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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상

답사후기

작성자단석|작성시간26.05.26|조회수187 목록 댓글 5

5월 21일 경주문화아카데미 안동 문화답사 후기

선비의 강을 건너 천년의 시간을 걷다

초여름 더위가 며칠째 기승을 부리던 끝에 밤새 비가 내렸다. 덕분에 답사 당일 아침 공기는 한결 부드럽고 촉촉했다. 오전 8시 출발 예정인 황룡사 주차장에는 이른 시간부터 참가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대형버스 두 대와 스타리아 차량 한 대가 이미 준비를 마친 채 기다리고 있었고, 90여 명의 답사객들은 이름을 확인하며 자리를 잡았다. 누군가는 카메라를 챙겼고, 누군가는 답사지 책자를 펼쳐 들었다. 여행은 늘 출발 전이 가장 설렌다고 하지만 문화답사는 특히 그렇다. 눈으로 보는 여행이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권성훈 해설 선생님의 일정 설명과 안전 안내가 끝나자 버스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창 밖으로는 비에 씻긴 초록빛 산과 들판이 유리창을 따라 흘러갔다. 경주를 벗어나 안동으로 향하는 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신라의 도시에서 유교문화의 본향으로 건너가는 역사 여행의 시작이었다.

도산서원 — 조선 선비정신의 살아 있는 교과서

이번 답사의 첫 목적지는 안동 도산서원이었다. 낙동강 상류를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 끝에서 도산서원은 모습을 드러냈다. 산이 병풍처럼 둘러서고 강물이 조용히 흐르는 풍경은 마치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 먼저 서원을 품고 있는 듯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이 왜 이곳을 최고의 공부터로 여겼는지 한눈에 이해되는 풍경이었다.

도산서원은 조선 성리학의 거두인 이황, 즉 퇴계 선생의 학문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퇴계는 단순한 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조선 유학의 흐름을 바꾸었고, 인간의 마음과 도덕을 깊이 탐구한 철학자였다. 일본 유학자들까지 그의 학문을 배우기 위해 연구했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오늘날로 치면 세계적인 석학이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도산서원은 크게 도산서당과 서원 영역으로 나뉜다. 먼저 퇴계가 직접 제자들을 가르치며 생활했던 도산서당은 생각보다 매우 소박하다. 대부분의 답사객들은 “이렇게 작은 곳에서 조선 최고의 학문이 이루어졌단 말

인가” 하고 놀란다. 실제로 도산서당은 검박함 그 자체다. 낮은 마루와 작은 방, 화려함 없는 목조 건물은 선비들이 왜 절제를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잘 보여준다.
퇴계는 “학문은 마음을 닦는 일”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공부 공간도 지나친 장식이나 사치를 멀리했다. 건물 배치 또한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었다. 창문을 열면 산과 강이 그대로 눈에 들어오고, 바람 소리와 물 흐르는 소리가 책 읽는 소리와 함께 어우러진다. 자연 속에서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고 학문을 닦는 것, 그것이 조선 선비정신의 핵심이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농운정사와 역락서재였다. 농운정사는 퇴계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공간이고, 역락서재는 유생들이 머물며 공부하던 기숙사 역할을 했던 곳이다. 오늘날 대학 캠퍼스와 비교하면 매우 단출하지만, 오히려 그 단순함 속에서 학문에 대한 집중력이 느껴진다. 지금처럼 스마트폰 알림과 소음 속에서 공부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오히려 부러운 환경처럼 보이기도 했다.

강 건너편 시사단에 대한 설명도 흥미로웠다. 정조는 퇴계의 학덕을 높이 기리기 위해 특별 과거시험인 ‘도산별과’를 열었는데, 이 시험이 치러진 장소가 바로 시사단이다. 당시 전국의 유생들이 이곳에 모여 시험을 치렀다고 한다. 해설을 듣다 보면 단순한 시험장이 아니라 조선 지식인들의 꿈과 경쟁, 명예가 교차하던 역사 현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당시 유생들은 배를 타고 낙동강을 건너 시험장으로 향했다. 지금처럼 수험표를 확인하거나 컴퓨터로 시험을 보는 시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강을 건너며 마음을 가다듬고, 자연 속에서 자신의 학문을 시험받았던 것이다. 아마 오늘날 수험생들도 시험장 대신 강을 건너야 했다면 긴장감이 훨씬 더 컸을 것이다.
도산서원 입구를 지키고 선 오래된 느티나무와 왕버들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수백 년 세월 동안 수많은 선비들의 발걸음을 지켜본 나무들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역사의 증인처럼 느껴졌다. 굵게 갈라진 나무껍질과 거대한 줄기에서는 세월의 무게가 그대로 전해졌다.
도산서원은 단순히 오래된 건축물이 아니다. 그곳은 조선 시대 지식인들이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갔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과서다. 학문과 인격,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중시했던 선비정신은 빠른 경쟁과 물질 중심 사회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안동 음식문화 — 유교의 도시가 빚어낸 맛

점심식사는 회장단이 사전답사를 통해 미리 예약해 둔 안동 시내 식당에서 이루어졌다. 90여 명이 한꺼번에 식사하기 쉽지 않은 규모였지만 음식은 정갈했고 준비도 빈틈이 없었다. 대표 메뉴인 안동찜닭은 커다란 접시에 푸짐하게 담겨 나왔다.
안동찜닭은 단순한 지역 음식이 아니다. 조선 시대 안동 양반문화와 서민 음식문화가 함께 녹아 있는 향토음식이다. 간장 양념에 닭과 채소, 당면을 넣고 졸여낸 음식인데, 안동 구시장 골목에서 시작되어 전국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짭조름하면서도 달큰한 맛은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답사객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음식 이야기와 역사 이야기가 뒤섞였다. 누군가는 “안동찜닭의 진짜 주인공은 당면”이라며 웃음을 자아냈고, 안동소주 한잔이 곁들여지자 분위기는 더욱 화기애애해졌다. 문화답사의 매력은 바로 이런 데 있다. 역사도 결국 사람의 삶이고, 삶에는 음식과 웃음이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봉정사 — 천년 목조건축의 숨결

오후 답사는 천등산 자락에 자리한 봉정사에서 이어졌다. 봉정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 가운데 하나인 극락전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입구의 일주문을 지나 만세루에 오르는 순간,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가 온몸을 감쌌다.

봉정사의 역사는 통일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이름인 ‘봉정(鳳停)’에도 흥미로운 전설이 담겨 있다. 종이 봉황을 날렸는데 이곳에 내려앉아 절을 세웠다고 하여 봉정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절 이름에도 자연과 상징의 의미를 담아냈다.
봉정사 극락전은 우리나라 목조건축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건물이다. 고려 시대 건축 양식이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건물은 화려하지 않지만 안정감이 뛰어나다. 기둥과 공포, 지붕선의 곡선미는 단아하면서도 깊은 품격을 보여준다.
특히 목조건축의 백미는 ‘짜맞춤’ 기술이다. 오늘날처럼 철근이나 콘크리트를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깎아 서로 맞물리게 해 건물을 세웠다. 수백 년 세월과 수많은 비바람, 지진까지 견뎌낸 것을 보면 옛 장인들의 기술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새삼 감탄하게 된다.
해설을 듣던 한 답사객이 “천년 전 목수들이 지금 건설 현장에 오면 문화재청장이 되겠다”는 농담을 던져 모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웃음 속에서도 우리 전통 건축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자연스럽게 느껴
봉정사에서 또 하나 깊은 인상을 남긴 곳은 영산암이었다. 담장과 마당, 작은 문과 처마가 자연과 어우러지는 모습은 마치 산수화를 현실로 옮겨놓은 듯했다.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자주 등장하는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영산암은 수행 공간 특유의 적막과 평온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바람 소리와 새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 속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의 시간과는 전혀 다른 시간이 이곳에는 흐르고 있었다.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방문했다는 이야기도 흥미를 더했다. 당시 여왕은 영산암에서 돌탑을 쌓으며 한국 전통문화를 체험했다고 한다. 세계적인 인물조차 이 산사의 고요함 앞에서는 한 명의 여행자가 되었던 셈이다.

이천동 마애불 — 바위에 새긴 사람들의 기도

이후 방문한 이천동 마애불은 또 다른 분위기의 문화유산이었다. 산중 암벽에 새겨진 거대한 불상은 멀리서부터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자연 바위에 직접 조각한 불상은 고려 시대 불교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마애불의 얼굴은 크고 온화했다. 세월의 풍화 속에서도 미소가 남아 있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돌은 차갑다고 생각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불상에서는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고려 시대 사람들에게 불상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고통과

불안을 위로해 주는 정신적 안식처였다. 가뭄이 들면 비를 기원했고, 가족의 평안을 빌며 절을 올렸다. 오늘날 사람들이 힘들 때 조용한 곳을 찾듯, 옛사람들도 이 마애불 앞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었을 것이다.

임청각 — 독립운동의 정신을 품은 집

마지막 답사지인 임청각은 분위기부터 남달랐다. 고즈넉한 한옥의 아름다움 속에는 나라를 잃은 시대의 상처가 깊게 스며 있었다. 임청각은 조선 시대 양반가옥이면서 동시에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다.
특히 이상룡 선생을 비롯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집안이라는 사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나라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 자신의 안락함보다 조국의 미래를 선택했던 사람들의 정신이 집 안 곳곳에 남아 있는 듯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중앙선 철도를 집 앞마당으로 관통시켜 임청각 일부를 훼손했다. 단순한 공사 문제가 아니었다. 독립운동가 집안의 자존심을 꺾기 위한 상징적 훼손이었다. 해설을 듣던 답사객들 사이에서는 안타까운 탄식이 이어졌다.
하지만 임청각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상처 덕분에 독립운동의 의미를 더욱 생생하게 기억하게 하는 공간이 되었다. 지금도 복원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 속에서 우리는 역사를 지킨다는 것이 단순히 건물을 보존하는 일이 아니라 정신을 이어가는 일임을 느낄 수 있었다.
법흥사지 칠층전탑 — 벽돌 속에 남은 신라의 숨결

답사의 마지막 순서는 법흥사지 칠층전탑이었다. 벽돌을 층층이 쌓아 올린 독특한 형태는 일반적인 석탑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통일신라 시대 전탑 양식의 대표적 유적으로, 분황사 모전석탑 계통의 영향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다.

전탑은 중국 벽돌탑 양식의 영향을 받았지만, 세부 구조와 비례감에서는 신라 특유의 미의식이 드러난다. 단단하면서도 균형 잡힌 모습은 오랜 세월 풍화를 견디고도 위엄을 잃지 않고 있었다.
해설을 듣고 바라보니 단순한 탑이 아니라 문화 교류의 흔적처럼 느껴졌다. 신라는 외래문화를 받아들이되 그대로 모방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했던 나라였다. 법흥사지 전탑은 그런 신라 문화의 개방성과 창조성을 잘 보여주는 유산이었다.

역사는 걸어 들어갈 때 살아난다

이번 안동 문화답사는 단순한 유적 관람이 아니었다. 도산서원의 선비정신, 봉정사의 천년 목조건축, 이천동 마애불의 신앙과 예술, 임청각의 독립정신까지 시대마다 다른 삶의 흔적을 직접 걸으며 체험한 살아 있는 역사 수업이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문화유산이 단순히 오래된 건물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 안에는 사람들의 고민과 철학, 희망과 아픔이 함께 남아 있었다. 오래된 기와 한 장, 나무기둥 하나에도 선조들의 삶이 스며 있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창밖은 어느새 저녁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답사객들의 표정에도 피곤함보다 잔잔한 여운이 남아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역사는 박물관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걸어 들어갈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을.속에도 오래도록 잔잔한 여운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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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콩꽃 | 작성시간 26.05.26 new

    경주 남산 답사기가 아니라,
    이 번엔 안동 지역 문화 답사기가 올라 왔네요.

    안동하면,
    유교문화의 본산인데, 도산서원을 제외한
    봉정사, 임청각, 이천동 마애불, 법흥사지 7층전탑 등의
    답사기를 올려 주셔서,
    마음을 가다듬고 읽었습니다.

    다리를 다치신 것 같았는데, 이젠 다 나아셨는지요.
    답사기 잘 읽고 갑니다.

    날씨가 무척 더워지는데,
    답사하시고
    답사기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단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5.26 new 콩꽃방장님 반갑습니다

    늘 따뜻한 마음으로 답사기를 읽어주시고 정갈한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발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조심조심 걸을 만큼은 되어 그 이후에도 안동 답사까지 세 번이나 더 다녀왔습니다.

    아마 마음이 먼저 길을 나서다 보니 몸도 조금씩 따라주는가 봅니다.

    이번 안동 답사는 말씀처럼
    봉정사의 고즈넉함과 임청각의 역사적 숨결,
    이천동 마애불의 온화한 미소와 법흥사지 칠층전탑의 묵직한 세월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읽으시는 동안 함께 그 길을 걸으신 듯했다니 글 올린 보람이 큽니다.

    무더위가 깊어지는 계절입니다.

    항상 건강 잘 챙기시고,
    앞으로도 문화의 향기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운 마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언덕저편 1 | 작성시간 26.05.26 new 안동문화 답사후기 아주 잘 쓰셨고 찬찬히 음미했습니다. 단석선배님 다리 다친후 처음 보내온 소식, 감사하구요 늘 건강하십시오.
  • 작성자석촌 | 작성시간 26.05.26 new 잘 읽고 갑니다.
    글도 글이지만, 답사객들의 모습도 진지하게만 보입니다.
    좋으신 글벗들이시겠지요.
    저는 특히 도산서원의 그 방이 그렇게 좁아서
    어찌 잘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는데
    검소의 뜻도 생각해보고
    아마 당시엔 체구도 적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었는데요..
  • 작성자마음자리 | 작성시간 26.05.26 new 건재하신 안부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문화답사 일정이라 도산서원이나
    하회마을만 보고 오는 일반 여행보다
    훨씬 더 깊이가 있는 답사여행이군요.
    늘 느끼지만 단석님의 문화답사기는
    기행수필의 정수를 보는 것 같아
    읽으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따르게
    됩니다.
    '역사는 걸어 들어갈 때 살아난다'
    그 말씀이 제 가슴에도 새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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