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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어느 해

작성자커쇼|작성시간24.07.01|조회수252 목록 댓글 18

어느 해.
달력 한 장 겨우 남겨 둔 스산 한 어느날.
검고 앙상한 가지 만 남은 감나무 아래,
돌담을 길게 두른, 마당 넓은 촌집을 방문했다. 누군가의 소개로 찾아뵙게 된 구순의 어르신.
또각거리는 내 구두소리에 '뉜교?' 창호지 바른 방문이 열린다.
고개숙여 인사드리고 마루위를 올라서니,
앙상히 마른 얼굴의 어르신이
해맑게 웃으시며 반기신다.
불편한 다리 탓인지 앉으신 채 가늘고 긴 손으로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 하신다.

들어선 방엔 온기가 전혀없다.
장작이든, 보일러든 방을 데울 장치를 사용 못해 전기장판에만 의존해 계셨다.
선뜻 내게 장판위 이불을 걷으며 앉으라고 권하신다.
마다하지 못하고 무릎꿇어 다가 앉으며 올려다 본 벽엔 할머니의 사진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3년전에 돌아가셨단다.
업무적인 얘기 마치고, '어르신 외로우시겠어요'
라고 나도모르게 속없이 튀어 나온 말에
'외롭기를.....말로 다 못 한다.' 며 하신 말씀 끝에 눈에 눈물이 글썽이신다.

젊은시절 일본유학도 다녀오셨고 일대에 많은 토지도 소유하고계셨다.
토지매매건으로 소개 받고 찾아가기 전 까진
그런 모습은 상상 못 했었다.
장성한 자녀들은 모두 타지역으로 떠났고
사업하는 아들 돈 마련을 위해 땅을 파시는 거였다.

그 말씀에 나도모르게 꿀꺽 눈물이 삼켜졌었다.
홍시 몇개 나눠먹고 딸 마냥 주방에 있는 물 등 몇가지를 챙겨드렀던 것 같다.해가 질때 쯤
깍듯이 인사하고 대문쪽을 걸어나오며,
'어르신 추운데 방문닫으세요' 했더니
'괘안타 가는거라도 볼라고~'하신다.
그말씀에 절절히 묻어 나오던 구순노인의
외로움을 이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않는다.
얼마나 찾는이가 없었으면...

오늘 오후 운제산 아래 그 동네를 갔었다.
잠시 그 어르신 집을 찾아보려했지만 이십여년이나 지난 탓인지 골목도 가물가물하다.

그때는 나도 육십이 되고 칠십이 될거라고 생각도 못했었다.
살아오면서 외로움이라는 주제로 대화가 나오면 가끔 그 어르신이 생각 났었다.

이제는 나도 그 어르신의 사무치는 외로움이
느껴지는 나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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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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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커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7.02 new 그동안 일 하면서 겪고 만났던 많은 에피소드 중
    최근엔 자꾸 나이 드신 분들과의 일들이 떠 올라요.
    그 분들은 잘 지내실까?.
    말씀에 힘 입어 좀 특별한 일을 하는 제게 있었던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던 일들 올려보겠습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 작성자운선 | 작성시간 24.07.02 new 글 읽는 저도 마음이 슬퍼집니다 저 또한 지금의 활동을 멈추는 날 같은 그리움에 시달릴 생각이 듭니다 뉘라서 다를까요 육신이 내 의지대로 안되면 정다운 가족과 헤어질 것은 자명한 일이잖아요 커쇼님 고맙습니다 글 읽게 해주셔서
  • 답댓글 작성자커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7.02 new 운선님의 댓글이 더 눈물 짓게 합니다.ㅠㅠ
    감사합니다.
  • 작성자향적 | 작성시간 24.07.02 new 대저,
    신랑은 각시보다 오래 살면 안된다는 거...
    조심조심

    雲梯山 이면,
    吾魚寺 그 뒷산 쯤 인가요?
  • 답댓글 작성자커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7.02 new 네 맞습니다.
    오어사..혜공과 원효가 법력을 시합 했던 ...
    그 마을에서 올라가면 운제산이고
    산 넘으면 오어사가 나옵니다.
    감사 행복한 오후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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