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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상

알고 나면 불편한 것들 — 아는 것이 병이다

작성자부천이선생|작성시간26.06.11|조회수180 목록 댓글 8

알고 나면 불편한 것들

— 아는 것이 병이다

 

 

소설의 한 장면을 서술하다가 풀과 꽃을 묘사하며 문득 우리 주변의 풀과 꽃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런 관심 때문에 주변에서는 내가 마치 뭔 야생화 전문가나 되는 것처럼 말하는데 사실은 전혀 아니다.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완전 초짜, 초보 중에도 왕초보이다.

 

하기야 어린 시절을 산과 들에 뛰놀며 자랐기에 내 나이 또래들에 비해 몇 개 더 알고 있을 수 있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관심이 있다는 것뿐이다. 하나둘 몰랐던 꽃이름을 알아가며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모르면 찾아보고, 못찾으면 물어보면 되니까.

 

하기사 꽃과 풀 이름을 모른다고 먹고 사는 데에 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빨강꽃, 노랑꽃, 흰꽃, 분홍꽃~~~이라 부른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꽃은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낄 줄 알면 되니까.

 

그런데,

그런데,

정말 그런데.

산과 들에 지천으로 볼 수 있는 그 풀과 꽃 이름을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아주 불편한 일이 생겼다. 그냥 불편한 것만이 아니라 무진장 불편하다. 나로서는 어찌 고치기가 힘이 든다.

 

그간, 산길 들길 그리고 공원길을 걷다가 좋은 것이 있으면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풀밭에 들어가 온갖 자세를 취하며 기념 사진도 찍었고 멋진 꽃나무 옆에 서서 인증샷도 박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무시로 드나들던 풀밭에 들어가기가 겁이 난다. 예전 같으면 아무런 생각 없이 밟고 지나갔을 풀밭. 그러나 그 풀밭의 여러 풀과 꽃들 이름을 알고부터는 이상하게 풀밭에 들어가기가 겁이 나는 것이다.

 

혹여 내가 그 풀과 꽃들을 밟지 않을까, 내 발이 그들을 짓눌러 뭉개버리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꼭 들어가야 할 풀밭일 경우 조심조심 내딛는 발걸음에 신경이 쓰인다.

 

청사초, 새포아풀, 말냉이, 황새냉이, 쑥부쟁이(싹), 개망초(싹), 보리뱅이, 소리쟁이, 갈퀴덩굴, 살갈퀴~~~

 

정말이지 전에는 그런 것들 그냥 밟고 짖이기고 아니면 뽑아버리고 무시로 풀밭에 드나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지난 달에도 인천 문학경기장에 프로야구 경기를 보러 갔다가 약속 시간보다 너무 일찍 간 김에 주변 풀밭을 둘러 보면서 그런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흠칫 놀랐다. 예전 같으면 그냥 라일락꽃 옆에 다가가 사진도 찍고 꽃이 핀 가지를 코끝에 당겨 향기에 흠뻑 취해보기도 했을 텐데. 그 날은 라일락 주변의 풀들을 보며 감히 다가서지 못했다.

 

이름을 알기 전에는 그냥 밟고 들어갔을 풀밭이지만, 라일락 주변에 가득 피어 있는, 내 눈으로도 이름을 알 수 있는 풀, 꽃들.

 

토기풀, 제비꽃, 꽃마리, 꽃다지, 별꽃, 벼룩이자리, 서양민들레~~

 

그들 이름을 알고 있기에 감히 발걸음을 내 딛을 수 없었다. 혹여 내가 그 풀들을 밟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얼마나 불편한 것인가. 이 불편함을 언제까지 감수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구 짓밟고 다니던 풀, 꽃들~~~

그런데 이름을 알고부터는 발걸음도 조심하게 되는 내 소심함(?). 그래서 들길에서 산길에서 그리고 풀밭에서 내 행동이 아주 불편하다.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

 

김춘수의 <꽃>이란 시가 생각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이름을 몰랐을 때에는 들꽃 들풀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로 밟고 다녔다. 그런데 그들의 이름을 알고부터는 혹여 밟지 않을까 조심하게 되었다, 뭐 그런 이야기이다.

 

들꽃 들풀에 대한 얄팍한 내 지식이 오히려 나를 불편하게 만든 것이다. 하긴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하지만 식자우환(識字憂患)이란 말도 있고  우리 속담에도 ‘아는 것이 병이다’는 말이 있으니.

그러니, 아~~, 이 불편함을 어찌할꺼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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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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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부천이선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1 수필 - 말 그대로 평소 품어왔던 생각들을 붓가는 대로, 아 자판 찍히는 대로 썼을 뿐입니다.
    관심 주시니 고맙습니다.
    ^(^
  • 작성자석촌 | 작성시간 26.06.11 잘읽고 갑니다.
    아는 것이 병이라도
    앓아도 좋을 병도 있으니
    제가 이 글을 읽으려고 어제는 어떤 들꽃을 만났나봅니다.
    아직은 열매가 맺지않아 소리가 나지않지만
    나직이 달강달강 소리를 낸다는 소리쟁이를 만났으니까요.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답댓글 작성자부천이선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1 <소리쟁이> - 그 풍성함ㅣ 좋지요.
    ^(^

    https://blog.naver.com/lby56/220795079794
  • 작성자지언 | 작성시간 26.06.12 글을 읽으면서
    풀이 카페 회원같다는 생각이
    자꾸 났습니다.
    풀에 사람이 대입되던데요.
    살살 걸어야 되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부천이선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5 카페 회원도 이름을 알고나면 더 가까와지지요.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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