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늦은 가을 가톨릭신문에서 한겨례신문에 연재되었던 이 소설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읽어보아야지...읽어보아야지...속으로만 몇 번 다짐을 하였지만 이내 일상 속에 파뭍혀 버렸었다. 그리고 한참을 지난, 그러니까 지난주 내 블로그에 어느 블로거님이 이 책을 읽었다는 댓글 남긴걸 보고 어머머 앗! 뜨거라하며 화들짝 놀라 이튼날 곧장 도서관으로 달려가 빌려 왔었다. 기실 가톨릭신문에서 이 책을 소개하는 글을 처음 접하면서 유독 "삶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과 같다."라는 활자가 너무나 강렬하게 나에게 다가왔었다. 마치 말 발굽에 벌겋게 달군 편자를 박듯 그렇게 짧은 한 문장이 역시 벌겋게 달구어진 인두로 내 머리 속에 편자처럼 박혀져 또렷이 각인되어 버렸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책을 빌려오던 첫 날 그 책을 펼칠 수가 없었다. 크림빵의 달콤함을 즐기기위해 오히려 더 배고픔을 강요하는 그런 것일까? 아무래도 그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튼날 늦은 시간에 첫 페이지를 조심스럽게 펼쳤다. 짐작으로 이제 시작되는구나! 하는 감이 내게 전해오자 읽던걸 멈추고 비가 추적 추적내리는 밖으로 쪼르르 나가 수퍼에서 소주 한 병을 사가지고 들어왔다. 그리고 역시 그 다음날 늦은 시간에 다시 책을 이어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난 슈퍼 문을 밀치고 있었다. 또 비는 추적 추적 내리고 있었다. 봄비일거라 생각하며 소주 한 병을 사들고 쪼르르 들어왔는데 더군더나 한 손엔 담배까지 쥐어져 있었다. 의사샘의 강력한 금연과 금주의 경고는 이미 내 이성으로 호소하기엔 역부족이었으리라. 오로지 자기 몫으로 돌아온 피자는 제일 맛이 없는 가장자리부터 원을 그리듯 먹고 난 다음 나중에 가운데 아주 먹음직스러운 피자 본래의 맛을 즐기는 법이다. 나도 그렇게 책을 읽을 요량으로 소주까지 동원하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내가 피자를 먹는게 아니라 피자가 나를 먹는듯한 느낌이었으니까....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책의 제목인 "높고 푸른 사다리"에 귀결되고 있는듯 하였다. 아마 추측컨데 책의 제목은 야곱이 형 에사오와 아버지 이사악을 속여 아버지에게 장자권 축복을 받은 후 형으로 부터 당할 후환이 두려워 외삼촌이 있는 하란으로 가던중 광야에서 잠을 자다가 꿈을 꾸게 되는데 그 꿈 속에 땅에서 하늘로 닿는 사닥다리가 있고 그 사닥다리로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꿈을 꾸는 성경 말씀(창세기 28,12-13)에서 따온 것이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무서워 도망치는 야곱은 절망과 낭패 그리고 좌절의 순간에 존재의 뿌리인 하느님을 만나게 되는 사건이 바로 '베델 체험'!!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사다리가 아닐까? 도망치는 야곱이 광야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 처했던 생의 어두운 자리일테고 그 누구도 도움의 손길을 주지 않는 그래서 더이상의 방패막이가 없는 절망의 자리에 나타난 높고 푸른 사다리가 아닐까? 내가 반드시 걸어 가야할 광야에서의 내적 여정이 아닌지도 몰라. 이 책에서 사다리는 수도원의 종소리 속에서 종종 나타나기도 하고 마지막엔 흥남철수 때 동원된 상선의 사다리가 되어서 나타나기도 했다. 또한 이 책은 왜? 하느님 대체 왜?로 시작하여 마지막엔 높고 푸른 사다리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었다. 어쩌면 이 책은 공지영 자신을 위한 책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2012년 많이 힘든 해를 보내고 나서 이 책을 연재하였으며 특히 작가가 말하는 하느님에 대한 아가페적인 사랑과 공지영 자신의 운명적 사랑(결혼이라는 전통적인 사랑의 틀을 깨트린 그런 사랑?)에 대한 자기의 성찰을 통해서 종내는 높고 푸른 사다리로 올라가려는 공지영의 염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더욱 이 책의 무게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내용의 상당수가 사실의 증언에 바탕되어 쓰여진 소설이라는 점에서 내게 더욱 더 값진 성장소설(?)인 셈이었다. 왜냐면 공지영이 작가의 말에서 고백하였듯 나 또한 이 문제에 대하여 오로지 침묵 중에 있는 십자가를 향해 왜?라고 수없이 외쳤고 처절하게 고민했었으니 말이다. 물론 외치고 고민하였던 요인은 각자 다른 색깔로 출발했으리라. 더군더나 이 소설의 무대가 되는 왜관베네딕도 수도원은 내가 승용차로 또는 자전거로 무시로 다녀왔던 곳이기도 하다. 최근엔 지난 1월엔 내 동무 미카엘과 함께 자전거로 그리고 2월엔 아내와 함께 다녀왔었다. 시간이 맞아 떨어지는 날엔 수사님들과 함께 대성전에서 낮기도(성무일도)를 함께 바칠 수 있는 기쁨도 누렸었다. 아무래도 이 사순시기 동안 몰래 베네딕도 수도원에 가서 한 이틀 머물러야 되겠다. 요행히 소화 데레라란 본명을 가진 여주인공 김소희가 묵었던 손님의 방이면 더욱 좋겠지.
요새 몇일 동안 연일 봄비가 추적 추적 내리더니 오늘 아침엔 오랫만에 맑은 햇살을 보여주었다.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원으로 가서 수도원내 조용한 경당에 2시간 머물다 왔다. 제대 뒷편 십자가에 메달리신 그분의 한결같은 침묵의 뜻을 이제 어렴풋이 알 듯하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아니면 교만일까?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원 경당>
내 맘의 강물 (이수인 시/이수인 작곡/ 안산시립합창단)
대구에서 자전거로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을 갈려면 고령 강정보를 거쳐 줄곧 낙동강 자전거길을 이용해야 했었다. 강바람을 맞으며 강나루 길을 힘찬 패달짓을 할 적마다 난 늘 이 노래를 속으로 흥얼거리곤 했었다. 그렇지만 이젠 이 길을 자전거로 달릴때면 난 이 노래외에도 또 다른 추억에 잠길 것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요한 수사님과 소희가 밤중에 수도원을 몰래 빠져나와 낙동강변 벤치에서 시리고 아픈 사랑을 나누었던 곳이 바로 내가 가쁜 숨을 헉헉거리며 패달질 하였던 곳이었으니... 아주 무심코.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
혹. 소설 주인공 요한 수사님이 아닐까 몰라.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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