9일 완공되어
바닷바람과 강바람을 함께 쐬며 열대야를 잊기에 최적의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또 최고의 먹거리 삼교리동치미막국수가 있어 더위를 식히려는 관광객의 발목을 사로잡는다.
설 연휴 전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많은 바우님들이 참석...
이사님 Opening & 6 구간지기 레이니어님 (09:58)
사무국 비밀 요원들...
6구간지기 틸리초님
울트라님과 그녀의 그림자 아기별님...
6구간 굴산사 가는 길 힘차게 출발....(10:07)
엄마와 아들....그리고, 짱돌이라 불리는 동네 아저씨...
섬석천을 따라 자초 들길을 걸어간다...(10:19)
섬석천 剡石川
강릉시 남쪽의 유산동과 신석동 사이를 흐르는 하천.
섬석천은 구정면과 왕산면의 경계가 되는 칠성대(953.6m)를 최고봉으로 하는 일련의 산줄기로부터
북사면으로 흐르는 작은 계곡의 물들이 경사급변점에 설치된 칠성저수지와 동막저수지에 저장되고,
이 저수지로부터 흘러나온 물들이 구정면 장현저수지의 물과 합하여 동해로 흘러나가는 하천이다.
칠성저수지와 동막저수지로부터 흐르는 물은 산지와 산지 사이에 완만한 부채꼴 모양의 지형을 흐르면서
고도가 점차 낮아지고 장현저수지로부터 흘러나오는 물과의 합류지점으로부터 본격적인 섬석천의 유로가 나타난다.
섬석천의 영향을 받아서 농사짓는 지역은 상류의 어단리, 부채꼴 모양의 중간 지점인 학산리와 금광리,
그리고 그 아래쪽에 담산동과 박월동, 섬석천 본류의 영향을 받는 신석동과 운산동,
더 나아가 하류의 넓은 저 평지 속에 자리 잡은 월호평동 등이다.
그리고 2002년 태풍 ‘루사’가 내습하였을 때 섬석천에 물 공급을 주도했던 장현저수지의 제방이 붕괴되어
저수지 하류의 섬석천 유역에 있는 농촌인 신석동, 월호평동, 그리고 그 하류 지역들이 심한 피해를 입었다.
학동 한옥 팬션
뚜벅이,인디언캡, 감자 아빠.
학동 한옥 팬션 앞에서 잠시 휴식....(10:39)
새치미님과 부군(夫君)...(앞으로는 두 분이 손 잡고 자주 나오시길 ...^^)
봄이 팝콘 터지 듯....팡~팡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감기로 고생한 후 컨디션 저하로 더 이상 못 걷겠다고 성덕로에서 주저앉은 하곤 형님...
청량동의 숲과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길을 지나간다...(11:10)
청량동 靑良洞
‘청량동’이란 명칭은 청량미가 잘 자라는 청량들이 있어 생겨난 이름이다. 청량동의 옛 이름은 ‘청양이’이다.
1955년 9월 1일 강릉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성덕면에 속해 있던 청량동은
두산, 입암, 학동, 병산, 남항진 마을과 함께 합병하여 입암동이 되었다.
1965년에는 입암동 관할이던 법정동인 입암동, 청량동은 행정동을 입암동으로,
법정동인 두산동, 학동, 병산동, 남항진동은 행정동을 두산동으로 하여 각각 분리되었다.
1998년 10월 1일 과소 행정동 통합에 따라 청량동이 속해 있던 입암동과 두산동이 통합되어 성덕동이 되었다.
청량동은 밋밋한 산줄기들로 이어진 고을이고 땅이 비옥하여
곡식을 심으면 잘 자라고 땅이 좋아 소나무가 늘 푸르른 동네이다.
마을 앞[남쪽]으로 늘목재[구정면 구정리]와 칠성산[구정면 어단리] 밑에서 흘러온 섬석천이 흐르고,
내 건너 남쪽에는 월호평의 넓은 들과 공군 비행장이 있다. 마을 뒤에는 산줄기가 여러 갈래로 길게 뻗어 내리고 있다.
예부터 청량이는 물이 풍부하고 토질이 좋아 논농사가 잘 되었고, 그래서 농토를 구입해 농사짓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마을 앞 냇가에는 남쪽 마을인 월호평동으로 가는 ‘유다리’가 있다.
유다리는 ‘율다리’란 말의 준말로 과거에 밤나무로 다리를 만들어 율다리라 했다고 한다. 지금은 시멘트 다리로 바뀌었다.
이 다리를 건너면 넓은 월호평이 되는데 옛날 정월 대보름에 월호평동 사람들과
이 다리를 먼저 밟기 위해 이 다리에서 횃불싸움을 했다고 한다.
횃불싸움을 마치고 마을 사람들은 이 다리에 모여 나이 숫자만큼 다리를 밟는 다리밟기를 했다.
주요 지명으로는 석밭골, 새우자리, 웃모퉁이, 아랫모퉁이, 자초들(자초아), 유다리, 해남방축 등이 있다.
유다리에서 율곡로까지 철로가 가로지르고 있으며, 주변에 공군 비행장이 접해 있다.
그대는 아직도 크리스마스!....
성덕공원 도착..(11:21)
성덕동 城德洞
강원도 강릉시에 속하는 입암동·병산동·학동·남항진동·두산동·청량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강릉시청의 동남쪽에 있다. 동쪽은 바다, 서쪽은 노암동, 남쪽은 강동면 상시동리와 하시동리, 북쪽은 남대천과 접해 있다.
또한 항공 교통의 요충지인 공항이 자리 잡고 있는 강릉시의 관문 지역이다.
‘성덕(城德)’은 1920년에 성남면(城南面)과 덕방면(德方面)이 합쳐져서 생긴 이름이다.
1955년 9월 1일에 강릉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성덕면에 속해 있던 입암·청량·두산·학동·병산·남항진 마을이 합병하여 입암동이 되었다.
1965년에 입암동 관할 법정동인 입암, 청량동은 행정동을 입암동으로,
입암동 관할 법정동인 두산, 학동, 병산, 남항진동은 행정동을 두산동으로 각각 분리하였다.
성덕동(城德洞)은 과소 행정동 통합에 따라 1998년 10월 1일에 강릉시 조례로
입암동·병산동·학동·남항진동·두산동·청량동을 합쳐 만든 행정동이다.
캡 아자씨...왜 윙크를 하고 그러시는지....
고독한 하이에나 등장....
구간지기님이 입암동에 얽힌 건너편 삿갓 바위에 관하여 잠시 설명 해 주셨다
입암동 笠巖洞
강원도 강릉시 성덕동에 속하는 법정동.
입암동(笠岩洞)은 마을에 갓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1914년 남일리면의 수문리를 병합하여 입암리라 하여 덕방면에 편입되었다가,
1920년 11월에 성덕면에 편입되었고, 1955년 9월 1일에 강릉시에 편입되었다.
동쪽은 두산동, 월호평동, 서쪽은 노암동, 남쪽은 월호평동, 신석동, 북쪽은 남대천과 접해 있다.
서쪽에는 7번 국도가 지나간다. 입암동의 행정동은 성덕동이다.
노암 터널
입암동에서 시작해 중앙시장 월화 거리까지 이어지는
강릉의 숨은 명소로 예전에는 실제로 기차가 드나들던 길목이었으나
KTX 철로가 신설되면서 원래의 기능을 잃고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지금은 한국 3대 트레킹코스로 손꼽히는 강릉 바우길에 속한다.
터널 안에는 오래전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하며,
터널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면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노암 터널은 6.25의 아픔이 기억되는 피학살 현장이다
강릉시 노암동에 위치한 이곳은 6.25 당시 반공 인사 100여 명이
북한 공산도당에 의하여 비참하게 집단 학살당한 원통한 현장이다
1985년 6월 25일 한국방송공사가 희생된 영령들을 추도하고
피 흘림 없는 조국 통일을 기원하며 삼가 이곳에 비를 세웠다
월화정月花亭
연화부인(蓮花夫人)과 무월랑(無月郞)의 설화가 깃들어 있는 연못 구지(舊址)에 있는 누각.
연화부인과 관련된 설화로 인하여 연화정(蓮花亭)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예전에는 명주각(溟州閣)이라고도 하였다.
월화정은 강릉 남대천 가에 있던 연화봉(蓮花峯) 옛 자리에 있었으며,
신라 때 연화부인(蓮花夫人)이 물고기를 길렀는데,
그 물고기가 김무월랑(金無月郞)에게 편지를 전해 주었다는 옛 자취가 있으므로
이에 그 후손들이 양어지(養魚池) 바위 위에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정자를 지었다.
1930년 강릉김 씨 종인들이 무월랑과 연화부인의 설화가 깃들어 있는 곳을 기념하기 위해 정자를 신축하였는데,
영동선 철도 부설로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명주성 내로 이건 하였다가 1961년에 철거되었다.
2004년 옛터 인근에 관리사 1동과 함께 월화정을 복원하였다.
월화정은 강릉김 씨 대종회에서 소유와 관리를 하고 있다.
미세 먼지가 심해 대관령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남대천 南大川
강원도 강릉시 중심지로 흐르는 내.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화실산(大花實山)[1,010m]에서 발원하여 북류하다가
왕산·성산·구정 등 3면의 경계부에서, 역시 왕산면에서 발원하는 지류를 합친 뒤,
성산면과 구정면의 경계를 북동류하고, 강릉 시역(市域)에 들어와서 동북동으로 유로를 바꿔
강릉 시가지 남쪽을 거쳐 하구부에서 섬석천(剡石川)을 남안(南岸)으로 받아들이면서 동해로 흘러들어 간다.
길이 32.86㎞, 유역면적 258.65㎢이다.
남대천은 강릉대도호부의 관아 앞(남쪽)으로 흐르는 큰 내여서 생긴 이름이다.
예전에는 경포호 하구로 흘렀으나 지금은 하평에서 동해 바다로 흐르는데 강을 직선화하여 물의 흐름이 빠르다.
상류의 산지에서는 좁은 곡저평지(谷底平地)를 대상(帶狀)으로 형성하고,
하류의 해안에서는 영동(嶺東) 해안평야 중 가장 넓은 평야의 하나로 꼽히는 유역평야를 형성하여
영동 제일의 도시 강릉시를 발달시키고 있다.
남대천은 강릉의 서쪽지역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 강릉의 중심부를 지나기 때문에
남쪽지역과 북쪽지역의 교통이 원활하지 못했다.
그래서 남대천을 중심으로 남북을 잇는 도로가 생겼는데, 영동고속도로, 동해대로, 7번 국도, 영동선 등이 있다.
남대천 상류에는 오봉저수지가 있고, 하류에는 죽도봉이 있고,
죽도봉이 있는 앞목과 남쪽 남항진을 잇는 솔바람 다리가 있다.
예전에는 영동선 외 4개의 교량이 있었으나 교통량이 늘어나면서 다리가 많이 늘어났다.
남대천 주위에는 금선정, 연어대, 방구정, 영귀암, 삼포암, 이구산, 상임경당, 하임경당,
월화정, 와룡암, 서출지, 연화담 등의 정자와 명소가 있다.
이곳에서 각자 흩어져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13:30분에 강릉 대도호부에서 다시 모이기로 한다....(11:58)
(굴산사 가는 길은 점심 먹을 곳이 너무 많아 어디로 가야 할 지 항상 머리에 쥐가 난다.)
역광으로 한 컷...
월화거리 月花
강원도 강릉시 강릉~원주 고속 철도 도심 구간 지하화로 생긴 폐철도 부지에 조성 중인 거리 공원.
‘월화거리’라는 지명은 강릉 지역의 고유 설화인
‘무월랑(無月郞)’과 ‘연화 부인(蓮花夫人)’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남대천 옆 연화봉 반석 위에 정자가 있었는데 신라 29대 태종 무열왕 6세손인 강릉 김씨 시조
명주군왕(溟州郡王)의 아버지인 무월랑의 ‘월’자와 어머니 연화 부인의 ‘화’자를 따서 ‘월화정(月花亭)’이라 하였다고 한다.
원래의 월화정은 1936년 대홍수로 유실되어 현재는 그 자리에 표지석을 세웠으며, 복원된 월화정이 남아 있다.
2014년 4월 강릉~원주 고속 철도 도심 구간(강릉시 교동 강릉역~노암동 부흥 마을)의 지하화가 결정되었다.
이 구간은 교동, 중앙동, 옥천동, 강남동 등 4개 지역을 관통하는 길이 2.6㎞, 폭 30m로 면적은 약 5만여㎡에 이른다.
그동안 이 부지의 활용 방안을 두고 공원, 도로, 주차장 등 여러 가지 논의가 있었다.
강릉시는 2014년 도시 재생 사업을 통해 그간 쇠퇴화가 진행되던 구도심 지역의 공동화 현상을 해소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폐철도 부지를 대상으로 월화거리를 조성하기로 하였다.
월화거리 조성 사업은 2016년부터 시작되어 2단계로 나누어 추진되고 있다.
1단계 사업은 강릉시 교동 강릉역에서 노암동 부흥 마을에 이르는 지역을
8개의 사업 구간으로 구성해 ‘말 나눔터 공원’, ‘숲길’, ‘임당 광장’, ‘역사 문화 광장’, ‘생활 문화 광장 및 전망대’,
‘철도 보도 육교’, ‘물놀이 시설, 노암 터널’, ‘월화정 숲길’ 등으로 조성되었다.
‘임당 광장’, ‘역사 문화 광장’ 등에는 89개의 풍물 상점도 문을 열었다.
식사 후 다시 모이는 장소...(13:06)
강릉대도호부 관아(江陵大都護府 官衙)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중앙의 관리들이 강릉에 내려오면 머물던 건물터이다.
국보로 지정된 객사문과 보물로 지정된 칠사당이 관아 경내에 남아 있다.
강릉대도호부 관아는 1994년 사적 제388호로 지정됐다.
고려 태조 19년(936)에 세워져 중수를 거쳐서 동헌과 객사를 비롯하여 총 83칸 건물이 들어서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거의 모두 헐렸고 지금은 강릉 객사문과 칠사당만이 제자리에 남아 있다.
이 외에도 관아 건물의 일부가 남아 있는데, 강릉시 남산에 위치한 오성정, 금산의 월화정,
경포의 방해정 등이 관아 건물들의 일부를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 정자들은 조선시대에 강릉도호부 관아의 건물들 중 일부를 헐었을 때 그 자재들을 가져와 새로 세웠다.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 임영관을 헐고 강릉보통학교를 세웠다.
1975년 9월에 강릉보통학교 자리에 강릉 경찰서가 들어섰다가,
강릉경찰서가 포남동 신청사로 이전함에 따라 공터로 남아 있었다.
이 공터에 강릉시청사를 신축하기 위해 땅을 파던 중에
관아 유구가 발굴되면서 공사가 중단되고 발굴조사가 행해졌다.
1993년 발굴조사 이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칠사당(七事堂)
강릉대도호부 관아 구역 내에 있으며, 조선 시대 지방 수령의 집무처로 사용되어 온 동헌(東軒) 건물이다.
현재 강릉시 명주동에 위치한다. 1971년 12월 16일 강릉특별자치도 유형문화대 제7호로 지정되었다.
칠사당이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수령의 주요 업무가 칠사(七事)로 규정되었던 데서 연유하여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칠사란 농사, 호구, 교육, 병무, 세금, 재판, 풍속을 말한다. 최초 건립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1632년(인조 10년)에 중건하고, 영조 2년(1726)에 크게 확장하였다.
이후 1867년(고종 4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부사 조명하가 이듬해에 다시 지었다.
일제강점기부터 1958년까지 군수나 시장의 관사로 사용되다가 1980년에 다시 옛 모습을 되찾았다.
강릉대도호부 동헌이었던 칠사당 주변에는 다음과 같은 주요 관아 건물이 있었다.
내아(內衙) : 지방관 및 지방관 가족생활공간 (칠사당 동쪽 소재)
문루(門樓) : 강릉 대도호부 동헌 정문 (칠사당 남쪽 소재)
군관청(軍官廳) : 군관 업무 공간 (문루 앞 소재)
부사(府司) : 호장(戶長) 공간 (칠사당 동쪽 소재)
질청[作廳] : 아전(衙前) 공간 (부사 남쪽 소재)
향청(鄕廳) : 유향소(留鄕所) 공간 (칠사당 서남쪽 소재)
임영관(臨瀛館) : 강릉 객사 (칠사당 동북쪽 소재)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는 봄...
“봄이 오면 티파사에는 신들이 강림해서 수런거린다.
태양과 향쑥 내음 속에서, 은빛 갑옷을 두른 바다에서, 천연의 푸른 하늘에서.”
알베르 카뮈의 산문집 ‘결혼·여름’의 첫 문장이다.
실존주의 철학자에게도 봄은 이토록 찬란하다.
칭런 왕자와 선화 공주....
식사 후 잠시 망중한...
부부
하곤 형님 표정이 왜 저러는 걸까요?
시나미 명주 골목
‘시나미’는 강원도 사투리로 ‘천천히’ ‘명주(溟州)’는 신라시대부터 불린
강릉의 옛 지명으로 ‘바다와 가까운 아늑한 땅’이란 뜻이다.
명주동·남문동 일대를 아우르는 명주동은 강릉에서 아날로그 골목의 대명사처럼 쓰인다.
‘시나미 명주 골목’은 ‘시간도, 풍경도 천천히 흐르는 명주 골목’이라는 뜻이다.
과거 명주동은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강릉의 행정과 문화 중심지였다.
일제강점기였던 1940년대에는 적산가옥 등 일본식 건축물이 골목 곳곳에 들어서기도 했다.
지금의 경강로가 생기기 전 가구 판매점들이 밀집해 가구골목으로 유명했던 동네는
2000년대 초 강릉시청 청사가 홍제동으로 이전하면서 활력을 잃기 시작했다.
요즘은 젊은 친구들이 다시 많이 찾아와 활력을 되 찾고 있다.
다리를 건너 노암동 단오회관으로...(13:25)
노암동 魯巖洞
강원도 강릉시 강남동에 속하는 법정동.
강릉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는 남대천의 오른쪽에 있는 지역으로
동쪽으로 입암동·청량동·신석동, 서쪽으로 내곡동, 남쪽으로 장현동과 박월동, 북쪽으로 명주동과 접해 있다.
강릉시의 중심부와 접해 있어 강릉 시내로 접근하기는 편리하다. 행정동인 강남동 관할이다.
노암동에는 냇물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데,
이 냇물이 중국 노나라의 냇물과 같다 하여 ‘노간리(魯澗里)’ 또는 ‘노가니’라고 불렀다.
또는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 임금이 서쪽[서울]에서 동쪽[영월]으로 귀양을 갔는데, 그 이름을 딴 것으로 보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노’ 자가 들어간 이름은 대개 쫓겨난 조선 임금 단종을 추모하여 붙였거나,
공자가 태어난 노나라를 뜻하는 경우가 많다.
본래 너레바우가 있어서 너레바웃골이라고도 하였으며 노간리와 너레바웃골을 합하여 노암동이 되었다.
노암동은 본래 강릉군 남이리면에 딸린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아죽리를 병합하여 노암리라 하고
성남면에 편입되었다가 1920년에는 성덕면에 편입되고 1955년 9월 1일에 강릉시에 편입되어 노암동으로 고쳤다.
1955년 9월 1일 성덕면에서 강릉시로 승격되면서 행정동이 노암동으로 되었고,
법정동으로는 노암동과 유산동으로 구분하여 관리되다가
1998년 10월 1일 과소 행정동 통폐합 정책에 따라 기존의 장현동, 월호평동과 함께 강남동으로 되었다.
노암동 지역은 강릉시 중심부의 남대천 변에 위치하고 있어서 매년 강릉단오제가 개최되는 시기에 가장 붐빈다.
2004년 단오문화관이 개관되어 노암동은 단오제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단오문화관에는 상설전시장이 있고, 전통문화교실과 전통민속 정기공연이 개최된다.
단오 개최 시 단오문화관을 중심으로 한 남대천 주변에서 다양한 전통공원화 체험이벤트가 개최되고, 난장들이 운영된다.
두 사람이 걷는 모습에서....비틀즈 (Beatles)의 앨범 쟈켓 애비로드( Abbey Road )가 연상(聯想) 된다.
단오공원 端午公園
세계 무형 유산 걸작 단오제의 상징 공간으로 조성한 시민 공원.
2005년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 세계 무형 유산 걸작으로 선정되면서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무형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이에 강릉시는 단오제의 세계 무형 유산 걸작의 상징성을 담아내고
평소에는 시민들의 여가와 휴식을 위한 녹지 공원으로,
단오제기간 중에는 축제, 휴게, 놀이, 문화 활동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단오 문화관 앞 구(舊) 노암 공설 운동장 공터를 단오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총 8,290㎡ 부지에 잔디 광장 3,300㎡, 도심 숲, 벤치와 쉼터, 산책로, 이벤트 광장 등의
공간으로 구성되었고, 강릉의 대표 수종인 소나무와 배롱나무 등
20여 종의 교목과 관목을 심어 자연 생태 학습장을 조성하였다.
단오공원은 단오제의 주요 행사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평소 시민들의 휴식과 여가 선용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다양한 문화 행사들이 수시로 열리는 문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굴산사 가는 길의 악명 높은 난 코스 오르기 직전... (13:54)
무쟈게 높은 해발 105m의 그 이름도 험악한 '모산봉 오르기 대작전'
테라씨와 지영씨...
모산봉 정상에서 잠시 휴식...선화, 스카이블루,칭런 ... (14:13)
모산봉 母山峰
강원도 강릉시 강남동에 있는 산봉우리.
모산봉은 강원도 강릉시 강남동을 품고 있는 이 마을 최고봉으로, 높이는 105m이다.
모산봉은 강릉의 안산으로 불리는 명산이다. 밥그릇을 엎어 놓은 것처럼 생겨 ‘밥봉’이라고도 하고,
볏짚을 쌓아 놓은 것 같다는 뜻의 ‘노적봉’으로도 불린다. 또 인재가 많이 배출된다 하여 ‘문필봉’으로도 불린다.
모산봉은 2005년 강남동 향우회 등 지역 단체들이 복원 운동에 나서 현재 봉두의 높이가 105m로 높아졌다.
임영지(臨瀛誌)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 중종 때 강릉부사 한급(韓汲)이
강릉 지역에 인재가 많이 배출되는 것을 막고자 하여 이 지역 명산인 모산봉의 봉두를 인위적으로 낮추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에 근거해 옛 정기를 되찾고자 지역 주민들이 복원운동을 벌인 것이다.
강릉 남대천 남쪽에 있는 봉우리로 강릉을 떠받혀주는 네 개의 기둥산 중 하나이다
모산봉은 어머니의 품 같이 포근하고 아늑하다고 해서 그리 부른다고 한다.
봉우리 생김새가 노적가리같다 하여 노적봉이라 하기도 하고,
고봉으로 담은 밥그릇 같다고 밥봉이라고도 하며,
강릉에 인재가 많이 난다고 문필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강릉에는 네 기둥산(四柱山)이 강릉을 떠 받치고 있어 강릉은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해 왔고,
이 네 개의 기둥산은 강릉을 중심으로 마름모꼴로 버티고 있으면서 터를 단단하게 다진 것이다,
남대천을 기준으로 하여 남쪽에 2개, 북쪽 2개를 합해서 네 개의 기둥산이 있다.
먼저 유천동에 있는 땅재봉은 옛날 이 봉에 당을 지어놓고 당재를 올렸다고
당재봉이라 하다가, 나중에는 땅재봉으로 되었다고 하며,
저동에 있는 시루봉은 생김새가 시루처럼 생겼다고 시루봉이라 하고,
두산동의 월대산은 초저녁 보름달이 떴을 때 동헌(東軒)인 칠사당에서 이 달을 바라보면
마치 산 위에 걸린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월대산이라고 한다.
모산봉은 강릉의 부와 명예를 동시에 떠 받쳐주는 봉우리로 인식했기 때문에
강릉의 안산이 되고, 그러므로 모산봉을 보고 집을 지으면 잘 살 수 있다고 한다.
장현저수지 長峴貯水池
강원도 강릉시 장현동에 있는 저수지.
장현저수지(長峴貯水地)는 장현동에 있는 저수지로 구정면 여찬리, 내곡동, 장현동에 걸쳐 있는데
저수지 주위에는 송파정, 장안성, 왕고개, 장안재, 진재 등이 있다.
장현저수지로 들어오는 물줄기는 늘목재(구정면 구정리와 왕산면 도마리 사이에 있는 고개)
밑에서 흘러 구정리와 여찬리를 지나 온 물이다. 이 물은 저수지를 지나 신석동, 월호평동으로 흘러간다.
한국 농어촌 공사 강원 지역 본부 강릉 지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장현저수지는 관개 개선과 지목 변환 목적으로 1941년 11월에 착공하여 1947년 9월에 완공하였다.
2002년 태풍 루사 때 제방이 40m가량 붕괴되어 돌과 흙으로 다시 쌓았다.
2002년 12월 모두 71억 1400만 원의 사업비가 투자돼 저수지 복구공사가 시작됐고,
2004년 12월 지금의 현대적인 모습으로 완공되었다.
환경부의 스마트 그린도시 공모사업에 최종 선정돼 생태복원사업이 이루어진 강릉 장현저수지
시는 지난 2020년 스마트 그린도시 공모에 선정되자 사업비 36억여 원을 들여
장현동 462번지 일대 저수지 둘레 1.91㎞에 생태복원 사업을 실시했다.
시는 농어촌공사에 공사를 위탁해 온실가스 감축과 수질개선 등을 위한
생태습지 2개소와 녹조 방지장치 3개소, 수질정화여울 1개소, 접촉산화수로 135m를 조성했다.
특히 저수지 둘레를 자연친화적으로 조성, 주민들의 운동코스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인도교를 설치해 연결하는 등 친수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출처 : 강원도민일보
장현 저수지 아래 주차장에서 잠시 휴식...(14:50)
송파정 松波亭
강릉최씨 종중 입지계에서 선조 추모와 문중 회합의 장소로 활용하기 위해 세운 정자.
강릉시 장현동 장현저수지 근처의 송현(松峴)에 있다.
강릉최씨 판서공(判書公) 입지계의 최사광(崔斯廣)과 춘헌공(春軒公) 최수(崔洙)의 묘소 인근이다.
1946년 후손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누정이 있는 장현동은 동원군(東原君) 최씨 세거지이다.
이곳 세거지에 장현저수지가 만들어져 그 풍광이 항주의 서호와 같았다.
춘추 묘제 시 선조 추모의 장을 만들기 위해 송파정을 건립하였다.
[금석문]
‘송파정(松波亭)’이란 현액과 ‘풍속영귀(風俗詠歸)’란 대자 현액을 비롯해서
송파정건임사록(松波亭建任司錄, 119×27㎝),
1948년 후손 소헌(紹軒) 최건중(崔坤重)이 쓴 송파정기(松波亭記, 120×35㎝),
1948년 성산(醒汕) 최봉중(崔鳳重)이 찬(撰)한 상량문(上樑文, 118.5×35㎝) 등 13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저수지 수로를 따라 흘러내리는 물...(겨울 가뭄에도 불구하고 저수지 수량은 풍부했다)
수로 따라 흘러 내리는 물 흐름을 열심히 담고 있는 바우님들...
이번엔 코스를 변경해 장현지 반대 방향으로 걷는다.(정 코스 보다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장현지 위에 설치 된 아름다운 길...
자연의 작품...'추앙(推仰)'
왕고개 근처에 있는 ...
왕현산성지 王峴山城址
학산리 고분군은 징현저수지 남쪽의 구릉지대에 위치하며, 현재 도굴된 고분들이 방치되어 있다.
1963년 10월 삼국시대 대부호 1점, 장경호 1점, 대부배 1점, 이부고배 2점, 무개고배 1점,
병 1점, 고배개 3점이 출토되어 현재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왕현산성지(王峴山城址)[강릉시 구정면 학산1리는 일명 장안성이라고도 하며
구정면사무소에서 동으로 약 700m 지점에 위치하는
왕고개의 북쪽 구릉(60m)의 남쪽 경사면에 발달된 작은 골짜기를 둘러싼 반원형의 토석혼축성이다.
이곳에서는 성의 북서, 남동쪽에 전개된 완사면 일대를 조망하기 쉽다.
성벽과 주변의 비고는 20m 정도이나 북쪽의 외측은 급사면을 이룬다.
수성암계통의 변성암으로 축조되었고, 석재는 북벽아래의 구정천변의 돌들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성의 둘레는 500m 정도이고 전형적인 북고남저(北高南低)형의 지세에
남쪽에 건물지로 보이는 평탄지와 그 바깥쪽에 우물지가 분포한다.
성의 토축부와 외부 경사면에서 본성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신라 토기편과 청동기시대의 민무늬 토기편 약간이 수집되었는데,
이는 이곳에 본래 매장되어있던 유구라 당시 성 축조시에 교란되어 원위치를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거리의 악사...(추운 겨울을 잘 버텼다... 이제 곧, 푸른 옷으로 입혀질 것이다)
겨울나무의 노래 / 정연복
모질게 추운 겨울을
이길 생각은 말고
가만가만 숨죽여
어떻게든 살아만 있자.
살을 에는 찬바람에
오늘밤 죽을 것만 같아도
마음 가다듬어 끝내
생명의지를 잃지 말자.
태곳적부터 지금까지
나의 종족이 그리했듯이
고난의 계절이 깊어갈수록
연초록 새봄을 내 몸속에 낳자.
보호수( 保護樹)
국가나 지자체에서 보호하고 있는 중요한 나무. 일반적으로 수령이 오래되거나 역사적으로 유명한 나무들이 속한다.
마을의 입구나 관아. 면소재지등의 앞에 있는 정자나무나, 제사나 신앙의 대상이 되었던
서낭나무와 당산나무는 일반적으로 오래됐기 때문에 보호수인 경우가 많다.
나무가 고사하면 해제되는 경우도 있다.
보호수 중에서 특히 가치가 있는 나무는 시도자연유산이나 시도기념물, 궁극적으로는 천연기념물로 승격지정되고는 한다.
보호수는 산림청 관할이지만, 기념물급부터는 국가유산청 관할로 넘어가는데,
나무가 담고 있는 역사적 가치와 생물학적 희소성을 국가유산으로서 인정했기 때문이다.
구정면 왕고개 길에서 마지막 휴식...
어단천 옆을 걸어...
굴산사지 옆을 지나간다..
江陵掘山寺址
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신라 말부터 조선 초기까지 존속한 굴산사의 터.
신라 말기에는 지금의 학산(鶴山)이 굴산(掘山)이었으므로 굴산사라 하였다.
범일(梵日)의 명성을 들은 명주도독(溟州都督) 김공(金公)이 범일에게
명주 땅에서 법(法)을 펴줄 것을 요청하자 범일은 나이 40세에 굴산사를 창건하였다.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597번지 일원으로 학산천과 북쪽에 나란히 이어진 능선과의 사이에 형성된 평지에 해당된다.
구정면 소재지에서 왕고개를 지나 학산1리에서 우회하여 대성사 방향으로 가다가
학산2리의 「강릉학산오독떼기」 전수회관이 있는 지역이다.
850년(신라 문성왕 12)에 창건되어 고려 말이나 조선 초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전성기 때에는 수천의 승려들이 기거할 정도로 15만 평 규모의 웅장한 사찰이었다.
절집의 반경이 300여m에 이르고 수도하는 승려만 200여 명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이때 쌀 씻은 뜬 물이 섬석천을 지나 남항진 앞바다까지 흘렀다고 한다.
조선 초기에 훼철되었지만 지금도 그 규모를 짐작하게 하는 당간지주(幢竿支柱)[보물 제86호]와
부도(浮屠)[보물 제85호], 그리고 석불입상(石佛立像)[지방문화재자료 제43호]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당간지주는 일석식(一石式)의 거대한 석재 지주(石材支柱)인데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큰 지주 중의 하나이다.
지주에 걸맞은 강경(强勁)한 수법은 통일신라의 작품다운 웅대한 조형미를 보여 준다.
[의의와 평가]
범일이 창건한 굴산선문(掘山禪門)은 신라 말기와 고려를 거쳐
구산선문(九山禪門)의 일맥(一脈)을 형성하면서 수많은 고승을 배출하였다.
특히 오늘날 한국 불교의 정통이라 할 수 있는 조계종(曹溪宗)의 창시자인
불일(佛日) 스님과 보조(普照) 스님은 범일의 법손(法孫)이다.
따라서 굴산종(掘山宗)은 현대 한국 불교의 전통을 지탱해 온 정신적 지주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오독떼기 전수관 앞에서 오늘 발 걸음을 마무리 한다...(16:07)
다음 7구간 풍호연가길은
2026년 병오년 (丙午年) 한해 바우길 안녕과 건강한 걷기를 기원하는 시도제(始道祭) 가 있습니다.
바우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도제에 함께 해 주시길 바라옵고
바우님들! 설 연휴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걷자(서울/강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2.16 자녀들과 봄 바다를 만끽 한 행복한 시간이셨겠습니다.
설 명절 즐겁게 보내시고
올 한해 도 복 엄청 받으시고 건강과 행복만 가득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
작성자시나브로(강릉) 작성시간 26.02.15 걷기에 집중하는 묵언 발걸음 중
걷자님의 산꾼 이야기와 바우길의 애정어린 말씀이 좋았습니다.
바우길을 담고 스토리를 발굴해 주시는 후기에 많이 배움합니다.
즐거운 설 명절되시고 길위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걷자(서울/강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2.16 인상 좋으신 시나브로님...
잠깐이지만 함께 걸으면서 이런 저런 대화 즐거웠습니다.
설 명절 잘 보내시고 항상 건강 하시고
새해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
작성자사무국장 작성시간 26.02.17 봄 매화가 터지기직전! 덕분에 6구간 걸어봅니다.
발걸음들 신이났습니다..^^ 즐감합니다 ~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받으세요 ~^^ -
답댓글 작성자걷자(서울/강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2.17 아직 겨울인가 싶었는데....
우리 곁으로 봄은 살며시 다가 오고 있었습니다.
국땅님도 새해 복 엄청 받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