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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봄 비와 시래기 국

작성자운선|작성시간20.03.27|조회수448 목록 댓글 19

봄비가 자작자작 내리고 있다

 

이 비 그치고 나면

수수 꽃 다리는 활짝 필까

 

붉게 물든 봉오리

통통 하던걸

 

곧 한 겹씩

옷을 벗고 만개한 얼굴로 오가는 발길을 멈추게 하고 말걸

 

활짝 핀 꽃은

지는 날만 남았을 테지


꽃물 머금은

수줍은 여린 자태의 봉오리는

기다리는 설렘이라도 있었건만 ...

 

모든 것은 준비와 때가 있으니

어느 것에 미련을 둔단 말인가

 

 

 

 

겨울은 탈탈 털어대며

떠날 채비 인사 소란스럽다

 

 

시래기

 

이맘때면

뒤란 흙벽에 매달려 하얗게 바래가던 시래기 꼬랑지

몇 오라기마저 먹어 치울 때다

 

삭풍이 부는 겨울 밤

 

속이 헛헛해 잠이 깨고

구들이 식어 냉골이어서 잠이 깨는 밤

 

 

 

 

 

몇 년째

솜 못 갈아 넣은 부실한 이부자리 덮어 쓰고

 

!

바람소리에 섞여 들려오던

뒤란 벽에 걸린 시래기끼리 부딪치는 소리 유난하던 겨울 밤

 

! 버석!

싹싹 버석!


신기하게 아침에 나가보면

밤새 그토록 버석거리며 서로의 몸을 치던 시래기들이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 하나 없이 말짱 한 채로 걸려있다는 것이다

( 꽁꽁 얼었으니 )

 

 

집안에 있는 먹을거리는

무엇이든 아껴야 하는 겨울이라

시래기 한 줌조차 귀하던 시절

 

 

 

시래기는

후닥닥 삶아지는 것이 아니던 시절

 

그 시절엔 불을 때서 삶았으니

이틀을 솥 안에 두고 불의 강약을 조절해서

삶아 내야 물렁하고 부드러운 시래기가 되는 것이다

 

 

늦가을 시래기를 많이 걸어둔 집에서는

한 번 삶을 땐 대여섯 오리 걷어와 삶아댄다

 

 

 

큰 가마솥이 있어야 가능하고

가마솥에 삶아야 뜸도 잘 들고

푸근하니 잘 무른다

 

 

 

 

솥이라고는

팔랑개비같이 가벼운 양은 솥단지 하나로

밥과 국을 끓여 먹던 우리 처지엔

 

시래기를 삶아도

겨우 한 오리 벗겨와 솥에 우겨넣고 삶는데

 

양은솥이라

빨리 끓고 빨리 식는 것도 있지만

 

가마솥 뚜껑만큼

묵직하니 김이 새지 말아야 뜸이라도 푹 들것을

 

양은 뚜껑 하는 품새란

가볍고 본데없이 촐싹거리는 사람모양

 

쉴 새 없이 달싹거리며

김을 빼버리는 터에

 

궁여지책 뚜껑위에

옹기 투 가리나마 씌워 눌러 놓곤 했다

 

시래기 한 솥 삶아 물에 담가 우려내놓으면

괜히 든든하고 며칠 찬 걱정 없어 좋았다

 

찬 없을 때

이웃 누가 삶은 시래기 한 뭉치 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 없던 때이다

 

시래기가 맛있을 한 겨울엔 아껴가며 먹다가

봄바람 먼지 속에 더운 기가 전해 올 즈음

 

시래기마저 삶으려고

걷어 볼라치면

 

그 좋던 푸른색은 다 빠지고

희나리 희끗희끗한

줄기와 잎 몇 개로 남아 잔바람에도 휘청대던 시래기

 

그나마 혹여 후 두둑 떨어져 소실될까 염려해

미리 물바가지 들고 가

 

입에다 물 품고 후후 푸푸! 내뿜어

눅눅하게 한 뒤 걷어내어

 

반은 삶고 반은 포대에 담아 광에 넣어둔다

한여름 푸성귀 귀할 때 먹으려고

 

 

 

 

 

시래기 삶을 때 소다 한 숟갈 넣으면

쉽게 물러진다 해서

 

집집마다 소다를 넣고 삶았는데

그렇게 쉽게 물러지진 않았다

 

 

 

밤새

솔가지로 서너 번 김을 낸 다음 

 

은근짜~한 불로 뜸 푹 들여 삶아낸 시래기는

쫑쫑 썰어

읍내 식당서 얻어온 소기름 덩이 몇 개 넣고

된장 풀어 끓인 그 맛이란 

 


지금 온갖 여우같은 맛에 익숙한 입맛에도

절대 잊을 수 없는 맛으로 남아 있다

 

텁텁하고 짜디짠 된장에

소기름이 뭉치가 들어가 퍼지면서 내는

 

부드럽고

구수한 국물 맛

 

 

질긴 시래기 줄기 속을 동물성 기름이 얼마나 녹진하니 녹여 놨는지

씹으면 죄다 소고기 맛이라

 

국물도 시래기도 한없이 퍼 먹고 싶은 맛이지만

그 시절에 맛있는 것은 언제나 아껴 먹어야 했다

 

소기름 얻기 전쟁이 벌어졌던 시절

 

장 복순 엄마는 소기름 한 덩이 얻기 위해

읍내 협동식육 식당 설거지를 종일 해주기도 했다

 

퐁퐁도 없고

싱크대도 없던 시절

 

식당 맨 바닥에 엎드려

기름기 범벅인 국그릇과 불판을 닦아주고 얻은

소기름 한 덩이              축구공만한 ...

 

그 기름덩이를 퍽퍽 썰어  

불쌍한 소녀가장 나에게도  건네주던   복순 엄마

 

 

우리 두 집은 똑같이

한 달가량 소기름 넣은 시래기 국을 먹었다

장 복순 엄마는

귀한 거 맛있는 양념을 쓸 적마다 이렇게 말했다

 

자야

비상처럼 넣어 먹거라

비상이 뭐예요?

비상은 먹으면 죽는 거니까 아주 아껴 쓰면 약이 된다는 말이지,

 

 

봄비가

봄비같이 내린다

 

다 익은 사랑같이 포근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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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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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랑콤 | 작성시간 20.03.27 환타스틱 
    우짜긴요 ㅋ ㅋ
    어렵지 않음
    들깨가루가 황금 레시피
    그렇다고 살림잘하는
    여자는 아니고 애들 잘키우는
    속깊은 어미로 ㅋ ㅋ
    맛있게 해봐요^^
  • 작성자아델라인 | 작성시간 20.03.27 설겆이 해주고 얻은 소기름으로 온가족이 맛있게 먹을 생각하면
    설겆이도 즐거웠겟지요..
    엄마의 마음은 참 숭고하고 아름다워요
  • 작성자무악 산 | 작성시간 20.03.27 수수꽃다리 곧 피게 될것입니다.
    자주색 수수꽃다리는 먼저피고
    하얀색 수수꽃다리는 좀 늦게 오지요.
    비가 내리는 요일이 어쩜..한국과 이곳이 비슷한지요.
    아침이 오면 저녘이 오는것 ..
    그런 시간만 다른것 같읍니다.
  • 답댓글 작성자랑콤 | 작성시간 20.03.27 시간 의미 없어요
    하루 24시간 같음이
    중요할뿐이죠
  • 작성자순수수피아 | 작성시간 20.03.27 그 시절 돼지 비게로 볶은 볶음밥의 고소한 맛도 잊을 수 없는 맛 중 한가지 일겝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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