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자유 게시판

<포토에세이> 아주 오래된, 익숙한 편안함과의 이별

작성자부천이선생|작성시간26.06.08|조회수71 목록 댓글 2

<포토에세이>

아주 오래된, 익숙한 편안함과의 이별

 

 

2021년 5월 11일 화요일.

부천시민 작가교실 강의 영상 촬영이 있는 날이다.

외출복으로 갈아 입으려고 와이셔츠를 꺼내다가

세탁소에서 찾아와 걸어둔 것들 중에

나도 모르게 한 와이셔츠에 손이 갔다.

 

비닐을 벗기고 옷걸이를 빼내다가 문득 든 생각.

 

<이 옷을 아직도 입고 있구나.>

 

그도 그럴 것이

몇 달 전 세탁소에 맡길 때 주인장이 권했다.

 

<이제 그만 버리시지요.>

 

세탁소 주인의 눈에는 버려야 할 옷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러고도 벌써 여러 차례 세탁소를 왕래했다.

 

하긴 목과 손목 깃이 해져서 색이 바랬다.

한눈에 오래된 옷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해진 옷깃이 너무 닳아 보푸라기가 일 정도이다.

와이셔츠를 그 정도 오래 입었으면 이제 버릴 만도 할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럴까.

이 와이셔츠는 버리고 싶지 않다.

그 뿐만이 아니라 세탁소에서 찾아오면 제일 먼저 입게 된다.

 

이름난 명품도 아니요, 값비싼 셔츠도 아니다.

약간 푸른 빛이 도는 바탕에 흰색 줄무늬가 들어갔지만

디자인이 눈에 뜨이는 것도 아니요 색상이 유난히 돋보이는 것도 아니다.

천의 품질이 우수하여 감촉이 특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근 20년 전, 한창 여러 대학에 출강할 때

몇 벌 구입한 와이셔츠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유독 이 와이셔츠는 입을수록 편하다.

옷장에 걸린, 세탁소에서 찾아온 와이셔츠 중에

이것보다 오래 된 것이 없다.

함께 장만한 같은 디자인 같은 상표의 와이셔츠들 중 이것만 남아 있다.

 

와이셔츠를 20년 입는다는 게 좀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간 입다가 버린 와이셔츠도 많다.

그런데 이 와이셔츠만큼은 버리지 않고 계속 입고 있다.

 

강의영상 촬영하기 전에 와이셔츠를 기념하며 한 장 박았다.

.

.

이 와이셔츠에 얽힌 멋진 기억이 있던가.

특별한 사람이 선물한 것일까.

이 와이셔츠를 입었을 때 커다란 행운이 있었던가.

혹은 좋은 인연을 만났던가.

 

아니다.

이 와이셔츠와 관련한, 그런 특별한 일화나 이유가 없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이 와이셔츠에 먼저 손이 간다.

 

강의영상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와 무심히 생각에 잠겼다.

나는 왜 이 와이셔츠를 이렇게 해질 때까지 입고 있을까.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들을 살펴보니

드물게 이 와이셔츠를 입고 찍은 사진들이 보였다.

 

2008년 10월 어느날 서울숲에서 찍은 사진인데 몰골이 안좋다.

혼자몸이 된 후 근 1년 거의 폐인처럼 지내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이니 몰골이 저렇다.

그 때 이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혼자된 것과 이 와이셔츠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전혀 아니다.

혼자가 되기 전에 이미 이 와이셔츠는 있었고

집을 나오며 옷가지를 챙기면서 다른 옷들과 함께 가지고 나왔을 뿐이다.

 

부천시민이 되고 2010년 10월 어느날 상동호수공원 산보를 하다가 찍은 사진이다.

2008년 서울숲에서 입었던 와이셔츠와 잠바 그대로이다.

이 옷만 있었던 것은 아닌데 우연인지 같은 와이셔츠에 같은 잠바이다.

얼굴빛이 좀 생기가 돈다.

혼자 사는 데에 그만큼 익숙해졌을 것이다.

 

2012년 봄, 가회동에서 있었던 모임에서 찍은 사진이다.

같은 와이셔츠, 겉옷은 벗고 와이셔츠 바람에 찍었다.

 

2014년 가을, 소설가 김홍신 선생 문학나들이 행사에서도 이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다.

(김홍신 선생 옆에 내가 앉았고, 뒤에 이준옥, 박주호, 황인수 등 소설가들이 섰다.)

행사를 기획하고 이곳저곳 살피느라 가슴팍에 땀이 배었다.

 

2016년 가을, 부천 북부역 광장에서 있었던 시낭송회에 참가했을 때에도 이 와이셔츠를 입었다.

와이셔츠만이 아니라 넥타이 대신 목에 걸었던 팬던트도 유독 자주 맨 것이 있다.

.

.

와이셔츠를 따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니 거기 내 삶이 보인다.

그러다가 문득 눈에 들어오는 것

와이셔츠만이 아니라 잠바도 오래 입고 있다.

 

2021년 3월, 푸른수목원 나들이를 했을 때에

지난 2008년 서울숲에서 입었던 그 잠바를 입고 있었다.

 

이렇게만 보면 단벌 신사로 오해를 받겠다.

그러나 사진들을 찾다 보니 그 속에 내가 아끼던 것들이 보인다.

 

목과 손목 깃이 다 해져서 하얗게 색이 발한 와이셔츠.

이 와이셔츠를 입으면 우선 편하다.

마치 내 몸을 감싸주는 느낌이다.

언제 입어도 새옷을 입는 느낌이요

세탁소에서 찾아와 바로 입어도 어제 입었던 옷처럼 익숙하다.

내 몸과 이 와이셔츠 궁합이 맞는 것이지 이유가 없다.

그냥 익숙하고 편하다.

그런 <익숙하고 편안함>에 나는 이미 길들여졌는지도 모른다.

 

촬영한 강의 영상을 모니터링하다가 든 생각.

저 와이셔츠를 입어서였을까.

강의하는 내 모습이 참 편안하다.

 

그러다가 이어진 생각

근 20년이 되도록 내 몸을 감싸준 저 와이셔츠가

비록 낡고 해졌을망정 내게 편안한 것처럼

오래 알고 지내는 누군가에게, 나는

오래된 만큼 편안한 사람이었을까.

 

저 와이셔츠를 아직도 찾아 입는 이유가 뭘까.

편안함과 익숙함이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정확한 근거가 되지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그냥'이다.

그냥 편안하고 그냥 익숙하다.

 

이 와이셔츠처럼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냥' 편안하고 익숙한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이 와이셔츠를 입을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그냥' 오래도록 즐겨입을 것만은 확실하다.

 

- 2021년 5월 13일에

 

~~~~~~~~~~~~~~~~~~~~~~~~~

 

저 글을 쓰고 5년이 지난 오늘, 2026년 6월 8일.

즐겨 입던 저 와이셔츠와 이별을 했다.

 

색이 바래 이제 본래의 색상은 찾을 수 없고

땀과 담배연기에 누렇게 변하다 못해

결국 와이셔츠 깃이 튿어졌다.

 

세탁소 주인장이 이제 버릴 때가 됐다고 했던 게 몇 해 전인데,

오늘 입고 벗으며 보니

이젠 정말 버려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옷을 버리지 못하는 습성

아주 오래된, 익숙한 편안함 때문이다.

이것도 병이지 싶다.

 

헌옷으로도 보내지 못할 정도라

옷을 구겨 쓰레기통에 넣으며 내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유씨부인()처럼 조침문(弔針),

아니 조'와이셔츠'문(弔와이셔츠文)이라도 써야 할까 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시니 | 작성시간 26.06.08
    와이셔츠를 해질 때까지 입다니...
    정말 오래되었군요.
    와이셔츠를 세탁소에 가져가서 세탁요?
    아주 오래된 방식입니다.
    요즘은 집에서 그냥 빨고 말리고로 입습니다.

    의미를 지닌 와이셔츠
    생명을 다 할 때까지 함께 잘지내셨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부천이선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08 요즘 와이셔츠는 옷감이 좋아 세탁하여 털어 말리면 끝이지만, 예전 와이셔츠들은 다림질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ㅎㅎㅎㅎ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