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 바로 앞이 야탑천입니다. 맹산에서 발원한 물이 이리로 흘러 탄천으로 갑니다. 양쪽에 편안한 산책로가 마주보고 형성돼 있습니다. 미미하지만 경사도가 있어 탄천 방향으로 내려갈 땐 쉽고 맹산 쪽을 향해 올라갈땐 약간이나마 힘이들어 등에 땀이 뱁니다.
한바퀴 도는 도중 탄천에서 몇걸음 얼쩡거리면 3~4천보 가량 되니까 제 힘에 딱 맞습니다. 저의 하체는 상체 운반 능력이 현저하게 결여됩니다. 아래는 약하고 위는 무거워서 트럭으로 치자면 과적이라고나 할까요. 보폭은 짧고 더듬 더듬 느림보 거북이입니다. 더하여 고령화가 심각합니다. 힘은 약하지만 조석으로 하루 평균 7~8천보는 꾸준히 걷습니다. 그날 그날 적절한 코스를 디자인해서 과하게 걷지 않도록 합니다.
야탑천은 수량은 적지만 일년 내내 물이 마른 적은 없습니다. 졸졸 물이 흐르는 청량한 소리가 상시 귓가에 맴돕니다.
물론 비가 내리면 명산 계곡 못지않게 수량이 넘칩니다. 평소 때 물의 맑기는 비선대나 뱀사골 못지않습니다. 도심을 통과하는 물이 이렇듯 맑은 것은 그만큼 시 당국에서 관리를 철저히 한다는 의미입니다. 물이 하도 맑아 굴원이 갓끈을 씻기에 손색없습니다. 그러고보니 오랜 세월 살면서도 이 냇물에 한번도 발을 담궈본 적은 없습니다.
유치하지만 남측 길에 제가 이름을 붙였습니다. 일컨데 '희망과 신념의 길'입니다. 여길 걸을 때는 주먹을 불끈 쥐고 용기를 내서 힘차게 걷습니다. 의욕이 넘치고 무언가 열정이 샘솟습니다. 물론 항상 오르막을 선택합니다.
남측 길은 '치유와 안식의 길'입니다. 미미한 내리막이라 걸을 때 거의 힘이 들지 않습니다. 마음이 평안해짐은 물론이고 뭔가 힐링이 되고 몸속의 질병이 낫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여기를 걸을 때 저는 무한한 행복감을 느낍니다.
제가 걸을 때 남다른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잠깐 잠깐 고개를 위로 제껴 치켜들고 걷는 것입니다. 시선이 하늘을 향합니다. 야탑천은 수목이 밀림을 방불케 할만큼 녹음이 짙습니다. 수목의 왕성한 생명력을 제대로 받습니다. 고개를 위로들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녹색의 황홀경에 쉽게 빠져듭니다. 간간이 파란 하늘도 보이고 햇살이며 구름이며 바람도 보입니다. 천기도 엄청 빨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고개를 치켜든다해서 정면 응시를 소홀하진 않습니다. 이제 곧 만산홍엽, 단풍이 들텐데 사뭇 기대가 됩니다.
앉아 쉴 때도 그렇고 자주 고개를 위로 제끼면 핸폰으로 인한 수그리 병 치유에도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께서도 저처럼 해보시길 권고 드립니다. 정면 응시 때와는 달리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펼쳐집니다.
며칠 전 아침 식사를 마칠 무렵 빗줄기가 상당히 쌨습니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도 듣고 발등에 떨어지는 빗물의 청량감도 느끼고자 크록 신발을 신고 얼른 밖으로 나갔습니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피아노 연주보다 듣기 좋았습니다. 오랜만에 세차게 쏟아붓는 폭우 속 분위기에 흠뻑 젖어보았습니다. 거세게 퍼붓는 폭우는 지저분한 세상을 씻기는데 제격입니다. 천지 사방이 속 시원하게 깨끗한 샤워를 했습니다. 수목이며 어파트며 빌딩 이며 다 씻겼습니다. 특히 도로의 묶은 때가 완전히 씻겨 나갔습니다. 아~ 제 마음도 제대로 목욕을 했습니다. 모든 빗물은 가늘던 굵던 전부 냇물로 흘러드어 강으로 강으로 향합니다. 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를 실감합니다
비가 와도 겉고, 바람이 불어도 걷고, 햇볕이 쨍쨍해도 걷고, 어두워도 걷고, 걷고 또 걷습니다. 저의 걷기는 중요한 일과이자 일용할 양식이자 생존 업무이기도 합니다.
가끔 황톳길도 걷습니다. 찐득 찐득한 황톳길을 맨발로 걷다보면 다리 근력 향상에 도움이 됩니다. 어스 효과로 건강에 좋다고 하지만 그건 잘 모르겠고 발목까지 빠지는 진창길을 걸으면서 신체 균형을 유지하고 중심을 잡아가노라면 그것만으로도 몸에 큰 도움이 됩니다. 저희 동네 황톳길은 율동 공원과 이매촌, 두군데 있습니다. 율동 공원은 자연환경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지먼 이매촌은 탄천 뚝방이라 바로 옆으로 차량 통행이 많은 것이 흠입니다. 대산 율동 쪽은 차로 가는 것이 불편하고 이매촌은 자전거로 금방 가니까 접근성이 좋습니다.
제가 날마다 열심히 걷기에 열중하는 것은 걷는 능력이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약한 걸 조금이나마 강화하려면 걷고 또 걷는 수밖에 없습니다. 흔히 와사보생( 臥死步生 )이라고 하지만 거기까진 아니더라도 사는 동안 직립인간으로서 사람답게 살려면 걷는 거 말고 달리 뾰죽한 수가 없습니다. 옛말에 철저마침( 鐵杵磨鍼 )이라 했습니다. 쇠 절구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저에게 꼭 필요한 경구입니다. 주변에서 헬스도 하라고 권하지만 이상하게 실내에서 꿈틀거리는 운동은 체질적으로 싫습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 구름 한 조각을 보면서 걷더라도 자연과 벗할 수 있는 밖이 좋습니다. 저의 로망 한 가지를 소개하고 글을 끝내겠습니다. 올 가을에 맹산 정상은 몰라도 그 중턱까지만이라도 등산을 한번 해보는 것입니다. 꼭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날마다 걷기에 최선을 다할 각오입니다.
아참! 걸으면서 제가 계속 중얼거리는 한마디 말이 있습니다. 마치 주기도문 같습니다.
ㅡ 한 걸음이라도 반듯하게 걷자.ㅡ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곡즉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09.30 어젯밤 분명 답글을 드렸으나 밤 늦은 시간이라 졸다가 그만 등록들 안 눌렀나 봅니다.
지금 보니 흔적이 없군요.
지금은 병원이라 간단히 사실만 고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곡즉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09.30 제가 청년 때부터 어디서 上善若水라는 말을 얻어듣고
그 말을 삶의 본분으로 알게되었습니다.
그러노라니 물욕이 적어 이렇다할 성취를 이루지 못하고 어영부영하다
이 나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은퇴한지 15년이 되었음에도 어디나가 돈을 벌지 않아도
그럭저럭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제가 살면서 상선약수에 관련한 글귀를 모으다보니
하해불택세류나 海不讓水 등의 좋은 말을 알게되었습니다.
이더님과 더불어 중국어 방에서 좋은 시간 보내고 계심을 잘 알고있습니다.
저도 언제 인사차 들리도록 하겠습니다.
보잘 것 없는 글에 긴 댓글로 관심을 표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
작성자운선 작성시간 24.09.30 걷는 다는건 명상의 시간을 갖게 해서 자주 걷습니다 늘 걷던 길이라도 특히 눈길가는 길 정다운 풍경이 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곡즉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09.30 가장 좋은 생각은 걸을 때 떠오른다고 합니다.
저는 걱정이나 고민이 있을 때 무조건 걷기를 권합니다.
의당 글쓰기도 걷기가 큰 도움이 됩니다.
저는 야탑천과 탄천을 골백번도 더 걸었지만 한번도 물리거나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
작성자비온뒤 작성시간 24.09.30 '희망과 신념의 길', '치유와 안식의 길'
지어놓은 길 이름을 불러도 건강해 질 것 같습니다.
앞으로 고개를 쳐들고 걸어야 겠습니다. 수목의 왕성한 생명력을 제대로 받으려면...
선배님 덕분에 모처럼 좋은 글귀를 만나봅니다. 河海不擇細流,泰山不辭土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