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친구 *란이와 만나기로 했었다.
10시 반에 안국역 5번 출구에서.
약속은 지난 주에 잡았었는데 그저께, 그러니까 선거일에 *란에게서 톡이 왔다.
시골 친구네 갔다가 폰을 두고 왔다며, 지금은 컴퓨터에 깔린 카톡으로 하는 중이라면서 만나는 날 연락이 안 될 거지만 그냥 만나자고 한다.
폰 없이 만난다고? 그러다가 돌발 상황 생기면 어떡해? 약속 미룰까? 라고 내가 걱정했지만 문제 없다고 만나자고 한다.
그래, 알았어. 모레 금욜 10시 반 안국역 5번 출구야.
뭐든 확인을 좋아하는 나는 다시 한 번 약속 내용을 상기시킨 후 톡을 끝냈다.
그리고 오늘, 그녀는 10시 반부터 나를 약속 장소에 세워놓고 나타날 줄을 모른다.
11시가 넘도록 안 나타난다.
다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허리도 신호를 보낸다.
왜 안 오지? 무슨 일 있나? 걱정이 된다.
혹시 약속 시간을 11시 반으로 착각을 했나 하는 생각에,
11시 10분 쯤에 역 안으로 들어가서 이디야에서 찬 음료 한 잔 마신 뒤 11시 반에 다시 5번 출구로 나왔다.
길에 선 채로 카페 삶방도 들여다보며 기다린다.
그렇게 또 기다려도 역시 안 나타난다. 화가 나기 시작한다..
그러게, 친구가 택배로 폰 보내준 뒤에 만나야지, 그냥 만나자더니 이게 무슨 일이야.
내가 진짜 답답하고 걱정되고 성질이 난다아~~~~
11시 58분, 한 시간 반 가량의 서있기 형벌을 마치고, 나 기다리다 간다고 나중에 읽으라고 톡을 보낸 뒤 자리를 떴다.
이 상황이 도대체 뭐냐고오~~~
허탈하고 기막힌 마음을 달래며, 이왕 나왔으니 혼자 점심 먹고 내가 좋아하는 서울공예박물관에나 들렀다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인사동 쪽 초입에 있는 북촌칼국수에서 떡만둣국을 시키고 앉아있는데 그녀에게서 전화가 온다!
오잉? 그새 폰을 택배로 받은겨?
전화를 받으니 그녀 왈,
10시 약속 시간에 나갔다가 30분 기다려도 네가 안 와서 무슨 일인가 걱정하며 집으로 왔더니 그새 폰이 도착해서 전화를 한다고..
하이고 이 사람아, 10시 아니야~~ 10시 반 약속이잖아.
글고 겨우 30분 기다리고 갔니? 난 1시간 반 기다렸어.
글게 폰 찾은 뒤 만나쟀더니 이게 뭐니.
약속 내용은 카톡에 적혀 있지만 폰이 없으니 어디 메모라도 해뒀어야지.
내가 힘들고 화가 나니까 말이 곱게 안 나갔다.
그녀는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며 지금 다시 나오겠다고 한다.
됐어, 나 집에 갈 거야.
그랬더니 의정부로 온다고 한다. ㅎㅎ
오지 말라고 다음에 보자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후회가 된다..
사실 친구도 잘못은 없지.
나를 빨리 보고 싶다고 해서 폰 없이도 약속 안 미루고 강행한 거고
10시로 착각했을 망정 자기 딴에는 제 시간에 나와서 30분 기다렸는데..
내가 말을 곱게 못했으니 얼마나 미안했을까..
나는 왜 이리 발끈하는 성질머리를 못 고치는 걸까..
잠시 후 그녀에게서 커피 교환권과 함께 사과 톡이 왔다.
에구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바로 나도 사과 톡을 보냈다.
그랬더니 또 그녀에게서 톡이 왔다.
에궁ㅠㅠ 이 톡을 보니 넘 맘이 아프네..
친구야, 내가 발끈해서 넘 미안해ㅠㅠ
그녀, 오랜 별거 끝에 최근에 이혼했지만, 이런 약한 소리 할 필요 없는 멋진 여인이다.
교장으로 퇴임했고 두 아들 잘 키웠고 재정적으로도 튼실하다.
상당히 머리가 좋고 예쁜 얼굴에다 굉장한 동안이고 건강하다.
그런 네가 뭐가 꿀린다고 왜 이런 소리를 하냐.. ㅠㅠ
나는 뭐라 길게 쓰기도 조심스러워서 짧게 톡을 보내고 마무리를 했지만, 서울공예박물관을 둘러보는 동안에도 계속 마음이 쓰였다.
그렇지만 내가 걱정할 필요는 없지.
그녀는 똑똑하고 믿음 좋고 건강하니 내가 염려 안해도 돼,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친구야 우리 건강하게 여름 잘 보내고 선선해지면 만나자.
내가 가끔 전화할게.
20대 초반 서로의 싱그럽던 모습을 기억하는 소중한 내 친구,
고맙고 사랑해..
우리 그저! 건강만 하자!
그렇게 길게 종종 보면서 늙어가자!
(귀가길 전철 안에서 이 글을 쓰다가 내릴 역을 놓치고 다음 역에서 내려 글 마무리합니다.
이제 반대 방향으로 가는 전철을 타러 갑니다. ^^)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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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달항아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06 ㅎㅎ 맞바람 맞네요.
쉽게 파르르~~ 했다가 이내 폭 꺼지는 저와 달리,
그 친구는 아주 침착하고 감정 통제를 잘해요.
어제 일이 저는 스스로 부끄럽지만 그러한 제 성격 또한 친구가 이미 이해하고 있는 바이니 고맙지요.
어제는 날이 좋아서 무사히 만나서 같이 다녔으면 참 즐거웠을 텐데 아쉬워요.
정아님 감사합니다. 평안한 저녁 되시어요. ^^ -
작성자수피 작성시간 26.06.08 제 본명이 *란이라서(?) 울달쌤 글을 특별한 느낌으로 읽었습니다.
저의 경우 작년에 30년 넘게 정을 나누며 살던 사회 친구와 전화 한 통화로 만정이 떨어져 그 동안 나눠왔던 우정이 한 순간에 휴지통에 버려진 휴지조각처럼 버려진 일이 있습니다.
그 친구 집 근처에 동료랑 갔다가 제가 친구에게 전화를 했었는데 황당하게 화를 내며 받았던 통화 이후 우리 관계는 소원해 졌습니다.
울달쌤과 친구 분의 넓은 아량에 잔잔한 감동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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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달항아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07 에구, 저는 그저, 쉽게 열받고는 바로 식는 그닥 바람직하지 못한 성격의 소유자일 뿐이예요.
아량, 그런 거하고는 거리가 있어요. ㅎㅎ
세상사가 대부분, 쌓아올리기는 어려워도 허물어지는 것은 잠깐이더군요.
인간관계도 마찬가지고요.
고우신 수피 언니 정다우신 말씀 감사합니다.
평안한 밤 되시어요. ^^ -
작성자칼라풀 작성시간 26.06.07 힘들었지만 서로의 입장을
분명히 뱕히고 오해도 풀고
역쉬~~
오랜친구가 좋은가 봅니다
오랫동안 기다림에 다리와
허리도 불편했을듯 싶은데
아프지 않게 다리와 허리를
잘 다독여 주시고
늘~
건강하고 행복한 날만 이어가길
바랍니다..
저도 이 나이 쯤 되니
소중한것중 건강이 제일 이라는걸
알기에 ..
제몸도 소중히 생각하고 사랑하려
합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내려 고생
했으니요..
달항아리님~
편안한 주일 보내시고
맛냐음식으로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창밖에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달항아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07 제가 확실히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아서,
그저께 힘들었던 영향이 어제, 오늘까지 가네요.
허리 다리 무릎 발목이 다 좀 이상한 듯하고 많이 피곤해요.
초저녁에 하도 힘들어서 잤더니 이렇게 심야에 잠 못들고 있어요.
건강이 제일이지요. 그렇고 말고요.
우리 예쁜 칼라풀님도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십시다요.
감사해요. 평안한 밤 되시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