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삶의 이야기

그때는 내가 왜 그걸 몰랐을까?(성당 오빠)

작성자이젤|작성시간18.01.13|조회수443 목록 댓글 28

고등학교때 나는 남동생 둘을 데리고
읍내로 나가 자취를 했다

자취집 가까운 곳에 성당이 있어서
밥해먹고 학교가기 바쁜 그 와중에도
나는 새벽미사 저녁미사를 자주 참석했다

토요일엔 친한 짝꿍 친구랑 성당 교리실에서
공부하길 좋아했고
날씨 좋은날은
혼자 성당 잔디밭에 이젤을 펼치고 풍경화나
장미꽃 피는 계절에는 화폭에 장미꽃을 그리길 좋아했다

짝꿍 친구는
얼굴도 이쁘고 공부도 나보다 잘하고
성격도 시원시원해서 성당 오빠들도 잘 따르고
언니 오빠 동생 이 다 있는 친구가
나에겐 선망이 되기도 했다

나를 잘 챙겨주고
식당일을 하는 엄마를 도와 식당일이며 집앗일도 참 잘하는
착한 친구 였다

성당의 선배 오빠들중
유난히 혼자 슬그머니 왔다가 슬그머니 사라지는
흔히 주말과 주일에 학생들이 모이는 시간에도
거의 보이지 않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는
그 한해 선배 남학생이 있었다

나는 그 읍내보다 더 촌구석에 살아서 잘 모르지만
내 친구는 읍내에서 오래동안 성당에 다녀서
그 오빠 집안에 대해서도 잘알고 있었으며
내 친구는 진심으로 그 선배 오빠를 짝사랑 했다

어느날 성당에서 스치기라도 하면
금방 좋아 죽을듯이 나에게 자랑했고
그 선배 얼굴이 조금만 어두워 보여도
친구는 세상 무너지듯 가슴아파 했으며
어느날은 선물인가를 사서 그 오빠 가방에 넣어두었다고도 했다

나는 마치 그 남자 선배는
미래의 내가 좋아하는 내 친구의 남편감이라도 되는듯
멀찌감치 바라보앗다

한해 선배였던 그 오빠가
예비고사 시험을 치뤘고
내친구는 간절히 그 오빠를 위해 기도했다
선배는 대구시내 국립대학인k 대학에 합격했다고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당시 그 대학은 비록 지방대학이나
서울대 연.고대 다음으로 알아주는 대학이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고3을 준비하던 2월이었든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나오는데
그 선배오빠가 골목입구에 서 있다가
머뭇 머뭇 하는 나에게 포장된 책을 하나 주며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만 하고 갔다

나는 너무 부끄러워
아무말도 못하고 도망치듯 집으로 와서 풀어보니
수학 정석 참고서 였다
참고서를 단원별로 나눠서 하나 하나 분리된 별책으로
제본을 다시 해놔서 공부하기좋게 정리되었고
분단마다 중요한 곳은 빨강펜으로 더욱 강조하게 체크해 두어서
내가 고3때 수학공부하기에 참 좋았으며
이후 2년 아래 동생도 그책으로 공부하게 되었다

암튼 그렇게 책을 받은뒤 그 선배는 보이지 않았고
나는 책 받은 이야기를 친구에게 말을 못하고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친구는 언니 오빠 동생 때문에 대학을 포기하고
엄마 일손 돕기로 하였는데도 늘 성적은 좋았다

내가 대구로 이사를 가게되어 친구는 더이상 만나기 힘들었고 선배 소식도 물론 모른다

그런데
대구에서 가톨릭학생회 총 연합회 단체에서
그 선배를 한번 보았다

대학 입학 축하해
라고 한마디 해 주었는데

나는 친구대신 내가 책을 받았다는 미안함과
부끄러움 때문에 아무 말도 못했다

그 이후 나는 그 선배를 못본거 같다
학교가 달랐으나
찾으려 하면 찾을수도 있었는데
나는 그럴생각을 못했다

세월이 많이 지난이후에야
나는 어렴푸시 내 감정을 알게 되었다
나도 어쩌면 성당에서 그 선배를 보면 가슴이 콩닥거렸음을...

그런데 워낙 친구가 선배에게 빠져있어서
나는 감히 내감정을 내 자신도 몰랐다는 것을...


그때 좀더 적극적으로 그 오빠를 찾거나
씩씩하게 대답조차
고맙다는 말한마디 못했을까 후회하는 날도 있었지만
그 당시 나는 아무것도 몰라서
그렇게 더이상 만나지도 소식을 듣지도 못했다

마치 황순원의 소나기 처럼
상큼한 사연 이었다

그렇다고 이분이 내 첫사랑은 아니였다
첫사랑이라고 느낄새도 없이 지나가 버린거 같다

문득
요즘 가끔 생각나는 지난 시절의 한장면

나는 왜 그분의 마음을 알아보려고도 안했을까?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이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1.14 그러게요
    성장과정 이겠지요
    그런 작은 아쉬움이로 인해 용기를 배우는. .
    귀한 댓글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여기 | 작성시간 18.01.14 누구든 그때?는 몰라요 ㅎ 늘 지나고 나면 깨닫게 되죠~
    사람이 살다보면 다 때가있죠..
    때.. 그 때를 잘 알아차리고 살아야 하는데 말이죠 ㅎ
    인간의 어리석음에 그 때를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게 문제죠^^
    글 잘 보고 공감햇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이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1.14 맞습니다
    맞고요

    시간과 공간이 일치해야 인연이 만들어지는게
    우주원리인데 말이죠
    좋은 휴일 되세요
  • 작성자유성별 | 작성시간 18.01.14 이젤님 고향이 대구인가 봐요. 저도 대구에 정착하며 살고 있답니다.
    저도 첫사랑이 있지요. 황순원의 소나기 같은 첫사랑이요. 기회되면 글을 올리겠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저도 한때는 송중기 같은 미남이었답니다.
  • 답댓글 작성자이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1.14 대구에서 학교다니고 지금은 대전에서 살지요
    지금도 송중기가 보면 울고 갈거 같은데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