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좋아해서 틈만 나면 어디론가 떠났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늘 여행에 대한 로망은 가슴에 담고 산다.
나중 은퇴하면 가고 싶은 여행지가 노트에 가득하지만 그중 몇 곳이나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떠나지 못하고 꿈 꾸는 것으로만 그치면 또 어떤가. 여행지를 목록에 올리기 위해 사전 정보를 공부하는 중에 잠시 설렜던 마음 만으로 만족해도 될 것이다.
지금이야 여행길 동반자로 자가용이 대세지만 오직 대중교통이 여행자의 발이었던 시절에 여행의 낭만은 더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옆자리 인연 이야기다.
고속버스나 기차를 타고 앉아 있을 때 나는 행여 옆자리에 예쁜 여성이 앉았으면 하는 희망을 품었다.
대부분 그 희망은 비껴가기 일쑤였지만 앞쪽 통로에서 걸어오는 사람을 보며 희망에 부풀기도 했다.
저 여자가 옆에 앉았으면 하는 설렘 또한 잠시였지만 즐거움 아니겠는가.
어느 날 밤기차를 타고 가다 만난 여성이 있다. 나란히 마주보고 있는 좌석이었으니까 옆자리가 아닌 맞은편 자리라고 해야할 것이다.
선후배 관계인 두 여성 중에 언니와 대화가 통했는데 나보다 세 살 위였다.
가는 내내 대화를 나누다 우리보다 몇 정거장 먼저 내린다기에 서로 주소를 교환했다.
이후 펜팔처럼 여러 번 편지를 주고 받았다. 경기도 성남시 상대원동,,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그녀의 주소다.
내가 성남으로 찾아가서 만난 적도 있다. 주말 늦은 오후에 만나 커피숍, 식당, 호프집, 다시 심야다방으로 이어졌다.
새벽에 포장마차에서 함께 국수를 먹은 후에야 나는 첫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녀가 만나 모텔에 간 것도 아닌데 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대화가 통했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문학, 예술, 여행, 영화, 역사까지 마치 탁구공을 주고 받듯이 대화가 이어졌다. 이후 백마에 있는 화사랑을 몇 번 가기도 하면서 우리의 만남은 한동안 이어졌다.
항상 아름다운 만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고속버스를 탔는데 기대했던 여성은 앞 자리에 앉고 웬 산적 같이 생긴 남자가 내 옆에 앉았다.
속으로야 실망을 했지만 내색은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 도착할 때까지 그 남자가 어찌나 방귀를 뀌어대던지 머리가 벗겨질 정도였다.
어떻게 엉덩이를 슬쩍 비틀기만 하면 그렇게 성능 좋은 가스를 소리도 없이 방출할 수 있는지가 신기했다.
이렇듯 옆자리 인연은 그 방귀남 아저씨처럼 웃음짓게 만들기도 하고 편지를 주고 받는 인연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옆자리 인연과 딱 어울리는 장면이 나오는 박완서 선생의 작품이 있는데 <마른 꽃>이라는 소설이다.
지방에 있는 장조카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에서 만난 남자, 옆 좌석에 앉은 인연이 연인으로 발전한다.
마른 꽃은 단편 소설임에도 그 안에 담긴 내용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주인공 여자는 남편을 여의고 혼자 살고, 남자 또한 상처 후에 홀아비로 맏며느리 집에서 산다.
둘 다 배울 만큼 배웠고, 병원비와 데이트 비용 걱정은 없을 만큼 재산도 있는 두 남녀의 사랑이 박완서 특유의 맛깔스런 문체로 잘 엮어져 있다.
만남이 이어질수록 남자의 매력에 반하면서 여자는 점점 자신이 이 남자에게 빨려들어감을 느끼게 되는데,,
여자에겐 친구처럼 속엣말을 주고 받는 맏딸이 있다. 그 맏딸이 엄마의 연애를 알게 되면서 전개는 더 흥미롭게 진행이 된다.
"엄마, 그 노인네 사랑해?"
"엄마 이제 보니 조박사님이 엄마와 잘 어울려."
재혼을 부추기는 맏딸, 과연 노년의 재혼은 성사될 수 있을 것인가. 대체 딸은 무엇 때문에 그 남자를 새아버지로 강력하게 미는 것일까.
이런 것 또한 전부 다 버스에서 생긴 옆자리 인연 때문이다.
나는 이곳 카페에서도 옆자리 인연으로 친해진 경우도 있다. 오직 닉으로만 알던 사람을 옆자리 인연으로 대화를 하면서 그 사람의 살아온 내력을 짐작하곤 한다.
나는 사생활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학교를 어디 나왔냐, 고향이 어디냐, 직장은 무슨 업종이냐 등 개인사를 묻지 않는다.
예전에 이곳 카페 어느 여행방의 방장님이 고충을 호소한 적이 있다. 그는 장거리 여행 버스 좌석 배정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나름 최선을 다해 자리 배정을 하는데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지는 못하는가 보다.
옆자리에 마음에 안 드는 사람과 짝을 지어줬다면서 다녀온 후에 어찌나 푸념을 늘어놓던지 수습하느라고 애를 먹기도 했단다.
평소 함께 다니는 단짝이 있다면 모를까 혼자 가는 사람은 자리 배정에 민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자리를 따지지 않는다.
꼭 원하는 자리에 앉고 싶을 때는 최대한 일찍 신청을 해서 선점을 하던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 다 고르고 나서 남은 자리 있으면 달라고 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옛날의 기차나 고속버스 자리처럼 옆자리 인연은 내가 고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연이 겹쳐야 정해지는 것 아니겠는가.
스마트폰 시대인 요즘은 대중교통 좌석도 본인이 지정할 수 있다. 시대가 변해 옆 좌석 승객에게 말을 붙였다가는 공연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옆자리 인연에 대한 생각도 마음 먹기에 달렸다. 마냥 불편하게만 생각하면 가시방석일 것이고, 이것도 스치는 인연이려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편한 방석이 될 수도 있다.
오늘 나의 옆자리 인연 썰은 여기까지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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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유현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4.22 문선이님 안녕하세요.
저는 옆자리 인연을 기대하는 마음이 있어도 무조건 아무한테나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저도 보는 눈이 있거든요.ㅎ
뭔가 통할 것 같은 느낌이 와야 말이라도 건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문선이님께서 요가를 하시나 봅니다.
체력단련과 마음수련에 요가가 좋다는데 열심히 하셔서 건강한 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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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운선 작성시간 26.04.22 ㅎㅎ 그러고 보니 당시는 열차를 많이 타고 다녔기에 그런 일이 생길만도
저도 있긴 한데 ㅎㅎ 지금 생각해도 좀 껄적지근한 그런 일이
언제 한번 써 봐야징 현덕씨 재밌어요 또 써 주세요~ -
답댓글 작성자유현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4.22 운선님한테도 옆자리 인연이란 것이 있긴 있었나 보군요. 저는 신기하게도 나쁜 기억보다는 좋은 인연이 많답니다.
앞으로 쓸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기차에서 만난 노부부가 저를 당신 집으로 초대한 적도 있습니다.
이전까지 생면부지의 사람임에도 대화와 마음이 통하면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했네요.
평화로운 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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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곡즉전 작성시간 26.04.23 제가 청년 때 광주 서울 간 고속버스를 자주 이용했습니다.'
한번은 먼저 지정된 좌석에 앉아있는 데 바로 옆자리로 아가씨가 앉으려 합니다.
제가 장난끼가 동해 손을 들고 " 잠시, 기다리세요. " 했습지요.
그러곤선 그녀가 앉을 좌석을 입으로 후후 불어 먼지를 날리고 손수건을 꺼내 걸레질을 했습니다.
물론 시늉만 했습니다.
그러고선 이렇게 말합니다.
" 자~ ! 이제 좌석이 깨끗 하오니 마음 놓고 편하게 앉으십시오."
아가씨 얼굴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고속버스에서 네 시간 동안 아주 화기애애하게 이야기 하노라니 목적지 도착입니다.
어머님 분이 미리 나와 계시다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냅다 낚아 채 가버린 바람에 닭 쫒던 개 신세가 됐습니다요.
작별 인사도 채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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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유현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4.23 ㅎㅎ 70년대 클래식 영화를 보는 것처럼 곡즉전님의 아주 맑은 추억입니다.
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법인데 이제는 알더라도 써먹을 기회가 없을 듯하여 아쉽기는 하네요.
옆자리 인연이 마중 나온 사람으로 인해 결말이 다소 허무하지만 도착지까지 가는 동안 여성과 즐거운 대화를 나눴으니 그리 미련은 남지 않았을 듯합니다.
저부터 기차나 버스 탈 일이 점점 줄어드네요. 요즘 대중교통은 만차보다 텅텅 비어서 가는 경우가 많아 옆자리 인연은 추억박물관에나 있을 겁니다.
곡즉전님의 사연이 저를 잠시 미소짓게 만들었네요. 항상 좋은 날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