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신혼 초에는 서로 반말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직은 풋풋한 새댁이었지만
혹시나 부부 싸움을 했을 때
막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서로 존댓말을 하자고 약속을 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존댓말을 하는 게 어색해서
잘 쓰지 않다가
어느 날 마음먹고 존댓말을 서로 쓰기로 했는데
기분이 좋을 때는 할만한데
남편 때문에 화가 많이 났을 때
꼬박꼬박 존대를 하자면 속이 터지는 것 같았다.
만두부인 속 터지듯이 불만이 터져도
존댓말을 하자니 더 화가 나고 답답했다.
어느 날 양파를 좀 많이 써는데
그날따라 어찌나 눈이 매운 지
정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남편이 양파를 엄청 좋아해서
볶음밥이나 찌개에도 양파를 넣고
각종 요리에도 양파를 넣었는데
눈물을 닦아가며 양파를 써느라
남편이 부르는데도 정신이 없어 대답을 안 하자
남편이 주방으로 와 내 얼굴을 보더니
허니, 왜? 우는 거예요?
혹시 내가 섭섭하게 한 거라도 있나요?
보면 몰라?
니가 좋아하는 그 양파 때문에 우는 거잖아?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속으로 삼키고
양파 때문에 너무 눈이 매워요, 했더니
이런! 이런! 그런 힘든 일은 미천한 저한테 시키시지
귀하디 귀한 마님께서 하시옵니까
이리 칼을 넘기시오. 소인이 하겠사옵니다, 하니
속으로, 그럼 진작에 좀 해주시지
눈물 콧물 다 흘리고 나니 해준다고라?
그래도 아직 썰게 조금 더 남아있으니
지금이라도 해준다는 게 어디야!
한 번 해봐라! 을매나 눈이 따갑고 매운지
고생 좀 해봐라! 하며, 칼을 넘겨주고
세수를 하고, 안방에서 음악을 듣다가
시간이 지나니 좀 걱정이 되어 주방으로 나가 보니
남편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정말 가관이 아니었다.
지금 양파 때문에 우는 거예요? 했더니
아니오, 갑자기 슬픈 일이 떠올라
잠시 눈물이 흘렀소. 그대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내가 마무리를 할 테니 쉬시구려.
에이! 아닌 것 같은데요.
조금 있으면 눈물바다가 되겠어요.
저한테 칼 주세요, 했더니
부인, 미안하오! 이리 힘든 일을 여리디 여린
갓 시집온 새색시한테 시키다니
내가 정말 눈치 없고 나쁜 놈이오.
이제부터 양파도 내가 썰고
식사도 내가 준비할 테니 부인은 맛있게 드시고
그저 웃기만 하시구려, 하니
그동안 쌓였던 불만이 따뜻한 말 한마디로
사르르 녹으면서 내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일부러 재밌게 하려고 하는
남편의 장난기 어린 말투도 웃기고
그렇게 눈물 한 스푼, 사랑 한 스푼, 웃음 한 스푼을
넣어 만든 볶음밥은 으트케나 맛있던 지...
그야말로 사랑볶음밥이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존댓말을 하는 것이 좀 답답하기는 했지만
싸울 때 서로 막 나가는 것을 방지해 주어
좋은 점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우리의 인생이 그런 것 같다.
양파처럼 썰때는 맵고 눈물 나도록 힘들어도
그 시간을 참고 견디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힘든 순간을 잘 넘기면 반드시 행복한 시간이
우리를 반겨줄 거라 믿는다.
혹시 지금 힘든 분이 있다면 힘내고 또 힘내시길...
순간의 고비를 욱해서 파국으로 치닫는 것보다
잘 넘기는 것도 삶의 지혜인 것 같다.
그 순간을 못 참아서 일이 커지는 경우가 있기에
매 순간 화를 한 템포 늦추고
지혜롭게 대처해나가야 한다.
속으로 생각한 것들을 걸러내지 못하고
아무 생각 없이 다 말로 쏟아내면 결국 판이 커져
진흙탕 싸움이 된다.
그러니 항상 말조심, 글조심을 해야 한다.
판이 커지지 않게 매사에 감정을 조절하고
솔직함을 가장해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함부로 퍼부어서는 안 된다.
자칫하면 큰 싸움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판이 커지는 것이다.
작은 일을 크게 만들어
복잡하고 서로 힘든 상황이 되지 않도록
때에 따라서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날 줄 아는
아량도 필요하다.
팽팽한 기싸움과 아집으로 끝장을 내려다
막장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타고
후회와 상실의 종착역에 내리지 않도록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최근에 친언니와 다투다
해서는 안될 험악한 욕을 듣고
의절얘기까지 나온 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충분히 대화로써 풀 수 있는 문젠데
험한 욕을 해버리니까 감정이 상해
그다음부턴 대화가 안 된다는 것이다.
케케묵은 지난 일까지 들춰내며
판이 커졌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언어도 성숙해져야 하는데
욱하는 감정이 앞서면 스스로의 품격을
유지하기가 힘든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면 점잖게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순간적인 감정에 욱해서
욕을 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
그러나 나중에 뒷수습을 하려면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물론 욕을 할 수밖에 없는 예외적인 상황도 있겠지만
그런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
작은 일은 작게 생각하고
큰일은 크게 생각해야 한다.
이게 뒤바뀌지 않도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사랑과 삶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공유하고 교감하며
스스로와 타인을 인정하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악한 마음은 멀리하고 선한 마음을 베풀며
믿음과 진실을 지켜나가야 하는 것임을
마음속으로 되새기고 또 되새긴다.
자기 거만 무조건 챙기려고 하는 욕심보다
타인의 권리와 인격도 지켜주는
기본적인 양심과 자비가 우리에겐 필요한 것 같다.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삶의지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5 싸우고 난 후
될 수 있으면
빨리 화해하는 게
서로를 위해 좋지요~
대화를 하다 보면
마음이 자연스럽게
풀리는 것 같습니다
두 분, 알콩달콩
행복하게 사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쉽지않지만
저는 가능한
존댓말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
작성자부천이선생 작성시간 26.06.15 부부간에 존댓말 쓰기 - 적극 권장합니다.
저는 띠방 회원들에게도 절대 반말 안합니다.
반말은 처음에는 편하지만 나중에는 아주 고약한 사이가 되어버리지요.
존댓말은 처음에는 불편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관계를 돈독하게 해주거든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
답댓글 작성자삶의지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6 제마음과 같은 글이네요~
더운 날씨에 건강 잘 챙기시고
언제나 파이팅!!! 입니다 -
작성자고든 작성시간 26.06.17 두분이 말씀을 참 재미나게 사랑스럽게 하시네요.
젊은그대 심수봉이 불렸군요. 가사가 생각납니다.
.. 고독을 느껴 보았나.... 왜 서로를 사랑하지 않나~~ -
답댓글 작성자삶의지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8 ㅎㅎㅎ~
저는 웃으면서 재밌게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근데~
'젊은 그대' 가 아니라
'젊은 태양' 이고
이 노래의 원곡자는
심수봉이 아니라
다른 사람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왠지
기분을 업시켜주는
노래 같아서
제가 노래방 가면
자주 부르는 노래랍니다
날씨는 더워도
마음은 쿨한 여름날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