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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상

투명한 벽 앞에서

작성자단석|작성시간26.04.04|조회수159 목록 댓글 18

오늘 아침,
비가 내렸다.
세상을 적시는 빗소리는 크지 않았고,
가게 안은 유난히 조용했다.
나는 늘 그렇듯 아침밥 앞에 앉아
무심히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유리창 쪽에서
둔탁하고도 낯선 소리가 들렸다.
순간 숟가락을 놓았다.
짧았지만 이상하게 가슴을 울리는 소리였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예감 같은 것이
먼저 손끝에 닿았다.
서둘러 밖으로 나가 보니
비에 젖은 바닥 위에
비둘기 한 마리가 떨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놀라 기절한 줄 알았다.
아직 숨이 남아 있기를 바랐다.
작은 몸이 미세하게 떨렸고,
젖은 날개 끝이 한 번쯤 허공을 더듬는 듯했다.
살아보려는 마지막 몸짓이었을까.
혹은 끝내 닿지 못한 하늘을 향한
본능적인 미련이었을까.
그러나 그것도 잠시,
비둘기는 곧 움직임을 멈추었다.
참으로 허망했다.
불과 몇 초 전까지
어딘가를 향해 날고 있었을 생명이
차가운 바닥 위에서
너무도 조용히 생을 접어버렸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거리의 사람들은 각자의 걸음으로 바삐 지나갔다.
누구에게는 평범한 아침이었겠지만,
내게는 그 순간
아주 작은 죽음 하나가
하루 전체를 멈춰 세우고 있었다.
유리창은 투명했다.
안에서도 밖이 보이고,
밖에서도 안이 보이는 그 맑은 경계.
그러나 그 비둘기에게
그것은 길처럼 보였을 것이다.
길이라 믿고 날아들었으나
끝내 닿은 것은 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벽이었다.
그 앞에서 문득,
가슴 한쪽이 먹먹해졌다.
우리의 삶도
어쩌면 저 비둘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은 아닐까.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희망을 향해 날아간다.
빛이 있는 쪽으로,
열려 있을 것 같은 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닿을 수 있으리라 믿는 쪽으로
온 힘을 다해 날아간다.
그러나 인생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분명 길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벽이 되고,
희망인 줄 알았는데
끝내 상처가 되어 돌아오는 순간들이 있다.
사람들은 그 벽을
실패라 부르기도 하고,
상실이라 부르기도 하며,
때로는 이별, 좌절, 병마, 혹은 세월이라 부르기도 한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듯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사실은 누구나
자신만의 투명한 벽 앞에서
몇 번쯤 깊이 부딪히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
나는 비둘기 한 마리의 마지막 앞에서
밥 한 술보다 먼저
삶의 무게를 삼켰다.
살아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숨을 쉰다는 것,
아침을 맞는다는 것,
따뜻한 밥 한 그릇 앞에 앉아 있다는 것,
그 사소해 보이는 모든 일들이
실은 얼마나 크고 조용한 은총인가를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자주 잊고 산다.
시간이 늘 내 것인 양,
내일이 반드시 올 것인 양,
곁에 있는 사람이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있어줄 것처럼 살아간다.
그러나 생은
생각보다 연약하고,
시간은
우리가 믿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
비에 젖은 작은 생명 하나가
아무 말 없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오늘을 가볍게 여기지 말 것.
내 곁의 사람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 것.
지금 살아 있는 이 순간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말 것.
비는 한참 더 내렸고,
나는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와
식어버린 아침밥 앞에 앉았다.
하지만 조금 전과는
분명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침은 여전히 같은 아침이었으나
내 마음은 이미
한 번 조용히 비를 지나온 뒤였다.
어쩌면 인생은
거창한 설교나 큰 사건보다
이렇듯 뜻밖의 순간,
이름 없는 작은 생명 하나가 남기고 간 침묵 속에서
더 깊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
비둘기 한 마리의 짧은 비애는
나로 하여금
내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게 했다.
조금 더 천천히 걷고 싶어졌다.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보고 싶어졌다.
조금 더 정직하게 살아야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살아 있다는 것은
결국
더 오래 버티는 일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을
얼마나 깊고 따뜻하게 건너가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비 오는 아침,
투명한 벽 앞에서 생을 마감한 비둘기 한 마리.
그 작은 죽음은 끝났지만,
그 둔탁한 한 번의 충돌은
오히려 내 안에서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울림이 되었다.
마지막 여운 한 줄 (명품형)
길인 줄 알고 날아든 곳이 벽이었음을,
오늘 아침 한 마리 비둘기가 내게 먼저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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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단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4.06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생명들이
    부디 제 몫의 하늘과 시간만큼은
    무사히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제 가슴에도 잔잔한 울림으로 남습니다.
    고운 글 감사합니다.
  • 작성자수피 | 작성시간 26.04.05 지인들이랑 왕송호수 둘레길을 걷다가 2층 카페에서 차를 마시던 중 단석님과 똑같은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었습니다.
    투명창을 구분 못해 허망하게 스러져 간 그 찰나에 느꼈었던 아픔이 다시금 떠오릅니다.
  • 답댓글 작성자단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4.06 왕송호수에서 겪으신 그 순간의 아픔이 제 글과 함께 다시 살아나셨다니, 저 또한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보이지 않는 투명창 앞에서 작은 생명이 허망히 스러지는 모습은, 잠시나마 삶의 덧없음과 연민을 일깨워 주는 듯합니다.
    같은 마음으로 아파해 주시고 공감해 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마음자리 | 작성시간 26.04.05 제가 모는 차가 큰 트럭이라
    앞 유리창이 통유리로 아주 큽니다.
    봄이 되니 꽃들과 새잎들이 피어나듯
    작은 곤충들과 밤나방들도 움직임이
    활발해서... 트럭 유리창에 엄청 부딪히고 흔적을 남깁니다.
    주유하려고 한 번씩 멈추어서
    그들을 닦아내다 보면... 한 번
    생명 얻기도 힘든데 우리 인연이
    어떻게 이렇게 닿는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럴 때, 한치 앞을 모를 것이
    삶인가 보다... 그러니 지금을
    소중히 느끼며 살자...
    이런 마음도 먹고요.

  • 답댓글 작성자단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4.06 깊이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은 생명 하나의 흔적 앞에서도
    오늘을 더 귀하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따뜻한 마음으로 함께해 주시니
    봄날의 사색이 더욱 깊어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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