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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강 건너 불인가, 발등의 불인가

작성자유현덕|작성시간26.03.22|조회수503 목록 댓글 33

 

요즘 전쟁으로 온 세계가 난리법석이다. 몇 년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는 내게 강 건너 불이었다.

당연히 전쟁을 반대하지만 멀리 있는 두 나라가 싸운들 나한테 큰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벌이지고 있는 중동에서 전쟁은 한국 경제에 직격탄이기 때문에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전쟁 터진 직후 휘발유 값이 폭등을 했고 주가지수가 폭락했다.

자칫 정치 논쟁으로 번질 수 있기에 대놓고 특정 나라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전쟁을 결사 반대하고 국가든 개인이든 나는 약자 편이다.

 

이번 전쟁에 대한 비유가 될지도 몰라 오래전에 있었던 기억을 소환해 본다. 어릴 적 고향 마을에 툭하면 마누라를 때리던 남자가 있었다.

이유도 가지가지, 힘이 없는 여자는 자주 맞으면서 살았다.

 

어느 날 잘못 맞는 바람에 아내가 팔이 부러졌고 병원에 입원을 했다. 아내가 없으니 남자와 아이들의 끼니가 문제였다.

한동네 사는 형수가 얘들 걱정에 집안을 들여다 봤더니 남자가 밥을 해서 아이들과 간장에 비며 먹고 있더란다.

 

형수가 혀를 끌끌 차면서 시숙에게 말했다.

"그러게 왜 그렇게 마누라를 때려요?"

남자가 대뜸 그러더란다.

"맞을 짓을 하니까 때리는 거지요."

 

이 말을 듣고 형수는 기가 찼지만 문제는 동네에 이 남자의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이 일부 있다는 것,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오죽하면 남편이 여자를 때릴까. 맞을 짓을 했으니까 그러는 거겠지.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자 때리는 남자를 경멸하면서 내린 결론은 이렇다.

여자를 무시하거나 때리는 남자는 개다.

 

이것을 국가로 넓혀 보면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때리는 것과 같다. 태도가 불량해서, 내 말을 잘 안 들어서, 나중 나보다 힘이 세질 것 같아서 등,,

때리는 쪽에서도 분명 이유를 내세우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전쟁을 반대한다.

 

내가 일하는 직장에 젊은 동료가 있다. 1999년 생인 그는 얼마전부터 주식투자를 했는데 수익률이 짭짤하다면서 좋아라 했다.

그런데 중동 전쟁이 터진 다음날 주식이 폭락을 했다. 그 친구가 폭락한 지수를 보면서 대뜸 이 말을 내뱉었다.

트럼프 개 새끼

 

얼마전까지 미국 대통령이 잘한다고 하더니 왜 욕을 하냐고 내가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이랬다.

주식이 폭락해서 내가 손해를 봤잖아요.

 

그렇다. 그한테도 전쟁이 그동안 강 건너 불이었는데 주식이 폭락하자 이제서야 발등의 불로 인식을 한 것이다.

이래서 세상에는 나와 무관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빙하가 녹아 북극곰이 살 수 없을 때 생태계가 흔들려 기후위기가 오고, 브라질에 가뭄이 오거나 베트남에 흉년이 들어도 나중 우리 밥상 물가에 영향을 미친다.

 

하물며 전쟁이 끼치는 영향은 오죽할까. 폭등했던 휘발유 값이 아직까지는 안정적이라지만 전쟁이 길어질수록 유가 불안은 계속될 것이다.

이러다 더 큰 발등의 불로 번질까 봐서 걱정이다.

 

우리가 겪은 6.25 때도 그랬지만 전쟁은 언제나 힘없는 백성들만 죽어 나간다. 전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걱정하는 아름다운 시가 있어서 옮긴다.

 

 

그 겨울의 시 - 박노해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어린 나를 품어 안고

몇 번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시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소금 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찬바람아 잠들어라

해야 해야 어서 떠라

 

한겨울 얇은 이불에도 추운 줄 모르고

왠지 슬픈 노래 속에 눈물을 훔치다가

눈산의 새끼노루처럼 잠이 들곤 했었네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느린걸음/ 2010

 

 

<찬바람아 잠들어라 해야 해야 어서 떠라>. 나는 이 대목에서 가슴이 뭉클하다. 1957년 생인 박노해 선생은 지금 평화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때 그는 노동운동가였고 시인이었고 사형수이기도 했다.

석방 후에 그가 평화운동을 하겠다고 하자 일부는 변절자라 부르기도 했지만 그는 자기 길을 뚜벅뚜벅 걸었다.

 

 

그는 세계 각지의 분쟁 지역이나 남미 오지의 탄광촌 등을 찾아 카메라에 담았고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음을 세상에 알렸다.

그는 사랑을 실천하는 평화운동가였다.

 

 

일요일인 오늘 광화문 인근에 있는 라 갤러리를 다녀왔다. 박노해 선생이 운영하는 곳으로 그가 세운 비영리 사회단체 <나눔문화>가 주축이다.

1층은 카페, 2층은 갤러리인데 박노해 선생의 사진전을 상설로 전시한다.

 

나는 종종 광화문 책방이나 인사동을 갈 때면 일부러 시간을 내어 이곳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박노해 선생의 사진 작품도 보고 가능하면 이곳 커피를 팔아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요즘 <산빛>이라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데 오늘 아내와 함께 방문해 사진전도 보고 커피를 마시고 왔다.

 

아쉽게도 이 갤러리가 곧 문을 닫는다.

나눔문화는 정부나 재벌기업의 후원을 일체 받지 않는 시민단체로 순전히 후원자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결국 폭등하는 임대료를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어 문을 닫게 된 것이다.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도 아니고 완전 폐업이라니 더 아쉽다. 소중한 문화공간 하나가 또 사라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3월 29일까지만 운영한다고 하니 이곳도 오늘이 마지막 방문이지 싶다. 아래는 전시장에서 본 산빛 작품이다.

 

 

전시장에서 휴대폰으로 찍은 거라 선명하지는 않지만 긴 여운이 남는 멋진 사진이다.

 

사랑하다 죽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사랑 없이 사는 것은 더 두려운 일이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오늘 전시장에서 본 박노해 선생 문장이다. 그의 시 <참사람이 사는 법> 또한 참 좋다. 평화운동가 박노해 선생의 앞날에 평화가 함께 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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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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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유현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3.23 와우~ 김지원님한테도 라 갤러리가 마음의 안식처였던가 봅니다. 14년간 41만 명이나 다녀갔다니 대단하네요.
    라카페갤러리가 아는 사람만 아는 숨은 명소였지요. 그래서 한번도 안 간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간 사람은 없었나 봅니다.

    저도 자주 갔던 곳이라 이곳이 그리워질 겁니다. 은행잎 지는 가을에 거기서 커피 마실 때면 저절로 시인이 된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요.ㅎ
    지원님도 문 닫기 전에 방문하신다니 다행이네요. 김지원님의 아름다운 문화생활을 응원합니다.
  • 작성자김지원. | 작성시간 26.03.23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답댓글 작성자유현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3.23 뒷 배경을 보니 저도 봤던 작품들이네요.
    유리에 비친 어떤 분이 마치 현대판 모나리자 같기도 하구요.ㅎ
  • 작성자지존이 | 작성시간 26.03.23 이쯤 살아보니 그래도 아웅다웅 그러면서 사는게 맛이 나겠지요
    난 아예 미리 도망갑니다
    왜? 내가 대부분 잘못해서
  • 답댓글 작성자유현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3.23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란 말도 있지요.
    다툼이 생겼을 때 잠시 도망가는 것도 한 방법이겠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복구가 될 테구요.
    우리집도 대부분 제가 잘못하고 산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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