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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상

나를 키워 준 느티나무

작성자고든|작성시간26.06.06|조회수110 목록 댓글 16

나를 키워 준 느티나무

어느 늦은 봄날 퇴근길이었다. 반포천 옆길을 걷는데, 물가를 따라 가지를 길게 드리운 커다란 느티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바람에 흔들리는 연둣빛 잎들을 바라보는 순간, 오래전 속리골의 그 느티나무가 떠올랐다. 숨바꼭질을 하며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의 나와 친구들의 모습도 함께.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추억이라는 길을 걷는다고 한다. 나에게는 느티나무가 바로 그 길이다. 커다란 느티나무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다시 어린 시절 속리골로 돌아간다.

나는 충청도 시골에서 태어나 국민학교 3학년까지 고향 속리골에서 살았다.

아랫집 길호네 옆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었다.
얼마나 컸던지 우리들 서너 명이 손을 맞잡아야 겨우 안을 수 있을 정도였다. 나무기둥에는 누군가 오래전에 박아 놓은 큰못 하나가 있었는데, 우리는 그 못을 디딤돌 삼아 거대한 나무 위로 오르곤 했다.
느티나무는 커다란 줄기가 늘어져 땅에 거의 닿을 지경이었다. 우리는 나무에 올라 길게 뻗은 나뭇가지를 타고 내려왔다. 그것은 어린 우리에게 세상에서 가장 스릴 넘치고 신나는 미끄럼 놀이였다.


한여름이면 느티나무는 왕매미 울음소리로 가득 찬 시원한 오케스트라 홀이 되었다. 온 마을이 푸른 여름 속에 잠긴 듯한 그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나뭇그늘 아래서 땀을 식히고,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가 둥지를 틀었다. 그 느티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었다. 우리의 숨바꼭질 영토였고, 땀을 식혀주던 쉼터이자, 유년의 꿈을 품어주던 커다란 품이었다.

세월이 흐른 뒤, 사십 대가 되어 고향을 다시 찾았을 때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간 그 자리엔 느티나무 대신 베어진 그루터기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쓸쓸했다. 단순히 나무 한 그루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 푸른 그늘 아래서 뛰놀던 우리들의 웃음소리와, 반짝이던 시간 한 조각이 통째로 잘려 나간 듯했다.

하지만 오늘 퇴근길에 마주한 또 다른 느티나무를 보며 나는 깨닫는다.
고향의 나무는 베어졌어도, 길게 뻗은 가지, 시원한 그늘, 매미 소리, 그리고 친구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까지. 그 푸른 기억만큼은 내 마음속 느티나무 아래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어쩌면 그 느티나무는... 단순히 한 그루 나무가 아니라,
어린 나를 키워 준 또 하나의 따뜻한 고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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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고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08 감사합니다. 시인님.
  • 작성자아녜스 | 작성시간 26.06.09 고든님의 나무는 느티나무 였네요.
    저는 어렷을때 담장옆에 미류나무를 심었어요.
    심었다기 보다 곶아 놓은것이었지요 .
    굵게 자리는것을 보다가 그 집에서 이사를 하고
    다시는 가 보질 못했는데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납니다 .
    저는 고든님이 느티나무를 닮았다고 느껴집니다 .
  • 답댓글 작성자고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09 어렸을 때 버스를 타고 누나네집을 가든가 하면 버스 다니는 길가에 쭉 쭉 뻗은 미류나무가 많이 있었지요.
    님이 심은 미류나무 잘 자라고 있길 바랍니다.
    제가 미류나무 같다고 하니 기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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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아녜스 | 작성시간 26.06.10 고든 아니요 .
    느티나무를 닮은것 같다고 했어요 .ㅎㅎ
  • 답댓글 작성자고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0 아녜스 마법이네. 분명히 느티나무로 적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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