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 끝에서
김 민 석
출입문을 밀고 들어서자, 겨울비가 씻어낸 흙냄새와 오래된 벽돌의 차가운 기운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복도 끝에서 아이들이 달리며 웃는 소리가 튀어 올랐다. 나는 한 걸음 멈춰 섰다. 이곳은 내가 ‘초등학교’라는 이름보다 ‘국민학교’라는 말로 먼저 떠올리는 곳, 내 몸이 가장 먼저 세상을 배운 장소였다. 그리고 그 배움은 교과서가 아니라 문턱과 계단, 시선과 침묵으로 시작되곤 했다.
어릴 적의 나는 두 손과 무릎으로 교실을 오갔다. 바닥은 늘 차갑거나, 끈적하거나, 모래가 섞여 있었다. 비가 오고 나면 복도에 남은 흙 자국이 마른 뒤 까끌까끌하게 발목을 긁었다. 아이들은 그 위를 운동화로 가볍게 지나갔지만, 내게 그 복도는 한 번 지나갈 때마다 피부로 기억되는 길이었다. 내 몸은 중증 뇌병변 장애로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휠체어는 그때의 학교에서 ‘자유’가 아니라 ‘불가능’에 가까웠다. 경사로도, 넓은 출입문도, 손이 닿는 높이의 손잡이도 없었다. 나는 늘 바닥과 같은 높이에서 학교를 올려다봤다.
운동장에서는 늘 달리기 소리가 먼저였다. 점심시간 종이 울리면 아이들은 도시락 뚜껑을 닫자마자 밖으로 뛰쳐나갔다. 공이 튀고, 신발 바닥이 흙을 차는 소리가 나고, 누군가 “패스!”라고 외쳤다. 나는 교실 문 근처에 앉아 그 소리만 들었다. 보고 싶은 장면은 눈앞에 있었지만, 몸이 그 장면 안으로 들어가질 못했다. 나는 일찍 배웠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거리는 마음만으로는 메울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 거리보다 더 아프게 다가온 것은 ‘화장실’이었다. 쉬는 시간이면 선생님은 “다녀와”라고 쉽게 말했지만, 내게 그 말은 출발 신호가 아니었다. 복도 끝, 문턱, 좁은 공간, 높게 달린 손잡이. 그 모든 것이 한 번에 떠올랐다. 결국 나는 교실 한쪽 구석을 선택해야 했다. 아이들이 칠판 앞으로 모일 때, 나는 더 안쪽으로 몸을 숨겼다. 어른들이 말하는 ‘자존심’이나 ‘수치심’이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던 나이였지만, 나는 이미 부끄러움의 모양을 몸으로 배워가고 있었다. ‘참는 것’이 습관이 되고, ‘들키지 않는 것’이 목표가 되는 날들이 쌓였다.
그렇다고 학교가 오직 차가운 기억만 남긴 것은 아니다. 내가 바닥에 놓친 지우개를 주워주던 손이 있었고, 땀에 젖은 내 손을 아무렇지 않게 잡아당겨 주던 친구가 있었다. 체육 시간에 줄을 맞출 때, 내 자리만 어색하게 비어 있지 않도록 옆에서 조용히 앉아주던 아이도 있었다. 누군가는 내 책가방을 들어주며 “같이 가자”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가, 그날 나에게는 경사로보다 더 큰 길이었다. 나는 그 작은 친절들 덕분에 버텼다. 그리고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알게 되었다. 세상이 나에게 맞춰지지 않아도, 사람은 나에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어떤 말들은 오래 남아 내 안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어느 날 선생님이 말했다. “너는 화장실 가기 힘드니까 국 먹지 말고, 물도 적게 마셔라.” 그 말은 누군가를 괴롭히려는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시대의 ‘현실적인 배려’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불편함은 네가 감당해야 한다.’ ‘학교는 바뀌지 않는다.’ 그 문장이 내 몸보다 먼저 나를 교실 한쪽으로 밀어 넣었다. 나는 그 말을 원망하기보다, 그 말이 가능했던 환경을 오래도록 마음속에서 묻고 또 묻었다.
시간은 흘렀다. 나는 성장했고, 학교는 내 기억 속으로 멀어졌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다시 그 교문 앞에 서 있었다. 이번에는 학생이 아니라 한 아이의 아버지로, 학교 운영위원으로서였다. 이름표를 목에 걸고 들어서는데, 이상하게도 가슴이 먼저 조여 왔다. 나는 여전히 같은 장애를 가진 몸이었지만, 세상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교문 앞에는 경사로가 놓여 있었고, 출입문은 넓었다. 복도는 평평했고, 바닥은 미끄럽지 않았다. 화장실 문은 예전보다 크게 열렸고, 손잡이는 내가 닿을 수 있는 높이에 있었다. 무엇보다 ‘장애인 화장실’이라는 표지가, 숨기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서 당당히 보였다.
그날 나는 일부러 1층 끝 화장실까지 가 보았다. 예전이라면 ‘갈 수 없는 곳’이라며 마음속에서 지워버렸을 거리다. 문 앞에는 점자 안내와 손잡이, 미끄럼 방지 바닥이 있었다. 문을 열자 휠체어가 돌아설 수 있을 만큼 공간이 확보되어 있었고, 비상 호출벨이 손 닿는 곳에 달려 있었다. 나는 그 벨을 한참 바라봤다. ‘도움이 필요하면 누르라’는 장치가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울컥하게 만들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도움이 필요해도 누를 벨이 없었다. 도움을 요청할 언어도, 요청해도 될 권리도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늘 참았다. 참다가 익숙해졌다.
복도를 되돌아오는데, 청소하시는 분이 물걸레를 들고 지나가셨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바닥이 젖으면 내 무릎이 먼저 시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 복도에 흙탕물이 번져 있었고, 나는 젖은 바닥 위를 기어가다 미끄러져 넘어졌던 기억이 번쩍 떠올랐다.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모른 척했다. 선생님은 “조심해야지”라고 말하며 내 팔을 잡아 일으켰다. 말은 틀리지 않았지만, 내게 ‘조심’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바닥은 계속 젖어 있었고, 나는 계속 그 바닥을 지나야 했으니까.
운영위원 회의가 끝난 뒤, 나는 딸아이의 교실 앞을 잠깐 들렀다. 교실 문 옆에는 아이들이 만든 종이꽃이 붙어 있었고, 그 가운데 ‘우리 반은 서로 도와요’라는 문장이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흔한 급훈일지 몰라도, 내게는 오래 걸려 도착한 문장처럼 느껴졌다. 나는 딸이 그 문장을 아무렇지 않게 읽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기를 바랐다. ‘도움’이 특별한 미담이 아니라, 숨 쉬듯 오가는 일이기를.
딸은 나를 보자 “아빠!” 하고 달려왔다. 나는 아이의 속도를 맞추기 위해 팔을 뻗었다. 딸은 자연스럽게 내 손잡이를 잡고 옆에 섰다. 친구들이 다가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그 인사에는 날카로운 호기심이 섞여 있지 않았다. 그 장면이 내게는 조용한 변화처럼 다가왔다.
나는 딸의 손을 잡고 창가에 서서 운동장을 다시 보았다. 바람이 불어 깃발이 펄럭였고, 아이들은 여전히 뛰고 있었다. 문득 나는 그 운동장 한쪽에 앉아 있던 어린 나를 떠올렸다. ‘다음에는 나도, 다음에는 나도’ 하고 마음속으로 되뇌던 아이. 그런데 지금, 내 딸의 ‘다음’은 조금 다르게 시작될지 모른다. 아빠가 휠체어를 탄다는 사실이 숨겨야 할 비밀이 아닌 환경에서, 친구들과 함께 자랄 수 있으니까.
나는 오래된 교정에서 새로운 역할을 배웠다. 예전의 나는 배려를 받는 사람으로만 존재했지만, 지금의 나는 배려를 ‘함께 논의하는 사람’의 한쪽에 서 있다. 완벽하진 않다. 여전히 빠진 부분이 있고, 필요한 예산은 부족하다. 그래도 방향이 바뀌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이 교정에서 희망을 본다.
교문을 나서며 나는 마음속으로 어린 나에게 말을 건넸다. “너는 틀리지 않았어.” 불편하다고 느끼는 감각도, 함께 있고 싶다고 바라던 마음도. 이제 나는 그 감각을 숨기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그 감각이 다른 누군가에게 ‘여기 있어도 된다’는 안내가 되기를 바란다.
희망은 거창한 약속이 아니라, 문턱 하나를 낮추는 일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문턱이 낮아질 때마다, 누군가의 삶은 조금 덜 외로워진다는 것을.
<제28회 민들레장애인문학상 수필 부문 심사평>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세상과 소통하며 화해하는 과정을 감각적 문체로 그려낸 수작
예심을 거쳐서 본심으로 넘어온 작품은 17명의 총 34편이었다. 이 응모작들을 놓고 세 사람의 심사위원은 한 작품 한 작품을 돌려 읽으면서 우열을 가렸다. 그 결과 대상 1편과 가작 1편 그리고 장려상 2편을 선하는 데 어렵지 않게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특히 대상 수상작인 김민석의 「복도 끝에서」는 다른 수상작들에 비해서 탁월한 성취가 드러났다.
「복도 끝에서」는 어린 시절 중증 뇌병변 장애로 인해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어떻게 세상과 소통하며 화해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이 감각적이고 세련된 문체로 그려져 있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로 부를 때 다녔다는 내용으로 미루어 이 응모자는 필시 황혼의 나이에 접어든 작가임이 분명하다.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의 일이었고 보면, 그때 당시만 해도 이 땅의 장애인에 대한 대우는 형편없던 시절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중증 장애를 안고 세상을 살아내기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온통 장애물넘기의 연속이었을 것임은 묻지 않아도 그림이다.
어린 시절을 눈물로 헤쳐온 화자가, 딸이 다니는 학교의 운영위원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하게 되면서 상황은 극적 반전에 이른다. 그새 세상은 너무도 달라져 있었던 게다. 지난날의 미끄러웠던 복도, 넘을 수 없던 문턱, 비좁은 화장실, 높게 달린 손잡이 등의 장벽들이 이제는 미끄럼 방지 시설을 갖춘 문턱 없는 복도며 넓은 화장실 출입문, 나지막하게 달린 손잡이, 거기다 위급할 때 언제든 누를 수 있는 점자로 된 비상벨까지, 장애인을 위한 배려 가득한 환경으로 바뀌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화자를 더욱 가슴 뭉클하게 한 것은 이런 물리적 요소들보다 장애인을 대하는 세상의 달라진 눈이다. 지난날 편견과 멸시로 가득했던 사람들의 시선이 어느새 더불어 살아가는 동반자로서의 시선으로 바뀌어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화자는 이제 더 이상 ‘거창한 약속’이 아닌 ‘문턱 하나를 낮추는 일’에서 희망을 건져 올리며 기나긴 내면아이 적의 아픔에서 벗어난다.
결국 이 수필의 미덕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어떤 자세로 바라보고 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겠다.
가작으로 뽑힌 장길숙의 「도심의 옹달샘」은 복지관을 도심 속 옹달샘으로 의미 부여하여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리듯 비교적 잘 형상화해 놓은 수필이었다. 다만 사설이 쓸데없이 길고 사유의 깊이가 부족하며 전체적으로 내용이 산만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런 점들이 대상 수상작에 비해서 작품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이유이다. 무릇 작가는 독자들에게 너무 불친절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친절해서도 곤란하다. 텐션이 느슨하면 쉽게 지루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최서정의 「돌다리 정류장에는 돌다리가 없다」와 박점수의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은 두 편 다 진정성 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았으나, 지나치게 서사 중심이어서 수필적인 미감이 부족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려 장려로 밀려났다. 가작과 장려상을 받은 세 응모자는 앞으로 작품 속에 여하히 수필적인 장치들을 담아 글을 써야 할 것인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하면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한다.
수상한 응모자들에게는 뜨거운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선에 들지 못한 응모자들에게는 다음 기회에 다시 응모하여 좋은 소식을 기다려 달라는 당부와 함께 위로의 말을 전한다.
심사위원/곽흥렬(글), 박미정, 장수영
*전체 시, 소설, 수필 세 부문에 걸쳐 공모를 한 결과 수필 부문에서 대상 수상자가 나왔습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콩꽃 작성시간 26.05.16
김민석님의 '복도 끝에서'
수필을 잘 읽었습니다.
<제28회 민들레장애인문학상>
대상을 받으신 님께도 수상의 기쁨을 함께 합니다.
수필가 곽흥렬님께서도,
<민들레장애인문학상>을 소개하시고,
심사평도 올려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우리가 국민학교라 부르던 시절과는
문화 복지등 여러 면에서 향상발전되고,
국민들의 건강, 정서, 교육면에서도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으로써,
그 어렵던 어린시절을 이겨낸 이야기의
주인공이신 김 민석님께 존경을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곽흥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5.17 new
육체적으로 건강한 우리가 육신의 장애를 가진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글로써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육신은 멀쩡하지만 마음의 장애를 가지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작성자탁구시인 작성시간 26.05.16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장애를 이야기하면서도 원망보다 사람의 온기와 희망을 먼저 보여준 점이 깊게 남습니다.
“문턱 하나를 낮추는 일에서 희망이 시작된다”는 마지막 울림이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곽흥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5.17 new
수필 문학에서 그 어떤 요소보다 중요한 점이 진정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보통 문학상 심사를 하다 보면 알맹이는 없고 포장만 화려한 글들을 심심찮게 봅니다.
이 수상작은 그렇제 않았습니다. 다른 어떤 수필보다 진정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래서 울림이 큰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