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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딸傳 3

작성자유현덕|작성시간26.04.10|조회수551 목록 댓글 39

 

러시아에서 돌아와 나는 사업을 시작했다.

느닷없는 것은 아니고 그전부터 친구와 함께 구상을 했던 일이다. 러시아에서 벌어온 돈 절반을 투자해서 시작했는데 처음엔 아주 잘 나갔다.

 

잘 나가면 교만하게 된다던가? 내가 그랬다. 마치 중견기업 대표나 되는 듯이 뻐기고 다녔으니까. 회사에서 월급 받던 시절과는 비교가 안 되게 돈이 들어왔다.

아! 이맛에 다들 사업을 하는가 보다. 지금처럼만 돈을 번다면 몇 년 안에 내가 완전 부자가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친구의 제안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당연 자본금이 부족하니 막 구입한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나는 폭삭 망했다.

친구에게 뒤통수를 제대로 맞고 나가 떨어진 것이다. 믿었던 사람이 속이자고 들면 속수무책이라고나 할까.

 

구체적인 것은 여기서 굳이 언급하지 않고 지나간다.

글도 길어질 테고, 누워서 침 뱉기일 수도 있는데다 내 실패를 남탓으로만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딸에 관해 쓰는 것인데 내 실패담만 너무 부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일이라서 언젠가는 쓸 기회가 올지는 모르겠다.

 

한편 내게 이런 말을 하고 싶은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사람이 얼마나 어리숙하면 그런 사기를 당하고 뒤통수를 맞을까.

틀린 말 아니다. 나는 기꺼이 그런 비아냥을 감수한다. 이전에 듣기만 했던 헛똑똑이란 말을 실감하면서 스스로 나를 지목했으니까.

내 인생에서 좋은 것만을 쓰고 싶지는 않다. 이런 흑역사도 내 삶의 한 부분 아니겠는가.

 

죽이고 싶을 만큼 배신감에 치가 떨렸지만 일단 콩밥 먹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친구가 단물만 쏙 빼먹고 빠져나간 구멍을 간신히 막아서 콩밥은 면할 수 있었다. 대출 낀 집도 팔고 온 가족 보험과 심지어 딸 아이 교육보험까지 해약을 했다.

완전 알거지가 되어 길거리에 나앉은 것이다.

 

내가 망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얼마전까지 사장님, 사장님 하면서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싹 자취를 감췄다.

불똥이 튈 것 같거나 행여 돈이라도 꿔 달라고 할까 봐서였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세상 인심이 그랬다.

 

제일 먼저 장인 어른이 와서 아내와 딸 아이를 데려갔다. 하긴 머물 집이 사라져 여관에서 지내야 할 판이긴 했다.

나중에 들었는데 그때 행여 내가 번개탄을 피우고 동반 자살을 할지도 몰라서 그랬다고 한다.

 

잠깐이었지만 실제 죽고 싶은 생각을 하기는 했다.

딸과 아내를 처갓집에 맡기고 나는 고시원에서 생활을 했다. 겉보리 서 되만 있어도 처가살이 안 하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나는 그보다도 못한 처지가 된 것이다.

 

몇 군데 구직 사이트를 찾아 해외 취업을 원한다는 이력서를 냈다. 몇 개 나라에서 빠르게 연락이 왔다.

한 자리만 있으면 선택의 여지가 없으련만 여러 곳이 나오니까 그 와중에도 어디가 더 나을지 저울질을 했다. 쫄딱 망해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님에도 말이다.

 

가장 처우가 낮은 영국에 취업을 할 수 있었다. 영국 회사도 처음엔 서로 밀당을 하다 내가 거절을 했던 곳이다.

그런데 인연이 될려고 그랬던지 내 요구를 수용할 테니 생각 있으면 계약을 하자는 연락이 다시 온 것이다.

 

이리저리 저울질하다 전부 나가리가 되어 낙동강 오리알이 될 처지였는데 영국에서 동아줄을 보낸 셈이다.

내가 운명이란 것이 있음을 완전히 믿게 된 계기다. 서둘러 회사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보내고 떠날 채비를 했다.

영국 취업비자를 받는 기한이 얼마가 걸릴지 몰라서 일단 관광비자로 들어가 현지에서 취업비자 신청을 하기로 했다.

 

당시 나는 비행기표 구할 돈도 없었는데 지인들은 물론이고 형제들한테까지도 손 벌리기가 싫었다. 빚 지고는 못 사는 성격도 어찌 보면 병이다.

나는 일도 시작하지 않은 직장에 가불 형식으로 비행기 티켓을 부탁했다. 참 얼굴도 두껍지, 고맙게도 회사에서 용케 들어줬다.

나중에 일을 하면서 물었봤더니 내가 보낸 이메일을 읽고는 신뢰감이 생겼다고 한다.

 

영국으로 떠나기 이틀 전, 아내와 딸을 보러 처갓집 동네를 찾았다. 그때까지 나는 장인 장모를 볼 면목이 없어서 얼씬도 하지 않았다.

아내와는 자주 전화 통화를 했으나 딸의 얼굴은 한동안 보질 못했다. 궁리 끝에 아내의 오랜 절친한테 부탁을 해서 아내와 딸을 처갓집 근처 공원에서 만났다.

 

딸이 좋아하는 돈가스라도 사 주기 위해 식당에서 만나면 모양도 살고 좋으련만 나는 그럴 돈이 없었다.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당시 내가 그랬다. 나는 딸을 보자 덥석 품에 안았고 미안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딸이 울면서 말했다.

"아빠 울지 마,"

"얼마전 테레비에서 봤는데, 사업이 망한 어떤 아저씨가 다리에서 뛰어내렸대. 그거 보구 아빠 생각이 나서 막 울었어."

지금 생각하면 유치원 다니는 일곱 살짜리 아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싶다.

 

"걱정 마. 아빠 안 죽어,"

"이렇게 이쁜 우리 딸이 있는데 아빠가 죽으면 되겠어?"

딸에게 영국에 가야할 상황을 설명했다. 3개월 후에는 만날 수 있다는 말에 딸 아이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빠와 함께 살 수 있다면 그거 못 기다리겠느냐며 되레 나를 위로했다.

 

딸 아이가 약속을 외치며 새끼 손가락을 내밀었다. 우리는 새끼 손가락을 걸고 엄지 도장을 찍었다.

딸 아이 손이 너무 작아서 엄지 손가락을 맞댈 수가 없었다. 내가 손을 오므리고 나서야 겨우 엄지 도장을 찍을 수 있었다.

 

영국으로 떠나는 날 진눈깨비가 내렸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대기하고 있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날씨처럼 발걸음이 무겁기 짝이 없었지만 내 심장에 박혀 있는 딸에게 속엣말을 건네며 다짐했다. 너를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살아 남겠다.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 공항 활주로 바닥에 진눈깨비가 싸라기처럼 쌓여 있던 2002년 12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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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유현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4.11 둥근해님 안녕하세요.
    말씀처럼 돈도 잃고 친구도 잃고,,
    그땐 상실감이 컸답니다. 어찌보면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영국으로 갈 기회가 생겼으니 지금은 미움 내려놓고 삽니다.

    제 딸은 저를 살게 만드는 힘이면서 등불이기도 하지요. 둥근해님이 항상 제 글에 관심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 작성자리즈향 | 작성시간 26.04.11 어쩜 그렇게 많은 우여곡절이 ~~~
    상상도 못했어요
    현덕님이 겪은 고초에 제가 더 맘이 아프네요
    대단하시고 총명하셔서 반듯하게 일어나셨을 다음편 기다립니다
  • 답댓글 작성자유현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4.11 앗! 바쁘신 리즈향님께서 다녀가셨군요.
    동무 몇과 산에 갔다가 지금에서야 집에 와 답글 답니다. 언제나 카페를 위해 애쓰시는 리즈향님께 도움을 드리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입니다.

    내일은 종일 아내 일정 따라다니면서 봉사를 해야해서 바쁠 듯하네요.
    꽃이 피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지기 시작하고 봄밤은 고요하기만 합니다. 리즈님, 주말 잘 보내시길요.
  • 작성자제라 | 작성시간 26.04.12 에고고~
    죽쒀서 개준다고
    친구 입에 홀라당 털어 넣어 주고
    가족들과 또 헤어지는 비운의 사나이가
    되었군요.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에
    날씨까지 스산하니 ㅠ

    재기에 성공해
    다시 금의환향 하실지
    7전 8기까지 가실지
    괜히 불안불안 합니다.ㅋㅋ

    꼬마숙녀의 의젓한 인사에
    다시 힘내어 영국으로 떠나는 아빠
    홧팅요^^
  • 답댓글 작성자유현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4.12 와우~
    제라님의 댓글을 이제서야 봤습니다.
    인생도 날씨처럼 비오다 해뜨다 바람불다 한 테니, 뒤통수 맞은 충격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아내는 등대, 딸은 불빛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글 쓴 보람을 느끼게 하는 제라님의 댓글이었습니다.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닐 테지만 우리 자주 웃으면서 살아요.ㅎ
    고운 밤 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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