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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딸傳 2

작성자유현덕|작성시간26.04.09|조회수557 목록 댓글 39

 

내가 러시아에서 일한 곳은 상뜨 뻬쩨르부르그(St. Petersburg)였다.

한때는 제정 러시아 수도였고 소련 시절에는 레닌그라드로 불렸다가 소련 해체 이후에 본래 이름을 찾은 아름다운 도시다.

막 도착한 러시아의 겨울은 추웠다. 당시 내가 머물 때 한겨울 최저 기온이 보통 영하 20도에서 30도 사이였다.

 

나는 러시아 생활에 빠르게 적응을 했다. 한국인이라곤 사장과 나뿐이고 나머지 직원은 러시아인과 고려인이라 부르는 동포들이다.

한국말을 할 줄 아는 고려인은 통역도 겸할 수 있어서 우대를 받았다. 러시아에 와서 나는 오직 일만 했다.

 

일주일에 하루만 휴식일이고 주 6일 근무를 했는데 그럼에도 때론 야근을 자원해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런 날 퇴근해서 집에 오면 밤 11시쯤이었다.

피곤하긴 했어도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는 일념이 강했기에 그리 힘든 줄은 몰랐다.

 

오직 일을 할 때만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기에 더 일에 매달렸을 것이다. 딸과 아내가 생각날 때는 지갑 속에 들어 있는 사진을 보며 외로움을 달랬다.

딸 생각에 눈물이 주르르 흐를 때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견디겠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타고난 체력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는 부모한테서 물려 받은 거라곤 가난 뿐이었지만 비교적 강한 체력을 물려받은 것을 행운이라 생각한다.

무슨 복인지 내가 일하고부터 회사 영업 실적이 늘기 시작했다. 내 능력보다는 시기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사장한테 제안을 했다. 일년에 한 번 있는 2주 휴가를 두 번으로 나눠서 갔으면 한다고 했다.

대신 한 번 휴가에 2주가 아닌 1주일이고 항공료 부담도 내가 하겠다고 했다. 내 요구가 그리 무리한 것은 아니라 생각했던지 사장은 흔쾌히 허락을 했다.

 

나는 근로 계약서에 현지 숙소와 휴가 때 왕복 항공료를 제공 받기로 했었다.

사장은 내가 가족과 오래 떨어져 있다가 고독병에 걸리면 오히려 자기한테 손해라면서 내가 부담하겠다는 휴가 항공료까지 전액 회사에서 제공하겠다고 했다.

 

사장의 배려로 나는 러시아로 떠난 지 5개월 만에 휴가를 나올 수 있었다. 일주일라고는 해도 오고 가는데 걸리는 하루씩을 빼면 5일이라고 봐야 한다.

엄니한테 들러 인사하고 하룻밤 자지도 않고 바로 돌아왔다. 엄니는 서운했겠지만 딸과 지낼 생각에 엄니는 뒷전이었다.

 

몇 달 안 본 사이에 딸 아이는 훌쩍 자란 느낌이었다. 이런 것을 폭풍 성장이라고 하던가?

딸을 무등에 태워서 공원 나들이도 하면서 가족과 지내다 보니 5일이 금방 지나가 버렸다.

러시아로 복귀하는 날, 처음 떠날 때와는 달리 몇 달 후에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무겁지는 않았다.

 

러시아에 살면서 나는 이 나라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공산권의 맹주였던 소련 시절 우리와는 적대국 관계였기에 처음엔 경계심이 많았다.

그러나 러시아 사람들과 교류하고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러시아 남자들이 술도 많이 마시고 무뚝뚝하지만 따뜻한 마음씨를 갖고 있었다.

 

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러시아 여자들도 심성이 고왔다. 특히 러시아인들의 예술 사랑은 대단했다. 자기 문화에 대한 자부심도 강했다.

나는 러시아에서 발레를 처음 봤다. 단어로만 접했던 발레를 우리 돈 5천 원도 안 되는 가격에 실컷 감상했다.

 

쥐꼬리 만한 연금으로 생활하는 노인들도 발레와 오페라 등 예술을 즐겼다. 연금으로 사는 노인들은 빵과 우유, 양배추 수프 정도의 조악한 식사를 할지라도 예술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러시아에 관한 추억 이야기는 다음에 쓸 기회가 있을지 몰라 여기서 멈춘다.

 

러시아에서 일하는 동안 예상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었다. 나의 보스이자 인생 스승이기도 한 사장님 덕분이다.

박OO 사장님은 남들이 중국이나 동남아로 눈길을 돌릴 때 러시아에서 사업을 시작한 전략가였다.

 

그는 나에게 많은 배려를 했다. 휴가도 1년에 두 번씩 보내줘서 외로울 시간을 없게 만들었고 실적에 따른 성과금을 정직하게 지불했다.

월급도 오르고, 초과 근무로 수당도 받고, 거의 연봉과 맞먹는 보너스까지, 통장에 들어오는 액수를 보면 나는 행복했다.

 

박사장은 내가 한국으로 휴가를 갈 때면 항상 100달러나 200달러가 든 봉투를 내밀었다.

항공료를 전액 직장에서 제공하는 터라 나는 사양을 했지만 딸 아이 과자나 사 가라면서 기어코 주머니에 찔러 넣어주었다.

 

나는 더욱 열심히 일을 했다. 러시아에서 딱 2년을 근무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돈을 모았다.

나 같은 공돌이 출신 노동자가 러시아에서 2년 동안 2억에 가까운 돈을 번 것이다. 죽어라 일을 했다해도 한국에서는 쉽지 않은 금액이다.

 

계약 기간 2년을 채울 무렵, 박사장님은 계속 일을 하자면서 설득했다. 나는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지만 거절했다.

박사장은 1년 만이라도 더 근무해 줄 것을 부탁했지만 나는 하루라도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돈 모을 생각이라면 더 있고 싶지만 가족과 함께 살고 싶었다.

 

마지막 휴가 때 친구를 만나 함께 사업 구상도 계획하고 있었다. 마침 한국도 IMF 충격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을 때였다.

막 입국한 후임자에게 인계를 하고 나는 희망을 가득 안은 채 러시아와 작별을 했다.

 

매정하게 떠나는 내게 서운할 법도 하건만 박사장님은 공항까지 배웅을 하면서 200 달러가 든 봉투를 기어이 내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지금도 나는 이 분이 내 생애에서 만난 사람 중 맨 앞에 있는 분이다. 항상 고마운 마음을 담고 산다.

 

나는 2년 만에 건강하게 돌아왔다. 나를 보자 반가워 죽겠다는 표정의 딸 아이 얼굴에 뽀뽀를 하며 다짐했다.

이제는 결코 네 곁을 떠나지 않을 테다. 아빠가 러시아에서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네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마운 내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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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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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유현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4.11 여기에도 윤슬님 댓글이 있군요.
    러시아를 여행하셨다니 여행의 맛을 아는 분입니다. 보통 유럽 여행은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스위스 등을 떠올리지만 저는 러시아를 봐야 진정한 유럽을 본 것이라 생각하지요.

    누군가는 러시아가 유럽이냐고 반문하기도 하나 러시아 정체성을 유럽에 속하면서 묘한 매력이 있는 나라입니다.
    죽어라 일해서 그렇지 본봉은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좋은 사장을 만난 덕에 그런 돈을 모을 수 있었지요.
  •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진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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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솔모롱이 | 작성시간 26.04.13 정말 행운이셨네요.
    저는 코로나 이전에 두번의 북유럽(발틱해)크루즈 여행시 쎙 페테스부르그에 1박 2일 정박했었지요. 발틱해 크루즈 여행의 진수라고 생각되더군요. (그 다음이 스톡홀름 이라고 생각 )
    아무튼, 그 찬란한 문화유적들, 역사적 볼거리들은 정말 대단하고 훌륭하더라구요.
  • 답댓글 작성자유현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4.15 지금에야 댓글을 봤습니다.
    솔모롱이님께 발틱해란 말을 들으니 옛날 생각이 절로 나네요. 발틱해에 접한 도시들이 아름답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코펜하겐, 탈린, 헬싱키,,

    저는 그곳에서 배를 타본 적은 없지만 크루즈선이 뻬쩨르부그르에 정박한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스톡홀름과 뻬쩨르 등, 북유럽 항구를 도셨다면 아름다운 도시는 전부 여행한 셈이네요. 산모롱이님 덕분에 옛 추억을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언제나 좋은 날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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