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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6월 26일 출석부 - 저 학생은 언제 job market에 나오나요?

작성자달항아리|작성시간24.06.25|조회수479 목록 댓글 102

우리 집은 상당히 인구 밀도가 높다.
방문을 하나 씩 열어 볼짝시면, 방마다 딸이 하나 씩 도합 셋이 들어 앉아 있다.
내가 아주 뿌듯해서 미칠 지경이다.^^
38세, 34세, 28세, 막내 빼고 둘은 과년했다.
친구들은 할머니, 외할머니가 진작에 됐건만, 난 아직 장모도 못 됐을 뿐더러 이것들이 아직 독립도 안했다.
맏이는 프리랜서 북 디자인과 편집 등을 하느라 어마무시한 컴퓨터 들여놓고 허구헌날 재택 근무 중이고,
미국에서 박사과정 중인 둘째도 여름 방학엔 꼭 와서 석 달 이상을 지내고 가니 그애 방도 아직은 뺄 수가 없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픈 귀여운 막내는 아직도 진로를 찾아 열공 중이다.
이렇게 이 나이에 여태도 딸들을 죄다 끼고 지내느라 나는 수시로 부대낀다. 힘들다..
결혼은 고사하고 규칙적으로 출근이라도 해라, 이것들아..
지들끼리 사이좋게 늘 웃고 떠들며 지내니 집안 분위기는 화기애애 하지만,
소속된 직장 없이 부정기적인 수입에 의존하며 나이 들어가는 맏이와,
만리타국에서 힘든 공부에 아직도 갈 길이 먼 둘째와,
하루 종일 스터디 카페에서 취업 준비에 고생하는 막내까지,
걱정 삼종 셋트에 내 마음이 휘둘리기 시작하면 나도 몰래 긴 한숨이 쉬어지곤 한다.

지난 며칠이 그랬다.
셋 중 특히 막내 걱정으로 마음이 무너져서 많이 힘들었다.
내 새끼의 앞길에 뿌연 안개가 끼어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알 수가 없는 듯한 느낌,
아이의 손을 잡고 긴 터널을 통과하는 중인데 가까워지던 출구가 갑자기 훌쩍 뒤로 물러나고 그나마도 그 출구가 희미해진 막막함..
그런 답답함에 마음이 눌려 많이 슬펐다.
그래서, 나를 친동생처럼 아껴주시고 내 딸들 이름을 부르며 기도해주시는 고마운 사강이언니께 징징대며 톡을 보내 하소연을 했는데,
이 언니는, 아주 따뜻하고도 지혜롭게, 내가 감사해야할 제목들을 짚어주시면서 울지말고 힘내고 감사하라고 방향 전환을 지시하셨다.. ^^
그래요, 맞아요, 눈물 닦고 감사해야지요. 맞습니다, 맞고요..
어떤 상황에서든 긍정적인 믿음으로 감사하며 또 감사해야 한다.
나는 강한 엄마, 기도하는 엄마다.
이렇게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새벽 기도에 다시 힘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동생 때문에 울던 엄마 힘내라고 둘째가 본인의 기쁜 소식을 전해줬다.
지난 1년 간 아이의 학업 성과에 대해 담당 교수가 평가하는 코멘트를 썼는데,
작년 10월에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하여 아주 훌륭한 발표를 해서 주목을 받았고,
우리 아이 담당교수에게, 저 학생 언제 잡 마켓(job market, 교수 채용 시장)에 나오냐는 질문을 타 대학 교수 여러 명이 했다고, 그렇게 썼다는 것이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있나! 희소식 중 희소식이다.
아직 학위 받으려면 2년이 남았으니 교수 채용을 위한 구직 활동을 시작할 시기가 아니지만,
그런 주목을 벌써부터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의 교수로부터 받은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연구하고 논문 쓰고 발표하고 애들 가르치는 학자의 길이 적성에 맞는다고 하는 데다가
저렇게 성과가 보이기 시작하니 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가?
둘째야, 고맙다! 엄마랑 아빠가 더 힘내서 너희를 위해 기도할게!

(그 학회에서 발표하는 우리 딸. 전공이 미디어와 문화 연구 쪽이고, 한국 걸그룹 가수들이 성적(性的)인 이미지로 소비되는 현상에 대한 논문을 발표 중입니다.)


나는 내 딸들이 빨리 시집도 안 가고 독립도 안한다고 조바심 내지 않도록 늘 스스로를 경계할 것이다.
하나님의 때와 아이들의 때가 일치하는 그 순간까지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그저 기도로 도울 것이다.
소중하고 또 소중한 내 새끼들, 너희 각자의 빛깔로 채워갈 너희가 선택하는 미래를 존중하고 응원한다.
이 아이들의 엄마로 살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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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달항아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6.27 몸부림 아내의 수고를 애틋하게 바라보시는 몸님 마음이 느껴지네요.
    우리 애들은 어려선 엄마보다 할머니를 훨씬 더 따르더니
    자라고나니 함께 사는데도 무심해졌지요.
    그래도 자기들 키워준 공을 잊지 않고, 돌아가신 할머니를 고맙게 생각합니다.
    엄마께서 잠들어계신 연천의 추모공원에도 저보다는 애들이 가보자고 할 때가 많아요.
    엄마께 무심했고 무심한 못된 잉간은 애들보다 저입니다 ㅠㅠ
  • 작성자청솔. | 작성시간 24.06.27 그저 건강하게 무탈하게 지낼 수 있다면
    그 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습니다

    자식 건강에 문제가 있으면
    부모 마음이 찢어 지지요
    하루하루 사는게 살얼음판이지요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고있는
    세 따님들 모습이 대견합니다
    그걸로 충분히 효도하고 있는 겁니다

    앞으로 좋은 일 많이 생기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달항아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6.28 new 청솔님 반갑습니다^^
    맞아요, 제 세 딸들, 자라면서 큰 병 앓지 않고 건강합니다.
    큰 은혜지요. 거기서 더 바라는 것은 과욕입니다.
    오늘도 새벽에 막내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왔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어미인 제가 더 낮아지고 낮아져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청솔님 언제나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해주심에 감사드려요.
    아버지 닮아 똑똑한 청솔님의 귀한 아드님에게도 늘 좋은 일 많이 생기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 작성자강마을 | 작성시간 24.06.28 new 손자있는 내가 부럽지요?ㅎ
    달님은 이제겨우 62세이고
    나는 72세여요ㅎㅎ
    10년후 나처럼 되면 좋겠지요?
    되고도 남습니다 장담해요^^
    나도 그나이때 했던 걱정들
    달님도 하고있을뿐
    곧 다 지나갑니다 빠샤~~~!!
  • 답댓글 작성자달항아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6.28 new 부럽습니다, 짱 부럽습니다, 똘똘한 시우^^
    우리 현명하신 강마을 언니가 장담하시니 조만간 저도 장모 되고 외할매 되는 걸로 알고 있을게요. ㅎㅎ
    늘 유쾌 상쾌 통쾌한 시우 할머니 엄지 척!
    날이 덥습니다.
    마음만은 시원~~한 오후 되시어용.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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