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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6월의 대박 사건!

작성자달항아리| 작성시간24.06.03| 조회수0| 댓글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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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 달항아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6.03 몸님의 글을 풀어가시는 능력은 진짜 범상치 않아요.
    시트콤 작가로 나가셨으면 그 유머 감각과 순발력으로 크게 되셨을 거라고 늘 생각을 합니다.
    반성문, 결석계, 애절하게 쓰면 용서 받는 거 맞습니다. ㅎㅎ
    초등학교 아이들도 반성문 잘 쓰면 크게 혼날 거 반만 혼나고 넘어가요. ^^
    따님도 국모님도 어서 어서 컨디션 백프로 회복되어,
    우리 몸님 덜 힘드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 ^^
  • 작성자 윤슬하여 작성시간24.06.03
    어머나
    어머나!
    대박ㅡ
    두 주먹을 불끈 쥐게 하는 시에요
    지금에 필력이 그냥 있는 게
    아니었군요


    유신체제 있을 때
    미술시간에 만날천날 그리던 포스터
    빨간색이 다 닳아 짧아지던
    생각
    글 쓰기도 만날천날 애국애국
    그래서
    노을을 보고도
    선열들의 못다 이룬 조국애로
    표현했던 기억이

    그 때
    장원은 아니었고
    무슨 상을 타긴 탔어요
    중2 때 ㅎㅎ

    그 일로
    서라벌예대 나왔던
    참 예쁜 국어선생님이
    저더러 문예창착과'가라 권유하셨는데

    이따가
    한 번 더 읽어봐야겠어요
    프로가 쓴 것같아요

  • 답댓글 작성자 달항아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6.03 에구 프로는 무슨요,
    그러게요, 이북에는 철천지 원수들만 산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지요.
    거기서 횡포를 부리는 김가 집안이 웬수지 불쌍한 백성들은 웬수가 아닌데요.
    아침에 학교 마당에 들어서면 대통령의 둘째 영애가 작곡했다는 '나의 조국' 노래가 울려퍼지고
    교련 시간에는 삼각건 매는 법 배우고, 일년에 한 번 교련 사열 받고 그랬었죠.
    그런 시절이 거의 반 세기 전인데, 북쪽은 여전히 저렇게 우리를 힘들게 하고, 평화는 언제 올런지..
    우리 이삔 성이 문창과 갔으면, 그 독보적인 감성으로 확! 떴을 거예요!
    참말로 집안 살림과 농장 경영만 하기엔 아까운 그 재능... 너무 너무 아까비...
    우리 이쁜 성 칭찬과 공감의 말씀 감사해요. ^^
  • 작성자 여름에 작성시간24.06.03 대박사건
    학교의 자랑이셨내요
    담임선생님도 어깨에
    힘좀들어가셨구요
    교복입은 모습 참예쁨니다
    우린 교복입기 싫었는데요 ~
  • 답댓글 작성자 달항아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6.03 여름에 언니 반가워요! ^^
    잘 지내시죠? 을지대 병원 앞을 지날 때마다 지난 겨울에 언니 만났던 생각을 합니다.
    저때 교내 행사였으니 학교의 자랑일 것은 없었지요.
    저 교복이 원단도 좀 쉽게 뻔질거리게 되고,
    이쁘지 않다고 애들이 다 싫어했어요.
    상대적으로 이쁜 하복 입기만을 다들 기다리며 동복과 춘추복을 견뎠지요.
    최강동안 여름에 언니, 감사합니다. ^^
  • 작성자 둥실 작성시간24.06.03 평소에 글들이 예사롭지 않은거야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역쉬~~~대단하십니다.^^
  • 답댓글 작성자 달항아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6.03 둥실님 삶방에 오셔서 과찬해주심 감사합니다. ^^
    제 글 예사롭고요 ㅋㅋ 대단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칭찬해주시니 기쁘네요.
    늘 건실한 가장이시고 몸와 마음이 건강하신 둥실님,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
  • 작성자 그산 작성시간24.06.03 고1때 교내백일장에서 장원을 하셨군요
    지금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잘쓴 글로 장원하실만 합니다
    저도 명지고등학교와 추억이 있습니다
    76년 10월 재수할때 명지고에서 세무공무원 공채시험을 봤는데
    40대 1로 한교실에서 한명만 붙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지만
    합격해서 어린나이에 공무원 생활을 했답니다
    몇년전 딸이 서울시 청년임대주택에 입주하여 가보니 바로 명지고등학교 아래라
    그시절 추억을 회상했었답니다
  • 답댓글 작성자 달항아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6.03 그땐 명지고가 명지여고에서 좀 떨어져있었어요.
    명지여고는 명지대 대학원 건물의 1층부터 5층까지인가를 썼고,
    명지고 건물은 따로 독립이 되어있었지요.
    부근에 명지고와 충암고, 남고가 두 개 있었어요.
    등하교 시간이면 만원버스에 세 학교 학생들이 콩나물처럼 들어차서
    학교 도착하기도 전에 버스에서 진이 빠지던 기억이 납니다.
    그산님하고 또 그런 우연으로 연결이 되네요.
    현재는 명지여고와 명지고가 통합이 되었으니
    따님이 제 모교 근처에서 살고 있는 것이 맞네요.
    영특하고 유능한 따님 응원합니다! 그산님 항상 감사합니다. ^^
  • 작성자 베리꽃 작성시간24.06.03 이제보니 피끓는 애국소녀셨네요.
    문학소녀가 문학중년을 지나고 있어요.
    감동이에요.
    말로만 현충일 하다가
    글 한 편에 정신이 번쩍드네요.
    저도 애국할매 될래요.
  • 답댓글 작성자 달항아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6.03 피끓는 애국소녀는 절대 아니었구요, ㅎㅎ
    시제에 맞는 시를 쓰려고 노력했던 결과물이지요.
    부족한 여고생의 시에 감동을 해주시는 베리님의 정서가 진짜 진국이십니다.
    베리님이야 딸 자식 똑 소리나게 키워서 더 똑 소리 나는 두 손녀 얻으신 애국자시고
    저는 딸 셋이 다 저러고 있으니 현재까지는 우리 집안에서 나라를 말아먹고 있어요 ㅎㅎ
    늘 다정하신 베리님 감사해요. ^^
  • 작성자 수피 작성시간24.06.03 안 이쁘기는요.
    이쁘기만 한 울달항아리님이신걸요.
    될 싹은 일찌감치 알아 본다더니 울달항아리님 운문부 장원 푸르름 빛나던 단연 돋보이는 그런 멋진 시기였었었군요.
    참고로 수피는 77년 4월 결혼 했답니다. ^^♡
  • 답댓글 작성자 달항아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6.03 우왕~~ 저 때 우리 수피언니는 새댁, 꽃같은 새댁,
    지금도 이쁘신데 그때는 진짜 얼마나 고우셨을까요?
    77년, 진짜 거의 50여 년 전인데도
    그 시절 150번 버스 종점에서 내려서 학교까지 걸어가던 길,
    주택가 담장에 이맘 때면 휘늘어지던 넝쿨장미의 색감까지 지금도 생생해요.
    우리 수피 언니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
  • 작성자 남동이 작성시간24.06.03 역시 명문 초등학교 출신 답네요..ㅎ
    글도 잘 쓰시고,
    아직 그때 받은 상장도 갖고 계시고~
    남동이도 중학교때 부터 글 좀 써서 한때 문학소년으로 촉망 받았지만
    그게 근데, 점점 나이들어 감성은 메말라가고
    말만 많아지더라구요..ㅠ
  • 답댓글 작성자 달항아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6.03 아! 남동이님이 덕수초등학교 저랑 동문이시죠 ㅎㅎ
    명문 초등학교 맞습니다, 맞고요. ^^
    한강을 매년 헤엄쳐 건너는 수영 프로젝트로 한동안 우리 모교가 매스컴을 탔었지요.
    남동이님도 글쓰기를 잘 하셨군요.
    나이들며 감성도 건조해지고, 지난 일에 대한 기억은 점점 더 또렷해지고,
    그렇게 되어가나 봅니다.
    공감의 댓글 감사합니다. ^^
  • 작성자 산애 작성시간24.06.03 1977년도 라면 임관 4년차로
    막 대위가 되어 특전사에서 힘든 훈련 과정을 보내고 있을 때 입니다.
    그때 여학생(특히 여고생)이 위문 편지라도 보내주면 그거 읽고 답장 쓰는 재미가 있을 그럴때 같습니다.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아쉬운 부분도 있으나 그 당시의 여고1년생의 글로서는 수작 이라 해도 되겠습니다.
    저도 학교때 글 읽고 쓰는것을 좋아해서 여러차례 입선한 경험이 있었는데, 담임 선생님이 문예창작과를 지망 하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글 쓰는것도 좋지만 운동 하는게 더 좋아서 그시절 20년 넘게 운동으로 몸을 다지고는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연히 읽은 옛 시절의 이야기에 흐뭇한 미소를 머금으며 잘 읽었습니다. 고운날 보내세요..
  • 답댓글 작성자 달항아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6.03 맞아요, 국군아저씨 또는 국군 오빠에게 위문편지 쓰던 시절이지요. ^^
    저는 교회 오빠 한 명이 군대를 가서 저랑 제 친구에게 위문편지를 강요하길래 의무적으로 몇 번 보냈는데
    그 오빠의 내무반 선임 한 명이 제 편지를 보고 막무가내로 저를 소개해달라고 한다고
    제발 그 선임한테도 편지를 한 번만 보내주라고 그 오빠가 애원을 하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선임이 갈구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지만
    그때야 그런 걸 헤아릴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으니,
    내가 왜 생면부지 군인에게 편지를 쓰냐고, 왜 나를 소개시켜 달라 하느냐고 징그러워 싫다고 거절했는데
    한 번은 그 선임과 함께 휴가나온 그 오빠가 우리 집엘 무작정 찾아온 거예요.
    그때의 그 황당함이라니... 그래서 그 오빠에게 화를 내며 문전박대를 해서 보냈는데
    그 뒤에 어떻게 되었더라? 기억이 안 나요 ㅎㅎㅎ
    오래 전 그 때 그 일로 그 오빠는 귀대해서 혼쭐이 났을까요?
    다 아련한 추억입니다. ^^ 산애오라버니 공감의 댓글 감사합니다. ^^
  • 작성자 가을이오면 작성시간24.06.03 과거급제가 일감으로 연상되는 장원급제..
    사고를 쳐도 아주 크게 친 자칭 다혈질 여사 달항아리님..ㅎ

    그때 심의원과 가까이 좀 지내시고
    다혈질 기질에 문학적 재능을 잘 접목 노동운동이라도 했더라면
    김문수지사 시절 최소 경기문화재단 이사장은 따 놓은 자리였는데...

    지난날을 추억하게 하는 빛바랜 사진과 인쇄물이
    우리네 초여름의 정서를 순화시키고 참 좋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달항아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6.03 ㅎㅎ 가을님이 댓글로 사고를 치신 것 같아요. ㅎㅎ
    김문수 지사에 경기문화재단에, 넘 멀리 가셨지만 ^^
    칭찬의 말씀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심의원이 이번에 고양시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정계에서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되어 참 마음이 아팠어요.
    그분의 정당을 저는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만일 고양시 그분 선거구에 산다고 해도,
    여고 선배라고 그분을 찍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지난 대선 때 훈남 아들이랑 부군이랑 선거 유세 다니는 모습은 참 보기 좋았어요.
    빛바랜 사진의 정겨움에 공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 상장 실물은 가장자리가 바스라지려 해요. ^^
    가을님 과분한 댓글 감사합니다. ^^
  • 작성자 전성훈 작성시간24.06.03 예나 지금이나 듬직한 표정입니다
    서대문구에서 오래 살아
    저희 아들이 명지고 후배네요.

    우리 아들때는 남녀 한반이었어요.
    그 후 바로 분리되었지만
    충암고와 명지고 사립 명문입니다.

    자랑스러운 달항아리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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