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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아직 행복한 장모는 못 되었어도..

작성자달항아리|작성시간24.05.19|조회수480 목록 댓글 55

지난 목요일 심야에 나는 죽다 살아났다.
점심 먹은 것이 잘못 되었는지 아니면 저녁 먹은 것이 잘못 되었는지, 아주 된통 체한 것이다.
저녁 늦게부터 속이 불편하더니 자려고 누웠는데 점점 더 더부룩 니글 니글..
그러다 도저히 더는 못 참을 지경이 되자 잠든 남편 안 깨우려고 거실로 튀어나와 화장실로 직행..
그렇게 시작된 극심한 복통과 구토와 또.. ㅠㅠ
화장실 들락거린 횟수가 위로 아래로 도합 열 세 번 정도..
나중엔 신물까지 올라오는데, 위산의 그 독한 참맛이란.. ㅠㅠ
나는 입덧도 별로 안했던 체질이라서 이렇듯 극심한 구토는 거의 생전 처음이었던 것 같다.
너무 너무 고통스럽더라..
내가 그렇게 거실에서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며 초죽음이 되어가니
아직 깨어 있던 딸 셋이 다 나와서 어쩔 줄을 모른다.
(둘째도 방학이라 집에 와 있음)
하나는 화장실 따라 들어와 등 두들겨 주고
하나는 무릎 담요 가져다 덮어 주고
하나는 배 문질러 주고 팔 주물러 주고..
딸 셋이 다 야밤에 열일을 하는데 딸 잔뜩 낳아 키운 보람이 좀 있긴 하더라..
그런데 셋 중 하나는 운전 면허가 없고 둘은 장롱 면허이니,
자기들이 운전 못해 미안하다며 아빠를 깨워서 병원 응급실 가자 하는데
화장실 출입이 멈춰야 병원도 가지 싶어서 쉴 새 없이 화장실만 들락거리다가
구토가 간신히 멎은 뒤에는, 나올 거 다 나왔는데 이제 가서 뭘 하나, 이러다 나을 거라며 안 가고 버텼다.
야밤의 응급실, 좀 심란한가? 그래서 안 가고 싶었다.
그러다 복통도 좀 사그러들고나니 잠이 쏟아져서 안방으로 들어가, 그 모든 소동을 모른 채 자고 있는 남편 곁에서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깨어 거실로 나와 보니 둘째가 안마의자에서 자고 있다.
내가 나오는 기척에 눈을 뜬 아이는 엄마 상태부터 묻는다.
그래서, 나는 괜찮아졌는데 너는 왜 벌써 일어나 나왔냐 했더니,
엄마가 걱정이 되어 밤새 거실 소파와 안마의자를 오가며 새우잠을 잤다네..
아니 내가 안방에서 혼자 자는 것도 아니고 아빠랑 자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아빠가 챙길 텐데 왜 네가 불침번을 섰냐 하니까
간밤에 그 난리통에도 아빠가 깨질 않으니
혹시나 엄마가 자다가 또 구토를 하면 누운 상태에서는 위험한데 아빠가 자느라 모를까봐
안심이 안 되어 자기라도 지켜보려고 거실에서 자다 깨다 하며 한 시간 간격으로 안방 문을 열고 확인을 했다고 한다..

하이고.. 걱정이 지나치기도..
하지만.. 너무 너무 고마운 내 새끼..
아이는 엄마의 무사함을 확인 후 병원 문 여는 시간에 맞춰 꼭 병원 가라고 신신 당부를 하고는 비로소 자기 방으로 자러 들어갔다.

내 딸, 너 오늘 보니 효녀네?
난 진짜 아이의 효심에 큰 감동을 받았다.
자기가 자랄 적에 셋 중 가장 엄마 속을 많이 썩였다고 미안해하는 아이,
공부가 길어지지만 엄마 아빠만 건강하게 기다려주면 꼭 잘 되어 힘써 효도하겠다 수없이 다짐하는 아이,
타국 땅에서 힘든 공부 당차게 잘해내며 집에 올 적마다 점점 더 대견하게 철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고마운 내 딸, 내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딸.
이렇게 이쁜 딸들이 얘 말고도 둘이나 더 있으니 이 얼마나 복이 터졌나?

나는 탈 난 속을 다스리느라 금요일엔 종일 집에서 쫄쫄 굶으며 하루를 보냈어도
내 딸들의 엄마에 대한 사랑 덕분에 배부르고 흡족했다.
그리고 어제 토요일, 남의 집 노총각 아들 장가 보내는 경사에 하객 노릇도,
그닥 부러워하지 않고 잘하고 왔다.
요즘 들어 부쩍, 시집 갈 생각이 없는 우리 집 딸랑구들 때문에 속을 끓였지만
어제는 뭐, 그깟 시집 안 가면 어때, 가거나 말거나 내 딸들이 이렇게 이쁜데, 에헤라 디여~~ 이러면서 마음이 편안하더라^^
게다가 작년에 마흔 한 살에 시집간 어떤 샘이 바로 아이가 들어서서
올해 마흔 두 살에 떡하니 자연분만으로 아들을 낳았다는 낭보까지 들으니,
아싸, 아직 삼십 대인 우리 딸들(막내는 이십 대) 소망이 있어! 이러면서 기운도 나더라. ^^

그래, 니들이 어서 어서 방 빼주기만을 학수 고대하고 있다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이냐..
등 밀어 보낼 수 없으니 하던 대로 기도만 할 뿐이다.
나는 행복한 장모는 아직 못 되었어도 이미 행복한 엄마인 것은 분명하니
내 딸들 걱정 안 하도록 건강 관리 잘하며 나이 들도록 힘쓰마.
세상에서 우리 엄마가 제일 예쁘고 우리 엄마가 해준 반찬이 제일 맛있다는 내 딸들아 사랑해! 많이 많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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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달항아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19 ㅎㅎ 병원엘 갈 엄두가 안났어요.
    위로 아래로 쉴 새 없이 내용물을 내보내니
    차를 타고 병원을 갈 상황이 아니더라구요.
    (십중팔구 가다가 차 안에서, 으악~~)
    그래서 견디다 보니 나올 거 다 나온 듯한데
    이젠 나을 일만 남았으니 심야의 응급실은 노 땡큐, 이렇게 된 거죠.
    우린 큰 애가 현재 38, 전혀 갈 생각 없고
    둘째는 34, 지금 갈 상황이 아니고
    막내는 28, 얘야 뭐 아직..
    도마언니네 딸내미들이 삼십 중반에 가서 잘 산다 하시고
    또 아는 샘 한 명은 41살에 가서 42살에 바로 애도 낳았다니
    희망을 품고 열심히 기도합니다!
    어떤 사위건 걸리기만 해봐라, 내가 아주 그냥 굉장히 잘해 줄 테다,
    벼르고는 있습니다. ^^
    늘 고마우신 도마 언니 오늘도 감사해요.
    늘 행복하셔야 해요. ^^
  • 작성자윤슬하여 | 작성시간 24.05.19 ㅠㅠ
    복통을 동반한 설사 너무 힘든데
    그 것도 오 밤중에 오면
    난감하죠

    저는
    못 견디고 꼭 응급실 신세를 ᆢ

    고운 딸이 셋이나 있으니
    노후 대책은 완벽하게
    한 샘이고요

    지난 번 일로
    내가 스스로 무서워서
    같은 침대를 썼는데
    살만 하니
    다시 따로 ㅎㅎ
    그 이유는 굿을 쳐도 모르고 잔다는 거

    어찌나 달필인지
    한 숨에 읽어내렸습니다ㆍ
    굿!

  • 답댓글 작성자달항아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19 심야에 소화기관 속 모든 내용물 내보내기, 위로도 아래로도^^
    동시 상영을 해보니 아래보다 위가 훨씬 힘듭디다.
    반복되는 구역질의 그 고통이라니요.
    아니 기껏 합방하시더니 다시 각방? ㅎㅎ
    우린 여태 같이 자는데 가을부터는 각방 쓸 거예요.
    일년에 9개월 가량은 둘째 방이 비지만
    갸 방 침대가 거의 90도 각도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벙커 침대라서 제가 기어올라가기 힘든 데다가
    그 침대 아래 쪽 공간에 온갖 자기 물건을 잔뜩 쟁여놓은 터라 그 방 침대를 바꾸지도 못하고 그 침대도 못 써먹었는데
    이번에 애 왔을 때 물건도 정리하고 보통 싱글 침대로 바꿨어요.
    8월 하순에 돌아가고 나면 저 이제 거그서 자요. 아싸! ^^
    수면의 질 향상을 위해 각방을 쓰자는데도 삐지더군요.
    도대체가 비위 맞추기 힘든 늙다리 큰 아들이예요ㅎㅎ
    근데 얼마 전 제가 자다가 악몽을 꾸며 잠꼬대를 할 때 남편이 깨워줬는데, 앞으로 그런 건 아쉽겠지라^^
    우리 이쁜 성이 칭찬해주셔서 기분 띵호와예요ㅎㅎ
  • 작성자제라 | 작성시간 24.05.19 따님들
    정말 잘 키우셨네요.
    열 아들 부럽지 않을 효녀입니다.

    지금은 몸이 좀 괜찮으신가요?
    고생 많으셨네요.
  • 답댓글 작성자달항아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19 아이구 어느 집 딸들도 안 그럴까요 ㅎㅎ
    잘 키우긴요, 여태 엄마 치마 꼬리만 잡고 다니는 얼라들인 걸요.
    몸은 괜찮지만 계속 음식 조심은 해야 할 듯해요.
    딸들이 시집도 안 가고 독립도 안하고 속을 썩여서 혼자 애태우다가
    모처럼 이쁜 짓들을 하니 뿅 가서 쓴 글입니다. ^^
    제가 참 좋아하는 제라님 감사합니다.
    목포 J여고 졸업하신 분들, 요 바로 위의 분과 제라님, 억쑤로 마음에 듭니다 ㅋㅋ
    평안한 밤 되시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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