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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상

옛 동네

작성자해솔정.|작성시간26.03.22|조회수231 목록 댓글 18

국민학교 4학년 무렵 대구에서 헤어진

아버지를 중학교 2학년 겨울 방학때

서울에서 만났다.

아버지 청으로 큰집 오빠가 데려다 줬다.

 

아버지가 다니시던 회사 부근에서 만났는데 나를 지긋이 바라 보시며 왔구나..

하셨다.

 

버스를 타고 아버지 집으로 갔다.

번화가를 벗어나서 컴컴한 외진길을 한참

달려서 그 동네에 도착했다.

 

아침에 동네에 나가보고 나는 실망했다.

여기도 서울인가..싶게 낡고 허름한 동네

였다.

아버지 회사가 있던 번화가 처럼 서울은

다 그런줄 알았다. 그래야 했다.

 

큰길에서 약간 내려 오는곳 넓은 마당이

있는 그 집에서 나는 청소년기를 보냈다.

 

주변에 새집들이  하나 둘 들어 서면서 

아버지는 단층인 그집에 이층을 올리셨다.

더 나중엔 다락방 같은 복층을 올려 서재로 쓰시고 일층은 세를 놓았다.

 

건축업자 셨던 아버지가 최초로 지은 당신

집인 셈이다.

 

아버진 수퉁맞게 마당에 잔디를 심어서

나를 잔디 깎는일을 돕게 하셨다.

내 손바닥엔 그때배긴 굳은살이 남아있다.

 

나는 그 동네서 많은 이웃들을 만났다.

 

나를 딸처럼 예뻐 하셨던 만화방 아줌마.

모 잡지사에 다니던 멋쟁이 반장집 언니.

나를 과외지도 했던 대학생 ㅅㅅ이 오빠.

누나와 단둘이 살면서 밤무대서 기타를

쳤던 ㅁㅅ이.

 

종로에 있던 모 타이어 회사 경리사원인

ㅇㄹ이는 대학생 흉내를 내고 다녔다.

가업인 농사일을 거들면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던 ㄱㅅ이.등등.

 

그 다정한 이웃들이 내 결핍된 부분을

채워줬다.

 

언젠가 가본 그 동네는 콘크리트 숲으로

변해있어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갔다.

 

놀랍게도 큰길가에 있던 목욕탕이 그 상호

그대로 있어 어림 짐작해서 옛 집터를

더듬어 봤다.

 

그리고..

내가 그랬듯이 모두들 떠나고 없는 옛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보려 했었다.

부질없는  짓이란걸 금방 알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볼수 있는 거리에

있지만 다시찾을 필요가 없어진 동네..

방화동이다.

 

아래 태리우스님 글에 등장한 동네에

필받아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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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해솔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3.22 동네에서 김포가 가까워서 종점
    부근은 시골 스러웠어요.
    좋은 이웃들이 있어 정붙이고 살았지요

  • 작성자다저스 | 작성시간 26.03.23 저도 서울와서 처음 살던 이화여대 서문 옆 골목길에 있었던 우리 옛집을 가 보고 싶네요.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합니다 ㅡ이젠 저도 옛추억을 생각해보는 나이가 되었네요ㅡ 지금까지 태풍과 소나기가 지나간 후 다가오는 고요함이 추억을 소환하네요 ㅡ
  • 답댓글 작성자해솔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3.24 다저스님 자서전에서 이대 부근에
    사셨다는 글 봤어요.
    대흥동 ?골목안에 제 친구도 살았어요.
    비슷한 경험으로 추억소환 해주셔 고맙습니다.^^
  • 작성자이베리아 | 작성시간 26.03.25 해솔정님,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대구에서 사셨군요.
    서울로 불러 주실 아버지가 계셨다는
    것도 부럽습니다.
    마당 넓은 집도 부럽고요.
    한동네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
    아름다운 추억이네요.
    작녀 가을에 제가 살던 고향에
    가봤더니 전혀 다른 동네가
    되어 있더군요.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
    해솔정님, 글 잘 읽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해솔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3.26 4학년때만 대구에 살았어요.
    2월 23일에 쓴 대구 신천동을 보면
    연결이 될겁니다.ㅎ
    다정하신 이베리아님 늘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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