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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필숙이 집 대나무 숲에는

작성자가리나무|작성시간26.04.10|조회수492 목록 댓글 32

 

 

내가 - 김학래 & 임철우 (1979, MBC 3회 대상)



 

 

 


필숙이 집은 뒷산 아래 마당이 널찍하고
앞으로는 고목인 동백나무가 동그랗게 울타리를 치고 있었고
뒤 쪽으로 가면 대나무 숲이 있었다 
윗마을로 가는 통로이기도 하고 숨바꼭질에 가끔 대나무 숲과 그 길을 지날 때가 있었는데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으시시했고 무섭다는 생각을 항상 했었다 

옛날 시골에서
남자는 이름 뒤에 양반이란 호칭이 붙었고
아낙네들은 댁이라는 호칭이 붙었다
필숙이 아버지 다라실양반은 볼 때마다 마당을 쓸고 있었고 담벼락 아래 다소곳이 피어있는
접시꽃과 키작은 채송화를 애지중지하셨는데 입을 열고 말을 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다라실댁은 그 마당을 들어서려면 신발에 흙이 묻어 있어도 안되고
따지고 안되는 게 너무 많았고 집 앞에 있는 동네에서 사용하는 공동 우물가를
사용 후에는깨끗하게 정리를 했는지 확인을 했다  
필숙이 숙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는지

유독 나만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국민학교 5학년쯤이다 
여름방학이라 들로 산으로 냇가로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검은 짚차가 동네에 들어서서 자전거만 봐도 신기하던 그 시절에
검은 자가용을 보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들었다 
지서에서 온 사람들인데 다라실양반이 논에 농약을 치디가 위독한 상황인데 
논에서 쓰러져 이미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젊은 나이에 그렇게 허망하게 가버리더니 몇 년 뒤 다라실댁이
바케스에 물 받으러 우물가 가는 길에 넘어져서 그대로 돌아가셨다
자식들은 도시에 연고지가 있어서 국민학교 졸업 후에는 모두 떠나고 없었다 
다라실댁과 다라실양반이 사라진 그 집은  빈집이 되었고
주인을 잃은 쓸쓸한 마당에는 그 후로는 아무 꽃도 볼 수 없었다 
우리 언니는 그 집 식구들의 소식을 알고 있었다 
누구 하나 잘 된 사람이 없고 우리 오빠와 동창인 장남도
아주 힘들게 하루하루 살고 있다는 것이다 

10여 년 전쯤
센다이에 있는 같은 동네에 살았던 국민학교 동창 재숙이와 
오랜만에 긴 통화를 하였다
결혼을 해서 아들 둘이 있는데 
교회에 미쳐서 이혼을 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픈 부분이라 묻지도 않았다 
보기에는 교회 때문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서 이혼을 당한 것 같았다
한국에서 이혼을 하고 브로커를 통해 센다이 노총각과 결혼을 했다는 것이다
대도시는 아니지만 시골도 아니고 장가 못 간 남자들이 브로커를 통해
돈을 들이고 장가를 가는 사람들이 많다 했다    

우연히 필숙이 이야기가 나와서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아랫마을에 이사 오기 전
재숙이가 그 집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재숙이 엄마는 해가 지면  재숙이 아버지와 함께 가지 않으면 
바로 코앞 우물가도, 부엌도 못 가서 살 수가 없어서

아랫동네로 이사를 했다 한다 
그 집에 귀신이 살아서 해만 지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후로 다라실댁이 이사를 왔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대나무 숲에서

으시시한 느낌이 그 귀신때문이었을까
지금도 그 귀신은 다라실댁 집에 머물고 있을까 
홍순이 집,  우물가 옆에 필숙이집, 맹모집, 금자집, 금연이집, 종덕이집
모두 빈 집에 없어지고 남은 집은 도로변에 자리한 우리 집 뿐이다 
이제 한국에 가야 할 유일한 이유였던 엄니도 떠나셨고
한 옛날에 초가집이 도란도란 모여 살았 한 동네가 있었는데 
동화책 속 이야기로 기억하며 가끔 기억하며 살고 있다

 

 

죄송합니다

사진은 십여 년 전 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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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가리나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4.11 리즈향님은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라셔서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도 많이 있을겁니다
    촌스럽게 생각했던 옛날 이름들이 참 예뻤고 정이 가네요
    아~ 그리운 금자야 애자야 ㅎ
  • 작성자수피 | 작성시간 26.04.11 집성촌이던 울고향에서도 예를 들면 증산댁이라는 호칭으로 시집 오기 전 살았던 지명에 댁을 붙여 부르곤 했습니다.
    그대신 한서방네 식으로 불려지는 집도 있었습니다.
    산에서 도깨비를 만났다는 이야기는 어려서 자주 들었었던 기억이 납니다. ^^*
  • 답댓글 작성자가리나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4.12 수피님
    날이 밝았습니다
    어제는 푹푹찌더니 오늘은 어쩔렁거 모르겠어요
    지금은 시골이라도 부르는 호칭이 달라졋겠지요?
    도깨비 이야기에 등골이 오싹했던 어린아이들의 순수함도 사라지고요
    세월이 많이 변했습니다
  • 작성자절벽 | 작성시간 26.04.12 어린시절 잠시 살았던 시골의 풍경이 눈에 그려지네요
    동화속의 한장면처럼 느껴지는 그시절의 아련추억이 그립습니다
    그때는 어머니 아버지도 젊은 시절의 풋풋한 모습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젊고 멋지고 이쁘신 부모님이 그립습니다
    10년전의 모습이지만 지금도 그모습이겠지요
    나이들어가는 내모습을 다시 돌려 봅니다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가리나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4.12 어머니 아버지의 젊었을 때 모습이 생각나면
    사진을 들춰봅니다
    꿈 같은 세월이었지요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의 모습이 나오더군요
    목소리까지 ㅎㅎ
    절벽님은 아직 열심히 일을 하시는 것 같더군요
    건강이 따라주시니 가능한 일이지요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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