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마지막 날, 오늘의 꽃은 이름대로 황금 잔을 닮은 금잔화다.
그런데 이 금잔화의 꽃말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비애'와 ‘이별의 슬픔’이다.
가을은 이별의 계절이고 더구나 마지막 날이라 꽃말을 그리 정했나?
하여튼,모든 아름다운 순간은 결국 끝을 향하는 것이고 이날이 지나면 꽃들도 없을테지.
문득, 김수영과 신경림의 시에 나오는 '움직이는 비애'가 생각난다.
비(雨)/ 김수영
비가 오고 있다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명령하고 결의하고 '평범하게 되려는 일' 가운데에
해초처럼 움직이는 바람에 나부껴서
밤을 모르고 언제나 새벽만을 향하고 있는
투명한 움직임의 비애를 알고 있느냐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후략)
파장(罷場) / 신경림
장이 걷히고 난 뒤의 장바닥은 한결같이 쓸쓸하다.
물건들의 냄새 사람들의 흥정이 사라진 먼지 묻은 자리
어딘가 구부리고 앉아 흐릿한 눈으로
나를 보는
언제나 움직이는 비애를 본 듯
나의 목덜미를 쏘아본다.
나는 슬퍼하지도 노여워하지도 않는다.
내가 세상에 나올 때부터 나의 슬픔과
노여움은
그만큼씩 미리 정해진 듯 보릿고개보다
더 길게 내 앞에 와 닿아 있는 것을.
(전문)
금잔화의 꽃잎이 바람에 흔들릴 때 꽃잎의 떨림도, 짙은 주황색도 곧 사라질 존재를 증명하는 듯 '움직이는 비애'를 보여준다.
우리가 겪는 슬픔이나 이별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가는 절기처럼, 기억의 파편처럼, 혹은 잠 못 이루게 하는 습관처럼 움직이고 있다.
금잔화의 밝은 색채는 삶의 가장 환한 순간, 가장 눈부신 풍경 속에서 문득 튀어나와
우리의 목덜미를 쏘아보는 눈빛처럼 날카롭게 우리를 응시하는 것이다.
금잔화의 색깔이 그 비애를 덮기 위한 위장인지, 비애를 겪어낸 후 피어난 치유의 빛깔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작은 꽃이 우리에게 슬픔이란 결코 고여 있지 않고, 언제나 우리의 삶 속에서 꿈틀거리며 우리를 성장시키고 또 괴롭히는 역동적인 것임을 상기시켜 준다.
위의 두 시인도 비애는 정적인 감정이 아닌, 변혁과 실천의 동력이 됐든,냉철한 현실 인식과 숙명의 인식이 됐든
끊임없이 지속되고 변화하는 동적인 상태로 인식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 10월이 다 가는 가을 앞에 멈춰 서서,
그 밝은 꽃잎 속에서 춤추고 움직이는 비애를 바라보는 것이다.
금잔화가 우리에게 건네는 지금의 위로.
여러 버전 중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김소연을 붙인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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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지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5.11.02 딴은...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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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아녜스 작성시간 25.11.01 저는 금잔화 꽃을 보면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라
생각했습니다 .
꽃말이 "슬픔, 비애,"였군요 .
저는 어렴풋이 소설 '금잔화'란 제목의 책을
읽어 본것 같기도 해요 . 중국 소설이었던가 ...? -
답댓글 작성자지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5.11.02 영어로 메리골드죠.
이꽃이 제목인 소설이 몇 있죠. -
작성자나무랑 작성시간 25.11.01 아 아쉽네요 10월 마지막 날 읽었어야 하는데ㅠㅠ
이름도 화려한 금잔화의 꽃말을 보시고 움직이는 비애와 슬픔의 정의를 찿아 낸 그 상상력과
추리력이 아가사 크리스티 뺨치시는 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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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지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5.11.02 핫참..무슨 추리소설은요..ㅎㅎㅎㅎ
움직이는 비애란 우리나라 시의 중요 키워드라 알고 있었을뿐...
가차하고,오마쥬하고 더러 그랬지요.
신경림도 김수영을 그리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