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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길 걷기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습니다.

작성자이순원|작성시간11.02.28|조회수429 목록 댓글 18

5학년 1학기 국어교과서입니다

<아들과 함께 걷는 길> 중에서

우정에 대하여

 

“상우야. 이제부터 걷는 거야. 여기 대관령 꼭대기에서부터 저기 산 아래 할아버지 댁까지. 걸을 수 있지?”

“네. 걸을 수 있어요. 신발끈도 아까 자동차 안에서 다시 매었는걸요.”

“아빠는 이제 네가 나와 함께 이 길을 걸을 수 있을 만큼 자란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라.”

“저도 아빠와 함께 이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워요.”

 

“우리는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도 나누면서 걸을 거야. 이렇게 걷다 보면 집에 있을 때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할 수 있겠지?”

“그리고 걸으면서 나무와 돌도 살피고, 길가의 풀과 꽃도 살피고, 또 시냇물도 만나면 시냇물과도 이야기하는 거지요.”

“시냇물하고도?”

“그냥 이야기를 해도 되고, 말로 하지 않더라도 아빠하고 제가 시냇물에 세수도 하고, 또 물을 손바닥으로 떠서 마시면 그것도 시냇물하고 이야기하는 것이나 같잖아요.”

 

그렇게 시작된 상우와 아버지의 이야기 길은 어느덧 서른다섯, 서른여섯째 굽이를 돌아가고, 밤하늘에는 별꽃이 하나둘 피어나고 있었다.

 

“이제 많이 어두워졌지?”

“예. 별도 하나둘 보이고요.”

“이제 몇 굽이만 더 내려가면 우리가 내려가야 할 대관령은 다 내려가는거야. 거기서부턴 다시 작은 산길로 가면 되고.”

“아빠, 아빠는 윤태 아저씨 말고도 친구가 많죠?”

“그럼 많지.”

“그런데 누구하고 제일 친하세요?”

 

“그건 잘 모르겠다. 어느 친구하고도 다 친하니까. 전에 할아버지 댁 앞에서 본 친구하고도 친하고, 또 학교 다닐 때의 친구, 나중에 글을 쓰면서 알게 된 친구, 서울에 와서 살면서 알게 된 친구, 그런 친구들이 모두 아빠 친구니까.”

“그 중에서 아빠하고 제일 오래 사귄 친구는 누구세요? 전에 할아버지 댁 앞에서 본 그 아저씬가요?”

“그래. 그 아저씨하고도 아주 오래된 친구지. 한 마을에 태어나 지금까지 친구로 지내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아빠한텐 그 친구보다 더 오래된 친구도 있어.”

 

“어떤 친군데요?”

“사귄 지가 아마 100년도 더 되는 아주 오랜 친구.”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아빠가 그렇게 살지도 않았는데.”

“그렇지만 친구는 그럴 수 있거든.”

“어떻게요?”

“너 익현이 아저씨 알지?”

“예. 종로서적에 있는 아저씨요.”

“그 아저씨하고 아빠가 그런 친구야.”

 

“그렇지만 아빠 나이하고 그 아저씨 나이를 합쳐도 100년이 안되는데요?”

“아빠하고 그 아저씨는 4대에 걸친 친구거든. 아빠의 증조할아버지와 그 아저씨의 증조할아버지가 친구였고, 아빠 할아버지와 그 아저씨의 할아버지가 친구였고, 또 네 할아버지와 그 친구의 아버지가 친구였고, 그리고 아빠와 그 아저씨가 친구니까.”

“우와.”

“그런 사이를 어른들은 집안간에 오랜 세교가 있었다고 말한단다. 오랜 세월을 두고 우정을 쌓고 왕래한 집안이라는 뜻으로.”

“그럼 100년도 더 넘겠어요.”

“아마 그럴 거야.”

 

“그 아저씨 아들하고 저하고 친구하면 5대에 걸친 친구가 되는 거네요.”

“이제 아빠도 고향을 떠나 있고, 그 아저씨도 고향을 떠나있어 그러기가 쉽지는 않지만 이다음 너희들이 또 왕래를 하고 친구를 하면 그렇게 되는 거지. 어릴 때 그 아저씨 집에 아빠도 할아버지를 모시고 자주 놀러갔고, 또 그 아저씨도 할아버지를 모시고 우리집에 자주 오고 했지. 할아버지들이 장기를 두다가 그 다음엔 우리들이 장기를 두고 할아버지들은 손자들 훈수를 하고. 자라서 그 아저씨가 먼저 군대에 갔는데 그땐 아빠가 그 집에 자주 찾아가서 뵙고, 또 아빠가 군대에 가 있을 땐 그 아저씨가 우리집에 자주 찾아 오고 그랬단다. 지금도 아빠가 책을 낼 때마다 그 아저씨가 꼭 전화를 하지?”

“예.”

 

“그렇게 오랜 친구는 꼭 가까이 있지 않고 또 자주 보지 않아도 그렇게 서로 마음 속에 있고 세월 속에 있는 거란다.”

“아빠. 친구는 꼭 서로 나이나 수준이 맞아야 되는 건 아니죠?”

“어떤 수준 말이냐?”

“공부도 그렇고,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요.”

 

“옛말에 보면 친구는 위로 보고 사귀고, 혼인은 아래를 보고 하라고 했는데, 아빠는 그 말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말은 이왕 친구를 사귀더라도 좋은 친구를 사귀라고 한 말이지 꼭 그래야 한다는 건 아닐 거야. 친구를 사귈 때 다 위로 보고 사귀면, 아래에 있는 친구는 자기보다 나은 친구를 사귀고 싶어도 평생 그런 친구를 사귈 수 없는 거지. 자기가 사귀고 싶어하는 그 친구도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 친구를 하지 않으려 하면 말이지.”

 

“그럼 어떻게 해요?”

“자기보다 나은 친구, 못한 친구 얘기를 하는 건 친구에게 배울 점을 찾으라는 이야기인 거야. 또 나쁜 친구를 사귀게 되면 함께 나쁜 생각과 나쁜 행동을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고, 더구나 너희처럼 자라날 때는 말이지. 그렇지만 어른이 되면 친구란 내가 외롭거나 어려울 때 서로 믿고 도울 수 있고, 또 당장 어렵거나 외롭지 않더라도 그런 친구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큰 힘이 될 수 있는 친구가 가장 좋은 친구란다. 서로 붙어 다니며 놀기만 좋아하는 친구보다는 이다음 서로 믿고, 서로 돕고, 서로 위로하고, 서로 힘이 될 수 있는 그런 친구를 사귀라는 뜻이야. 너 친구에 대한 옛날 얘기 알지? 아버지의 친구와 아들의 친구 얘기 말이다.”

 

“알아요. 돼지를 잡아서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고 찾아가니까 아들 친구는 자기가 잘못될까봐  다 내 쫓는데 아버지 친구는 다른사람이 볼까봐 얼른 집 안에 숨겨주고요.”

“바로 그런 친구를 사귀라는 거야.”

“아빠는 그런 친구가 있어요?”

“그런 건 자신있게 말하는 게 아니야.”

 

“왜요?”

“그건 그 말을 들은 친구를 부담스럽게 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 대신 아빠가 자신있게 그렇게 해줄 친구는 있단다.”

“그럼 그 친구도 아빠를 그렇게 해줄 거예요.”

“전에 성률이 아빠도 눈길에 이 길로 우리를 할아버지 댁에 데려다주었잖니?”

“알아요. 설날 눈이 많이 올 때요.”

“비행기도 안 뜨고, 아빠도 운전에 자신이 없어 할아버지 댁에도 못 가고 서울에 눌러앉았을 때 성률이 아빠가 대목날인데도 하루 종일 자기 택시 영업을 하지 않고 우리를 데려다주러 왔던 거야. 그리고 서울에서 열네 시간 동안 이 길을 넘어 왔다가 다시 쉬지도 않고 열 시간 동안 이 길을 넘어가고. 그때에도 아빠가 영업하는 차 그냥 공치면 어떻게 하느냐고 택시비 주려고 하니깐 성률이 아빠가 뭐랬는 줄 아니?”

 

“안 받겠다고요.”

“그냥 안 받은게 아니란다. 나는 제가 친구니까 죽음을 무릅쓰고 눈길을 넘어온 건데 너는 왜 그걸 꼭 돈으로만 계산하려고 하느냐고 그랬단다. 그래도 직업이고 영업하는 차가 아니냐니까, 너는 글을 쓸 때마다  영업을 생각하며 글을 쓰냐며 오히려 아빠를 부끄럽게 했단다.”

“성률이 아빠도 아빠한텐 참 좋은 친구예요. 그렇죠?”

 

“아빠는 어디 가서 친구 이야기를 하면 꼭 익현이 아저씨와 성률이 아빠 이야기를 한단다. 아빠가 성률이 아빠에게 해주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성률이 아빠는 아빠가 자기 친구라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워 영업하는 자동차까지 세워두고 달려오지 않니. 아빠가 성률이 아빠에게 해주는 건 아빠 책이 나올 때마다 그것 한 권씩 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그러면 성률이 아빠는 그 책을 택시 안에 넣어두고 다니고.”

“아빠한텐 기한이 아저씨도 그렇잖아요. 우리가 이사를 하면 나중에 와서 손을 다 봐주고요. 전기선도 달아주고 제 책상도 다시 손봐주고. 그러면서도 전아 아빠가 밤중에 기한이 아저씨한테 가준 걸 늘 고마워하고요.”

 

“그때 기한이 아저씨가 함께 집짓는 일을 하러 다니는 사람들과 이상한 내기를 했거든. 일을 끝내고 술을 마시다가 기한이 아저씨가 내 친구 중에 소설가가 있다고 자랑을 한거야. 그러니 다른 아저씨들이 우리가 막일을 하러 다니는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친구가 있을 수 있느냐고 믿지 않고.”

“엄마한테 들었어요. 저는 자다가 일어났는데, 밤 열두시가 넘었는데 아빠가 나가시길래 왜 나가시냐니까 기한이 아저씨한테 가신다고.”

 

“그때 기한이 아저씨가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내기를 한 거야. 그 사람이 정말 친구면 불러내 보라고. 그러자 기한이 아저씨는 늦은 밤까지 글쓰는 친구를 어떻게 아무 일도 없이 불러내느냐고 그러고, 그러니까 저쪽 친구는 거짓말이니까 못 불러낸다고 그러고, 그러다 누군가 기한이 아저씨한테 친구라면 불러낼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그걸로 술값 내기를 하자고 그러고.”

“그래서 기한이 아저씨가 전화를 한 거예요?”

 

“그런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지금 어느 술집에 있는데 나올 수 있겠느냐고 물었단다. 무슨 일이냐니까 별일은 아닌데 그냥 나왔으면 좋겠다고. 그러면서 지금 뭘 하다가 전화를 받았느냐고 물어서 내일 넘길 바쁜 원고를 쓰고 있다니까 그럼 나오지 말라고 그러고. 그냥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장난으로 전화를 건 거라면서.”

“그래서요?”

 

“기한이 아저씨가 그냥 장난으로 전화를 걸 사람이 아니니까 거기 어디냐고 물어서 얼른 택시를 타고 나갔던 거지. 가니까 그런 내기를 한 거야. 거기 있는 친구들과.”

“그래서 기한이 아저씨가 이긴 거예요?”

“아니, 아빠가 이긴 거지. 그때까지 아빠는 아직 한 번도 기한이 아저씨를 위해 몸으로 무얼 해본 적이 없었거든. 그런데도 기한이 아저씨는 아빠한테 자기는 늘 몸으로만 때우는 친구라 미안하다고 했는데, 그날 아빠가 기한이 아저씨를 위해 몸으로 때워보니 정말 몸으로 때워주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고, 또 좋은 친구도 없는 거야.”

 

“저는 어른들도 그런 장난을 하는 게 신기해요.”

“장난이긴 하지만 친구란 그런 거야. 무얼 꼭 크게 도와주고 힘든 일을 해주어야만 좋은 친구인 것이 아니라 어떤 일로든 그 사람이 정말 내 친구구나 하는 걸 확인하게 될 때 마음속에 다시 커다란 우정이 쌓이는 거란다. 그리고 그런 우정이 쌓일 때 옛날 이야기 속의 아버지 친구 같은 이야기도 나오는 거고.”

“알아요, 아빠. 그리고 따뜻하구요.”

 

“친구를 가려 사귀기는 하되 절대 차별하여 사귀면 안되는 거야. 알았지?”

“저도 이다음 아빠 같은 친구를 많이 사귈 거예요. 제가 그 사람의 친구인 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친구들을요.”

“그리고 그런 친구들을 네가 자랑할 수 있어야 하고.”

 

상우는 먼길인데도 아버지와 걷는 것이 즐거워 힘든 줄 몰랐다. 아버지와 이렇게 오래 이야기해본 적도 없었다.

산자락 아래로부터 어둠이 서서히 안개처럼 깔리면서 산 아랫마을에는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마을에서 모퉁이를 돌아 한 시간쯤 가야 할아버지 댁이다.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며 가는 내내 상우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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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사진입니다. 시골집 수돗가에서 민물고기를 잡아와 손질하고 있습니다.

함께 앉은 아이가 작은아들이고, 뒤쪽에 앉은  아이가 함께 걸은 큰아이입니다.

그 아이가 이렇게 자라 온갖 똥폼을 다 잡고 사는 청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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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따까비 | 작성시간 11.03.27 오래전부터 자네를 알고 있었다는것이 정말 나에겐 큰 행복이네 ...축하하네 ...이샘...아니 이순원선생님.ㅎㅎㅎ
    우리학교 5학년 아이들에게도 자랑을 해야겠다 ...내가 좋아 하고 사랑하는 동생이라고 ㅎㅎㅎ
  • 작성자사랑해스폰지 | 작성시간 11.04.12 아드님이 잘 생겼내요^^ 그리고 교과서에 이순원선생님의 소설이 들어가서 축하드립니다
  • 작성자Magic걸 | 작성시간 11.04.14 선생님 축하드려요!!선생님이 월요일날 저희 서울증산초등학교에 오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뵐께여!!-장현지-
  • 답댓글 작성자이혜지 | 작성시간 11.04.28 같은 증산입니다.
  • 작성자라뤼슈 | 작성시간 11.05.09 우리라뤼슈커피솦에 오셨을때,함께 사진한장찍어 카페에 걸어놓을걸 그렸어요.사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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