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삶의 이야기

껌 짝짝 씹는 여자

작성자빨간댕기|작성시간24.06.28|조회수512 목록 댓글 37

다닥다닥 숨 막히는 벌집 같은 아파트에서 살지라도 
사람과 사람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세상이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어요. 

눈길 한번 마주친 적이 없는 이곳 카페에서 
늙그수레 한 영감의 검버섯 핀 손길이 수시로 찝쩍거려도 
사람과 사람이 교감하며 마주하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세상이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어요. 

내 아들이 시내 요충지에 병원을 개업했는데 문전성시를 이룰 만큼 번창하고 있어요. 호호호
내 딸이 박사인데 공부만 할 줄 알지 세상일에는 도통 무관심이라 속상해 죽겠어요. 딸 걱정에 잠도 못 잔답니다.
내 며느리가 E대 교수랍니다.
어머나, 내 사위가 내 생일에 샤넬 백을 가져왔지 뭐예요. 호호호
이렇게나 가벼운 푼수데기 할매나 할배들이 주변을 의식하며 풀어놓는 그들의 이야기가 도무지 미덥고 미쁘게 보이지 않더라도 
사람과 사람이 풍성하게 함께하는
넉넉해서 아름다운 세상이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어요. 

밤마다 늦은 밤마다 
위층에서 소리가 나는 게 두어 달 됩니다.
쨍그렁 
투닥투닥 
와장창 
드드득 드드득 
악 악 아악 
죽어라 이 X 
X발놈아 


속에서 열불 나는 건 차치하더라도 예사롭지 않은 소음에 깜짝깜짝 가슴이 벌렁 벌러덩 거립니다.

매일 밤 이런 일을 겪으니 
삼신할매가 점지해 주신 命대로 못 살 것 같아요.


껌 한 통 입안에 모두 구겨 넣고 
껌 씹는 소리가 짝짝 날 때까지 연습을 했어요.
거울 앞에서 
짝짝 딱딱 후우 입 밖으로 커다랗게 풍선을 만드는 맹연습도 했어요.

이만하면 최대한 쌍스럽게 보일는지 몰라.
빨강 루주도 과장되게 바르고는 
일층 경비실로 향합니다.

"경비 아저씨, 12층에 사는 사람들 뭐 하는 인간들인지 알아요?" 
"왜 무슨 일이 있습니까?" 
"이사 온 지 두어 달 되었는데 밤마다 싸움을 하는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요, 오늘 찾아가서 쫌 따질려고요" 
"내가 보기에는 그냥 경찰에 신고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왜요?" 
"그 집 남자 보통 사람 같지 않던데요, 전신에 문신 투성이랍니다" 

껌 짝짝 씹어가며

머리끄뎅이 쥐어뜯고 한바탕 벌리겠다는 생각은 포기해야겠어요.

사람과 사람이 하나로 어우러져야 하는 세상을

우리가 함께 해야하는 이 세상을

눈부시게 아름답게 가꿀수 있다는 생각도 덩달아 포기해야겠어요.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빨간댕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6.28 맞아요 볼때기만 아프답니다. 호호^^
    좀체 보기드문 특이한 이웃이예요 부부 얼굴을 아직 못보았어요.
    이전엔 등짝에 문신을 한다더니 요즈음에는 종아리 팔뚝에도 마구 그리나 봐요.
    문신이 아닌 타투라고 한다네요 호호호^
  • 작성자예비백수 | 작성시간 24.06.28 아파트에 입주 전 두 가지 바램.

    1.입주 전 열화상카메라를 통해 벽의 단열상태를 확인했을 때,
    카메라 화면에 파란색은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2.윗집 아랫집과 별다른 교류 없이 지내는 요즘의 세태이다 보니
    누가 살든 상관은 없지만, 천방지축으로 뛰는 아이들이나
    부부싸움이 잦은 어른은 주위에 없었으면 하는 바램.

    어쨌든 그런 바램과는 달리
    결국 1,2 번 모두 뽑기인 거 같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빨간댕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6.28 함께하는 곳이니 서로 배려가 필요하겠지요
  • 작성자운선 | 작성시간 24.06.28 재미있군요 감사합니다 ~
  • 답댓글 작성자빨간댕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6.28 고맙습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