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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5월18일 출석부) 건강수명과 황금여생.

작성자호뱐청솔|작성시간24.05.17|조회수216 목록 댓글 55

 

 
 5월에 들어서자마자 황금 연휴라하며 아파트가 전부 비어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코로너 19를   조심하라는 정부의 당부도 있었다.
앞집,옆집할것없이 제주도나 지방명소. 더러는 고향집으로 모두 출발하고 남은사람은 나처럼 별볼일없는 노인네
 몇사람많이 이 아파트를 지키고 있을뿐이다
부럽다
이럴때 마누라하고 손잡고 나도 뽐잡으며 어디  근교명소나  사찰이라도 떠나 늦봄의 새자연을 즐길수만 있다면,
싱싱한 신록과 자연의 아름다움,
거기에 훔뻑 빠져보고싶다.

황금연휴라며 온가족이 함박웃음을 지며 차에 오르는 저집가족들을 보면  많은 아쉬움과 부러움이 남는다
저들도 다 건강하니까 그 건강을 즐기고 있는것이다.
건강하지못하면 어디 꿈쩍이나하겠나?
그러니 너나,나나 입만벌리면  "건강하세요." 하고  노래처럼 부른다.

흔히들 건강을 떠올리며 더러는 건강수명을 말하며 활기차게 여행떠나는 사람들을보면  긍정적이고 많은부분
고개를 끄덕거리며 수긍돼는 점이 많다.
일요일 아침  잠시나마  이따금 KBS 의  "황금연못"을  바라본다.
부럽더라.
입을 활짝 벌리고 웃는  그들이 부럽더라.
어쩌면  꾸김살 한점없는  그들 노부부가 부럽더라.
 
 흔이들 백세시대라며 90. 100을 말하는데 저들처럼  90. 100을 산다면야  아무런 미련이나  후회가 없을성싶다.
하루를 살고 한달을 살더라도 내발로걷고 내발로 움직일때 삶의 의미가 있지않을까?
이것이 건강수명이다
걷지도 못하고 밥만먹고 그저 신진대사만하고 움직임도 자유롭지 못하고 휠체어로 이동한다면 100 세를 산들 그게 무슨 삶인가?
그런데 주위를 바라보면 짐만돼고 고통만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얼마전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정신지체  여동생을 감당하기 힘들어  집단적  죽음을 선택한  아들을보고  가슴아펏다.
어제도 마누라하고  요양원 앞을 지나갔다.
나는 마누라한테   
" 나는 결코 저런곳은 절대로 가지 안을꺼야. 무엇하러 저런곳에가? 자식들에게 짐을 주며.?
그 전에 내 스스로 해결할꺼야. 어자피 한번은 요단강인지 도솔천인지 건너가면돼는데.
추한 꼴을 보이고도 싶지않고,"
신앙의 가르침하고는 배반되지만.
 

 20여년전  TV를 보는데 문교부장관, 국회의원, 국회의장을   지내신  민관식씨가 저녁식사후  아침에 아들이 문을 열어보니 
밤사이  심장마비로  생을 끝마쳤다는  뉴스를 보았다.
인덕을 쌓으며 덕을 베플며 살아온분의 마지막 생애의 축복받은  종지부였다.
바로 축복받은 죽음이다.
돌아가시기 전날까지도 지인들과 테니스를 치고 귀가하여 저녁을 들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까지 기침을 안하셔서
식구들이 깨우니까 대답없이 밤사이 조용히 떠나신분.
" 순간에서 영원으로"  가셨다.
집안에 보일러 공사를하는데 부인은 인부들에게 밥에 고기국과  찌게로 덕스럽게 대접했단다.
 
 
또한사람.
바로 친구 어머니시다. 
10여년전 어느 연말  저녁.
내리는 눈을 맞으며 집에 도착하니 7시가됐다.
저녁을 먹으려 식탁에 않는데  휴대폰이 나를 찾는다.
친구가 찾는전화다.
 
" 기원이 어머니가 돌아가셨단다
성모병원 장례식장이다"
그순간 60여년전 고딩때,
연희동에 살았던 그 친구네집과 그 앞마당의 넓은 뜰이 떠올랐다.
그넓은 앞마당은 평행봉과 예쁜 꽃들이 피어있었다.
그리고 점심때 그어머니가 끓여준 파국이 생각났다
" 파국. "
그날 그친구하고 그집에서 점심을 먹는데 파국이라며  어머니가 주셨다..
파국이라는 이름도 처음들었고 지금이나 그때나 나에게는 너무 낯선국이었다.
그리고 파국을 먹어본것은 그때가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나는 파자체를 싫어한다
그래서 먹을까말까 망서리다 그냥 보기싫은것부터  눈딱감고 먹어치우자 하는 생각에 눈감고 얼른 파국부터 먹어치웠다
그것을본 기원이 어머니는
" 으 파국을 좋아하는구나?" 하시며 또 한그릇을  가져다주셨다
난감했다.
어떻게할까?
 
그것이 엊그제같은데 60여년전 일이다.

그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는순간 그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그옛날 일정시대.
압박받는 민족으로서 모든것이 박탈당하고 어려웠던 시절 이화여전을 졸업하신 엘리트 어머니시다.
당시는 고등학교 교육을 받은 남자들도 손꼽아 헤아릴때다.
그런데 더우기 여성이 전문학교를 졸업한다는것은 극히 드문일이다.
당시는 연희전문, 보성전문(지금의 고대)., 이화전문뿐이었던 시절.
그런 그시절 기원이 외할아버지는 기원이 엄마를 이화여전에 보내셨던것이다.
기원이 외할아버지와 기원이 엄마를 존경스러워했다.
그리고 역시 엘리트이신 기원이 아버지와 만나 결혼하시고 그러나 잠시 행복하셨을것이라 생각했다.
술을 너무 좋아하신 기원이 아버지.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그후 독실한 신앙생활로  세자녀를 피눈물나게 키우셨다.
 
심장마비.
돌아가신 전날 식구들과 TV 를 보고는  " 나는 잔다."며 하신 말씀이 마지막 인사.
아무런 고통없이 저세상으로 건너가신것이다.
이런복이 어디있나?
결코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녀들의 인간적인 삶과 성실한 생활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는  모범적인 신앙생활이 그밑바탕이 됐을것.!
 
그 어머니를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야할까?
어떻게 살아 남은생을 마감할까?
어떻게 살아야 이그러진 마음을 조금이나마 펴며 인간적인 생을 마감할까?
 
남은 생애 ,
이것은 황금의  여생이다.
밝은 빛이 주위를 뒤덮은 이 밤에  혼자 생각해본다.
 
내일은  일요일.
가는 봄날을 아쉬워하며   "황금연못"을  시청하고  그  노인네들의  꾸김살없는  웃음을 바라보자.
 
https://youtu.be/34ExtqfdSkg  봄날은 가고   { 4인 4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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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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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호뱐청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18 아마 인류의 역사일꺼예요,
    젊었을때는 남의 이야기로만 알다가,
  • 작성자둥근해 | 작성시간 24.05.18 마음에 닿는 글 잘 읽었습니다
    주어진 이 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잘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월의 푸르름은 짙어져만 갑니다
    싱그러운 날들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호뱐청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18 네 둥근해님은 아직도 많은날이 남아있으리라 믿습니다.
    지금 항상 싱싱하고 푸른날을 즐기십시요
  • 작성자운선 | 작성시간 24.05.18 그렇지요 죽음도 내 의지로 해결하고 싶지요
    출석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호뱐청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18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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