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지역 축제장을 자주 찾는 편이다. 당일로 갔다 오는 거리라 중요한 순서가 있는 날짜를 미리 알아봐 놓고 찾는다. 축제장이면 으레 야시장이 열리고 야시장 근처에는 품바라 하는 엿 장사 소리꾼이 있게 마련이다. 그들은 가설극장처럼 임시로 지은 천막에 무대를 설치하고 장구와 북을 두드리며 춤과 노래 걸쭉한 우스개 소리로 손님을 불러 엿과 물건을 판다.
조선 후기 남사당패를 닮은 듯도 하고 해방 후 다리 밑 거지 무리가 떼지어 다니며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소” 땅땅 깡통 두드리는 행색도 좀 닮았고 어느 땐 망태기에 길가 쓰레기란 쓰레기는 모두 집게 하나로 집어 짊어진 망태기 위로 휙! 넘기던 양아치 무리도 닮은,
그러다 짤깍짤깍 엿 치는 소리가 들리면 “아! 5~60년대 엿 판 짊어지고 전국을 돌던 입심 좋은 엿 장사 사내들의 능글스런 장단 같기도 하고... 여튼 뒤죽박죽 무리들인데 저들 자신들이 자칭 현대판 품바라 하니 제목에서 오는 낭만에 솔깃해서 나는 즐겨 그 무리들 곁에 자주 가 있고는 한다.
어느 해 7월의 축제장 그날 무자비한 폭염의 한가운데 흙바닥 위를 겅중겅중 뛰며 춤을 추던 품바 사내가 있었다. 천막도 없고 무대도 없이 달랑 북 치는 아낙 하나 앉혀 두고 사내는 저 혼자 춤의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기에 나의 주의를 끌었나 보다.
남루한 입성에 헐렁한 바짓단은 솜씨 없이 둥둥 걷어 올려 장딴지 위에 걸쳐 놓고 뭉툭한 맨발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날아오르고 내려꽂히고 허리 접고 고개 숙여 한 바퀴 휙 돌던 오직 힘으로 만들어지던 춤 장단, 장딴지 알통이 강아지 삼킨 배암의 불룩한 뱃 고래 같은데 툭툭 불거진 시퍼럼 힘줄이 날 선 칼같이 무서운 생명감으로 펄떡이던, 지칠 줄 모르던 사내의 격렬한 춤사위
그날 나는 더위도 잊고 사내의 발끝에서 일어나는 먼지도 아랑곳없이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었다. 어떤 슬픔의 감정에서 오는 벅찬 끌림. 전신에서 오소소 소름이 돋는 느낌에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사내는 엿장수도 아니고 진득한 농담과 청승맞은 노래로 물건이나 파는 장사치도 아닌, 단지 춤을 추기 위해서, 춤에 의한, 춤을 위해서만...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알아보니 그 사내는 정통파 품바 공연을 하시는 장인이었다. 꽤 유명한, 다시는 장마당에서 볼 수 없었지만 그렇게 처절하게 온몸으로 흙바닥 위에서 춤을 추던 그날 그 모습을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
우리네 인생길 속 터지고 머리 터질 때 손바닥으로 가슴만 쳐대며 한세월 살 줄 알았지 저리 한 번 겅중겅중 하늘 땅 사이 공중제비하듯 장단 맞춰 맘껏 들고 뛰어 본 적 있었던가, 근심의 의복일랑 할랑할랑 벗어 던지고 세상 밖 나오던 모습 그대로 창공을 향해 거침없이 날아가본 적 꿈에나 가능했으랴
나는 축제가 벌어진 곳이 당일치기면 반드시 가본다. 혹여 그 사내를 만날까 해서다. 땀으로 범벅이 되어도 춤만 추던 사내, 검은 얼굴에 깃든 무념무상의 물같이 고요하던 사내, 바위 같은 입매, 흙투성이 맨발, 만화가 이두호 작품 머털도사가 떠오르는 분위기 나는 그 사내의 정열이 부럽고 몰두하는 집착이 부럽고 또 부럽고,.. 부러워서 슬프고, 슬퍼서 다시 보고 싶어 매년 축제장을 찾아 기웃거린다.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운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5.25 new
아 맞아요 음성에서 품바 공연과 그해 품바 대상도 뽑지요 전 좋아 해서 평창 삼척 부근에서 당일치기는 일부러 갑니다 아직 좋아 하는 공연이지요 ㅎㅎ
-
작성자곡즉전 작성시간 26.05.25 new
" 얼씨구 씨고 씨고,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
시골에선 큰 볼거리였습니다.
저는 항상 맨 앞줄에 앉아 구경하곤 했습니다.
60년대 겨울철이 되면 친구네 아빠들이 하나 둘 동네에서 자취를 감춥니다.
알고 봤더니 농한기를 이용 서울로 엿장사 하러 고향을 뜨셨던 겁니다.
봄이 되면 다들 근사한 양복을 차려입고 금의환향을 했습니다.
귀한 선물도 많이 사오시고요. -
답댓글 작성자운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5.25 new
아 그 시절에 그런 일도 있었군요 ㅎㅎ 엿장사가 밑천이 안 들었나 봅니다 😂 엿장사 마음대로 란 말도 엿가위로 엿을 칠때 제멋대로 마구 쳐서 그런 말이 생겼다더군요 곡즉전님 다녀가셨군요 감사합니다.
-
작성자늘 평화 작성시간 07:16 new
사내~~남자도 아닌 사내라ㅈ표현이 절로 미소짓게 하네요
여전히 낭만가득 감성충만이셔요.~^^
사흘동안 서울 임신한 딸 애봐주고 귀가해
막 담장미보며ㅈ아침걷기마치니 기분이 짱이예요.
이미지 확대
-
답댓글 작성자운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7:23 new
ㅠㅠ 힘드신데 내 새끼 열매라 고생인 줄 잊고 돌보러 가셨군요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담장미 넘 예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