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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상

슬픈 나의 처제여~

작성자석촌|작성시간26.05.26|조회수218 목록 댓글 8

 

 

 

           슬픈 나의 처제여 

 

                                                          

자유의 그 가없는 홀가분함을 아는가?

진정 자유의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은 감옥의 간수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수형자들과 함께 울안에서 지내지만

그들과는 달리 매일매일 별하늘을 바라보며 퇴근하니

얼마나 후련하랴.

 

감옥생활과 관련해선 그들만이 통하는 은어도 많다.

'범털'은 지체가 높으면서 뒷돈도 잘 들어오는 사람이요

'개털'은 장삼이사의 그런 사람으로

뒷돈도 들어오지 않는 사람이라 한다.

 

감옥은 아니더라도 누구나 환경의 제약과 지배를 받는다.

그래서 실사회에서도 범털과 개털은 있을 터이다.

허나, 인생은 허허벌판에 내팽개쳐진,

실존에 몸부림치는 존재라니

궁극적으론 지체도, 뒷돈도, 모두 자기 책임일 수밖에 없다.

 

 

그네는 내 아내와 달리 자유분방한 여성이었다.

이화학당에서 범생이 강 모 전 외무장관과 앞뒤 자리로 앉아

공부하던 재원이었는데

공부가 딸렸던지, 유교적 억압이 싫었던지

대학 졸업도 전에 준수한 이태리 청년과 눈이 맞아

미국으로 줄행랑쳤다.

 

이태리에서 미국 르노로 이민 와

부동산 개발한다는 시집의 며느리가 되어

처음엔 세 아들을 낳아 육아에 올인했겠지만

아이들이 유아기를 벗어나던 때

자기 삶을 찾아보려 했으나

시부모를 모시는 전통적 이태리 가정에선

며느리를 밖으로 내돌리지 않는다고 했다.

 

아는 이웃 하나 없는 허허벌판의 집 안에 쳐 박혀

파스타나 리조또나 피자나 만들고 콜라만 마셔댔을 테니

몸의 균형은 날로 무너지고 

볼품없는 모양새가 되었을 게다.

 

급기야는 이혼을 당해 홀로 지내게 되었던 모양인데

동양 여성으로서의 모성애는 버릴 수 없어

세 아들을 혼자 품어 키웠다니

그 어려움이 얼마나 컸으랴.

 

지나간 겨울 그네가 르노에서 엘에이로 이사했다고 해

거길 찾아갔다.

공항에 차가 나오려나 했지만 혼자 몸으로 왔기에

택시 타고 그네의 집에 도착했다.

 

주택가의 아담한 20평쯤 되는 1층 주택으로

손색없어 보였는데

서가를 둘러보니 다 낡아빠진 영한사전에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도 꽂혀 있었고

한글로 된 부동산거래 실무도 꽂혀있었는데

54년 말띠인 그네가

언젠간 부동산 거간도 시도해 봤던 걸까?

 

과일 한 접시 내오면서,

여기는 날씨가 좋아 과일이 지천이며

모든 물가가 싸다고 했다.

그만하면 살만한 곳이란 생각도 해봤지만

모든 게 궁금한 나는 하나하나 물어 들어갔다.

 

몸이 불편해 일도 안 하고 

정부로부터 지원받아 살아간다는 건데

월 2천여 불 받아서 반은 집세로 내고

나머지 반으로 생활한다고 했다.

 

아들 셋은 뿔뿔이 흩어져

제 나름대로 잘 살아간다고 하기에

모두 불러 모아 보니

막내만 결혼해 반반한 생활을 할 뿐

위로 두 형제는 무얼 하는지도 모르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으니,

작은 나라에서 온 나에게

술값 밥값 택시비를 다 내게 했던 것이다.

어이구 우~

 

이혼해 떨어져 나간 남편이 이제 다시 합치자 한다는데

중풍 들어 새 부인조차 떨어져 나간 사내를

왜 자기가 떠맡느냐는 것이었다.

 

아, 부모와 사회로부터의 속박을 벗어나

자유의 신천지로 뛰어들었다 했거늘

그 형색이 어찌 이 모양이더냐...

 

나의 처부모인 그네 아버지와 어머니는

많은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고

나머지는 재단법인을 만들어

아들에게 물려준 뒤 타계했는데

그네는 개털이었던가...?

가출한 댓가이리라.

 

이제라도 아들들 데리고 한국에 들어가

영어강사라도 해보자 했더니

학사자격증이 없어서 안 된단다.

왜 대학을 안 보냈느냐 했더니

70년대 당시엔 부자나라에서 고등학교만 나와도 잘 살기에

걱정 없어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의 교육열을 강조하던 이유를 알겠다.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젊은 미국인들이

이민족에게 일자리를 모두 빼앗겨

급기야는 트럼프가 심술을 부리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진정한 자유란

하고 싶은 걸 다 하는 데에 있는 게 아니니

(장자크 루소)

할 수 있는 건 도전할 일이고

할 수 없는 건 체념하는 지혜도 필요하거늘...

 

개털이 싫다 해서 범털이 되는 것도 아님을 안다면

자유엔 실존의 자기 의지가 따라야 함도 알아야 했거늘

인생이여! 사람이여! 여자의 일생이여!

 

 

글쓰기를 마치고 전화해 보니

다시 엘에이에서 라스베이거스로 이사했다 한다.

 

언니인 내 아내가 얼마간의 돈을 모아 보낸다 했더니

그러지 말라 한다.

송금액을 받으면 미국정부의 지원이 끊긴다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에 들어와 가져가라 했더니

그것도 세관에 걸리면 마찬가지로 지원이 끊긴다고 한다.

그러면 어찌하면 좋겠느냐 했더니

머잖아 미국과 한국의 이중국적을 취득할 건데

그때 한국통장을 만들 테니 거기에 입금해 달란다.

 

마치 야구에서 핀치에 몰린 형국이니 이걸 어쩌랴...

국경선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는 가련한 신세여!

햄버거 콜라에 찌들어 인디언이 다 된 여인이여!

제 언니처럼 범생이로 살았어도 좋았을 것을.

 

2022년 어느 날에

 

 

위 글은 이민생활의 애환을 일반화한 게 아니요

오천만 분의 1에 불과한 저의 사례를 소개한 것이니

다른 오해 없길 바라며,

 

부부가 서로 존중하며 살아간다는 어느 회원의 글과

가족 중 한 사람이

미국사회의 상류층에서 잘 살아간다는 글을 읽고

화답하는 의미에서 이 글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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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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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석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5.26 new 불쌍하지요..
  • 작성자그산 | 작성시간 26.05.26 new 에구 정말 슬픈 사연입니다
    제게는 배다른 처제가 둘있습니다
    큰처제는 아버지가 자신의 어머니를 학대한다고
    막내인 처남시켜 정신병원에 감금시킨걸 제가 구출해준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과 제아내는 심하게 싸우고 그후 인연을 끊었지요
    그중에 둘째처제는 중립을 지키고 제딸한테도 잘해주었었는데
    이젠 모두 인연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석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5.26 new 참 어려운 역할도 했었군요.
    그게 참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요..
  • 작성자언덕저편 1 | 작성시간 26.05.26 new 그래서 옛말에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고 했지요... 배우자를 어떤 사람를 만나느냐에 따라 평생 운명이 좌우된다는 뜻이랍니다. 일산서 혼자 사는 처제를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그래도 언니둘하고 남동생이 적은 돈이지만 매달 30씩 부쳐주고 있고 본인역시 요양보호사하면서 열심히 살려고 애쓴답니다.
  • 답댓글 작성자석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5.26 new 그래도 오빠 자매들이 도와주니 큰힘이 되겠네요.
    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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