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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반야봉에 올라 한 친구를 생각하다

작성자유현덕|작성시간26.06.14|조회수392 목록 댓글 15

 

토요일인 어제 지리산 반야봉을 다녀왔다. 지리산을 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남한 최고의 산답게 지리산은 수많은 봉우리가 있다.

지리산 3대 봉우리는 천왕봉, 반야봉, 노고단이다.

 

지금은 성삼재까지 도로가 생겨서 지리산을 예전보다 쉽게 오를 수 있고 그만큼 반야봉 코스도 짧아졌다.

반야봉은 지리산 능선길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어서 종주 산행을 하는 사람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반야봉은 마음 먹고 올라야 하는 봉우리다. 어제 내가 오른 반야봉 높이는 설악산보다 더 높다. 설악산 대청봉은 1708m, 지리산 반야봉은 1732m다.

반야봉을 오를 때면 생각나는 한 친구가 있다. 그래서 오늘은 반야봉 등반기에 보태서 오래전의 이야기를 소환해 본다.

 

80년대 중반 한 친구와 함께 지리산을 올랐다. 성삼재 도로가 생기기 전이라 지리산 들머리는 화엄사였다.

노고단을 오른 후에 반야봉 쪽으로 걸었다. 능선에 이르자 흐린 날씨가 비로 바뀌더니 갑자기 폭풍우로 변했다. 산에서는 비보다 바람이 훨씬 악천후다.

 

비옷을 꺼내 입었으나 이미 바지와 신발은 빗물로 흥건했다. 잠깐 지나갈 소나기가 아니었다.

더욱 세차게 내리는 장대비를 일단 피해야 했다. 마침 큰 바위 하나가 보여 그 아래 바짝 서서 비를 피했다.

 

이 돌발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가 막막했다. 대피소라도 있으면 들어갈 텐데 한참을 더 가야 만날 것이다.

그때 친구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바위 뒤편을 여기저기 살피더니 나무 사이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놀랍게도 바위 뒤편에는 아주 넓은 공간이 있었다. 동굴은 아니고 커다란 바위 아래 쪽이 움푹 들어간 곳이었다.

텐트 두 개를 칠 수 있는 넓이쯤 되려나? 얼마전까지 누군가 머물렀는지 안쪽에는 불을 핀 흔적과 함께 나무 삭정이가 한 묶음 놓여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 텐트를 치고 하루 머물기로 했다.

당시는 국립공원에서도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산행 때면 바리바리 짊어진 배낭이 엄청 무거웠다.

텐트와 침낭, 돗자리는 물론이고 쌀과 김치, 양파를 비롯한 채소 등과 통조림 같은 부식까지 챙겨야 했으나 그 부피와 무게를 알 만하다.

 

텐트를 치고 석유 버너를 꺼내 밥을 지었다. 문제는 물이었다. 지리산 능선 곳곳에 샘물이 있긴 했으나 이 세찬 비를 뚫고 물을 구하러 가는 것은 무리였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바위 옆으로 돌아가니 바위 틈에서 흐르는 샘물이 있었다. 아마도 빗물이 절반일 테지만 그런 거 가릴 처진가.

 

그 물을 코펠에 받아 쌀을 씻고 김치찌개를 끓였다. 꽁치 통조림을 넣은 김치찌개 냄새가 허기진 배를 더욱 자극했다.

젊으니까 가능했겠지만 힘들게 바리바리 짊어지고 온 것이 다행이다.

 

쌀밥에 꽁치통조림 찌개가 완전 꿀맛이었다. 친구가 배낭에서 댓병짜리 소주병을 꺼냈다.

이른 저녁을 겸한 산속 소주 파티다. 여름임에도 비 때문에 약간 으슬으슬해서 한쪽에 장작불을 피워 젖은 신발을 말렸다.

 

서로 술잔을 주고 받으며 밤이 깊도록 많은 대화를 나눴다. 여친 이야기며 문학에다 당시의 암울한 시국 상황까지 꼬리를 물면서 이어졌다.

둘 다 병역을 막 마친 후여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했을 것이다. 그 친구는 그해 가을 학기에 복학을 할 예정이었다.

 

술 파티가 끝나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한밤중에 요기를 느껴 깼다. 텐트 밖으로 나오니 친구가 앉아 있었다.

밤 사이 비바람은 말끔히 그쳤고 새벽달이 떴다. 반달이지만 조금씩 작아지는 하현달이다. 친구는 그 달을 보면서 울고 있었다.

 

"너 우냐?"

"응, 달 보니 그냥 눈물이 나네."

당시 친구는 헤어진 여친 때문에 괴로워했다. 아마도 달보다 떠나간 여친이 아쉬워서 더 눈물이 났을 것이다.

반대편의 까만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히 박혀 있었다. 아! 저토록 선명한 별이라니,, 나는 달보다 너무나 선명한 은하수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날이 밝은 후 우리는 반야봉을 올랐다. 여름 휴가철임에도 전날 비바람 때문인지 아무도 없었다.

친구와 나는 반야봉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지리 능선을 한동안 바라보며 대자연의 위대함을 만끽했다. 그날 우리 두 사람이 반야봉을 온전히 전세를 낸 셈이다.

 

원래는 지리산 종주를 하기로 했던 계획이었는데 내가 그만 발목을 삐끗했다.

뼈가 부러진 것은 아니지만 발목이 시큰거려서 더 이상 산행은 무리였다.

 

결국 천왕봉은 다음에 오르기로 하고 화개재에서 뱀사골로 하산을 했다. 친구가 나무로 지팡이를 만들어 줘서 그것을 짚으며 내려 왔다.

하산 길에 친구는 나를 부축하면서 내 배낭까지 짊어져야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어제 반야봉에서 본 지리 능선, 오른쪽이 노고단이다.

친구는 서른 살에 죽었다. 자동차 사고였다. 그때만 해도 자동차 보급율이 낮아서 차를 소유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모범생인 내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했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미래가 기대되는 참신한 중견기업이었다.

 

몇 년 직장 생활 끝에 새로 사귄 여친과 약혼도 했다. 동무들 몇 명이 모여 그의 결혼식을 계획하기도 했다.

누구는 함을 팔고, 누구는 사회를 보고, 누구는 축가를 부르고, 그러나 결혼식 3개월을 앞두고 그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화물차에 받혀 친구는 현장에서 죽었다. 신기한 것은 옆자리에 있던 예비 신부는 크게 다치지 않고 살았다는 것이다.

친구 엄마는 실신을 했고, 여덟 살 많은 큰형이 동생 영정 앞에서 절을 하면서 울었다. 나도 멘붕 상태에 빠져 멍한 눈으로 그저 영정 사진을 바라볼 뿐이었다.

 

장례식 후에 친구 엄마는 고사를 지내지 않아 사고가 났다고 했다. 당시 새로 자동차를 뽑으면 고사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친구는 무슨 그런 미신을 믿느냐며 엄마의 의견을 그냥 웃어 넘겼다고 한다. 결혼을 약속했던 여친도 어디론가 떠났다.

사고를 낸 화물차 운전자는 친구의 과실이 더 크다면서 배째라는 식으로 나와 친구 가족들의 울분을 샀다.

 

노고단과 반야봉만 오르고 내려온 그날 이후 무슨 일 때문인지 그 친구와 천왕봉을 오르자고 했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친구는 복학 후에 공부에 매진을 했고, 대학 4학년 때 미리 취업이 되어 직장에 적응하느라 바빴을 테고, 여자 친구와 연애하느라 산에 오를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다른 친구들과 지리산 종주를 하고 나서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을 할 때도 수고했다는 격려를 할 뿐이었다.

장례식 때 영정사진을 보며 나는 다짐을 했다.

"친구야, 너를 오래오래 기억할게"

 

그러나 말로만 그랬다. 절친이었다 해도 밥벌이를 하느라고 그를 잊고 살았다. 망각이란 이토록 무섭다.

다른 산은 부지런히 다녔으면서 이 친구 생각 때문이었던지 한동안 지리산을 가지 않았다.

 

 

나는 오랜 해외생활을 하다 영구 귀국을 했고 2019년 거의 30년 만에 반야봉을 갔다. 잊고 있던 친구가 생각났다.

이날 반야봉에 올라 새롭게 다짐했다. 해마다 한 번은 반야봉에 오르겠다고,, 이후 코로나 때 빼고는 매년 반야봉을 오른다.

어제가 그날이었다. 때 이른 더위에도 정상에 서니 약간 쌀쌀했다.

 

달도 별도 어두울수록 더 선명하게 보이는 법, 그래서 내 친구의 짧은 일생이 더 빛나는 것인가.

후손 하나 남기지 못하고 간 사람이 어디 그 친구뿐이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늘 이 친구의 일생이 안타깝다.

 

살았으면 나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며 사회에 이바지했을 것이다.

밥이나 축내고 사는 나 같은 사람은 이토록 오래 살고 재주 많은 그는 빨리 갔다. 지리산에 가야 생각나는 친구라면 자주 오를 생각이다.

그리고 나는 좀 더 오래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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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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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칼라풀 | 작성시간 26.06.16 아스라히 사라져 가는 기억들이
    반야봉을 통해서 이렇듯 소환되었군요..

    존재하는 것들은 반드시 사라지게 되는
    그 이치를..
    허나 인간다움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유현덕님의 반야봉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글 즐감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유현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6 산을 사랑하는 분이여서일까요.
    칼라풀님 댓글에서 언뜻 문향이 느껴집니다.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가 아름답다는 어느 수필가의 문장도 생각나구요.

    반야봉이 발음도 예쁘지만 지혜의 뜻을 담고 있다고 하더군요. 망각하고 살다가도 반야봉에 가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니 오래 살고 싶은 마음입니다.
    칼라풀님, 항상 좋은 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 답댓글 작성자칼라풀 | 작성시간 26.06.16 유현덕 맛점하세요^^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동연 | 작성시간 26.06.17 발이 아닌 두 바퀴로 갔던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정령치

    벗을 기억하며 오르는 반야봉
    슬퍼서 아름다운 초록이
    비처럼 내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친한 분 부부가
    겨울 산행을 갔다가
    남편이 실족하여 뇌진탕으로 운명

    30대 중반부터 혼자 사는 그 분의
    삶이 힘겨워 보여
    산 정상에 가지 않습니다

    글쎄요
    꼭 그것 만은 아닐지 도요

    추천 꾹
  • 답댓글 작성자유현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7 동연님 다녀 가셨군요.
    저는 가보지 못한 정령치인데 동연님은 자전거로 가셨나 봅니다.
    꽃은 가까이서 봐야 더 예쁘다는 말이 있지만 지리산 자락처럼 때론 멀리서 보는 풍경이 더 오래 남기도 합니다.

    슬퍼서 아름다운 초록이 비처럼 내렸을지도 모른다는 이 대목에서 그만 심쿵합니다. 생명의 길이 여부를 떠나 한 사람의 생애에는 각각의 우주가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에서 겪은 지인의 슬픔 때문에 산 정상에 가지 않는 그 마음 또한 우주의 일부일 터지요.
    공감해주신 동연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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