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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손공구

작성자주현이|작성시간24.06.18|조회수58 목록 댓글 8

 

열일곱 처음 손 공구를 틀어쥐었다.

차고 묵직하고 세상처럼 낮 설었다.

스물일곱 서른일곱 속맘으로 수없이 내팽개치며

따뜻한 밥을 찾아 손공구와 함께 떠돌았다.

 

나는,,, 천품은 못되었다. 삶과 일이 모두 서툴렀다. 그렇다.

그렇다. 삶과 일과 그리고 유희가 한 몸뚱이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나는 머리칼이 잔뜩 센 나이 마흔일곱에야 겨우 짐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아주 오래 움켜쥐고 있으면

쇠도 손바닥처럼 따스해지고야 마는 듯 

초등학교 이학년 아이에게 공구 세트를 선물했다.

지퍼를 당기는 손이 가볍게 떨고 바로 그때

아이의 탄성처럼 은백의 광채가 그곳에 떠도는 것을

나는 처음이듯 보았다.

 

이면우 시인의 '손공구'라는 시입니다.

10여 년전 모 걷기 카페에서 활동할 때,

어느 회원이 이 시를 올렸었는데

제가 아래와 같이 댓글을 올렸었지요.

 

(댓글)

 

시를 읽고 동갑내기 내 친구를 생각했습니다.

52녀 중 둘째 아들이었던 이 친구는 형이 중학교 교복을 입고 다닐 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자동차 공업사 시다로 처음 일을 시작했더랍니다.

기름때 묻은 옷과 공구를 들고 육중한 트럭 하체의 압박감을 느끼며,

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열네 살 어린아이의 손에 들려진 몽키 스패너,

추운 겨울 차 아래서 닦고 조이고 기름칠 하고... 

그는 그렇게 일을 배웠습니다.

형은 검은 교복에 모자를 쓰고 말쑥한 모습으로 학교를 다닐 때

이 친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저는 상상을 못하겠습니다

 

농촌에서 낳은 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으니 형은 공부해야 하고

그 친구는 서울에서 일 배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열일곱도 아닌 열네 살 그 어린 나이에... 그렇게 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우리가 이십 대 초반이 되었을 때 그 친구를 만났습니다.

제가 아마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친구는 무교동에서도 꽤 큰 어느 술집에서 일한다고 했습니다.

이름을 알만한 가수와 배우들이 출연한다며 표정이 밝아 보이더군요.

열일곱 어린 나이에 공구를 갖고 찬 콘크리트 바닥에서 소년기를 보낸

친구에게 조명이 화려한 술집이 동경의 대상이 되었을까요

저는 묻지를 못했습니다

 

그 만남 후 십수 년이 흘러갔습니다.

삼십대 중반에 우리는 다시 만났고 그는 아주 멋진 남자로 변해있더군요.

클럽에서 일한 것은 그때 잠시 잠깐 ,

다시 그 공구를 쥐고 처음 시작한 일터로 돌아갔답니다.

마침 자가용 수요가 늘어 난 시기라 차를 수리하는 일감도 많아져

혼자 독립을 했다더군요.

카센터를 차렸는데 일이 밀려들어서 직원을 두고 일을 했다지요.

몇 년 후 다시 만난 그 친구는 외제 차를 타고 있었습니다.

레스토랑을 인수해 경영한다더군요.

어느 별장에 친구들을 초대해 멋진 술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가 부러운 친구들도 있었을 텐데

저는 왜자이언트에서 제임스 딘 모습이 떠올랐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까지 장문의 댓글을 올렸다가 좀 거시기(?) 해서 지웠더니

다음과 같은 답글이 올라오더군요, ㅎㅎ

 

썼다가 찢어버린 편지 같은 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먹먹한 마음으로 어떤 댓글이 좋을까 망설이는 사이,

하늘 위 구름 흘러가듯 빗긴 하얀 자욱만 남았네요,

 

괜찮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이야기는 남아 있으니까요...

 

  노래를 듣다보니 그 친구 생각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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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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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주현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6.19 노래 제목은 '꿈'입니다~ㅎ
    그 시절 젊은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올라온 서울에서
    명절에 고향 생각하며 이 노래를 듣지 않았을까 싶네요..
  • 작성자유누 | 작성시간 24.06.19 세계 기능올림픽 13번 우승을 했던 대한민국입니다.
    추운겨울 손공구의 차가움과 쇳덩이의 차가움,
    거기서 탄생하는 예술적인 작품들,세계인들은 우리 대한의 손기술을 극찬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거지요.
    그때의 주역들은 다들 어디서 잘들 살고 있는지,
    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도해봅니다.~
  • 답댓글 작성자주현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6.19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 한국인의 손 솜씨는 어디에 내놔도 자랑할 만 하죠~ㅎ
    그 시절 어려움을 견뎌낸 우리 6~70세대 분들, 어디서 든 잘 살고 계실거라 믿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 작성자리야 | 작성시간 24.06.19 자동차 정비 기술자
    이시대 최고 가는 직업이죠
    집집 마다 자가용 소유하고
    카센타는 성업중 이죠
    일찌감치 기술. 배운건
    기반 잡는데는
    최고라요
  • 답댓글 작성자주현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6.19 어느 분야든 기술을 갖고 있으면 좋겠죠.
    기술이 직업은 아니라 해도 손재주는 있어야 하는데,
    전 손재주가 없어서 아내에게 잔소리만 듣고 사네요~ㅠ
    무엇 좀 손 보라고 하면 할 줄 아는 게 없다고요~ㅎㅎ

    리야님,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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