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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이름에 대한 몇 개의 소고

작성자유현덕|작성시간26.04.23|조회수534 목록 댓글 47

 

1.닉

 

카페 오프 모임에 나가면 종종 내 닉이 본명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얼마전 모임에서도 그 질문을 하는 분이 있었다.

심지어 어디 유씨냐고 묻기도 한다. 나는 가짜 유씨라고 대답했다.

 

내 닉은 본명이 아니다. 유현덕이란 닉을 쓰게 된 사연은 이렇다. 처음 이 카페 가입할 때 생각했던 닉이 있었는데 사용할 수 없는 닉이었다.

2순위로 생각한 이름을 넣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3순위까지 전부 사용할 수 없단다.

 

할 수 없이 그날은 적당한 닉이 없어서 가입을 하지 못했다. 일단 가입부터 하고보자는 생각으로 아무 닉이나 쓰고 싶지는 않았다.

다음날(아니면 다다음날?) 다시 카페에 들어와 생각했던 닉을 넣었으나 또 막힌다. 뭐야? 왜 이렇게 가입이 힘들지?

 

다시 골똘히 생각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이걸로 한번 넣어보자. 그렇게 입력한 것이 유현덕이다. 그제서야 사용할 수 있는 이름입니다란 문구가 떴다.

그냥 삼국지를 너무 좋아한 것 빼고는 다른 뜻은 없다. 유현덕이 5순위로 겨우 당첨된 닉이라서 처음에는 어색했으나 점점 익숙해졌다.

 

2. 내 본명

 

나는 내 이름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다. 지금은 덜한데 어릴 때는 내 이름이 정말 싫었다.

내가 카페 닉을 정할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이유도 내 본명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는 전화로 불러준 내 이름을 정확히 받아 적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래서 항상 이름 불러줄 때면 보충 설명을 해야했다.

예를 들어 김독구라고 해보자.

독도할 때 독 있잖아요. 그 독자구요. 그리고 아홉을 뜻하는 구자요. 이렇게 설명을 하지 않으면 십중팔구 이름을 잘못 적었다.

 

나는 유복자를 간신히 면하고 세상에 나왔다. 엄니가 나를 임신하면서 아버지는 병이 깊어졌다고 한다.

내가 엄니 뱃속에 있는 동안 아버지는 병석에 누워 통증이 올 때마다 나를 욕했다고 한다.

점쟁이 말이 막내가 들어서면서 아버지가 대신 죽게된 팔자였다니 아버지는 내가 얼마나 미웠겠는가.

 

내가 세상에 나오고 6일 만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엄니는 산후 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아버지 장례를 치뤄야했다.

장례식을 치르고 얼마 후, 오일장이 열린 어느 날 엄니는 장에 간 김에 아버지 사망신고를 하려고 면사무소를 방문했다.

 

까막눈인 엄니는 장터에서 만난 동네 이장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사망신고를 마친 후 이장이 그러더란다.

"그집 막둥이 출생신고도 해야 되지 않겄남유?"

엄니는 그렇게 아버지 사망신고 하러 왔다가 내 출생신고까지 했다. 아직 이름도 정하지 않은 한 달 정도 된 아이였다.

 

이장이 즉석에서 내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큰형 이름 항렬에 따라 나름 심오한 뜻을 담은 한문 이름이 그렇게 정해졌고 지금까지 그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학교 다닐 때 동무들한테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나는 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느 날 이름 때문에 잔뜩 심술이 난 내가 엄니한테 물었다.

"엄니는 내 이름을 왜 이렇게 지었어?"

"니 이름이 어때서?"

"꼭 강아지 이름 같잖아."

"무슨 강아지 이름이 그렇게나 이뿔까."

 

엄니는 내 이름이 한문으로는 아주 좋은 뜻이 담긴 것이라며 이장님이 지어줬단다. 나는 한때 개명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포기했다.

그냥 생긴 대로 살자는 마음에서다.

 

3. 영어 이름

 

내 영어 이름은 다니엘(Daniel)이다. 팔자에 없는 영국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첫 출근한 날 영어 이름을 지으라고 했다.

내 이름이 워낙 부르기도 힘들지만 그 직장 전통이 그렇단다.

 

그렇게 해서 Daniel, 데이빗(David), 도미닉(Dominic) 세 개를 후보에 올렸다. 다니엘과 도미닉을 놓고 생각하다가 그날 점심 시간에 도미닉으로 정했다.

그날 오후부터 나는 도미닉으로 공표가 되었고 모든 직원이 도미닉이라 불렀다.

 

저녁에 집에 와서 생각하니 도미닉보다 다니엘이 낫겠다 싶었다. 서양 이름에 대한 자료도 찾고 위인들 이름도 비교하며 다니엘로 바꾸기로 했다.

 

이튿날 출근을 하니 모두 나를 도미닉으로 부르며 인사를 했다. 나는 바로 다니엘로 바꿨다면서 하루 만에 새 이름을 다시 알려야 했다.

이후 나는 줄곧 다니엘로 불렸고 내가 영국 시민권자가 된 후에 영국 여권을 만들 때도 다니엘이었다.

 

4. 정자 누나

 

내 친구 누나의 이름은 정자였다. 당시 자가 들어간 여자 이름이 흔하기는 했으나 정자 누나도 나처럼 자기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언젠가 고향에 갔다가 기차역에서 정자 누나를 만났다. 그 누나가 대전으로 시집을 가서 산다는 말을 듣긴 했어도 결혼하고는 그날 처음 만났다.

 

내가 먼저 발견하고 아는 체를 했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대합실 의자에 앉아 얘기를 나눴다. 정자 누나는 조만간 자기 이름을 바꿀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름 바꿀 결심을 하게 된 이유를 말했다.

 

정자 누나가 첫 아이를 임신해서 병원 관리를 받을 때 산부인과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간호사가 부르더란다.

주정자씨, 그런데 그날 정자 누나를 부른 간호사가 혀가 조금 짧은 사람이었던지 주전자씨로 부르더라나?

 

대기하던 주변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정자 누나는 민망해서 자기 아닌 척하고 있는데 눈치 없는 그 간호사는 더욱 큰소리로 애타게 부르더란다.

주전자씨, 주전자씨 안 계세요? 별 수 없이 슬그머니 일어나 따라 갔더란다. 이때 정자 누나는 이름을 꼭 바꿔야겠다고 결심했단다.

 

나중 정자 누나가 이름을 바꿨다는 말을 친구에게 들었다.

"우리 누나 이름 바꿨어."

"무슨 이름인데?"

"정희, 그래서 주정희야."

정자 누나는 유난히 가수 이정희 노래를 좋아했다는데 그 이름까지 마음에 들었었나 보다.

 

주정자나 주정희나 나는 그게 그거 같았지만 덕담을 건넸다.

"너네 누나 그동안 이름 때문에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이제 편해졌겠네."

"근데 요즘 또 자기 이름이 맘에 안 든대."

"그럼 다시 바꾸게?"

"모르겠어, 근데 법원에서 또 바꿔 줄라나."

"성형수술도 마음에 안 들면 여러 번 할 수 있는데 이름이라고 다르겠어?"

 

아직 이름을 또 바꿨다는 말은 듣지 못했지만 어떤 이름으로 바꾸든 내겐 정자 누나다. 주정자란 이름은 내 추억 속에 박혀 있으니까.

 

5. 내 친구 점만이

 

점만이는 내 국민학교 동창이다. 당시 아이들은 모두 한두 개씩의 별명은 갖고 있었는데 점만이의 별명은 독특했다.

다름 아닌 <존만이>였다. 욕처럼 들리지만 동무들은 모두 존만이로 불렀다.

한참 자란 후에야 표기가 좆만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긴 좃만이든 좀만이든 다 욕처럼 들리는 것은 매한가지다.

 

어느 짓궂은 개구쟁이 하나가 점만이 아버지까지 놀려 먹을 생각을 했다. 점만이 아버지가 마당에서 작두로 소 여물을 썰고 있는데 밖에서 개구쟁이가 소리쳤다.

"존만아~ 놀~자."

 

점만이 아부지가 핏대를 올리면서 벌게진 얼굴로 뛰어 나와 야단을 쳤다.

"네 이놈 자식, 우리 점만이가 왜 존만이여?"

"지는 점만이라 했는듀."

"네 놈이 금방 존만이라 했잖여."

"아녀유. 지는 점만이라 했슈."

"한번만 더 그랬다간 혼구녕 날 줄 알어."

 

그럼에도 점만이 아부지 놀려먹는 것에 재미를 붙인 개구쟁이가 그만할 리 있겠는가. 며칠 후 점만이 아버지가 마당에 있는 것을 본 개구쟁이는 장난끼가 발동해서 소리쳤다.

"존만아~ 존만아~."

점만이 아부지가 야단을 치려고 나오자 개구쟁이는 시침 뚝 떼고 말했다.

 

"점만이 집에 있어유?"

"오늘 점만이하구 같이 숙제하기루 혔는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쓱해진 점만이 아버지가 그냥 돌아서자 개구장이는 뒤에서 입을 가리고 킥킥댔다.

 

점만이는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심성이 착했다. 이후 조무래기들도 자라서 각각 흩어졌고 자기 밥벌이를 위해 살았다.

점만이 아부지 팔순 잔치가 열렸다. 예전에 놀려 먹던 그 개구쟁이는 부조도 넉넉히 하고 축하 노래도 불렀다.

팔순 잔치가 끝나고 점만이 아부지가 고맙다면서 개구장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조무래기들도 이제 6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가 되었다. 얼마전에 몇몇 친구들이 모이는 자리에 오랜만에 나갔더니 거기에 점만이가 있었다.

점만이는 배도 나오고 정수리 머리가 많이 사라진 탈모인이 되어 있었다. 한 친구가 점만이를 보더니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야! 존만아~, 정말 반갑다야."

속알머리(?) 없이 사람 좋은 점만이도 활짝 웃는 얼굴로 악수를 하며 말했다.

"그래, 나도 무지 반갑다. 이 존만아."

점만이는 여전히 멋진 나의 친구다.

 

이상, 오늘 내 글은 이름에 대한 몇 개의 소고(小考)이자 소고(笑考)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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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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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별마당 | 작성시간 26.04.24 현덕 친구 나랑 비슷한 닉에대한 에피소드가 있네요ㅎ
    3일을 고민해서 탄생한 이름 별마당
    카페에서 사용하는 닉 하나에도 너무 신중해서 쉽게 선뜻 지을수가 없었답니다
    본 이름에 대한 불만
    심지어 울엄마 이름도 백예현인데 어찌 딸 이름을 ~~ㅎㅎ
    법원에 개명 신청까지 해놓고
    밀려오는 번거로움을 극복 못하고 취소하고 이번 생은 그냥 살기로 했답니다 ㅎ
    지금도 어디가면 이름 공개 잘 안해요
    현덕친구 이름에대한 재미있는 사연 잘 봤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유현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4.24 우리 별마당 친구님이 오셨군요.ㅎ
    닉 결정하느라 3일을 고민했으면 나보다 훨씬 신중하게 생각한 거네요. 덕분에 별마당이란 예쁜 닉도 탄생했을 테지요.
    별마당 친구님 성품과 많이 닮은 닉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기억에도 오래 남구요.

    별마당 친구의 닉에 대한 신중함이 본명에 대한 불만 때문인 것이 나와 너무 닮아서 신기합니다.
    본명 때문에 겪었을 친구님의 마음 고생 또한 저는 알 수 있겠습니다.

    이번 생은 이름 바꾸지 않고 그냥 살기로 했다는 것까지 닮았네요. 잘 생각했습니다.
    인생 후반전에 접어들어서 이름 바꾼다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 것도 아니고,,^^
  • 작성자자연이다2 | 작성시간 26.04.25 네~~잘 읽어요.
  • 작성자곡즉전 | 작성시간 26.04.26 저의 고향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이름들이 많았습니다.
    또굴수, 질바구, 동네개,마당쇠 등등 입니다.
    물론 성은 없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분중에 萬善이라는 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양반은 萬惡의 표본 같았습니다.
    날마다 술 취해 아무에게나 시비 걸고 행패 부리고 주먹질을 했습니다.
    호송하는 찦 차 뒤에 수갑을 차고 앉아 앞 좌석의 경찰관을 냅다 발로 걷어 차 버릴 만큼 포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순전교도소를 밥 먹듯 들락 날락 합니다만 입소 즉시 감방장(?)에 취임합니다.
    더러 마을 사람들이 수감 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들 말에 따르면 그의 위엄은 간수들조차 함부로 못했다는 것입니다.


    잘 나깔 때는 여수 신항부두를 주름잡았다고 합니다.
    만선이 만악이라! 참 아이로니컬 합니다.
  • 작성자가리나무 | 작성시간 26.04.26 저는 유현덕님 닉을 볼때마다 본명이겠지
    참 글과 용모와 모든 것에 잘 어울린다~
    다른 이름은 올 수 없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본명을 거꾸로하면 우리 엄니 이름이 됩니다
    딸이라고 이름도 그냥저냥 지었던 옛날이었지요
    만선이와 만악이의 이야기며 참 재미있습니다
    동네에 지금 생각하면 참 재미난 이름들이 많았지요
    힝배 갱배 성배 ~형제들
    맹모 성모
    장똘뱅이 소태인과 힝배는 면에서 유명했지요
    힝배는 지능이 좀 모자랐고
    소태인은 봄여름가을겨울 같은 옷을 입고 장터에서 어슬렁거렸는데
    치렁치렁 떡진 긴머리에 신발은 소 말발굽 같은 것을 신고
    보는 것만으로 공포였습니다
    이름에 얽힌 사연
    역시 유현덕님은 글을 잘 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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