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심야에 나는 죽다 살아났다.
점심 먹은 것이 잘못 되었는지 아니면 저녁 먹은 것이 잘못 되었는지, 아주 된통 체한 것이다.
저녁 늦게부터 속이 불편하더니 자려고 누웠는데 점점 더 더부룩 니글 니글..
그러다 도저히 더는 못 참을 지경이 되자 잠든 남편 안 깨우려고 거실로 튀어나와 화장실로 직행..
그렇게 시작된 극심한 복통과 구토와 또.. ㅠㅠ
화장실 들락거린 횟수가 위로 아래로 도합 열 세 번 정도..
나중엔 신물까지 올라오는데, 위산의 그 독한 참맛이란.. ㅠㅠ
나는 입덧도 별로 안했던 체질이라서 이렇듯 극심한 구토는 거의 생전 처음이었던 것 같다.
너무 너무 고통스럽더라..
내가 그렇게 거실에서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며 초죽음이 되어가니
아직 깨어 있던 딸 셋이 다 나와서 어쩔 줄을 모른다.
(둘째도 방학이라 집에 와 있음)
하나는 화장실 따라 들어와 등 두들겨 주고
하나는 무릎 담요 가져다 덮어 주고
하나는 배 문질러 주고 팔 주물러 주고..
딸 셋이 다 야밤에 열일을 하는데 딸 잔뜩 낳아 키운 보람이 좀 있긴 하더라..
그런데 셋 중 하나는 운전 면허가 없고 둘은 장롱 면허이니,
자기들이 운전 못해 미안하다며 아빠를 깨워서 병원 응급실 가자 하는데
화장실 출입이 멈춰야 병원도 가지 싶어서 쉴 새 없이 화장실만 들락거리다가
구토가 간신히 멎은 뒤에는, 나올 거 다 나왔는데 이제 가서 뭘 하나, 이러다 나을 거라며 안 가고 버텼다.
야밤의 응급실, 좀 심란한가? 그래서 안 가고 싶었다.
그러다 복통도 좀 사그러들고나니 잠이 쏟아져서 안방으로 들어가, 그 모든 소동을 모른 채 자고 있는 남편 곁에서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깨어 거실로 나와 보니 둘째가 안마의자에서 자고 있다.
내가 나오는 기척에 눈을 뜬 아이는 엄마 상태부터 묻는다.
그래서, 나는 괜찮아졌는데 너는 왜 벌써 일어나 나왔냐 했더니,
엄마가 걱정이 되어 밤새 거실 소파와 안마의자를 오가며 새우잠을 잤다네..
아니 내가 안방에서 혼자 자는 것도 아니고 아빠랑 자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아빠가 챙길 텐데 왜 네가 불침번을 섰냐 하니까
간밤에 그 난리통에도 아빠가 깨질 않으니
혹시나 엄마가 자다가 또 구토를 하면 누운 상태에서는 위험한데 아빠가 자느라 모를까봐
안심이 안 되어 자기라도 지켜보려고 거실에서 자다 깨다 하며 한 시간 간격으로 안방 문을 열고 확인을 했다고 한다..
하이고.. 걱정이 지나치기도..
하지만.. 너무 너무 고마운 내 새끼..
아이는 엄마의 무사함을 확인 후 병원 문 여는 시간에 맞춰 꼭 병원 가라고 신신 당부를 하고는 비로소 자기 방으로 자러 들어갔다.
내 딸, 너 오늘 보니 효녀네?
난 진짜 아이의 효심에 큰 감동을 받았다.
자기가 자랄 적에 셋 중 가장 엄마 속을 많이 썩였다고 미안해하는 아이,
공부가 길어지지만 엄마 아빠만 건강하게 기다려주면 꼭 잘 되어 힘써 효도하겠다 수없이 다짐하는 아이,
타국 땅에서 힘든 공부 당차게 잘해내며 집에 올 적마다 점점 더 대견하게 철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고마운 내 딸, 내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딸.
이렇게 이쁜 딸들이 얘 말고도 둘이나 더 있으니 이 얼마나 복이 터졌나?
나는 탈 난 속을 다스리느라 금요일엔 종일 집에서 쫄쫄 굶으며 하루를 보냈어도
내 딸들의 엄마에 대한 사랑 덕분에 배부르고 흡족했다.
그리고 어제 토요일, 남의 집 노총각 아들 장가 보내는 경사에 하객 노릇도,
그닥 부러워하지 않고 잘하고 왔다.
요즘 들어 부쩍, 시집 갈 생각이 없는 우리 집 딸랑구들 때문에 속을 끓였지만
어제는 뭐, 그깟 시집 안 가면 어때, 가거나 말거나 내 딸들이 이렇게 이쁜데, 에헤라 디여~~ 이러면서 마음이 편안하더라^^
게다가 작년에 마흔 한 살에 시집간 어떤 샘이 바로 아이가 들어서서
올해 마흔 두 살에 떡하니 자연분만으로 아들을 낳았다는 낭보까지 들으니,
아싸, 아직 삼십 대인 우리 딸들(막내는 이십 대) 소망이 있어! 이러면서 기운도 나더라. ^^
그래, 니들이 어서 어서 방 빼주기만을 학수 고대하고 있다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이냐..
등 밀어 보낼 수 없으니 하던 대로 기도만 할 뿐이다.
나는 행복한 장모는 아직 못 되었어도 이미 행복한 엄마인 것은 분명하니
내 딸들 걱정 안 하도록 건강 관리 잘하며 나이 들도록 힘쓰마.
세상에서 우리 엄마가 제일 예쁘고 우리 엄마가 해준 반찬이 제일 맛있다는 내 딸들아 사랑해! 많이 많이 고마워!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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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달항아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05.19 ㅎㅎ 병원엘 갈 엄두가 안났어요.
위로 아래로 쉴 새 없이 내용물을 내보내니
차를 타고 병원을 갈 상황이 아니더라구요.
(십중팔구 가다가 차 안에서, 으악~~)
그래서 견디다 보니 나올 거 다 나온 듯한데
이젠 나을 일만 남았으니 심야의 응급실은 노 땡큐, 이렇게 된 거죠.
우린 큰 애가 현재 38, 전혀 갈 생각 없고
둘째는 34, 지금 갈 상황이 아니고
막내는 28, 얘야 뭐 아직..
도마언니네 딸내미들이 삼십 중반에 가서 잘 산다 하시고
또 아는 샘 한 명은 41살에 가서 42살에 바로 애도 낳았다니
희망을 품고 열심히 기도합니다!
어떤 사위건 걸리기만 해봐라, 내가 아주 그냥 굉장히 잘해 줄 테다,
벼르고는 있습니다. ^^
늘 고마우신 도마 언니 오늘도 감사해요.
늘 행복하셔야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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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윤슬하여 작성시간 24.05.19 ㅠㅠ
복통을 동반한 설사 너무 힘든데
그 것도 오 밤중에 오면
난감하죠
저는
못 견디고 꼭 응급실 신세를 ᆢ
고운 딸이 셋이나 있으니
노후 대책은 완벽하게
한 샘이고요
지난 번 일로
내가 스스로 무서워서
같은 침대를 썼는데
살만 하니
다시 따로 ㅎㅎ
그 이유는 굿을 쳐도 모르고 잔다는 거
어찌나 달필인지
한 숨에 읽어내렸습니다ㆍ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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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달항아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05.19 심야에 소화기관 속 모든 내용물 내보내기, 위로도 아래로도^^
동시 상영을 해보니 아래보다 위가 훨씬 힘듭디다.
반복되는 구역질의 그 고통이라니요.
아니 기껏 합방하시더니 다시 각방? ㅎㅎ
우린 여태 같이 자는데 가을부터는 각방 쓸 거예요.
일년에 9개월 가량은 둘째 방이 비지만
갸 방 침대가 거의 90도 각도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벙커 침대라서 제가 기어올라가기 힘든 데다가
그 침대 아래 쪽 공간에 온갖 자기 물건을 잔뜩 쟁여놓은 터라 그 방 침대를 바꾸지도 못하고 그 침대도 못 써먹었는데
이번에 애 왔을 때 물건도 정리하고 보통 싱글 침대로 바꿨어요.
8월 하순에 돌아가고 나면 저 이제 거그서 자요. 아싸! ^^
수면의 질 향상을 위해 각방을 쓰자는데도 삐지더군요.
도대체가 비위 맞추기 힘든 늙다리 큰 아들이예요ㅎㅎ
근데 얼마 전 제가 자다가 악몽을 꾸며 잠꼬대를 할 때 남편이 깨워줬는데, 앞으로 그런 건 아쉽겠지라^^
우리 이쁜 성이 칭찬해주셔서 기분 띵호와예요ㅎㅎ -
작성자제라 작성시간 24.05.19 따님들
정말 잘 키우셨네요.
열 아들 부럽지 않을 효녀입니다.
지금은 몸이 좀 괜찮으신가요?
고생 많으셨네요. -
답댓글 작성자달항아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05.19 아이구 어느 집 딸들도 안 그럴까요 ㅎㅎ
잘 키우긴요, 여태 엄마 치마 꼬리만 잡고 다니는 얼라들인 걸요.
몸은 괜찮지만 계속 음식 조심은 해야 할 듯해요.
딸들이 시집도 안 가고 독립도 안하고 속을 썩여서 혼자 애태우다가
모처럼 이쁜 짓들을 하니 뿅 가서 쓴 글입니다. ^^
제가 참 좋아하는 제라님 감사합니다.
목포 J여고 졸업하신 분들, 요 바로 위의 분과 제라님, 억쑤로 마음에 듭니다 ㅋㅋ
평안한 밤 되시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