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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상

내 안에 살던 그녀 (2/2)

작성자마음자리|작성시간26.04.10|조회수146 목록 댓글 8

이제 그녀는 떠났습니다.
그녀가 떠난 빈자리는 그녀가 던져주고간 숙제들과 웃음만 남았습니다.

그녀가 해주고 떠난 이야기들 중에 제가 전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두 번째 이야기>

"꼭 떠나야만 했어?"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머물면 피바람이 불었을 거야..."

그 마음이 짐작되고도 남았습니다.
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세웠더니, 갑자기 나타난 주몽의 아들 유리에게 태자 자리를 뺏기고, 불 보듯 뻔한 후계다툼에 비류와 온조 두 아들을 다 잃고 말 것 같은...

"그래서 주몽을 설득했지. 두 아들과 졸본부여 시절부터 따르던 무리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가겠다고... 좋아라 하더군. 후계다툼도 없고 기득권임을 자처하던 무리들에 대해 골머리를 썩일 염려도 없어지니."

"그래서 내려가 정착한 남쪽이 한강 주변이었어?"
"그렇게 너희들은 배우고 있더라..."
"아니야?"
"후후. 만약 그랬다면 내가 네 속에 머물 필요가 없었겠지. 너도 아닌 것 같아서 날 불렀잖아. 후후."

"여걸처럼 웃지 말고 여성처럼 웃으면 안 되나?"
"계속 눌러앉을까?"

좌우로 고개를 저으며 계속 이야기해 주길 재촉했습니다.

"난 북만주 넓은 땅 졸본부여의 왕이자 대상이었던 연타발의 딸로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세상을 두루두루 살펴보며 자랐지. 그 땅에 고구려도 세웠고."
"그 말은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어떤 지역이 나라 세우기에 좋은지, 어떻게 한 나라를 경영해야 할지 잘 안다는 뜻이기도 하지."

"그래서 반도 남쪽으로 내려갔냐고..?"
"그때 반도 남쪽길에는 평양을 중심으로 낙랑국이 있었고, 나주를 중심으로 영산강 주변에 마한의 세력들이 넓게 자리 잡고 있었지. 한강 부근에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엔 땅도 좁고 위아래로 강성한 적들이 많아서 나라를 세우기에 적합한 땅이 아니었어. 또 고구려와 국경 분쟁이 잦았던 낙랑국을 거쳐 내려가야 하는데, 네~ 하며 선뜻 길을 내어줄 낙랑국도 아니고..."

"그렇다면?"
"강태공 알지?"
"낚시하며 때를 기다리던 강태공?"

"그 강태공이 세운 제나라가 하북성과 산동성지역에 흩어져 살던 고인돌족, 즉 천손족(이족 夷族)의 한 갈래인 래이족(萊夷族)을 흡수 통합했었어. 그 후 진나라를 이어 한나라가 들어서서 무제 때 북경지역에 있던 위만조선을 멸하고 그곳에 한사군을 설치했고."
"래이족 빼고는 배운 기억이 난다."
"한사군을 설치한 전한이 기운이 거의 빠져 한사군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을 때 고구려가 세워졌고, 그때도 하북성과 산동성에는 지배세력들은 바뀌었어도 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던 사람들의 주류는 여전히 래이족들이었어."

"그래서?"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원래 계획한 대로 졸본에서 출발해서 발해만과 이어진 중국의 동해안을 따라, 한사군 중 그때까지 유일하게 명맥을 유지하던 낙랑군을 거쳐 남쪽으로 내려왔지. 하북성의 남쪽과 산동성의 북쪽을 가르는 한수(漢水)까지..."
"토착 세력들의 방해는 없고?"
"방해는 무슨.. 고인돌이 세워진 곳을 따라 내려왔는데, 기운 빠진 낙랑군은 혹 분란이 일어날까 봐 자진해서 길을 열어주었고, 천속족 부여의 후손임을 안 래이족들은 기꺼이 반겨 맞아주었어."

"그래서 그곳에?"
"한수(漢水) 북쪽 바닷가 가까이에 성(미추홀)을 쌓아 비류를 머물게 하고(하북성 남쪽 끝), 한수 남쪽 너른 땅 위례성(산동성 서북쪽)에 온조를 머물게 해서 형제간의 분란을 피하고 혹 한쪽이 어려움에 처해도 다른 한쪽에서 도울 수 있도록 자리를 잡았지."
"중원을 앞에 두고 뒤로는 바다를 둔, 땅과 바다로 국운을 펼쳐나갈 최적의 땅이었어."

"아무도 믿지 않을 걸?"
"나도 기대하지 않았어. 의도를 갖고 틀어버린 역사를 어떻게 쉽게 바로 잡을 수 있겠어. 옛 사료 찾기도 힘든데... 근데 세상이 바뀌었잖아."
"과학적 실증적 천문학이 역사에 들어오고, 인터넷 세상이 되면서 역사가들의 서재에 깊숙이 박혀있던 옛 사료들이 스마트폰 손 안으로 들어왔잖아."
"백제가 대륙에 있었다는 증거들이 사료에서 천문학에서 속속 드러나고 증명되고 있으니 나도 할 말이 생긴 거고, 그래서 네 부름에 응답을 했고. 호호."
"원래대로 웃어.. 기분 안 좋아."

"사람들이 잘 모르던데, 원래 백제의 이름은 십제(十濟)였어. 온조를 따라간 10명의 공신들과 함께 세운 나라라 해서 처음엔 십제라 했는데, 비류가 일찍 죽고 그 백성들까지 합해지며 주변의 만백성들을 다 끌어안고 새로 지은 이름이 백제(百濟). 알아두면 좋잖아. 후후."

"그럼 한반도 서남지역의 백제는 뭐야?"
"나도 잘 몰라. 내가 죽고 난 후의 일이니... 아마도 후한과 삼국시대, 그 뒤를 이은 위진남북조의 혼란한 시대를 지나며 바다 건너 좀 더 안전한 지역에 세워둔 동쪽 도읍지(동경) 아니었을까 싶어. 백제 680년 역사에 왕의 무덤이 그쪽에 몇 개밖에 없는 이유도 그래서인 것 같고..."

"뭔가 알 듯 말 듯, 그럴 듯 하긴 해. 히히."
"기분 나쁘게 웃는 걸 보니 떠날 때가 됐나 보다."

"남길 말 있으면 해. 전해줄게..."
"후손 중에 어느 똑똑한 이가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린다 했어. 현실을 살아가는 것은 언제나 힘들지. 나라도 국제정세도 다 흔들려. 그럴수록 우리의 뿌리를 제대로 알아야 해. 후손들에게 바르게 가르쳐야 하고..."

"널리 세상사람들을 이롭게 하라~
우리의 뿌리가 그곳에서 출발함을 잊지 마..."

그 말을 남기고 내 안에 일 년여를 살던 그녀가 떠나갔습니다.
그녀가 떠난 빈자리엔 그녀가 던져두고 간 숙제들과 그녀의 호걸 같은 웃음소리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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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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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마음자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4.10 워낙 자료가 부족하고, 혹 자료가 있더라도 위서라며 부정을 하니
    안타까운 마음에 상상력 동원해서
    되짚어보곤 합니다.
    확실한 근거 없어도 추리나 상상은
    해볼 수 있으니까요. ㅎ
    글이 길어 백제가 한 때 남부여라 자칭한 적도 있고, 부여를 계승한다며 왕들의 성도 '부여' 씨였다는 것은 생략했습니다.
  • 작성자달항아리 | 작성시간 26.04.10 제 인식 속에 백제 문화는,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로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실물로 보고 바로 반한 백제의 두 가지 문화유산을 매우 사랑하고요.
    단정하고 짜임새있게 참으로 잘 생긴 정림사지 5층 석탑과,
    화려하고 휘황한 신라 금관에 결코 뒤지지 않는 명작인 백제 금동 대향로가 그 두 가지입니다.
    그렇게, 백제의 온화하게 빛나는 매력만 알다가,
    마음자리님 글을 통해 백제의 웅혼한 기상도 알게 되어 반갑고 뿌듯합니다.
    독자로 하여금 우리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여 훌륭한 글 써주신 마음자리님께 감사드립니다. ^^
  • 답댓글 작성자마음자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4.10 제대로 밝히거나 발국하질 못해서겠지만 중국 동해안과 베트남까지 경영한16담로 대해상제국 백제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유산들이 제대로 밝혀진다면 문화와 국력으로 고대 아시아를 아우르던 백제의 위상이 훨씬 더 높게 평가되지 싶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성자언덕저편 1 | 작성시간 26.04.10 대단하신 맘자리님.. 창직능력이 탁월하십니다. 열심히 쓰셔서 역사 소설가로 등단하시기 바랍니다.
  • 답댓글 작성자마음자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4.10 늘 변함없이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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