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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상

겨울꽃 이야기

작성자아녜스|작성시간26.01.16|조회수203 목록 댓글 31


캘리포니아의 겨울은 가끔 계절을 잊은 듯 뜨겁다.

한동안 비가 내리더니 요 며칠은 겨울답지
않은 무더운 날씨다.

세상이 너무 혼란스러워서인지
계절도 경계가 허물어지나 보다.

 

내 뜨락의 ‘겨울꽃’만큼은 제 시간을 잊지 않았다.

매년 이맘때면  하얀 꽃을 피우더니 올해도 어김이 없다.

벌들이 사라져 가서 걱정이란  뉴스를 들은 적이 있는데

올해는 유난히 많은 벌들이  우리 집에  몰려왔다.

 

초록빛 두툼한 잎사귀 사이로 별을 닮은
하얀 꽃송이들이 은하수처럼 내려앉았다.

재작년 이즈음에  이 꽃을 보며  '겨울꽃 '이라

이름을 지어 줬다고 글을 썼었다 .

(삼삼오오 행시방 )

 

어제는 제대로 된 이름을  알고 싶어  검색을 해 보니

크라슐라  오바타 (Crassula ovata)라고 하고 

한국명은 '염좌  ' '화월'이라고 나와 있었다.

예쁜 이름 '화월 '이라고도 가끔 불러 줘야겠다.

꽃말이 '풍요' 라고 한다 .

 

올해는 유독 꽃이 풍성하다.

기특하고 대견한 마음으로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꽃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낮게 드리워진
가지에 시선이 머문다.

화려한 꽃 잔치가 끝나고 나면,

나는 저 무거운 가지들을 속속들이 잘라내야 할 것이다.

식물의 다음 생을 위해,

그리고 나무 본연의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지만,

온 힘을 다해 꽃을 피워낸 가지를 쳐내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지난가을에 실외 페인트 칠을 할 때  잘라 낸 가지를  

여러 곳에 심어 놓았기에 우리 집에는 자리가 없다.

입이 도톰해서   한 여름에도 잘 견디고 

잘라진 가지를 땅에  꽂아 만 놔도 살아난다.

한때는 너무 쉬운 화초라서  그리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몇년을  자라야  꽃을 피울 수 있고

밤이 긴  계절에  꽃이 핀다는   상식을 안 이후로

하얀 그 꽃들이 너무나 귀하게 여겨졌다.

눈이 오지 않는 이곳에서  눈인 듯 , 은하수인 듯

겨울밤에 어울리는 꽃이다.

 

 

잘려 나가야만 하는 가지들을 바라보니
딸네 집 공간이 많은 화단이 떠 오른다 .

이 미안한 마음을 툭 잘라내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새로운 생명의 시작으로 바꾸어보고 싶다.

잘려 나간 가지들은 딸네 뜰의 흙 속에
다시 뿌리를 내리게 해야겠다.

나는 해가 갈수록 정이 드는 이 겨울꽃의 줄기가

딸의 집 앞마당에서 다시 별 같은 꽃을 피워내겠지.
가지가 무거워진 것은 어쩌면 나눌 때가 되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내 뜰에서 넘치게 피어난 행운과 풍요를

딸의 일상으로 옮겨 심어주는 일.

그 애들이 나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지 모르지만 

내가 주는 사랑 징표의 하나다.

우리 뜰에 무성하게 자란 '산세베리아'도   그 애들의 

집으로   나누어져서 잘 자라고 있다.

좀 있으면 네 살이 되는 손자랑 그것을 심고 물을 주며

그 순간이 나는 참으로  행복했었다 .

그것들은 뿌리를 내리고 잘 살아내고 있다.

 

이 꽃이 지고 나면 나는 가위를 들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별이 아니라 또 다른 만남을
위한 약속이다.

그런데  그 가지들은  그곳에서 몇 년이 지나야

꽃을 볼 수 있으니

'염좌 ', '화월 ', '겨울꽃'은  기다림을  가르쳐 준다.

 

캘리포니아의 더운 겨울바람을 타고,

별을 닮은 꽃의 향기가  퍼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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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아녜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1.18 맞습니다 .
    오래 묵어야 꽃이 핀다네요 .
    수피님도 꽃사랑이 많으시지요 .
    오늘 화단 정리를 좀 하면서 할 일이 참 많은데
    게으름 피고 사는것을 반성 했답니다 .
  • 작성자나이컨 | 작성시간 26.01.17 아녜스님 반갑습니다
    매일 비가오는 우리동내는
    겨울이라기 보다는 젖은 동내라고 해야 좋을듯 하군요.
    은퇴를 할 나이는 지났으나 일은 계속하니 비가온들
    큰 문제는 없다만 은근히 사철 쨍한 날씨를 보이는 동내가
    부러워지네요.
  • 답댓글 작성자아녜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1.18 저도 반갑습니다 ~ 나이컨님 .
    그곳도 겨울에 비가 많이 오는군요 .
    젖은 동네 ~ 자칫하면 우울해지기 쉬운데
    아직도 열심히 일하시니 역시 '능력자'
    이시고 좋아 보입니다 .
    저도 햇빛 쨍쨍한 이곳이 맘에 듭니다 .
  • 작성자푸른비3 | 작성시간 26.01.21 별을 닮은 화월이 집안을 환하게 하는군요.
  • 답댓글 작성자아녜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1.21 늦은 댓글을 화월에게 전해 줄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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