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성적으로 개를 좋아한다. 내가 엄마 젖을 먹을 때부터 우리집에는 개가 있었기에 나는 개를 보면서 컸을 것이다.
우리집 개는 족보를 알 수 없는 누런 잡종 똥개였는데 복구라고 불렀다. 근본이 없기로는 나도 마찬가지여서 나는 복구와 잘 통했고 친구처럼 친하게 지냈다.
엄니가 기억하기를 복구는 나보다 한 살이 많거나 동갑이라고 했다. 복구는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때 동네 아저씨한테 끌려가 죽었다.
엄니가 복구를 아저씨한테 넘긴 것은 너무 늙었다는 이유였다. 부엌 아궁이 앞에다 똥을 싸기도 했는데 엄니는 복구가 노망이 나서 그런다고 했다.
엄니는 어쩔 수 없이 이웃집 아저씨한테 공짜로 복구를 데리고 가라고 부탁했다. 그 뒤에 복구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와 복구가 없어진 걸 알고 나는 마당에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종일 밥도 안 먹고 울었다.
비록 똥개였지만 복구는 근본 없는 나한테 충성을 다했다. 주인이 워낙 가난했기에 좋은 음식인들 먹었겠는가.
식구들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나 생선 뼈와 대가리 등이 복구의 밥이었다. 내가 아기였을 때는 내 똥도 먹었을 것이다.
변변한 개집도 없어서 복구는 마루 밑이나 부엌 나뭇짐 아래 짚풀 위에서 잠을 잤다.
이런 열악한 복지환경에도 복구는 집을 나가지도 않았고 절대로 배신을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껑충껑충 뛰면서 나를 반겼다.
나는 지금도 동네 아저씨한테 끌려가 생을 마친 복구의 12년 일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개라는 단어를 주로 나쁜 쪽으로 써왔기에 그렇지 인간과 가장 친근하게 지낸 짐승이 개다.
닭이나 오리, 염소한테 백날 먹을 거 줘 봐라. 절대 곁을 안 준다. 음식 주면서 만지려고만 해도 먹다 말고 달아난다.
그것은 서커스단에서 길들인 코끼리나 곰도 마찬가지다. 훈련이 되어 고분고분 말을 듣는 것일뿐 인간에게 곁을 주는 것은 아니다.
반갑다고 꼬리 흔드는 유일한 짐승이 개다.
내가 개를 워낙 좋아해서 그런가? 이상하게 개띠와도 궁합이 잘 맞는다. 내 친구의 형이 개띠인데 그 분이 그랬다.
"너는 희한하게 나하고 아주 잘 맞아."
내가 일부러 구별을 하거나 맞추는 것이 아님에도 그렇다. 코드가 잘 맞아서 친해졌는데 나중에서야 그 사람이 개띠임을 알고 놀랄 때도 있다.
엊그제 지리산에 갔다 내려오던 중에 만난 개다. 딱히 지킬 것도 없는 시골 어느 농가 앞에 묶여 있었다.
아직 철이 없는 개라 아무한테나 꼬리를 흔들며 반가움을 표했다. 뒷편에 핀 접시꽃에는 관심이 없고 지나가는 나에게 호기심을 잔뜩 보인다.
이토록 순진한 이 강아지도 내년에 나를 보면 도둑놈으로 여기고 막 짖어댈지도 모르겠다.
문득 내 어릴 적 친구였던 복구가 생각났다. 밥그릇에 먼저 눈이 갔다. 복구의 밥그릇은 찌그러진 양은 냄비였는데 얘는 비싼 후라이팬이다.
매일 달걀 후라이나 양식이라도 먹나? 종일 묶여 있을 테지만 그것이 운명인 줄 알고 주인에게 순종할 것이다.
이 강아지는 빨리 자라 외부인이 오면 컹컹 짖는 일이 밥값을 하는 것일 터, 나는 그냥 지나가지 못하고 잠시 눈길을 보내다 자리를 떴다.
개 좋아하는 것도 병이련가. 오는 내내 강아지 모습이 어른거렸다.
지난 겨울에 (2026년 1월) 북한산 갔다가 원효봉에서 만난 개들이다. 동무 몇과 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는데 개들이 하나둘씩 모여 들었다.
나는 안쓰러운 생각에 먹던 컵라면을 남겨 내밀었다. 흠칫 놀라면서 뒤로 물러섰던 강아지가 슬그머니 와서 먹는다.
오랜 기간 사람 손길에서 벗어난 들개의 속성이다. 이들에게도 서열이 있는지 센 놈이 먼저 먹는 동안 나머지는 구경을 한다.
주인이 내다 버렸던지 아니면 스스로 집을 나왔던지 북한산에는 들개들이 많다.
집 나온 들개와 고양이들이 북한산 생태계를 파괴한다고 하지만 이것도 다 사람이 저지른 일이다.
여름에는 덜 보이다가도 먹잇감이 없는 겨울에 유독 사람들 주변을 배회하며 생존 본능을 발휘한다. 잡히지 않고 배를 채우는 것이 이들의 생존 방식이다.
개에 관한 시 하나를 옮긴다. 앞선 글과 사진은 어쩌면 이 시를 소개하기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예전에 오일장마다 나타났던 약장수가 항상 원숭이 재롱을 맨 마지막에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매일 시를 읽고 때론 시에서 인생을 배운다. 마음 가는 시를 만나면 노트에 필사를 하는 것이 오랜 나의 습관이다.
옮길 때도 한 문장씩 낭송을 하면서 적는데 마치 마음에 새기듯이 시가 훨씬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개 - 이명
주인은 나를 차에 태우고 먼 길을 와
산기슭에 두고 갔다
몇 번을 짖으며 쫓아갔지만
끝까지 따라가지 않았다
나는 주인을 알고 있다
주인의 사랑을 기억하고 있다
더 크게
무위자연이 되라는
주인의 마음이 읽히기 때문이다
산은 높았고 나는 산을 지키기로 했다
*이명 시집/ 개/ 문창/ 2025
이 시를 쓴 이명(李溟) 시인은 1951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경영학을 전공했다. 오랜 기간 굴지의 기업에서 근무하며 법벌이를 했다.
평생 가슴에 품고 살던 시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2011년 환갑 나이에 등단을 했다. 이후 여덟 권의 시집을 낸 중견시인이 되었다.
독자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무명 시인이지만 용케 나의 시 그물망에 들어왔다. 이명이란 이름도 본명이라고 한다.
한학을 했던 아버지 때문에 삼형제가 전부 외자 이름을 가졌는데 예술가 집안으로도 유명하다.
시집 제목을 개로 지은 것도 아주 인상적이지만 이 시 한 편 만으로도 시인의 내공을 짐작할 수 있다.
간결한 시 속에서 개가 품고 있는 은유와 풍자, 이것 또한 세상을 사랑해야만 나올 수 있는 싯구일 것이다.
나 또한 개도 시도 나 자신도 사랑하며 살 것이다.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유현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8 케빈님 대단하시네요. 고양이가 11마리면 돌봐야 할 일이 엄청 많을 겁니다.
냥이가 강아지보다는 손이 덜 들어간다고는 해도 숫자가 있는 만큼 수고가 만만치 않겠네요.
동물 선호하는 것에도 호불호가 있지요. 개는 좋아하면서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또 오직 고양이만을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구요.
우리집 근처 체육공원에도 길고양이가 여럿 사는데 얘들 돌보는 여성분이 있답니다. 사료도 가져다놓고 비싼 통조림도 먹이곤 하데요.
저는 동물을 사랑하지만 이렇게까지는 못한답니다. 케빈님의 동물 사랑에 박수 보냅니다.
-
작성자골드훅 작성시간 26.06.18 내가 개띠라서 만나면 그렇게 반겨 주셨나요? ㅎㅎ
-
답댓글 작성자유현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8 ㅎㅎ 그걸 어찌 알았을까요
항상 유쾌 활달하시니 저절로 말을 건네고 싶어진답니다. 사람 간에 일방소통이란 없지요.
그만큼 골드훅님이 소통 대장이란 뜻입니다.ㅎ
-
작성자동연 작성시간 26.06.19 대문 없는 집을 굳건히 지키던 복실이
갈색 털에 두 눈두덩 위에
검은 점이 박힌 꽤 영리하던 그 녀석
어느 산 언저리에서 잡았는지 토끼 한 마리를
부엌 앞에 잡아다 놓고 엄마를 바라보던
토끼 볶음을 해서 큰 양푼에 복실이 몫을 퍼주고도
온 가족이 나누어 먹었던 두어 번의 기억
한여름 마당에 돗자리 깔고
웃고 떠드는 우리 옆을 지키던 복실이
그날 밤 쏟아질 듯 빛나던 별처럼
아직도 살아있는
시를 사랑함은 명치 저리면서도
멈추지 못할 배 한 척 띄우는 것
생명체를 사랑하는 것 또한
허공에 그리움 한 덩이 매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
추천 꾹 -
답댓글 작성자유현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9 동연님의 강아지 이름이 복실이였다니 우리 복구와 항렬이 같은 이름이라 반갑습니다.
산토끼까지 잡았다니 사냥개 실력을 발휘한 셈이네요. 복구가 토끼는 못 잡았으나 광에 드나드는 쥐는 가끔 잡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시를 사랑함은 명치 저리면서도 멈추지 못할 배 한 척 띄우는 것이란 문장에 오래 눈길이 머뭅니다.
동연님의 시를 향한 마음 또한 범상치 않음을 알게 합니다. 공감 백배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