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들 상견례를 했습니다.
딸이 못 가게 되어서 그동안 의지하며 살았던 두 남동생과 동행을 했습니다.
새 구두와 새 옷을 입고 출발하며 큰 동생에게 전화로 당부를 했습니다.
'어려운 자리니까 싱거운 소리 하지 마. 시간 맞추고.'
동생의 답변은
'그럼, 소금 좀 집어 먹고 갈게.'
딸 보낼 때 보단 아들 장가보낼 때가
더 긴장되는 건 장가 안 가겠다고 했던 아들이어서 혹시나 상견례로
잘못될까 하는 노파심도 있었어요. 더러 그런 일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고 해서요.
두 살 때 헤어진 아빠의 부재가 아들사춘기를 힘들게 하기도 해서
마음 한편 미안하고 짠하기도 했기에 든든한 아버지 같은 장인을 만나길 바라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사부인도 사돈도 아들을 많이 좋아해 주신다니 안심이긴 했지만
그래도 상견례로 마이너스 영향을 주지 않을까 염려도 되었답니다.
이곳에 이사오기 전 살았던 마포에 경복궁이라는 곳에 도착하니
종업원이 신부 측 신랑 측 자리를 지정해 안내해 주었어요.
상견례 자리라고 조금은 특별한 식탁차림이었으나
사실 사돈 두 분은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저도 마찬가지로
그림 같은 음식 맛을 느끼지 못한 채 먹는 시늉만 하니,
잘 먹는 막냇동생과 제가 앞자리 두사돈에게 드시라 자꾸 권해야 겨우 한 젓가락 드셨지요.
어색한 인사 후 초반식사가 이어지고 막냇동생이 맞은편 사돈에게 대화를 이끌어내니
그제야 어색한 분위기가 풀리는 듯 딸내미 자랑도 하시고 했어요.
올해 환갑인 큰 동생은 역시 맞은편에 앉은 사돈 딸들과 안사돈까지 웃기기 시작합니다.
나는 내내 옆구리를 찔렀지만 개그본능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맏아들인 그런 큰 동생을 못마땅해하셨지요.
남자는 무게가 있어야 한다고.
그럼에도 타고난 폼생폼사와 유머감각 덕분에 어린 조카들도 우리 사 남매도
모이면 술 한잔 없이도 호호 깔깔했어요.
친구에게도 여자들에게도 늘 인기가 많은, 저와는 전혀 다른 번뜩이는 위트감이 부럽기도 했는데,
막내가 형은 연예엔터회사를 해야 한다는 말도 종종 하곤 했었지요.
한참 웃던 안사돈이 지훈이가 삼촌을 닮았네요. 하시네요.
헉~ 내 아들은 웃기는 아이가 아닌데....??
엄마가 아들을 다 모르나 봅니다.
아들은 삼촌 덕분에 식사자리가 어색하지 않고 부드럽고 많이 웃었고
며느리감도 아시아나 승무원인 여동생도 즐거워했다고 해서
한편 마음이 놓이기도 했습니다.
큰 동생
'결혼식 때 신으시라고 엄마 털신 사 드렸어.'
작은 동생
'춘삼월에 결혼식인데 털신을 어떻게 신어?'
큰 동생
'그럼, 털을 뽑아 드림되지.'
그 말에 바깥사돈 제외하고 모두가 또 호호호~~~~
아들이 색시될 아이와 쿠킹클래스 가서 둘이 만든 크리스마스쿠키랍니다.^^
갸가 하자면 이런 것도 해서
깜짝 놀랍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운선 작성시간 23.12.20 화기애애 상견례 잘 치렀네요
부럽습니다 아들 장가 보내니 ㅎㅎ 어쩜 쿠키도 앙증맞게도 ㅎㅎ 리진님 잘사신 거 같습니다 좋은 일만 퐁퐁~^^ -
답댓글 작성자리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3.12.20 결혼 앞둔 미혼들이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게 문제긴 합니다.
혹시나 제아들도 그리할까 내심 걱정 했드랬죠.
천만다행으로 짝을 만났으니 잘 살기만 바랄 뿐입니다.
쿠키가 이쁘긴해요.
내년은 아마 안만들지 않을까 짐작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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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혜전2 작성시간 23.12.21 추운 날
난로가에서
뒤늦게 읽었습니다.
큰 동생의 윗트에
아침부터 즐거운 미소가
흘렀습니다.
'그럼,털을 뽑아 드림되지'
아드님의 상견례,
춘삼월의 결혼식
축하드립니다.
모친께서도
건강하시고,
리진님께서도
늘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리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3.12.21 부족한 후일담에 잠시라도 미소 지으셨다니 저도 흐믓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나누는 것도 괜찮지않을까 해서요.
'그럼, 새로 사드리지.'
아마도 대부분 이렇게 대답할 텐데,
동생은 늘 의외의 말을 툭 던지길 잘해서 주위를 웃게 만듭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이 어제보다 더 춥다니 따습게 하시고 건강유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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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혜전2 작성시간 23.12.21 리진
'그럼, 새로 사드리지.'
저같은 보통 사람들의 대답일텐데
동생분은
센스와 위트가 넘치네요.
점심시간
또 한번 웃었습니다.
리진님께서도
따습게 하시고
감기라도 걸리지
않도록 건강유의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