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내리는 아침이다. 달래 넣은 된장찌개에서 나는 달큰한 향기가 클래식 음악처럼 좁은 집안 곳곳을 채워준다. 친구가 퍼다 준 잘 익은 막장과 달래의 궁합이 최고의 향을 만들어 낸 결과다. 막장은 보리로 하거나 밀 갈아 띄워서 버무린 것이 최고지만 요즘 메주만 잔뜩 넣고 보릿가루 섞은 것이 대부분이다. 어떻게 익혔냐가 관건이다. 친구네는 단독이라 옥상에서 익혀 장에서 자글거리는 볕이 그래도 머물러 있는 듯 아주 맛있게 되었다.
그 친구를 만난 곳은 문화원 강좌에서다. 일 년의 강의 시간을 다 채운 초가을 날 수강생 전원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먼저 말을 걸어왔다. “올해 나이가 몇이세요? 나이를 듣더니 ”어머 나! 동갑이네 친구하자“! 그러면서 ”나 사실 자기를 매일 쳐다 봤어야“ 보면서 ”예쁘다 저 사람“ 했다나, 하하 무슨 예쁘기는 ”야 그건 아니다! 나이도 동갑이라 더욱 좋다해서 친구 하기로 했다.
이번에 노래 교실 다닌다 했더니 그 친구도 당장 신청을해서 같이 다니고 있다.
조달청 근무했던 남편과 성실히 살림만 했던 그이는 시내에 이층집도 지어 아래층은 세주고 자신들은 이 층에 살고 사철 햇살 좋은 곳이라 장이 잘 익는다고 왜 나한테 장을 퍼다 주는지
모르지만 아파트에 사는 내가 장은 못 담을 거라 여겨 그럴 거라 여긴다.
이곳에 이사 온 지 올해로 8년이 되는 해다. 친구라고 두어 명 정하고 나머진 그냥저냥 아는 사람들인데 친구라 정한 두 명의 사람이 참 좋다. 나는 늘 사람이 곁에 돌면 뭐든 주고 싶어 하는 성격인데 그렇다고 돌려받는 일은 드문 셈이다. 뭐 내가 준다는 생각만 하지 상대가 내 게 해줄까 하는 보상심리는 젊은 날 상처로 남았기에 내 하는 행동만 중요하다고 여기는 편이다. 그런데 두 친구는 틀리다 뭐든 주려 하고 사 먹이려 하고 전화해주고 챙겨준다.
살다 이런 일도 있다니... 내 딸은 엄마의 과잉 친절 과잉 친화력은 모두 어린 시절 애정 결핍과 어른으로 살면서 세파에서 고립된 소외감 배신의 상처 등등에서 연유한 것이라고 칼같이
잘라 말했다. 딸은 보건 정신 중독세터에 팀장으로 있으며 교도소 감찰소 중고등학교와 사북 도박 중독자들 교화시키는 일에서 강의와 상담으로 20년째 일하고 있다. 간호대를 나왔지만 다시 공부를 더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나는 이제 주는 것보다 받는 것에도 익숙해야 한다. 누가 나에게 뭘 주면 밤새 잠을 못잘 정도로 감동하고 어떻게 더 좋은 걸 주지 못해 괴로워하던 것에서 조금 벗어나 봐도 될 거 같다. 이사 온 지 4년 차이던 때 커피집 수탉오빠 언니가 나에게 한 돈짜리 반지를 해서 건네주던 것부터 농사짓는 친구의 가을 들녘을 옮겨 온 듯 값비싼 농산물들 ... 어쩔 줄 몰라 하며 받던 내 모습이 이젠 많이 익숙해져 간다.
문화원 친구가 들고 온 막장은 끓여도 맛있고 생으로 양념 넣고 비벼도 맛있다 요즘 나오는 마늘잎 연한 속살 줄기 쫑쫑 썰어 듬뿍 넣고 갖은양념으로 막장에 섞어 놓으면 아들은 밥도 비벼 먹고 월동추 쌈도 싸고 고추 찍어 먹는다.
봄비 단비가 잦아진다. 삼일만 줄기차게 내리면 좀 좋을까 아직 농사에는 해갈이 택도 없다. 겨울에 눈 내리고 봄에 비 오면 지난 사랑 곱씹으며 물기 뚝뚝 떨어지는 글만 써대던 나도 늙어 바싹 말랐다는 증거로 이렇게 촉촉한 봄비 속에 된장 같은 사람이야기나 쓰고 있고 뭘 줬네 받았네 하는 물질에 대해 궁시렁 거리고 있으니 말이다.
아! 청춘이여 봄이여~~
가슴이 등짝에 달라붙어 물기 스밀 틈조차 없는 건 고사하고 팽팽 돌아가던 뇌세포도 석회처럼 말라가니 무슨 수로 물기 어린 단어들을 마늘쫑 뽑듯 쏙쏙 뽑아내랴,
보이느니 낡은 것들 뿐이고 들리느니 가래 섞인 쉰 소리 허리 굽고 절름거리는 모습이 상상으로도 들려오는데, 이꼴저꼴 뵈기싫어 죄다 내려놓고 양지쪽에 기대고 앉아 종일 해바라기나 하다 그대로 갔으면 좋으련만 세월이 그렇게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젊어야 해! 건강해야해! 다녀야 해! 배우면 치매 안 걸려! 어서! 밖으로 나가라구!! 방구석에 있으면 안돼!! 늙는 것도 고되지만 늙음에서 벗어나라는 이 세월의 채근도 피곤하고 야속하고 짜증이 한숨처럼 뱉어진다..
이거 보라구" 또 이러고 있네
봄비의 감상으로 촉촉한 글 쓰고자 나섰지만 결론은 언제나 늙음이요, 병마요, 하는 주접스럽고 시들한 글로 끝을 맺게 되니 차오르는 슬픔이 봄비 고인 웅덩이 마냥 처량하게 감겨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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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운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4.02 익다 못해 뭉글어 진다 ? 맞아요 삭고 삭아서 형체 조차없을 세월이 곧 오겠지요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여기며 살라고 하던데 왜 그게 안되는지요 오히려 내일 생각에 사로잡혀 오늘을 대충 보내는 우리가 아닐까요 이쁜 리진님 이 봄 맘껏 차리고 가고 싶은 곳 주저 말고 댕기세요 늘 고마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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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무악 산 작성시간 26.04.02 70넘으면 인생 끝이라 생각 하고 밭농사외엔
거의 손대지 않던 제가 요즘에
집안 곳곳을 꾸며갑니다.
어떤 인간은 내일 지구가 멸망 하더라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는데
나는 그냥 허송세월 하다가 보낼수 없다는
생각 에서 입니다.
대봉감나무 도 복분자 .다래도 몇그루씩 새로심고
인생은 80까지로 목표설정 하였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운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4.02 80? 너무 짧게 잡으셨다요 87세까지 왕성하게 청년처럼 활동하시고 남은 나이가 있거등 고요하게~~ 저물어 가자구요 ㅎ 대봉감 복분자 좋아 하는 과실이라 눈앞이 환해집니다 지난밤 불면으로 퀭한 눈을 하고 강의실에 앉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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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비온뒤 작성시간 26.04.05 막장 된장찌개 향기와 친구 이야기가 따뜻합니다.
주는 마음과 받는 마음, 둘 다 익숙해지는 과정이 보기 좋습니다.
건강하고 촉촉한 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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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운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4.05 감사합니다 비온뒤님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