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꾼 만남)
차라리 죽을까
아냐! 이대로 죽으면 혼자 편한 세상 길로 갔다고 비겁하다 할지도 몰라
여자아이 넷을 키우며
당신이 먼저 떠나면 이 아이들은 어쩌냐고 욕하겠지
새벽마다 나를 위해 기도 하시는 어머니는 어쩌고..
봄 아지랑이 피는 5월이건만 한겨울 옷을 입고
총 없이 전쟁터를 가는 군인처럼 군대 선배 뒤를 따라갔다.
출판사 문을 열자
깔끔히 차려입은 남자들이 책상마다 앉아 있었고
사장님이 반겨주시며
누군가 버리고 간 검은색 007 가방에 책 카탈로그를 챙겨주었다.
첫 출근한 그날.
책 내용도 가격조차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현장으로 달려 나갔다.
공무원 퇴직금까지 가불해 날리고 급기야 사채까지 얻어
깍두기 들을 피해 공원에서 노루잠을 자다
너무 춥고 배가 고파 도망치듯 선배 따라온 것이다.
밤낮 빚쟁이들에게 곤욕을 치를 아내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고
아이들 걱정에 숨이 막히는데 어디에 가서 무슨 책을 판단 말인가
선배가 찔러 넣어준 푼돈으로 점심을 컵라면으로 때우고
골목 층계에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보다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렸지만
개에게 쫓겨 나오기도 하고. 무단침입으로 신고도 당했으며.
큰 길옆 화장실을 가정집인 줄 알고 "계십니까?"노크를 하고 창피해 먼 곳으로 도망치며
난 죽어 다시 태어남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내가 윈하는 학교에 가고 싶어
화장실에서도 외워 대던 영어 단어
나의가슴을 두두렸던 여교생 음악선생님
소리치고 싶었던 대학합격 통지서
가난하게 살더라도 비굴하진 말자하던 해병동기들
이젠
너 누구니~~? 물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었다
난하루를 개념없이 살아가는 불나방 이었다
비가 내릴 것 같은 오후
내리막길 대문이 열려있는 집에 스님 같은 분과 아이들이 보였다
순간! 스님이라면 불자이시라면
내 이야길 들어줄 것 같아 뛰어 들어갔지만
온몸에 문신과 흉터를 보니 섬찟한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스님?"하고 부르며 007 가방을 열자
책 안 사니 시간 낭비하시지 말고 다른 곳에 가 보시라고
그리곤 "내가 스님으로 보이냐며" 밀치듯이 나를 몰고 대문 쪽으로 갔다
겁은 났지만 생각하지도 못했던 거짓말이 터져 나왔다.
내 입에서 어찌 그런말이 나왔을까
스님~ 대전역 룸살롱 폭력 사건 기억하시나요?
그때 그 사건으로 제가 폭력방 감방장으로 지내다가 출소하여..
조금 생각에 잠겨있던 빡빡이 스님이 눈을 껌뻑이며
전화기를 돌리며
면도칼아~? 재떨이 데리고 빨리 오라고..
지원군을 부른 것일까.
생각했다 그냥 도망칠까 아니면 갈 데까지 가볼까
그런데 잠시 생각할 틈도 없이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두 분이
뛰어오셔서" 형님 무슨 일이냐며" 나를 흩어보고 있었다.
면도칼은 온몸에 정글처럼 동물 문신이 있었고 재떨이는 얼굴에 칼자국이 있어
누가 봐도 그런 분이었다.
그때 그 빡빡이 스님이
이분이 대전 폭력 사건으로 교도소에 가서 감방장을 하다 출소했는데
아내 되시는 분은 몸이 아파 누워있어 먹고살 길이 막막해
어린이 책 들고 왔다 하니 너희들 애들 책 사준 적 없지?
오늘 사줘라~명령이었나
그날 빡빡이 스님에겐 학생 백과와 위인전을. 면도칼 에겐 애니메이션.
재떨이에겐 과학 백과와 창작동화를 계약하고
사무실까지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뛰어왔다.
그 후. 거짓말을하여 책을 판매한 나 자신이 창피하고 자괴감까지 들어
돌파리스님의 전화가 왔었지만 받지 않았다.
토요일 아침 사장님이 왜 전화 안 받느냐며 목소리 높이신다
죄인처럼 수화기를 드니 예상대로 그 돌팔이 스님이 시었다.
"감방장? 왜 전화 연락이 되지 않니" 지금 달려오라고...
죽일려면 주여봐 하는 마음으로
사실을 말했지만, 한동안 나를 감방 짱이라 불렀고
나도 그분을 돌팔이 스님이라 불렀다.
어느날 오전
넌 죽으려 하는 결심이 없는 거야
죽으려 마음먹으면 무서울게 뭐 있느냐고,
죽어도 좋다는 놈이 왜 도망 다니냐며
돌팔이스님의 일행들과 함께 사채업자 사무실로 향하였다
2층으로 포갠 컨테이너박스
나도 더이상 도망 다니기 싫어 문을 발로 차고 들어갔다
온몸에 문신을한 덩치들이
한번 해보겠느냐며 몸을 세웠다
돌파리스님이 말했다
내 사랑하는 동생인데 내 앞에서 동생 배를 따 든 지
돈계산을 다시 하던지...
나머지 돈을 7월 말까지 갚아 주기로 하고 사채 없자 사무실을 나왔다
그 후로도 돌팔이 스님이 책살 사람들을 모아놓고 나를 부르면
난 강사처럼 007 가방을 들고 달려가곤 했다.
그해 7월 휴가철
돌파리스님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말을듣고 뛰어갔지만
복도와 병실에 많은 덩치들이 있기에
나를 설명할 이유가 없어 그날까지 병원비를 수납하고 나왔다
남들은 그분의 혐오스러운 외모에 거리감을 두고 눈을 찌푸렸지만
내 삶에 결코 지워서는 안 되는 은인이었다
"세상이 미워 죽고 싶을 때가 있지?
하지만 두고 봐 그날이 그리워질 때가 있을 테니"
그 말의 끝을 잡고 끝이 없을 것 같은 어둡고 험한 터널을 빠져나왔다.
그해 7월 말
모든 빚을 정리하고
어둑해진 마음을 달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숨통이 막히는 절박함 속에서도 밝은 빛은 있고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힘들다고
다음 해 5월
소설 문학상을 받던 국회의사당 무대에 서 있을 때
수많은 관중 속에서 남루한 모습의 돌파리 스님이
"감장장"이라 부르며 무대로 올라와
많은 분들이 당황했지만
우리는 남 의식 안 하고 끌어안고 있었다.
너 덕분에 국회의사당도 들어와 본다고 ...
그리고 행사를 마친 후 돌파리 스님을 찾았지만
바람처럼 사라진 후였다
죽으려 하지 않아도 언젠간 죽어
왜 사느냐고 스스로 물어봐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힘든 거야~
그 시시껄렁한 말끝을 잡고 많은 날을 지내왔다
그 후로 몇 번의 대상을 더 받았지만 돌팔이 스님은 보이지 않으셨다
많은 세월이 흘렀다
"오늘이 거칠고 투박하다고 버릴 수 있어?"
"힘든 오늘이 있기에 꽃피는 봄날이 오는 거야~"
세월은 시위를 떠난 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이젠 죽기에 참 좋은 나이이다
하지만 열아홉 소년처럼 살아 가리라
글.시골바다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시골바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06.18 감사드려요 리야님
잘지내시는 거죠?
10여년전 병문산 기슭을 오르는데
뒤에서 비목 노래가 들려요
너무 아름다운소리에 뒤 돌아보니
리야님 이셨어요
지금도 그 4월의 조금 추웠던 봄날
리야님이 부르시던 가곡을 기억한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오후 보내십시오~ -
답댓글 작성자리야 작성시간 24.06.19 시골바다 아고나
그랬던가요?
추억 해 주셔서 감사해요
야외로. 나가면
즐거워서
업 되는 기분에
오디서나
저도 모르게
저절로 라이브로
부르고 다녔었지요
-
작성자타임. 작성시간 24.06.19 옛날 할부책
한질 안사신분
없을것 같아요.
추억하나 꺼내서
본 느낌입니다.
글쓰시는 재주가
좋으시네요.
귀인스님의 소식이
궁금하지만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
작성자시골바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06.19 힘들었지만
소중한 추억이 되었네요
활부책 가방을 들고 골목을 뛰어 다니던
시절ㆍ 그래도 그때는 젊음이있었는데요
고운댓글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행복하시고요
아~돌팔이스님! 좋은곳에서 잘 사시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