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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상

[수필]무소유라는데

작성자따오기|작성시간08.09.22|조회수124 목록 댓글 12

무소유라는데

 

 

 

  매월 초하루가 되면 어김없이 사찰에 나오시는 송 보살님이시다. 자그만 하신 몸매는 뵙기에 기운이 하나도 없으시다. 젊어서부터 화초 기르기에 취미를 붙여 여든 여섯, 지금까지도 그 화초를 사랑하고 계신단다. 법회를 마치고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져 이런저런 말씀 끝에, 당신은 좋아서 버릴 것이 없어 버리지 못하고 있는데, 같이 사는 며느리는

  “어머님. 홍콩야자수는 너무 크니 내다 버리면 좋겠어요. 저 많은 화초를 다 어떡하시겠어요?”

  자주 불편한 심기를 보인다고 했다. 연세 많으신 시어머님이 기운이 부치도록 화초에 매달리는 모습이 안타까워 이젠 편히 쉬고 계시라고 말리는데도 지금까지 아끼고 보살피던 나무와 화초들을 아무에게 함부로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다버릴 수도 없어 고민이 된다며 말씀하시는데

  “보살님. 이젠 편히 계셔도 좋겠네요.”

  이렇게 권하였으나 선뜻 그래야겠다고 하진 않으셨다.

 

 

  더러 필요한 사람이 달라하면 갖다 주시겠다더니, 저번에 선인장 화분을 가지고 절에 오신 것도 어느 보살에게 주려고 그리하셨단다. 듣고만 있던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우리 집 남편도 화초를 어찌나 사랑하던지, 남이 길가에 버린 것도 주워 와서 제가 성화를 대도, 알뜰히 심어 물주고 가꾸어 꽃을 피워요. 보살님 며느리같이 마음대로 버리고 싶어도 못 버려요.”

  그 말을 듣던 송 보살님 눈빛이 반짝거렸다.

  “화초를 그렇게 좋아해요? 내가 난 화분 한 개 갖다 줄까?”

화초를 기르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물려주고 싶은 여망이다 기에 그냥 그러시려니 하고 지냈다.

 

 

  여러 날이 지난 후 음력 8월 초하루였다. 일산에서 지하철을 타면, 강남 양재역까진 한 시간이 조금 걸린다. 아침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고 늦어서 서둘러 지하철을 타고 양재까지 가서 역 밖으로 나왔다.

  가야 될 사찰까지는 거기서 마을버스를 또 타거나 아니면 시간 여유가 있는 땐 슬슬 걸어도 10 여분 남짓

돼서 걷기도 하지만 오늘은 마을버스를 탔다.

  버스가 다음 정류장에서 멈췄다. 문이 열리고 먼저 들어오는 분이 몸은 보이지 않고, 흔들거리는 기다란 난초 화분만 눈에 들어왔다. 얼른 사람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송 보살님이셨다.

 

 

  분홍색 보자기에 얌전하게 싸인 싱싱한 동양난이 나풀나풀 춤을 춘다. 주인이 힘들게 들고 오는데도 아랑곳없다. 분당에서 양재까지 버스를 두 번을 갈아타고, 또 마을버스를 세 번째 갈아타는데 나를 만나신거다. 잽싸게 일어나서 난초 화분을 받아들고, 보살님을 부축하여 자리에 앉혀드렸다.

  “아, 보살님! 힘드시게 왜 이러세요. 그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신 모양이네요.”

  미안하고 황송했다. 묵직한 난초 화분은 긴 게 특징인데, 다치고 깨질세라 조심해서 가져온 것을 나에게 인수하시고 나더니 숨이 차신 듯 길게 내쉬신다.

  “화분을 받아 버스에 올려 주시는 사람들이 있어 힘이 덜 들었어요. 곳곳에 부처님이 도와 줬어요.” 하신다. 그렇게 말씀하시기에

  “맞아요. 보살님. 저도 그냥 걸어갔으면 보살님이 더 힘들었을 텐데 이 버스를 타길 잘했어요.”

  다행이다 싶었다. 절에 도착하여 여러 신도에게 보살님이야기를 했더니 모두 깜작 놀란다.

 

 

  분당 오리역에서 일산 마두역까지는 족히 두 시간이 넘는데, 먼 길을 이동해서 우리 집까지 온 난을 껴안고 쓰다듬으며 나는 중얼거렸다.

   “난아! 난아! 아름다운 난아! 여기까지 시집 왔구나. 갖다 주신 송 보살님 정성에 보답하여 잘 키워 줄 게. 무럭무럭 잘 자라다오. 꽃은 일 년 후에 향기 좋은 노란 꽃이 핀다니 그때까지 자리 잡고 몸살감기 들지 마.”

 

 

  법정스님의 수필 ‘무소유’는 선물 받은 난으로 인하여 마음이 자유롭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가졌기 때문에 불편했던 일을 나타낸 글인데, 몇 번을 읽어봐도 마음에 와 닿는 글이라 나도 무소유 정신을 가지고 살리라 했는데, 이 화분은 차마 어쩔 수 없게 됐다. 무소유를 실천하듯 애지중지 기르던 난초를 선뜻 주신 뜻을 고맙게 받아들이고 말았다.

  개를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만큼 나무와 화초를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들 마음은 똑같지 않을까, 어머니가 딸 시집보내 듯 난이 다칠 세라 연분홍 속지를 얌전히 두르고, 또 분홍색 보자기로 단단히 싸서 묶은 매듭이 풀어질 세라 다시 투명 테이프로 돌돌 감아주신 그분이 지닌 참마음마저 저버릴 수가 없어 꽃피도록 정성껏 키워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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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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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따오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09.24 석천님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요즈음 글도 안 올리시니 어인 일인가 싶어요. 건강하시고 건필 하시기 바랍니다. 난은 기르기가 까다롭다고는 하지만 정성을 다할 작정입니다.ㅎㅎㅎ 감사합니다.
  • 작성자솔나리 | 작성시간 08.09.24 따오기님 글 오랫만에 읽었습니다. 주시는 분이나 받으시는분에 고운 마음씨가 그대로 전해 지는듣 합니다.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따오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09.25 솔나리님. 안녕하세요? 모두 건강하시지요? 저도 오랜만에 솔나리님의 고운 댓글을 받으니 기분이 좋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작성자미솔 | 작성시간 08.09.30 아름다운 마음이 담긴 향기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따오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09.30 안녕하세요? 미솔님. 수필방에 첫 걸음하시고 고운 댓글도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자주 글도 올리시고 격조 높은 문우의 정을 나눠 보시도록 하세요.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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